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헤픈 친절이 나를 '쉬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나는 늘 웃고 다니려고 노력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 앞에 서서 입꼬리를 올려본다. 15도. 너무 많이 올리면 억지웃음처럼 보이고, 너무 적게 올리면 무표정처럼 보인다. 딱 15도. 자연스럽지만 호감 가는 각도.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복도에서 동료와 마주칠 때도, 회의 시간에도. 나는 늘 웃는다. 입꼬리에 힘을 주고, 눈을 살짝 접고,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말한다. "선생님은 늘 웃고 다니는 모습이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어요." "보기만 해도 에너지가 느껴져요." "참 긍정적이시죠?" 나도 이것이 나의 장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웃는 얼굴은 나의 트레이드마크고, 나의 무기고, 나의 생존 전략이다.
하지만 꼭 그것이 정답만은 아니었다. 월요일 아침, 복도에서 선배 교사를 만났다. "선생님! 주말 잘 보냈어요?" "네! 잘 보냈어요!"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 주말은 최악이었다. 토요일에는 밀린 업무 때문에 출근했고, 일요일에는 집에서 이불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밥도 안 먹었다. 그냥... 힘들었다. 하지만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주말에 뭐 했어요?"라는 질문에 "아무것도 안 했어요. 우울해서 누워만 있었어요"라고 대답하는 건 분위기를 깨는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웃었다. 밝게, 기분 좋게. "주말에 집에서 푹 쉬었어요!" 거짓말은 아니다. 누워 있었으니까 쉬긴 쉰 거다. 다만 '푹'은 아니었을 뿐.
점심시간, 동료들과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한 선배가 농담을 던졌다. 별로 웃기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나빴다. 은근히 나를 디스 하는 느낌의 농담이었다. "김 선생님은 뭐든지 잘하시니까 이것도 금방 하시겠네요. 하하!" 다들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아니에요, 하하. 제가 뭘 잘해요." 웃으면서 손을 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뭐가 웃겨? 지금 나한테 일 떠넘기려는 거잖아.' 하지만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대신 웃음이 나왔다. 하하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입꼬리가 아팠다. 웃느라 근육이 경직된 느낌이었다. '나는 왜 웃었을까.' 웃음은 나의 감정 노동이었다. 안 웃긴데 웃어주고, 기분 나쁜데 쿨한 척하고, 속으로는 열받는데 "괜찮아요" 하고 웃었다. 왜냐하면 나는 '분위기를 깨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만약 내가 그 농담에 웃지 않고 "그건 좀 기분 나쁘네요"라고 말했다면? 공기가 싸해졌을 것이다. 다들 어색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김 선생님 오늘 왜 저래. 예민한가.' 그 장면이 너무 선명해서, 나는 차라리 웃는 게 편했다. 웃으면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 웃으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니까. 웃으면 나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웃음을 헤프게 나눠줬다. 재미없는 농담에도, 기분 나쁜 말에도, 심지어 무례한 행동에도 웃어줬다. 하지만 문제는 웃음도 헤프면 값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였다. 같은 학교 선배 교사가 술에 취해 나에게 말했다. "김 선생님은 참 쿨하고 좋아. 뭘 해도 기분 나빠하지 않잖아."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하하." 선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그래서 김 선생님한테는 막 편하게 대하게 되는 것 같아." 그 순간, 뭔가 이상했다. '막 편하게 대한다'는 게 칭찬일까?
집에 돌아와서 그 말을 곱씹었다. '막 편하게 대한다.' 즉, 나한테는 선을 안 지켜도 된다는 뜻이었다. 내가 늘 웃고, 늘 괜찮다고 하고, 늘 기분 나쁜 내색을 안 하니까. 사람들은 나를 '쉬운 사람'으로 봤다. 나는 나의 헤픈 친절이 나를 '만만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평소에 늘 웃으며 "네"라고 했으니까. 한 번도 싫은 내색을 안 했으니까. 사람들은 나를 '거절 안 하는 사람'으로 규정해 버렸다. 그래서 내가 한 번 거절하니까,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이다.
웃음의 인플레이션.
경제학에서 인플레이션은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현상이다. 돈을 너무 많이 찍어내면, 돈의 가치가 하락한다. 나의 웃음도 그랬다. 너무 많이, 너무 쉽게, 너무 헤프게 나눠주니까. 나의 웃음은 가치가 없어졌다. 사람들은 나의 웃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웃음으로 호감을 샀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존중을 잃고 있었다.
그날 밤, 거울 앞에 섰다. 웃는 연습을 했던 그 거울. 입꼬리 15도, 눈 살짝 접기. 나는 거울 속 나를 보며 생각했다. '이게 진짜 웃음일까?' 웃고 싶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웃는 거였다.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분위기를 맞춰야 해서 웃는 거였다.
나는 '웃음 자판기'였다. 동전 하나 넣으면 언제든 웃음이 나오는. 24시간 운영되는. 고장 나지 않는. 그런데 자판기는 존중받지 못한다. 그냥 편리하게 이용당할 뿐이다.
다음 날부터, 나는 실험을 시작했다. 안 웃긴 농담에는 웃지 않았다. 그냥 "아, 그렇군요" 하고 넘어갔다. 기분 나쁜 말에는 쿨한 척하지 않았다. "그건 좀 기분이 안 좋네요"라고 말했다. 무리한 부탁에는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거절했다.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사람들도 어색해했다. 누군가는 "김 선생님 오늘 왜 그래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며칠 지나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무례한 농담이 줄었다. 무리한 부탁도 줄었다. 오히려 "김 선생님, 괜찮으세요?"라고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생겼다. 선을 지키기 시작하니까, 사람들도 선을 지켰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진짜 웃음은 귀해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내가 정말로 웃고 싶을 때만 웃으니까, 나의 웃음이 진심이 되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그 차이를 알았다. 예전에는 "김 선생님 웃는 거 보기 좋아요" 하고 지나쳤지만, 이제는 "오늘 김 선생님이 웃으시네? 무슨 좋은 일 있어요?" 하고 물어본다. 나의 웃음이 특별한 것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웃음 자판기가 아니다. 이제 나의 웃음은 한정판이다.
그리고 한정판은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