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무당에게 동업 제안을 받았다.

이건 아니잖아요!

by 오로지

웃픈 일이다.

결국 점도 사업이라는 것이다.

할머니 손 잡고 유명하다는

산속의 점쟁이를 만나러 가서

각자 복채는 사정에 맡기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여겨지는 한 두 마디를 가슴에 앉고 내려오는

그런 시대는 지난 것 같다.


갑자기 길을 지나가다가

"만나는 사람하고 헤어지는 게 좋겠어!" 하며

나의 구원자가 되어줄 점쟁이를 마음에 하나씩은 품고 살지만

그런 점쟁이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괜히 사연 하나 가슴에 품고 사는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길을 지나다니면

도를 닦는 신도를 포섭하려는 자들의 먹잇감이 될 뿐이다.


각자의 사연으로 내 앞에 앉아있는 손님들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웃어야 할까?

고민이 된다는 표정으로 같이 한숨을 쉬어야 할까?

초보 상담사는 별것이 다 고민이다.



나도 타로상담을 직업으로 갖기 전엔

꽤나 타로점을 보러 다녔던 사람으로서

내 앞에서 타로카드를 촤라락- 펼치던 마법사 같은 그와 그녀들을 떠올려보았다.

어떤 타로리더는 매우 진지하게 카드만 보며 말해줬고

어떤 타로리더는 나와 눈을 맞추며 '어때요? 내 말 맞죠? 신기하죠?' 하는 눈빛으로 웃으며 상담을 이어갔다.

어떤 타로리더는 무섭게 나를 다그치기도 했다.


상담을 시작할 땐 몰랐는데

타로점이라는 것은 매우 오묘해서, 완벽한 점도 아니고 완벽한 심리 상담도 아닌 경계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어떤 역할로 내담자를 대해야 하는지 헷갈리는 시점이 왔다.

아무래도 더 잘하고 싶어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대충 사는 사람은 고민하지 않는다.

살아지는 대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선택이 헷갈리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어느 시점부터 내가 타로리더로서 자격이 있는가에 몰두했다.

먹고살만해지니 자아에 대해 고민해 보는 여유가 생긴 것일까.

목이 쉬어라 밥 먹을 시간도 쪼개가며 일하던 시점이 지나니

내가 어떤 타로 상담사가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묻고 싶어 진 것이다.


퀄리티라는 것을 높이고 싶었다.

자아에 정체성이라는 게 생기니

질 좋은 상담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되는대로 상담만 하고 살아가는 게 내가 원한 것은 아닌 것 같아서기도 했다.

(물론 그렇게 한 적은 없다. 늘 최선을 다했는걸)


그렇게 몇 개월을 고민하다가

유명하다는 신점 유튜브 채널을 샅샅이 뒤져서

점잖고 귀품 있어 보이는(제일 사기꾼 같지 않아 보이는) 무당에게 점사 예약을 했다.

보통 사기꾼은, 얼굴에 사기꾼이라고 쓰여있지 않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복잡한 문제였다.


집에서 왕복 4시간의 거리였지만

무언가 시원하고 반전이 있는 대답을 듣게 될 것만 같아서 설렘하나로 출발했다.

아마 이런 마음으로 내게 타로점을 보러 손님들이 오는 거겠지.



점집은 마치 궁전 같았다.

독채가 따로 있고 정원을 지나니 사방이 금빛인 점사 공간이 나왔다.

사전에 안내하는 분들은, 녹취는 불가하니 핸드폰을 이곳에 두고 들어가라고 했다.

핸드폰을 반납하는 시스템이었다.


음.. 녹취가 안될 게 있나?

그럼 나도 타로상담 시에 미리 핸드폰을 받아야 하나.

기분은 별로였지만 순순히 반납을 했다.


신당은 고요하지만 머리가 지끈거렸고

괜히 나가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하길래. 녹취가 어려울 정도의 점사인지.


그때 무당이 나타났다.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당이 앉아있는 신당에

손님이 들어가는 구조가 아니라

손님이 먼저 무당을 기다리는 구조였는데

그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생년월일을 말하고 내게 궁금한 걸 물어보라고 했다.

유튜브 영상에서는 손님이 질문을 하기도 전에

손님이 왜 왔는지 맞추는 게 신점 이랬는데..

아닐 수도 있으니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

보통은 이런 질문이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요?'

'제게 금전운이 따를까요?'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요?'

이제 막 생사를 넘나들며 먹고살만해진 나에게

연애나 결혼은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무당은 애매하게 대답을 몇 번 하더니

계속 질문만 했다.

호구조사 하듯이.

이건 점이 아니라 인터뷰였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나에게 '동업'을 제안했다.


" OO 씨가 머리가 엄청 좋네. 우리 할머니가 그러시는데 OO 씨 머리가 비상해서 타로카드도 혼자 공부한 거고(내가 말해준 것) 혼자서 사업도 구상한 거고 (내가 말해준 것) 혼자서 상담도 하는 거라는데 계속해서 이름도 불리고 잘될 거라고 하는데? OO 씨, 우리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요? 너무 아깝다 혼자 일하는 게. 내가 여기 우리 신당에 자리 하나를 내줄게요. 여기서 OO 씨는 타로카드를 보고, 나는 신점을 보고, 신점이 무서운 사람은 타로카드를 보고. 왜냐면 OO 씨가 그냥 외워서 점을 보는 게 아니라, 영적으로 영점도 보는 것 같은데? 어때요? 한번 생각해 봐요. 그리고 이미 신기가 가득해서 단지를 모셔야 하니까. 내가 굿 비용도 직원에게 전달해 달라고 할게 내려가서 내 직원하고 상의 좀 해봐요. 점사는 끝이에요. 이게 다야. 더 물어볼게 뭐 있어. 어차피 이 일 할 텐데. 대신 굿은 해야 해. 그래야 더 잘 불리지."



대부분의 무당은 나에게

약간의 신가물과 신기를 말했다만, 대한민국에 신기 없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타로카드가 없이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약간의 신기정도는.. 우리 엄마를 타고 내게도 내려왔을지도 모르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신점 보는 무당과 동업을 한다니!

이건 아니잖아!


‘엄마가 곡할 노릇이고,

살아계신 우리 외할머니도 곡할 노릇이었다.‘


나는 신중하게 생각해 보는 척 가까스로 점집을 빠져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길은 멀미도 나고 졸리기도 했지만

마음만큼은 가벼웠다.

듣고 싶은 대답을 들은 것도 아니었고

사실 듣고 싶은 대답이 뭐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내가 스스로 선택하며 살면 되겠다 싶었다.


무당이 한 두 개라도 맞췄다면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으려나 싶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갈길을 지금처럼 직감이 말해주는 대로 갈 것 같았다.

왠지, 나는 답정너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답정너란.. 점의 세계에서 진상 중 최고 진상이다.

그게 나였다.

그렇지만 매우 긍정적인 답정너였다.

엉망진창인 점사에서 뭐가 맞았고 틀렸고를 떠나 가벼운 마음으로 집에 오는 사람도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허탈하기도 했지만

운이라는 것을 배경에 두고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다.

책임도 내가 지고 노력도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운이 안 따라주면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닐 테니 어쩔 수 없겠고, 운이 따라준다면 감사한 거다.




동업은 하지 않을 거라서

자꾸 연락을 하는 무당의 번호를 조심스레 차단했다.


이 날을 기점으로

타로리더로서 큰 교훈을 얻었다.


'적어도 이렇게 상담하지는 말자.'

인생에 큰 고민 때문에

한마디 말이라도 듣고 위로라도 받고 용기라도 얻고 싶은 사람을 앞에 두고서

책임감 하나 없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허탈함을 얹어 주는 상담만큼은 하지 않겠노라고.


그게 누가 되었든,

감히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책임감을 빼고서라도 상담사라는 직업적인 사명감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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