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이라도 살고 싶어야 점도 보고 싶다.
나에게도 사연이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사연으로 자신의 직업을 찾는다.
가업을 물려받는 사람.
적성에 맞지 않지만 월급만 보며 일하는 사람.
장사가 체질인 사람.
직업보다는 돈을 택하는 사람.
돈보다는 가슴 뛰는 일을 하는 사람.
재미는 없지만 재능을 인정받으며 일하는 사람.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
어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적성을 모르기도 한다.
특출난 유명인이 아니고서야
한 사람이 어떤 사연으로 그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혈액형을 좋아했다.
심리학 서적도 좋아했다.
심리테스트.
우리 어릴 때는 그게 최고였다.
"넌 B형이니까 성격이 더럽겠구나? 바람둥이다!"
"넌 A형이니까 소심하겠다. 화나도 말 못 하지?"
"넌 AB형이니까 사차원이네. 다른 말 필요 없어"
"넌 O형이니까 모두에게 헌혈이 되겠네?"
이런 식이다.
웃긴 건 이런 식으로 말해도 다들 수긍했다는 것이다.
혈액형이라는 고작 네 개의 옵션으로
한 사람이 쉽게 파악되고 단번에 나눠졌다.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 내가 피해야 할 사람, 나와 잘 맞는 사람, 죽어도 안 맞는 사람.'
한 사람을 혈액형에 가둬두고 판단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
그렇지만 너무 위험했다.
난 B형인데 A형인 내 친구보다 소심할 때가 있었다.
분명 B형이라 지랄맞고 변덕스럽고 재미있고
나쁜 여자 같기도 했지만
소심했던 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혈액형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 B형이 바람둥이라고 했는데
바람은 o형이었던 내 친구가 폈다고!
(AB형이 사차원이라고 했는데, 그건 맞았던 것 같다.)
그 무렵 유행한 것이 있었다. 별자리.
난 지금도 별자리, 점성술에 대단한 관심과 존경을 표하는 사람으로서
태생부터 점괘를 맞추고자 하는
의지와 의욕과 애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은 맞다.
별자리를 모르는 사람들도
우리나라를 아직도 흔들고 있는 MBTI는 알겠지.
그렇게 모든 것이 '사람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가 타로카드를 집어든 이유는 '한 사람'을 알고 싶어서였다.
나였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었다.
내 인생은
오래된 나의 친구 ‘우울증’이 늘 함께였는데
내가 가장 우울했던 시기는
폭풍처럼 모든 것이 지나간 뒤였다.
말로 담을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지나갔다.
몇 년에 걸쳐 정신이 피폐해져 갔다.
사람에 치이고, 돈을 전부 잃었고, 배신을 당하고, 가족에게도 기댈 수 없이 혼자를 선택한 그 시기에 나는 제대로 바닥을 경험했다.
떨어지고 있을 땐 그게 바닥으로 가는 길인지 모른다.
그래도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 떨어지고 나면 그제야 아픔이 밀려온다.
완벽히 바닥이구나.
‘점’이라는 것은
살고 싶다는 의욕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보고 싶어 진다.
내가 정말 바닥이면 ‘점’ 같은 건 보고 싶지도 않다.
더 이상 내 미래가 궁금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안 봐도 뻔하니까.
살고 싶지 않으니까.
난 당시에 엄마와도 연을 끊다시피 했었다.
엄마가 더 이상 감당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괴로움의 원인을 나에게 찾았다.
나 때문에 못 살겠다고 했고
나를 낳고 자신의 인생이 없어졌다고 했다.
그러다가도 내가 곁에 없어서 힘들다고 했다.
나는 엄마 곁에서 나를 지우며 살았다.
그게 가족을 지키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없어져갔다.
가뜩이나 버거운 일이 많은데
집이라는 공간에 편히 내려놓지도 못했다.
내가 떠나는 게 맞았다.
그렇게 사계절이 흘렀고
어느 날 연락을 끊었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타로상담은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해. 그게 네 천직이야. 혼자서라도 공부해 봐. “
몇 년 만의 통화에 어색한 것도 잠시
다짜고짜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이상하게 가슴이 뛰었다.
분명히 설렘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은 희망이었다.
몇 년째 서랍 속에 있던 타로카드를 꺼냈다.
“Two of Wands “ 카드가 나왔다.
* 방향 설정 • 계획 수립 • 도전 • 확장 •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때 • 선택의 갈림길 • 자신감 있는 출발 등
이제는 방향을 설정하고 행동하자고 카드가 말했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우울함 정도가 아니라 영혼이 사방으로 찢겨서 형태를 찾아볼 수 없는 기분이었다.
삶에 기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던 그 시기에
나는 살기 위해 타로카드를 집어 들었다.
살고 싶었고 왠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겼다.
가끔 내담자분들이 묻는다.
“선생님은 어떻게 이런 해석을 하세요?
그것도 카드에 보여요?”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다.
나도 그런 사연 하나쯤 갖고 있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