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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Sep 24. 2023

화성에서 온 T, 금성에서 온 F

MBTI를 통해 다름을 이해하는 법

2000년대 초반에는 혈액형을 통해서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유행일 때가 있었고 'B형 남자친구'라는 영화 및 혈액형과 성격에 관한 다양한 책도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요새는 혈액형과 같은 비과학적인 방법보다는, 심리학자인 카를 융(Carl Gustav Jung)의 성격 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1940년대 캐서린 쿡 브릭스(Katharine C. Briggs)와 그녀의 딸 이저벨 브릭스 마이어스(Isabel Briggs Myers)가 제작한 MBTI(Myers-Briggs Type Indecator)를 통해서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끼리, 소개팅이나 회사 면접에서 MBTI를 묻는 것이 일상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MBTI 검사를 (귀찮아서) 해본 적이 없는데, 저의 MBTI 유형을 묻는 사람들에게 아직 해본 적이 없다고 하면 저의 MBTI 유형을 찾아주겠다고 열정적으로 질문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습니다.


MBTI는 4가지 척도로 성격을 표시하는데, 각각의 척도는 두 가지 극이 되는 성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향 (Introversion) vs 외향 (Extroversion)

직관 (iNtuition) vs 감각 (Sensing)

감정 (Feeling) vs 사고 (Thinking)

인식 (Perceiving) vs 판단 (Judging)


MBTI는 4가지 지표를 가지고 각 지표는 2개의 경우를 수를 가지므로, 사람들의 성격은 16개의 유형 중 하나로 분류됩니다. MBTI는 사람들의 성격유형에 대한 관점의 제시 정도이므로 이를 맹신하거나, 상대방을 MBTI의 성격 중 하나로만 단정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30억 쌍 이상의 DNA 염기쌍을 갖는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의 성격을 고작 16개의 유형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MBTI 유행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은 사람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Tool)를 제공한다는 데에 있습니다.

특히, 사고(T)형과 감정(F)형의 성격 유형을 통해 각 유형은 어떻게 사고하는지,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상대방과 어떻게 대화하는지 등을 통해 다름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사고(T)형은 논리와 이해, 인과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감정(F)형은 감정과 공감,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고(T)형과 감정(F)형은 존 그레이(John Gray)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 1992)' 책처럼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니 서로의 말은 메아리가 되어 상대방에게 꽂힐 뿐, 둘은 상대방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마치, 한국어와 영어로 이야기하는 수준이 아니라(저희 어머니께서는 한국어만 할 줄 아는데, 해외여행을 가면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어머니는 한국어로 상대방은 영어나 힌디어 등 자기의 언어를 사용함에도 빵이나 감자튀김을 받아오는 등 대화가 통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언어와 돌고래의 언어와 같이 서로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인 것입니다.


저는 논리적인 생각의 틀로 무장한 '사고(T)형' 인간입니다.

그래서 논리적인 모순이 있을 때 이해가 되지 않고, 논리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상대방과의 대화를 논리의 전장인 콜로세움으로 끌고 들어옵니다.




어느 날 아내와 사소한 다툼을 하였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 말에 모순이 많았고, 저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아 논리적으로 반박했고, 결국 아내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문득 MBTI의 성격유형 검사가 생각났습니다. 사고의 방식이 감정형(F)과 사고형(T)으로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비로소 대화가 될 수 있다는 것을요.


그렇게 아내의 말을 다시 들어보니 아내의 말 자체가 문자 그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말들은 비논리적이고 모순 투성이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나 힘든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아내는 전형적인 감정형(F)의 사람으로 대화에서 본인의 힘듦을 공감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었습니다. 대화의 목적이 공감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감정형(F)인 사람에게 논리적인 말의 의미가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에 약간의 비논리가 포함되어 있어도 그게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감정형(F) 논리보다 나와 상대방의 감정과 관계에 더 집중하 대화합니다. 그러다 보니 논리가 조금 꼬여도 상관없는 것이겠지요.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형(F)과 사고형(T)에게 갈등이 생겼을 때의 상황입니다.

어느 날 감정형(F)과 사고형(T)이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감정형(F)이 약속시간에 그만 늦었습니다. 때문에 사고형(T)은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감정형(F)인 사람은 사고형(T)인 사람에게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상대방의 기다림과 화남에 공감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감정형(F)과 사고형(T)은 서서히 멀어져 갔습니다.


감정형(F)은 사고형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감정형(F)은 사고형(T)에게 늦은 이유를 명확히 설명해주었어야 합니다. 사고형(T)은 상대방이 내 마음에 공감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감정형(F)과 사고형(T)의 언어와 표현방식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언어를 나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상대방의 사고방식으로 상대방의 언어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고, 서로 잘 대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생물학을 좋아했고, 다윈(Charles Robert Darwin)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과 같은 생물학 책들도 종종 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종의 다양성은 알았으나, 인간의 다양성과 다름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혹은 문자로만 '다름'을 이해했고, 진정 그것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의 다양성과 다름의 의미를 진작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크지만, 지금에서라도 깨달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겠습니다.

다만, 제가 공감하지 못한 그 감정들과 논리적인 모순으로 무시했던 말들과 그리고 저의 무지함으로 인해, 상처를 받거나 지금은 관계가 소홀하거나 깨어져버린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건망증이 허락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MBTI의 16가지 성격 유형이 나를 특정하는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상대방과 내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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