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인 게 아니라, 나를 먼저 챙기는 겁니다

건강한 이기주의 선언

by 하루

달라지고 싶었다.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학창 시절부터 줄곧 "책임감 있다"는 말을 칭찬으로 들으며 자랐고, 어른이 된 지금은 그것을 삶의 좌우명처럼 여기며 살았다.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낸다.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팀을 위해 묵묵히 감내한다. 그것이 미덕이라 믿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나의 책임감을 교묘하게 이용했다. 묘하게 나에게 떠미는 악의를 나는 선의로 받아들였다.


월요일 오전, 팀 회의가 있었다. 팀장이 새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세 파트로 나뉩니다. A파트는 기획, B파트는 디자인, C파트는 데이터 분석입니다." 팀장이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누가 어떤 파트 맡을까요?" 박 대리가 먼저 손을 들었다. "저는 B파트 할게요. 디자인이 제 전공이니까요." 이 과장이 말했다. "저는 A파트요. 기획은 제가 원래 하던 거라서." 나는 가만히 있었다. C파트는 데이터 분석이었다. 나는 데이터 분석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팀장이 말했다. "그럼 C파트는... 김철연 씨?" "저는 데이터 분석은 좀..." 갑자기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느꼈다. 물론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선의 폭력을 이기지는 못했다.


회의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왔다. C파트 자료를 열어봤다. 엑셀 데이터가 5000줄이 넘었다. Python 코드도 필요했다. 통계 지식도 필요했다. 나는 이런 걸 해본 적이 없었다. 검색을 시작했다. 유튜브 강의를 봤다.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일주일 뒤, 중간 점검 회의가 있었다. 박 대리가 먼저 발표했다. B파트 디자인은 거의 완성 단계였다. 깔끔했다. 이 과장이 발표했다. A파트 기획안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내 차례가 왔다. "C파트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데이터 정제 단계까지는 왔고요." 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행이 좀 느린데요?" 박 대리가 말했다. "철연 씨, 혹시 어려운 부분 있으면 말해요. 근데 철연 씨 꼼꼼하니까 잘하실 거라 믿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날 밤, 새벽 2시까지 작업했다. Python 오류가 계속 났다. 통계 분석 방법을 찾아보느라 논문을 10개 넘게 읽었다. 눈이 침침했다. 어깨가 뻐근했다. '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팀장이 기대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나를 믿는다고 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니까 해내야지.'


2주 뒤, 또 회의가 있었다. 박 대리가 말했다. "B파트는 완료했습니다." 이 과장도 말했다. "A파트도 끝났고, 검토만 남았습니다." 내 차례. "C파트는... 80% 정도 완료했습니다." 팀장이 물었다. "100%는 언제 되나요?"

"이번 주 안으로 하겠습니다." 박 대리가 말했다. "고생 많으시네요. 역시 OO 씨는 묵묵히 해내시네." 나는 웃었다. 억지로.


그 주말, 나는 출근했다. 사무실에 나 혼자였다. C파트를 완성해야 했다. 토요일 아침 9시부터 일요일 저녁 7시까지. 거의 이틀을 회사에서 보냈다. 월요일, 최종 발표가 있었다. 프로젝트는 성공적이었다. 팀장이 칭찬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특히 OO 씨, C파트 정말 완벽하게 해냈네요." 박 대리가 박수를 쳤다. "역시 OO 씨! 믿고 맡긴 보람이 있네요." 나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텅 비어 있었다. 그날 저녁, 집에 돌아와서 거울을 봤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깊게 패여 있었다. 얼굴은 핼쑥했다. '나는 왜 주말까지 나가서 일했지?' 박 대리는 자기 전공이라 쉽게 끝냈다. 이 과장도 자기가 원래 하던 거라 금방 끝냈다. 나만 처음 해보는 걸 떠안았다. 어느 순간, 마음에 경고등이 켜졌다. 책임감이라는 단단한 갑옷 안에서, 정작 '나'는 질식해가고 있었다.


며칠 전, 비행기를 탔을 때를 떠올렸다. 이륙 전 안전 수칙 안내 방송이 나왔다. "기내 기압이 떨어지면 산소마스크가 내려옵니다. 이때 보호자는 반드시 본인이 먼저 마스크를 착용한 후, 어린이나 노약자를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의아했다. '아이를 먼저 살리는 게 부모의 도리 아닌가?'


하지만 이유는 명확했다. 보호자가 산소 부족으로 먼저 기절해 버리면,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줄 수 없을뿐더러 결국 둘 다 위험에 처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숨을 쉬어야, 옆 사람도 구할 수 있는 법이다. 우리의 일상도 이와 다르지 않다. 내가 방전되어 쓰러지기 직전인데, 남을 배려하고 챙기는 것이 과연 지속 가능할까? 나를 돌보지 않고 타인의 기대에만 부응하려는 노력은 결국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때 찾아오는 것은 타인을 향한 원망이거나, 스스로에 대한 번아웃뿐이다.


그날부터 나는 '건강한 이기주의'를 선언했다. 이것은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내 이익을 챙기겠다는 탐욕이 아니다. 내가 온전해야 타인에게 건네는 손길에도 힘이 실린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무리한 부탁에는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주말 하루쯤은 오롯이 나만을 위해 시간을 쓰는 사치. 이 모든 것은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내 삶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쓰는 일이다. 내가 먼저 단단하게 서 있어야, 비로소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고, 내가 맡은 일들도 더 건강하게 책임질 수 있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 그것이 가장 지혜로운 이타심의 시작이다.


지난주, 어머니가 전화를 했다. "OO아, 주말에 시간 돼?" 예전 같았으면 바로 "네"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물었다. "무슨 일이야?" "큰집에 갔다 오려고 하는데, 같이 가줄래?" 나는 그날 쉬고 싶었다. 한 주 동안 너무 피곤했다. "이번 주말은 좀 쉬어야 할 것 같아."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래? 알았어. 푹 쉬어." 끝.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어머니도 화내지 않았다.


후배가 메신저를 보냈다. [쌤, 이 자료 좀 봐주실 수 있으세요?] 예전 같았으면 바로 열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 업무를 하고 있었다. [지금은 제 업무 중이라 어렵고, 퇴근 후에 시간 되면 봐줄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후배는 기다렸다. 그리고 아마 혼자서도 해결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안다. 책임감과 자기희생은 다르다는 것을.


책임감: 내가 맡은 일을 끝까지 하는 것, 자기희생: 남의 일까지 떠안으며 나를 버리는 것


나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자기 희생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오늘 아침, 거울을 봤다. 눈 밑 다크서클이 조금 옅어졌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나를 먼저 챙기니까, 나도 살아나는구나.' 그리고 신기하게도, 나를 먼저 챙기니까 다른 사람도 더 잘 챙길 수 있었다. 지칠 대로 지쳐서 억지로 도와주는 것보다, 여유 있을 때 진심으로 도와주는 게 훨씬 나았다.


나는 여전히 책임감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 책임과 남의 책임을 구분한다. 내 일은 끝까지 해낸다. 하지만 남의 일까지 떠안지 않는다. 그게 진짜 책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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