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용한 타로마스터였다.

사연 있는 가족.

by 오로지

한 사람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집어든 것이

타로카드가 맞지만

내가 그러한 사연만으로 타로 상담을 시작하게 된 것은 아니다.


엄마.

우리 엄마.

그녀는 타로마스터였다.


우리 엄마는 아이 둘을 혼자 키워내야 하는 입장에서

안 해본 일 없이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때 추억 속에는 엄마와 면접을 보러 다녔던 게 대부분일 정도였으니까.

엄마의 면접이 끝날 때까지 빌딩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엄마가 나오면 버스를 타고 집근처로 가서 저녁을 먹고 집에 가던 루트가 나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이제는 없어진 주황색의 720번 버스는

그런 의미에서 잊히지 않는 기억이다.


그렇게 엄마는 주어진 모든 일을 했다.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도 나서서 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고, 어린 나이에 사회로 나간 엄마는 동료들에게 원인 모를 미움과 질투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잘 울지 않았다.

우는 방법을 몰랐을 수도 있고

우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우는 걸 미뤘을 수도 있다.

아무리 지옥 같은 오늘이 펼쳐졌다고 하더라도

아무렇지 않게 내일 또 출근을 해야 하니까.

차라리 쉬는 날 몰아서 울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는 것을 미루다가 막상 휴일이 되면

해야 할 집안일이 쌓여있었으니

울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아서 정확한 답은 알 수 없지만

타로카드에 물어보기에도 별로인 질문 같아서 패스한다.


스무살에 나를 낳고, 스물 네살에 내 동생을 낳은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아이 둘을 키워내야 하는 가장으로서엄마의 직업은 족히 30번은 바뀐 듯한데

그중에 하나가 '타로마스터'였다.


* 타로상담을 하는 사람을 '타로리더' '타로마스터' '타로상담사' 등 여러 가지로 부를 수 있다.


엄마는 어느 날

누가 만든듯한 타로카드 해설지를 묶음으로 가져와서

타로카드를 펼쳐놓고 0번 카드부터 외우기 시작했다.


두꺼웠던 프린트물은 그새 손을 타서 너덜너덜 해졌고

학교에 마치고 돌아온 나를 부르더니

"프린트물을 줄 테니까, 엄마가 카드만 보고 해석을 맞추는지 확인해봐" 라고 으름장을 놓고는

메이저 타로카드의 해석과 마이너 타로카드의 해석을 다 맞췄다.


엄마 손에 들려있던 타로카드의 개수는 78장이었다.

"엄마가 정확히 78장 확실히 외운 거 맞아?"

"네! 다 정확히 맞추셨어요"

"그래? 그럼 이제 내가 더 타로점 봐줄게"



무서웠다.


난 타로카드가 뭔지도 몰랐고

엄마 말로는, 이 카드 속 그림에는 뜻이 있어서

그 카드를 뽑은 사람은 사실 티를 내진 않았지만 해석에 맞는 뜻을 품고 있다고 했다.

엄마는 '그러니 난, 너의 거짓말을 다 맞출 수 있다.'는 눈빛으로, 고1이 된 나의 타로점을 봐주기 시작했다.


왜 무서웠을까 ?


1) 난 엄마 몰래 사귀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2) 내가 알기로 엄마는 꿈이 잘 맞는 사람이었는데

신기가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3) 그림카드와 엄마의 신기가 맞아떨어진다면 나는 피할 곳이 없다. 큰일이다.

4) 나는 거짓말을 하면 들키는 B형이니까....


엄마는 용했다.

그러나 단순한 타로마스터는 아니었다.

카드에 나와있지 않은 해석도 해준 적이 있고

응용을 하는 것인지

분명 그 키워드는 맞지만, 누구도 그렇게 해석할 수 없는 영역으로 해석을 하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안절부절 못하게 했다.


엄마는 당시 내담자들에게 인기만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정말 피하고 싶은 사람 1순위었다.

엄마가 타로카드를 잡은 순간부터

난 타로카드도 보기 싫고, 엄마가 더 무서워졌다.



엄마는 원래도 약간의 신기가 있었다.

등교하는 내 뒤에 대고는

“오늘 애기꿈 꿨어~ 차 조심하고, 너가 사고칠것 같은데 조심해라." 라고 외쳤다.

이 얘기를 들으면 하루의 시작이 오싹했다.

그렇게 오싹하게 하루를 시작하면

실은 될 일도 안되는 게 당연했다.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

엄마는, 자신의 신기가 내 하루를 과학적으로 망친다는것은 몰랐던것 같다.


이젠 '감'으로만 맞추면서 나를 의심하는 것에

합법적인 무기가 생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타로카드가 이렇게 나왔는데? 너 거짓말할래?!"


이 말이 제일 싫었다.

그놈의 타로카드. 그게 뭐길래.

그게 뭐가 정확하다고!


그렇게 용했던 엄마는

타로카드에서만 나올 수 없는 본격 '점'까지 내담자들에게 봐주고, 그게 또 정확했고, 입소문을 타고 엄마에게만 타로점을 보겠다고 온 내담자들의 줄은 길었다.당시 한쪽에만 몰린 줄을 관리하던 타로카드 매장 사장님은

'손님을 혼자 독차지하면 다른 타로선생들이 화를 낸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엄마를 잘랐다.


엄마는 잘렸다.

용해서 잘렸다.

잘 맞춰서 잘렸다.

인기가 많아서 잘렸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서 미움을 받거나, 이유 없이 갈굼을 당하거나

회사에서 갑자기 잘렸다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서 찾아오는 내담자들에게

선입견을 함부로 갖지 않는다.


엄마는 회사에서 잘렸다고 하기엔 일을 잘했다.

우선 타로점을 잘 봤고

손님들을 잘 끌어왔다.

제일 먼저 출근해서 타로카드를 정리하고

다른 선생님들의 테이블도 청소해 줬으며

매장 인테리어까지 엄마가 다 관리했으니까.

고작 손님이 한 곳으로 몰린다는 이유로 자르다니.


요즘은 잘나가는 1인 크리에이터들의 무대가 어디서든펼쳐지지만, 15년전에는 모두가 똑같아야 적응할 수 있는 세상이였다.


그래서 내담자분들의 고민에는

선입견을 갖지 않아야 한다.

저마다의 이유가 있으므로.


'당신이 잘못했으니 잘렸겠지'

이런 태도로 카드를 펼치면

볼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회사를 옮겨야 할까요?" 라는 질문에

"옮기라고 하네요. 못 그만둔다고 하네요."

라는 대답밖에 할 수 없다면


그 내담자는

감동도 위로도 용기도 해결책도 받지 못한 채

30초만에 대답만 듣고 복채를 내고 가는 것이다.


"저 회사를 옮겨야 할까요?"


"옮겨야죠. 많이 참으셨잖아요. 지금 회사는 내 실력을 인정해주지 않아요.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실력이 없으니 실력자를 알아보지 못해요. 나는 돈보다 인정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인정을 받는 곳으로 가셔야 합니다. OO~한 회사가 좋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친구들 만나서 농담도 하고 욕도 하고 기분전환도 하세요. 카드에 컵이 하나도 없이 완드만 잔뜩 나와있네요. 회사도 문제지만, 내가 회사 말고는 갈 곳이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에너지가 채워져야 그 힘으로 이직을 하죠. 자책하지 마시고요. 지금 이곳에서는 내가 잘못한건 없습니다."


라는 해석이

펼쳐진 카드들을 보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타로카드가 나왔느냐에 따라

해석은 무궁무진하게 달라진다.


엄마의 영검함을 물려받은 탓인지

나도 용한 타로마스터가 되었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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