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삶 #4
작년 말 성과급을 받았습니다.
비록 크지 않은 돈이지만 어떻게 쓸까 고민을 하였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처음 만들었던 마이너스 통장이 있습니다. 이 마이너스 통장이 무서운 게 절대 줄어들지 않으면서 매달 이자로 소중한 월급의 일부를 앗아갔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이 지긋지긋했습니다. 그래서 성과급 전부를 빚을 갚는데 썼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은 언제든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요.
올해 3월 10일, 관심을 가졌던 주식이 큰 폭으로 하락을 하였습니다.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좋겠다는 판단을 하였고, 다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려고 은행에 갔습니다. 그런데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빚이 없는데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알고 보지 작년 월세로 살던 집을 임대인이 사정하여 전세로 바꾸어 준 게 화근이었습니다. 전세자금대출은 빌릴 때는 DSR에 잡히지 않지만, 은행 자체적으로는 전세자금대출이 있으면 마이너스 통장 등 대출을 제한하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 해당 주식은 크게 올랐습니다.
올해 7월 25일 재산의 반을 A 주식에 투자하였습니다. 확신이 있었고, 8월 1일 A주식을 더 사기 위해 환전을 하였습니다. 오후 4시. 매수 버튼을 눌렀더니 거래시간이 아니어서 매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 5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고, 일에 정신이 팔려 결국 주식을 매수하지 못하였습니다. 8월 12일 B주식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결국 A주식을 판 돈과 남은 돈 모두로 B주식을 모두 샀습니다.
10월 5일 B주식은 변동이 크게 없고, A주식은 크게 올랐습니다.
정말 한 끗 차이였습니다.
만약 마이너스 통장을 갚지 않았다면,
8월 1일 회의가 없었다면,
8월 12일 A주식을 팔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면,
처음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그저 운이 없었다고 치부했습니다. 다음에는 잘되겠지, 열심히 하면 결국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7~8년 동안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계속된 불행은 운명인 것만 같았습니다.
어쩌면 저는 이렇게 살아갈 운명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젯밤 잠을 설치면서 늘 이성과 합리를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제가, 답답하고 어질러진 마음에 도움이 될까 종교에 기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돈 때문에 마음이 힘든 건 아니었습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변화하는 미래를 예측하고 과감히 그곳에 뛰어드는 것. 그것이 중요한 삶의 의미였습니다.
100년 동안 유지된 내연기관차를 벗어나 처음 전기차가 나왔을 때,
인공지능이 처음 이세돌을 이겼을 때,
50년 동안 멈춰있던 우주로의 탐사가 시작되었을 때,
비트(bit)를 벗어나 큐비트(qubit)의 개념이 등장한 양자컴퓨터가 등장했을 때와 같이.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최신 기술자료를 읽고, 아침마다 종이 신문을 구독하며, 시간이 날 때는 다양한 책들을 읽으며, 오프라인 강연도 종종 들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보니 저는 미래를 예측하는 눈도, 운도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될 거라는 헛된 꿈은 오히려 독이었음을,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것이라는 말은 이미 이룬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을.
그저 그런 사람. 뭘 해도 안 되는 사람.
어제 벤치에 앉아 아이들과 휘낭시에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저희 가족에게 다가왔습니다. 할머니는 아주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라며, 할머니와 같이 운이 많은 사람이 되라며 네 잎클로버를 아이게게 주고 가셨습니다. 요새는 보기 힘든 네 잎클로버.
네 잎클로버는 "행운"을 의미합니다. 전쟁터에서 한 병사가 잎이 세 개가 아닌 네 개가 있는 신기한 풀을 따려고 고개를 숙인 순간 머리 위로 날아온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의해.
참 아이러니 합니다. 그 할머니는 아빠가 운이 없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아이에게 행운을 선물해 줘서 참 고맙습니다.
<먼저 온 미래>의 작가인 장강명의 아내이자, 그믐의 김새섬 대표에 관한 인터뷰를 우연히 접하게 되었습니다. 김새섬 대표가 추천하는 책은 빅터 프랭크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인데, 이 책의 원제는 "Man's Search For Meaning(삶의 의미를 찾아서)"이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살아가는 의미가 중요하며, 이 의미는 평범하고 약해 보이는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암과 항암치료로 몸이 약해져 있음에도 그녀는 불운하고 불행한 사람으로만 남고 싶지 않아 남편인 장강명 작가와 <암과 책의 오디세이> 팟캐스트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15분 정도 본인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동안 갤럭시 핸드폰으로 녹음을 하며 매일 업로드하였고, 그렇게 올린 팟캐스트가 100회를 넘었습니다.
그녀에게 병마라는 불운이 찾아왔지만, 그녀는 강했고 그녀의 삶은 빛이 났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제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방황하고 또 방황하고 있는 중입니다. 길을 찾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순간도 있었지만, 이내 빙하의 크레바스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 것이 첫 번째 목표이지만 그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해 저녁 늦게 퇴근하면 글을 쓸 시간과 에너지가 없었습니다. 주말에는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고, 요새는 아이들이 늦게 잠들어서 주말에도 밤 12시에 저녁을 먹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글을 열심히 써보고 싶어 졌습니다. 사람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생성형 AI 시대 "글쓰기"는 어쩌면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의 생각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글쓰기 만한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생각도 정리되고, 감정도 해소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누군가 제 글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도 있으며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잘못된 점을 학습하여 개선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을 통해 아이들이 아빠를 기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쓰는 첫 번째 글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수 없이 많은 나날들을 어젯밤과 같이 운이 없음에 잠을 설치며 번뇌하고 괴로워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글쓰기로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기를, 그렇게 안온하고 평온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아내와 아이들과 행복한 나날들을 보낼 수 있기를 간절하게 꿈꾸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