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3개월 차, 성폭행 트라우마가 생생해지다.

성폭행 트라우마를 안고서도, 사랑은 가능하다.

by 오로지
난 가정폭력, 성폭력 생존자다.


20대의 일이다.

난 지금 30대이고

남편과 사귀고 있을 당시도 아니지만.

그 기억을 안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는 일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 남자와 사랑을 지키는 일.

사랑하는 남자와의 관계에서

성폭행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떠올리지 않는 일이란

엄청난 수련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단 한 사람도, 단 한 번도 아니었다는 것.


20대의 나는 어른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제 그런 어른이 되어줄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곪아터진 상처를 제대로 치유해야 한다.

그 작업을 시작하려고 한다.



내가 당한 것이 '생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

'강간' 이였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기 시작한순간 강한 분노가 일어났다.

나는 분노보다 자기혐오가 더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내가 자책을 하는 편이 편했다.

일이 더 복잡해지지도 않을뿐더러

누군가와 시끄럽게 싸울 필요도 없고

나만 잊고, 나만 입을 닫으면,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출퇴근하는 평일이 될 거니까.


신혼집에 들어와 한 달 차,

OTT 채널에서 우연히

성범죄를 시리즈로 한 미국드라마를 접하고 나서 내 신혼은 엉망이 되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성범죄반 형사들이 성폭행당한 사람들을 '피해자' 대신 '생존자'라고 부르는 것이 감동이었고,

그 생존자들의 말 한마디에 귀 기울여주는 어른이 있다는 사실과

망설이며 도망가거나 수사를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것도 대리만족이 되었다.

시간이 지났으니 해결되는 건 없을 거라고 하는 생존자에게 시간이 지나도 죄를 지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며 시간이 덧없지 않음을 상기시켜 주는 장면에서는

카타르시스가 나의 온몸을 감쌌다.


눈물이 흘렀다.

남편이 없는 거실에서 소리 내어 처음으로 엉엉 울었다.


아무것도 모를 남편에게 죄를 짓는 것만 같은 마음.

내가 싫고 더러운 마음.

또다시 시작된 자기혐오.

상처받은 건 나인데, 계속 내가 미안해야 하는 상황.

가족 때문에 아픈 건 난데

아픈 나 때문에 신경 쓰게 해서 죄송하다고

부모님께 입버릇처럼 말하며

방 안에서 몸을 새우처럼 웅크리고 고통이 끝날때까지 속으로 조용히 숫자를 세던 어린 내가 떠올랐다.



뭐가 잘못되었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가장 중요한 순간에, 내가 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든 건 우리 부모님이었나.

아니, 엄마였을까.

엄마를 정신적으로 병들게 한 무능력한 아빠였을까.

모르겠다.


시간은 꽤 흘렀다.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땐 잘만 묻혀 있던 여러 사건들이

연애를 할 때도 어떻게든 괜찮았던 것 같은데..

결혼이 시작되고 더 생생해졌다.


글을 쓴다는 건 괴로움과 마주 보는 일이다.

청소와 동시에 정리할 것들을 바닥에 다 쏟아내는 과정을 견뎌야 하니까.

그냥 안 보이는 곳에 처박아 두면

겉으론 깨끗하게 정리되어 보일 텐데

정리하기 위해 다시 다 꺼내다 보면 언제 치우나.. 하는생각에 까마득해지고

시작도 전에 포기하고 싶어 지는 것처럼.


당시에 난, 발버둥 쳤었다.

성폭행을 당한 곳은 일터였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소리 지르며 울었다.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보다 한두 살 많아 보였던 여자 직원은 내 말을 듣고

‘괜찮다고 다들 쳐다보니까 어서 집에 가라고’

나를 달랬다.


성범죄자 주제에 차라리 얼른 도망갔어야지.

그 범죄자는 지갑 속에서 돈 몇 푼을 황급히 내게 던지고 도망쳤다.

자신이 한 범죄 행위를 나와 '합의'한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이 글을 쓰는 게 맞을까?

쓰면서도 고민이 된다.

그렇지만 내 글은 '아픈 상태'에 머물지 않을 예정이다.

내 글은 '생존했다.' '그럼에도 살아간다.'로 나아갈 예정이다.


실제로 나는 남들이 보기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라 생각도 못할 정도로

지금은 밝고 씩씩하고 할 말은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그냥 한번씩 올라오는 것이다.

그때는 아픔을 마주 보고 같이 울어주는 것이다.

완벽히 달래 지지 않은 마음이 나에게 알아달라고 찾아오는 것이니까.


그 무렵, 세상에 나가고 싶어졌다.

내 몸은 죄가 없으니까.



화,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