불가능을 바라는 건 오만이다
나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싶었다. 적을 두고 싶지 않았고 평화를 사랑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누구한테나 친절했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를 '가식적'이라고 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는 나를 싫어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2:6:2 법칙. 조직 심리학에서 말하는 법칙이다. 어떤 집단에서든, 사람들의 반응은 2:6:2로 나뉜다.
2할: 나를 좋아하는 사람
6할: 중립적인 사람
2할: 나를 싫어하는 사람
아무리 내가 잘해도, 아무리 내가 착해도, 2할은 나를 싫어한다. 이유가 없어도 싫어한다. 내가 잘못한 게 없어도 싫어한다. 그게 사람의 본성이다. 나는 그동안 그 '2할'을 붙잡으려고 애썼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들도 날 좋아할까?' 더 웃어주고, 더 도와주고, 더 착하게 대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들은 더 멀어졌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도 안티가 있었다.' 예수님. 인류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한 분. 그런데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을 미워한 사람들이 있다. '부처님도 안티가 있었다.' 부처님. 자비와 평화의 상징. 그런데 부처님을 비난한 사람들이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거부한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과 부처님도 모두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그럼 나는? 내가 뭐라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했나. 나는 예수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데 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완벽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그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인지 깨달았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건 '불가능'을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불가능을 바라는 건 '오만'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랐다. 모든 사람이 나를 칭찬해 주기를 바랐다.
그건 교만이었다. 더 솔직해지자. 나는 왜 모두에게 사랑받고 싶었을까? 사랑받는 게 좋아서가 아니었다. 미움받는 게 무서워서였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나는 불안했다. '내가 뭘 잘못했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날 좋아할까?'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어느 날, 나는 포기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게 두자.' 나를 "가식적"이라고 하는 사람? 그럼 그렇게 생각하게 두자. 나를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 그럼 그렇게 느끼게 두자. 나는 더 이상 그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기로 했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나를 싫어하는 2할을 신경 쓰지 않으니까, 나를 좋아하는 2할이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나를 응원해 주던 동료.
"OO 쌤, 오늘도 수고했어요." 내가 힘들 때 챙겨주던 후배. "쌤, 괜찮으세요? 커피 한잔 하실래요?" 내 진심을 알아주던 선배. "OO 씨는 진짜 착해요. 꾸민 게 아니라 진심인 게 보여요." 나는 그동안 이 사람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나를 싫어하는 2할에게만 집중하느라, 나를 좋아하는 2할은 무시했다. 중요한 건 '2할'이다. 나를 좋아하는 2할. 그들이 진짜 내 사람들이다.
나머지 8할(중립 6할 + 싫어하는 2할)을 붙잡으려고 애쓰느라, 정작 진짜 내 사람들을 소홀히 했다. 이제는 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자. 며칠 전, 또 누군가 내 뒷담화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밤새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생각했다. '아, 그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2할이구나.' 그리고 넘겼다. 대신 나를 좋아하는 2할에게 더 신경 썼다. 항상 응원해 주는 동료에게 커피를 사줬다. 나를 챙겨주는 후배에게 "고마워"라고 말했다. 내 진심을 알아주는 선배에게 "덕분에 힘이 나요"라고 전했다.
이제 나는 안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건 오만이다. 나는 신이 아니다.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누군가는 나를 싫어할 것이고,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2:6:2.
2할은 나를 좋아한다 → 이들을 더 사랑하자
6할은 중립이다 → 이들과는 편하게 지내자
2할은 나를 싫어한다 → 이들은 놓아주자
모든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 필요 없다. 진짜 내 편인 2할에게 집중하면 된다. 요즘 나는 훨씬 편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 때문에 밤새 고민하지 않는다. 대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깨달았다. 모두에게 얕게 사랑받으려 하지 말고, 몇 사람에게 깊게 사랑받자. 오늘 아침, 동료가 말했다.
"OO 쌤, 요즘 표정이 밝아 보여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가요? 별로 안 그런데요" 하고 겸손한 척했을 텐데. 이제는 그냥 받아들인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의 칭찬을, 있는 그대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이제 당신들을 설득하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가식적이라 해도, 재미없다 해도, 괜찮습니다. 나는 당신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니까요.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고맙습니다. 이제 당신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이 진짜 소중한 사람들이라는 걸 이제 알았습니다.
예수님도, 부처님도, 안티가 있었다. 나는 뭐라고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했나. 이제는 안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는 건 오만이고, 진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게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