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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왈로비 Jun 27. 2023

아동에 대한 손해배상액 산정

아동에 대한 특별취급의 필요성에 관한 판례


작년 가족과 함께 근교로 나들이를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경찰, 검찰 그리고 보험사와의 지난한 과정을 거친 후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험사는 아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어른보다 적게 인정해 주었습니다.

저는 보험사의 이와 같은 조건은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았고, 어른과 동등한 아이의 손해배상액을 요구하였습니다.


결국, 저희 가족 3인에 대한 총합을 기준으로 합의하기로 하였으나, 보험사에서 보내온 합의서에는 여전히 아이의 손해배상금은 적게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아이에 대한 손해배상금은 어른의 것과 다른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손해를 계산하는 방법에 있습니다.

판례는 인신손해에 관하여 소극적 재산상 손해, 적극적 재산상 손해, 위자료로 나누어지는 소송물 3분설을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더 설명해 보자면,

위자료는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이고,

적극적 재산상 손해는 다쳤을 때 치료하기 위해 병원비 등으로 지출한 비용입니다.

소극적 재산상 손해는 ① 몸이 다쳐 입원 등 치료기간 동안 일하지 못해 돈을 벌지 못하거나, ② 영구히 장애가 발생하여 그만큼 노동능력이 상실된 기회비용을 의미합니다.


문제는 소극적 손해에 있습니다.

소극적 손해를 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은 바로 "사고 당시의 실제 수입"입니다. 그러므로 유아와 어린이의 경우는 사고 당시 현실 소득이 없으므로 실무에서는 대체로 도시 일용노임에 의하여 일실 수익을 산정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경우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어린이 보호구역을 만들어 차량의 속도를 느리게 하고, 아이에게 사용되는 약물의 경우 어른의 것보다 더 엄격히 관리하는 등 우리 사회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이는 커서 아픈 사람을 돌보는 따뜻한 의사가 되거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가수가 되거나, 패기와 열정 넘치는 스타트업 CEO가 될 수도 있으나, 이러한 가능성은 일절 고려하지 않고 손해배상에 있어서 아이는 단지 도시 일용직 노동자가 될 뿐입니다. 또한, 이 경우 일실 소득의 산정은 원칙적으로 가동개시연령인 만 19세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던 중 아동에 대한 특별취급의 필요성을 역설한 판례(서울중앙지법 2009. 7. 7. 선고 2006가단423422,2009가단80741 판결)를 발견하여 기쁜 마음에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안은 편도 1차로의 도로에서 4살 정도의 아이가 차량 진행 방향의 오른쪽 갓길에서 놀고 있었고, 가해자는 아이가 갓길에서 놀고 있는 것을 목격하였으나, 속도를 줄이고 동태를 살피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하여, 도로의 안쪽 80cm 지점에 나와 있던 아이를 발견하지 못하고 들이받았고, 아이는 치료를 받다가 끝내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본 판례는 교통사고로 상해를 입고 사망한 아동(사망 당시 만 5세)에 대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면서, 아동의 경우 사고로 인한 기본권 침해의 정도가 성인보다 더 크다는 점, 사고로 인한 아동의 신체적 장애, 생명의 침해가 학습권의 중대한 침해를 가져오는데, 그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고 회복이 가능하더라도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되는 점, 아동의 경우에는 일률적으로 최소한의 수입(일용노임)을 얻을 것을 전제로 일실수입을 산정하고, 성인이 되는 20세 이전까지는 일실수입을 인정하지 않아 성인에 비하여 매우 불리한 점 등의 사정을 감안하여, 그 위자료를 통상의 기준보다 다액(1억 원)으로 정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판결요지만 소개하기에는 아쉬워서 원 판결문의 내용을 발췌하여 옮겨 놓았습니다.


아동에 대한 특별취급의 필요성

사고로 인한 아동과 미성년 청소년(이하 ‘아동’이라 한다)의 신체적 장애, 사망에 따른 위자료 액수를 결정함에 있어서 특별한 취급이 요구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기하여 아동은 성인과 마찬가지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갖고, 행복추구권을 가지며, 법원을 포함한 국가는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아동이 사고로 인하여 신체적 장애, 생명의 침해를 받을 경우에 ① 아동이 몸과 마음이 미성숙한 상태로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는 점, ② 신체의 손상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크고 그 적응에 있어서 성인보다 더 어려움을 겪을 것이 예상되는 점, ③ 성인보다 더 오랜 기간 고통을 감수하여야 하는 점, ④ 성인이 아동기 또는 청소년기에 이미 누렸을 생활의 기쁨(가족관계, 친구관계, 학교생활 등)을 상실한다는 점 등에 비추어 기본권 침해의 정도는 성인보다 더 크다고 할 것이다.


둘째, 아동은 헌법적 기본권으로서 학습권(이러한 학습권의 향유를 토대로 하여 세계관을 형성하고 장래 종사할 직업을 결정하고, 그에 필요한 자질을 키울 수 있다고 할 것이므로 학습권의 침해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연결된다)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인데, 사고로 인한 아동의 신체적 장애, 생명의 침해는 학습권의 중대한 침해를 가져온다. 경우에 따라서는 회복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회복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동과 그 부모에게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요구된다.


셋째, 아동의 일실수입 산정의 기초로서 아직 직업적 적성과 소질, 가능성이 확인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일률적으로 최소한의 수입(일용노임)을 얻을 것을 전제로 일실수입을 산정하는바, 이는 공평한 손해의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피해자인 아동에게 가혹하다.


넷째, 아동의 일실수입의 산정은 성인이 되는 20세 이전까지 일실수입을 인정하지 않고 만 20세를 기산점으로 하여 만 60세까지를 가동연한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성인과 비교하였을 중간이자를 공제하는 것까지 더하여 아동의 연령이 어리면 어릴수록 일실수입액이 적어져서 성인에 비하여( 망 김○○이 이 사건 사고 당시 만 20세의 성인이었다면, 그 일실수입은 230,440,069원이다) 매우 불리한 결과에 이른다.

따라서 위의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면 손해3분설을 취하고 있는 현행 손해배상법의 체계상 아동을 성인보다 유리하게는 못할지라도 불리하게는 취급하지 않아야 하므로 위자료의 보완적 기능을 통하여 아동의 실질적 보호를 꾀할 필요가 있다.




본 판례는 법과 법리와 판례와 현재의 실정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아이를 보호한 판결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위자료의 보완적 기능을 활용하여 아이에 대한 소극적 손해를 산정함에 있어 불합리한 점을 치유하고자 많은 고민을 거듭한 흔적이 보여 감동 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통사고로 보험사와 합의를 진행하면서 보험사가 아이에게 대했던 태도는 바로 이와 같은 손해배상 산정 법리에서 오는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 동안 행복하고 경이로운 경험을 하고,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꿈을 실현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던 아이들이, 어쩌면 불운의 결과로 (교통)사고를 당하여 도시 일용직 노동자로서 대우받는 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미래의 가치는 사라지고 최소한의 일하는 기계로서만 아이들을 다루는 손해배상액 산정의 법리는 아이를 키우는 어른의 관점을 가지게 된 지금 불편하고 개선되어야 할 법리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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