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나를 싫어할 권리를 허락하라

타인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오만

by 하루

"쟤가 나 싫어하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동료가 아침 인사를 안 받아주면,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하루 종일 불안했다. 친구가 카톡 답장을 늦게 보내면, '화났나? 내가 뭐 실수했나?' 하고 되짚어봤다. 후배가 표정이 안 좋으면, '나 때문인가? 내가 어제 뭐라고 했더라?' 하고 걱정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도 나를 싫어하면 안 된다고 믿었다.


복도에서 이주임과 마주쳤다. "주임님, 안녕하세요!" 나는 밝게 인사했다. 이주임이 고개만 까닥하고 지나갔다. 웃지도 않았다. 나는 계속 생각했다. '왜 저렇게 무뚝뚝하지? 내가 뭘 잘못했나? 지난주에 내가 회의 때 반대 의견 낸 거 때문인가?' 하루 종일 신경이 쓰였다. 점심시간에 슬쩍 다가가서 물었다. "주임님, 혹시 제가 뭐 실수한 거 있나요?" 이주임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요? 없는데요?" "아, 아침에 인사하셨을 때 표정이 안 좋으셔서..." "아, 그냥 피곤했어요. 별일 아니에요."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나 때문이 아니구나.'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됐다. 누군가 나한테 차갑게 대하면, 나는 즉시 불안해졌다. '내가 뭘 잘못했지?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다시 날 좋아할까?' 그리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커피를 사줬다. 먼저 말을 걸었다. 농담을 던졌다. 칭찬을 했다. 나를 싫어할 가능성이 있는 모든 사람을 다시 내 편으로 만들려고 애썼다.


나는 타인의 감정을 통제하려고 하고 있었다. 누군가 나를 싫어할까 봐 두려워서, 그 사람의 마음을 바꾸려고 애쓰고 있었다. 커피를 사주고, 먼저 말을 걸고, 사과하고. '이렇게 하면 날 좋아할 거야. 이렇게 하면 날 싫어하지 않을 거야.'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왜 나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남이 나를 싫어하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즉시 그걸 '고쳐야 할 문제'로 봤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네? 어떻게든 바꿔야지.' 하지만 그건 타인의 감정을 통제하려는 오만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누군가를 싫어한 적이 있었다. 이유 없이 불편한 사람. 성격이 안 맞는 사람. 말투가 거슬리는 사람. 나도 그런 감정을 가질 권리가 있었다.


그럼 남들도 나를 싫어할 권리가 있는 거 아닐까? 그 생각을 하자, 갑자기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아, 나를 싫어해도 되는구나.' 동료들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다. 후배가 나를 별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건 괜찮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 며칠 뒤, 또 비슷한 일이 있었다. 김 선생님이 아침에 나를 보고도 인사를 안 했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뭘 잘못했지?' 하고 하루 종일 불안했을 텐데. 나는 그냥 생각했다. '김 선생님이 오늘 기분이 안 좋나 보네. 아니면 나를 안 좋아하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넘어갔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점심시간, 복도에서 박 선생님과 마주쳤다. 박 선생님이 또 무표정하게 지나갔다. 예전 같았으면 쫓아가서 "혹시 저 때문에 기분 나쁘신 거 있나요?"라고 물었을 텐데.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박 선생님이 나를 싫어할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넘겼다. 며칠이 지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적었다는 거였다. 내가 "쟤가 나 싫어하나?" 하고 불안해했던 사람들. 사실 그들은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날 기분이 안 좋았거나, 생각이 많았거나, 피곤했을 뿐이었다. 내가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 회의가 있었다. 이번에도 의견이 갈렸다. 나는 A안을 지지했고, 박 선생님은 B안을 지지했다. 결국 A안이 채택됐다. 박 선생님이 표정이 안 좋았다. 예전 같았으면 회의 끝나고 바로 찾아가서 사과했을 텐데. 나는 그냥 뒀다. '박 선생님이 아쉬워할 수도 있지. 그럴 수 있는 거야.'


다음 날, 박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OO 쌤, 어제 회의 때 제 의견이 안 받아들여져서 좀 아쉬웠어요. 근데 OO 쌤 말도 일리 있더라고요." "아, 네. 저도 선생님 의견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요? 그럼 됐어요. 다음에 또 논의해 봐요." 끝.


내가 사과하지 않아도, 박 선생님은 스스로 정리했다. 나는 깨달았다. 타인의 감정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누군가 나를 좋아하면, 내가 실수해도 이해해 줄 수 있다. 결국 그건 상대방의 선택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깨달음. 남이 나를 싫어해도, 나는 괜찮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필요 없다. 몇 사람에게만 진짜 좋은 사람이면 된다.


어제, 새로 온 신입 직원이 나를 피하는 것 같았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인사만 하고 빨리 지나갔다. 복도에서도 나랑 눈을 안 마주쳤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뭘 잘못했지? 어떻게 하면 친해질까?' 하고 고민했을 텐데. 나는 그냥 생각했다. '그러라 그래. 나도 쟤 별로야.' 물론 정말로 그 선생님이 별로라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모든 사람과 친해질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일주일 뒤,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 신입 선생님이 먼저 말을 걸었다. "선생님, 이거 좀 여쭤봐도 될까요?" "네, 뭐든지요." "제가 처음이라 잘 몰라서... 이거 어떻게 하는 건가요?" 나는 친절하게 알려줬다. 하지만 친해지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그냥 도와주고 끝. 그런데 그게 오히려 편했다. 그 선생님도, 나도.


지금도 가끔 누군가 나를 피하거나, 차갑게 대하거나, 표정이 안 좋을 때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밤새 고민했을 텐데. 이제는 그냥 생각한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넘어간다. 남이 나를 싫어할 권리를 허락하라. 그들의 감정을 바꾸려고 애쓰지 마라. 커피를 사주고, 사과하고, 눈치 보는 걸로 그들의 마음을 통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필요 없다. 몇 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된다. 나머지는?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다.


나는 더 이상 그걸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 복도에서 이주임과 마주쳤다. "주임님, 안녕하세요!" 이주임이 고개만 까닥하고 지나갔다. 나는 웃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가볍게 하루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