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30번 사과하는 사람
"죄송합니다." 나는 하루에 사과를 셀 수 없이 한다.
아침에 출근길 택시에서. "죄송한데, 여기서 세워주시겠어요?"
점심시간 식당에서. "죄송한데, 물 좀 더 주시겠어요?"
커피숍에서. "죄송한데, 아이스로 변경 가능할까요?"
옷가게에서. "죄송한데, 다른 거 입어볼게요."
편의점에서. "죄송한데, 봉투 하나만 더 주시겠어요?"
하루가 끝나갈 무렵, 문득 세어봤다. 오늘 내가 한 사과. 대충 20번 정도? 아니, 어쩌면 30번도 넘을 것 같다.
왜 나는 이렇게 사과를 달고 살까? 솔직히 말하면, 사과가 편하다. "여기서 세워주세요"보다 "죄송한데, 여기서 세워주시겠어요?"가 더 부드럽게 들린다. "물 주세요"보다 "죄송한데, 물 좀 더 주시겠어요?"가 더 예의 바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과를 하면 나를 젠틀한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쌤은 참 예의 바르네.' '말을 참 부드럽게 하시네.'
사과는 나의 친절 포장지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말했다. "자기는, 왜 맨날 미안하다고 해?" "응? 내가?" "응. '죄송한데~' 이게 말버릇이야." 나는 당황했다. "그런가? 그냥... 예의인 것 같아서." 여자친구가 웃었다. "예의는 무슨. 그냥 습관이야."
집에 돌아와서 곰곰이 생각해 봤다. 오늘 내가 한 사과들. 정말로 사과가 필요한 상황이었을까?
택시에서 "죄송한데, 여기서 세워주시겠어요?" 내가 왜 사과해? 손님이 내릴 곳을 알려주는 건 당연한데.
식당에서 "죄송한데, 물 좀 더 주시겠어요?" 물 달라는 게 미안한 일인가? 그냥 "물 좀 주세요"면 되는데.
커피숍에서 "죄송한데, 아이스로 변경 가능할까요?" 주문 변경이 잘못인가? 아직 결제도 안 했는데.
옷가게에서 "죄송한데, 다른 거 입어볼게요." 옷 입어보는 게 죄인가? 그게 가게의 목적인데.
편의점에서 "죄송한데, 봉투 하나만 더 주시겠어요?" 봉투 하나 더 달라는 게 사과할 일인가?
나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나는 하루 종일 사과하고 있었다. 왜?
첫째, 민폐 끼치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이 사람 요구만 많네' 하고 생각할까 봐. 그래서 사과를 먼저 하는 것이다. '제가 번거롭게 해 드려서 미안해요'라는 의미로. 둘째,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사과를 잘하는 사람 = 예의 바른 사람 = 착한 사람. 나는 이 등식을 믿었다.
하지만 습관성 사과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사과의 가치가 떨어진다. 나는 물 한 잔 달라는 데도 사과하고, 옷 입어보는 데도 사과하고, 봉투 하나 달라는 데도 사과한다. 그러다 보니 진짜 사과를 할 때도 무게감이 없다. 진짜 내가 실수했을 때, 진짜 내가 잘못했을 때. "죄송합니다." 그 말이 진심으로 안 들린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사과하니까.
며칠 전, 진짜 내가 실수한 일이 있었다. 회의 시간을 잘못 알려줘서 동료가 회의에 늦었다. "죄송해요. 제가 시간을 잘못 알려드렸어요." 동료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 괜찮아요. 선생님 항상 미안하다고 안 그러셔도 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찔렸다. '항상 미안하다고 하니까, 진짜 사과할 때 진정성이 덜 느껴지겠구나.'
그날부터 나는 실험을 시작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압수하자.' 더 정확히는, 습관적 사과를 없애자. 진짜 내 잘못이 아닌 일에는 사과하지 않기로. 다음 날 아침, 택시를 탔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입이 먼저 열렸다. "죄송한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여기서 세워주세요." 기사님이 대답했다. "네." 끝. 아무 문제도 없었다. 기사님은 화내지 않았다. 나를 무례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점심시간, 식당에서 물이 필요했다. 입이 자동으로 움직이려 했다. "죄송한데..." 나는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물 좀 주세요." 직원이 웃으며 대답했다. "네, 가져다 드릴게요." 끝. 역시 아무 문제없었다.
커피숍에서 주문을 변경하고 싶었다. "죄송한데..." 멈췄다. "아이스로 변경 가능할까요?" 직원이 말했다. "네, 가능하세요." 그게 다였다. 신기했다. 사과를 안 해도, 아무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명확하고 간결했다.
"죄송한데, 여기서 세워주시겠어요?" (10음절) → "여기서 세워주세요." (7음절)
"죄송한데, 물 좀 더 주시겠어요?" (11음절) → "물 좀 주세요." (5음절) 불필요한 사과를 빼니까, 말도 짧아지고 명확해졌다. 하지만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30년 넘게 "죄송한데~"를 달고 살았는데, 갑자기 그걸 빼니까 불친절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 너무 당당한 거 아닌가?'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지켜보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의 '죄송한데'를 기다리지 않았다. 그냥 내 요청만 들을 뿐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확실히 달라진 게 느껴졌다. 첫째, 말이 간결해졌다. 불필요한 사과를 빼니까, 문장이 짧고 명확해졌다. 둘째, 당당해졌다. 예전에는 뭘 부탁할 때마다 움츠러들었는데, 이제는 당당하다. '나는 손님이다. 물 달라는 게 죄가 아니다.' '나는 승객이다. 내릴 곳을 알려주는 게 잘못이 아니다.' 셋째, 진짜 사과가 무거워졌다. 이제 나는 진짜 내 잘못일 때만 사과한다. 그러니까 사과가 진심으로 들린다.
그래, 이제 내 사과는 진짜 사과다. 지금도 가끔 "죄송한데~"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할 때가 있다.
특히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하지만 나는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게 정말 사과할 일인가?'
아니면 그냥 말한다. "물 좀 주세요." "여기서 세워주세요." "다른 거 입어볼게요." 그게 다다.
죄송하다는 말을 압수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습관적 사과'를 압수한다. 물 달라는 데 사과하지 않는다. 옷 입어보는 데 사과하지 않는다. 택시 내리는 데 사과하지 않는다. 내 잘못이 아닌 일에는 사과하지 않는다.
사과는 예의가 아니다. 사과는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사과하는 건, 나를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늘 저녁, 편의점에 갔다. 봉투가 하나 더 필요했다. 예전 같았으면 "죄송한데, 봉투 하나만 더 주시겠어요?"라고 했을 텐데. 나는 말했다. "봉투 하나 더 주세요." 직원이 대답했다. "네." 사과를 안 한다고 해서 불친절한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직한 사람이 된다. 내 잘못이 아닌 일에 사과하지 않고, 진짜 내 잘못일 때만 진심으로 사과하는 사람. 그게 진짜 예의다.
하루에 30번 사과하던 내가, 이제는 하루에 1~2번 사과한다. 진짜 필요할 때만. 그리고 그 사과는 무겁고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