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예측: 운이 전부인 세상

단 한 번의 삶 #3

by 왈로비
결국 인간 노동력의 가치는 무(無)로 수렴하고,
노동력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무(無)로 돌아간다.

- 왈로비 <미래예측> 中


지난 주말 2025 양평 그란폰도에 다녀왔습니다.

95km를 5시간 안에 들어오는 코스입니다. 지난 5월에 있었던 가평 그란폰도에서는 회수차에 타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회수차를 타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저를 응원하고 싶어 하여 졸린 눈을 비비며 새벽같이 일어나 차를 몰고 양평으로 왔습니다.


그렇게 기대와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타임시트의 마일스톤마다 도착시간이 오버되었습니다. 보급소에서는 최소한의 시간만 소요하며,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으나, 컷오프(cut-off) 지점인 71km 지점에 위치한 제2보급소에 다다르기 전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앞도 보이지 않고 빗물이 들어가 눈을 뜨기도 어려웠습니다. 자전거는 두 바퀴로 가기에 비가 와서 노면이 젖으면 마찰을 잃고 쓰러지기 쉽기에 더욱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마지막 업힐인 수곡리 KOM 산악 구간에서는 이미 오른쪽 무릎과 왼쪽 허벅지에 쥐가 올라와 페달을 밟을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결승선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과 아내,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감을 찾기 위해 95km 결승지점인 양평물맑은종합운동장까지 열심히 달렸습니다.


올해 그란폰도에서 처음으로 완주를 하였고, 아이들에게 완주 메달을 걸어주었습니다. 이번 그란폰도의 완주 경험은 가족과 함께했기에, 그리고 노력이 열매를 맺을 수 있었기에, 인생에서 잊지 못할 죽기 전 생각날 것만 같은 즐거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자전거를 좋아하는 이유는 노력하는 만큼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노력이 통용되는 곳은 자전거 페달 정도인 것 같습니다.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 대치동, 잠실, 분당 등의 동네는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거래되었습니다. 이 동네들은 초중고 커리큘럼상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학원 등의 기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제 주변에도 대학교 등록금보다 비싼 영어유치원을 비롯하여, 이른바 의대 등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해 아이들에게 많은 사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학업에 유리한 환경에서 본인 스스로도 열심히 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다시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삶은 녹록지 않을 것입니다.


과거의 세상은, 성장하는 사회였고 성장하는 사회에서는 유능한 인재가 필요하였습니다. 유능한 인재는 대기업 등에서 성장의 열매를 나누어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고시/의대 등에서 열심히 노력하여 전문직이 되거나, 좋은 대학에서 들어가서 열심히 스펙을 쌓아 대기업에 취업하면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고 가끔 해외여행도 다닐 만큼 가족을 건사할 수 있을 정도의 삶은 보장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회사 상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요새는 상무가 된다고 하더라도 그 월급으로는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본인도 아직 서울에 집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회사의 상무라고 하면 직장인 커리어의 정점에 있는 사람입니다. 인생 전반에 걸쳐 대학에서, 회사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때로는 동료들과 경쟁하며 나를 깎고 잘라서 좁고 좁은 승진의 문턱을 넘은 것이지요.


이처럼 앞으로는 각고의 노력으로 강화된 인간의 노동력이 더 이상 가치가 없는 사회가 될 것임을 조심스럽게 예측해 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상대적으로 자본가치는 크게 상승하고 노동가치도 하락하기 때문입니다.


회사 근처에는 아주 맛있는 토스트 가게가 있습니다. 가게라기보다는 천막으로 된 포장마차인데, 출근길 토스트 냄새를 맡으면 맛있는 냄새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주머니께서는 열심히 버터를 녹여 빵을 굽고 계란 지단을 올려 아주 먹음직스러운 토스트를 만들어 냅니다. 정성이 가득 들어간 이 토스트는 단돈 2,500원입니다. 그러다 문득 2,500원 토스트를 20개 팔아도 5만 원 남짓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주식, 코인, 부동산 등의 자본소득은 몇백, 몇천, 몇억의 이익을 가져다준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이들이 보기에 몇 천 원의 이익은 우스울 것입니다.


개미와 베짱이가 있었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것처럼 성실한 개미는 열심히 일하고 아껴 월급을 한 달에 100만 원씩 저축하였고, 베짱이는 펑펑 돈을 쓰면서 월급보다 더 많이 소비하여 한 달에 100만 원씩 추가지출을 하였습니다. 5년 뒤 개미와 베짱이는 자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미는 5년 동안 6천만 원을 모았고, 베짱이는 5년간 100만 원씩 총 6천만 원이 마이너스였지만, 부모가 물려준 4억 원의 아파트가 3배 올라 12억 원이 되었어 결국 11억 4천만 원의 자산이 늘었다는 웃픈 결론입니다.


자본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노동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하다 보면 그 격차는 더 벌어지고 분모(자본가치)가 커지고 분자(노동가치)가 작아져 결국 자산가치 대비 노동가치는 0에 수렴하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정부의 복지정책의 지속적 강화와, 비합리적 복지 기준입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의 복지정책이 많이 생겼습니다. 전 국민에게 직접적으로 돈을 나누어 주는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같은 제도뿐만 아니라, 신생아를 출산하는 경우 정부의 지원으로 낮은 이자로 대출을 제공하는 '신생아특례대출', 그리고 소득이 높지 않은 사람에게만 아파트 청약 기회를 제공하는 "공공분양"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지정책은 국가가 국민에게 행사하는 영향력이 커지는 지금의 관성에 따라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견됩니다.


국가가 복지제도를 유지하려면 재원이 필요합니다. 많은 재원은 세금을 통해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입니다. 특히, 고정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직원들에게서 대부분의 재원을 충당하는 것이지요. 일례로 연봉이 8,800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35%의 세금이, 1억 5천만 원을 초과하는 경우 38%의 세금이 부과됩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연봉에 비례해서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 등을 추가로 납부해야 합니다. 결국 연봉 8,800만 원인 사람의 월수령액은 575만 원이 되며 약 22%에 해당하는 1,900만 원이, 1억 5천만 원인 사람의 월수령액은 864만 원이며 약 40%에 해당하는 4,632만 원이 세금 등의 명목으로 국가에 의해 사라지게 됩니다.


통상 명문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환경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노력이 없으면 안 될 것입니다. 또한, 명문 대학에 입항한 후 학점, 영어능력, 다양한 대외활동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대기업에 입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대기업에 입사한 후에도 선별되고 선별된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의 시간 대부분을 회사에 쓰며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의 노력의 총체가 결국 월급(연봉)이라는 결과물로 나오는 것입니다.


문제는 비합리적 복지 기준에 있습니다. 복지제도의 대원칙도 "일하지 않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노력하는 자에게는 더 적은 복지제도의 혜택을 혹은 아무런 수혜도 입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여 좋은 대학을 나오고, 로스쿨에 들어가서,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대기업 사내변호사가 된 주변 동료들로부터 국가는 그 노력의 결실인 월급에서 무려 40%가 넘는 돈을 앗아갑니다. 세후 월급만으로도 풍족하게 살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직장인의 월급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정도 수준입니다. 하지만 국가는 이를 고려하지 않고 연봉이라는 절대적이고 비합리적인 기준으로 복지혜택을 제공합니다. 제 주변 동료는 세금은 세금대로 납부하고, 이미 오를 대로 오른 민간분양에는 청약을 넣지도 못하고, 분양가 상한제 등이 적용되어 나름 합리적인 공공분양에는 연봉 기준에 탈락하여 지원조차 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너무 예쁜 아기를 낳고 아파트를 구매하고자 하더라도 연봉 기준에 탈락하여 신생아특례대출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습니다.


운 좋게도 연봉이 1.29억 원인 사람에게는 신생아특례대출의 가능성이, 운 좋게도 공공분양 기준인 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의 100% 등에 해당되는 사람에게는 공공분양의 기회가 있습니다. 운 좋게도 소득 상위 11%인 사람은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10만 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연봉 1.29억 원인 사람과 1.31억 원인사람과의 차이가, 월평균소득이 99%인 사람과 101%인 사람과의 차이가, 소득 상위 11%인 사람과 9%인 사람의 차이로 복지혜택을 받는 사람과 받지 못하는 사람 사이에 합리적인 차별의 이유가 존재할까요?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대체적으로 연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노력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사회는 노력한 사람에게서 세금 등으로 더 많은 돈을 가져가면서도 덜 노력한 사람이 더 노력한 사람보다 잘 살 수 있도록 복지제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가 지속된다면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노력해서 연봉을 더 올려도 세금이 함께 증가하여 실제 수령하는 월급으로는 생활수준에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을 만큼만 노력하고 일하는 것이 더 현명하고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이처럼, 미래 사회는 노력을 통해 연봉을 많이 받는 자에게는 그에 비례하여 더 많은 세금 등의 의무를 부과하는 한편 복지혜택에서는 소외할 것이기에, 결론적으로 노력한 자는 더 이상 세상으로부터 대우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자본가치의 상승과 노동가치의 하락

노력의 산물인 노동가치를 부정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어쩌면 "운"이 아닐까 합니다.


2014년 회사를 다닐 즈음, 그때의 여자친구인 지금의 아내와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참 많이도 다녔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로스쿨에 입학하게 되면서 아파트 구매를 보류하였습니다. 만약 이때 로스쿨에 입학하지 않고 아파트를 구매하였다면 지금과 같이 자본상승에서 소외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의 강의를 막 듣고 온 친구를 우연히 그날 저녁 식사자리에서 만나 이더리움 등 코인에 투자하여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둔 한편, 혹자는 결혼을 하면서 아파트가 상승하기 전에 노원에 아파트를 구매하면서 2~3배의 시세차익을 보았습니다. 또한, 어떤 이는 연봉이 높지 않아 고분양가의 서울 공공분양 청약에 당첨되었고, 운 좋게 재력 있는 부모의 도움으로 분양가를 납부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열심히 학원에 다니고, 시험에 정진하고 노력하여 결국 명문대에 합격하더라도 이미 노동의 가치는 바닥일 것입니다. 그리고 운 좋은 자본가들과 운 좋은 복지제도의 수혜자들만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운이 전부인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남들처럼 영어유치원부터 명문대에 진학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그 이후의 세상에서 노력의 결과, 노동력의 가치는 무에 귀결할 것을 알기에 더 내키지 않았습니다.


최근 6살 첫째 아이가 레고에 빠졌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설명서를 뚫어지게 정독하고, 작은 레고 부품들을 하나하나 쌓아 올리면서 일주일을 노력한 끝에 마침내 '소방서와 소방트럭'을 처음으로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너무 행복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고, "이걸 완성하니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아이의 눈에서 자존감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운이 중요하니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가치가 상실했으니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법을 알려주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 좋아하는 일을 찾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시켜주는 것.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노력하는 즐거움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로서 저의 역할이자 사명일 것입니다.


아이가 말한 레고 '소방 구조 비행기'를 사주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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