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사라진 서울에서
제1장
서울이 나라를 다 먹어치운 뒤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을 대한민국이라고 불렀다. 지도는 습관이니까.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는 서울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서울의 아파트였다. 사람들은 처음엔 일자리를 따라 올라왔고, 그 다음엔 병원을 따라 올라왔고, 나중에는 대학과 결혼식장과 장례식장을 따라 올라왔다. 지방에서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기차였고, 그 다음은 산부인과였고, 마지막은 기다릴 이유였다. 기다릴 만한 것이 모두 서울에 있으니, 사람도 결국 서울로 왔다. 남은 땅은 넓었지만, 남아 있을 이유는 좁았다.
서울은 그 인파를 정직하게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것들을 위로 쌓아올렸다. 아파트는 오래전부터 서울의 종교였고, 이제는 헌법에 가까웠다. 산을 깎아 아파트를 세우고, 강 위를 덮어 아파트를 세웠다. 오래된 아파트를 헐어 그 위에 더 높은 아파트를 세웠고, 그 아파트들 사이를 연결하는 공중 보행로와 상가와 주차장이 다시 지면을 덮었다. 한때 하늘이라고 불리던 자리는 차츰 구조물의 공용면적이 되었다.
그래서 태양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신분을 얻었다. 그것은 외벽 청소부와 드론 정비사, 0.1퍼센트 펜트하우스 거주자만 볼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지상의 서울 사람들은 햇빛을 대개 광고에서 보았다. 아파트 분양 전단지에는 늘 ‘남향 위주의 채광 특화 설계’ 같은 말이 적혀 있었는데, 그런 문구는 빵 봉지에 밀 그림을 그려 넣는 것과 비슷했다. 실제로 서울에서 가장 귀한 것은 뷰가 아니라 낮이었다.
나는 서울시청 주택광량조정본부 채광민원2팀 7급 주무관이었다. 쉽게 말하면 남의 햇빛을 계산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동의 증축이 맞은편 동의 서향 3분 20초를 빼앗았는지, 어느 공중보행로의 그림자가 몇 층 아래까지 내려오는지, 일조량 상실에 따른 관리비 감면율은 얼마인지 같은 걸 시뮬레이션으로 정리하는 일이 내 일이었다. 매일 아침 내가 한 일은 서울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태양을 서류 위로 불러내는 일이었다. 그건 웃긴 일이었고, 오래 하면 사람이 좀 마른 농담처럼 변했다.
웃긴 건 내 집엔 창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영등포 생활권역 11지구의 ‘심층안정형 원룸’에 살았다. 분양 광고엔 외부광의 방해가 적어 숙면에 유리하다고 적혀 있었다. 말하자면 어둠을 장점으로 판 셈이었다. 그 방엔 시계가 없으면 아침과 밤을 구별할 수 없었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게 편해졌다. 시간이 보이지 않으면 늙는 것도 조금 덜 사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민원번호 2049-채광-11821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제목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햇빛을 없애지 말아주세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 첨부 사진도 어딘가 조작 같았다. 콘크리트 바닥에 금빛이 얇게 누운 사진 한 장. 낡은 벽, 바닥에 그어진 노란 선, 그리고 빛. 서울에서는 너무 오랫동안 볼 수 없던 종류의 빛이었다. 조명처럼 흩어지지 않고, 어디선가 도착해 분명한 방향을 가진 빛.
최 팀장이 내 모니터를 흘끗 보더니 말했다.
“이제는 햇빛도 문화재 지정해 달라 그러네.”
옆자리 박 주무관이 웃었다.
“보존 요청이면 문화재과로 보내면 되겠네요.”
사무실 사람들은 잠깐 웃었다. 나도 입꼬리를 올렸지만, 화면에서 눈을 떼지는 못했다. 민원 본문엔 삐뚤삐뚤한 글씨로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14시 17분쯤 서쪽 벽 아래 볕이 듭니다. 우리 손녀가 그때 자기 그림자를 처음 봤습니다. 그걸 공사 때문에 가린다고 해서, 없애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볕이 짧아도 볕은 볕입니다.
나는 그 문장에서 오래 멈췄다.
자기 그림자를 처음 봤다는 문장 때문이었다.
그림자가 있다는 건 광원이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너무 오래 그림자 없이 살아서, 그 말이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 되어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해 그림을 볼 때, 그게 실제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나는 현장 확인 요청서를 올렸다. 최 팀장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결재를 했다.
“가서 확인이나 해봐요. 필터 씌운 사진 하나로 기사라도 나면 또 우리 욕먹으니까.”
그가 덧붙였다.
“다만 너무 감정 이입은 하지 말고.”
공무원은 늘 그런 식으로 말한다. 감정은 민원인 쪽에서만 발생해야 하는 것처럼.
제2장
민원 주소지는 구로생활권 7지구, 해오름 루체캐슬 19차였다.
이름만 들으면 적어도 아침엔 해가 뜰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 단지는 오전과 오후를 오직 조명 색온도로 구분했다. 로비에는 인공 새벽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엘리베이터 안엔 새소리 음원이 흘렀다. 사람들은 그것을 불편해하지 않았다. 불편도 오래 지속되면 인테리어가 되기 때문이다.
민원인 정복례 씨는 로비에 서 있었다. 칠십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작은 여자였다. 아주 작은 몸인데, 이상하게도 바닥에 단단히 박혀 있는 것 같은 사람. 옆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손을 잡고 서 있었다. 아이는 내 얼굴보다 내 가슴에 달린 공무원증을 먼저 봤다. 서울 아이들은 사람보다 시스템을 먼저 배운다.
“정복례 씨세요?”
“예. 내가 복례예요.”
그녀는 내 얼굴을 한 번 보고, 내가 생각보다 젊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애가 수아예요.”
수아는 내게 인사를 하지 않고 물었다.
“선생님은 볕 본 적 있어요?”
나는 대답이 조금 늦었다.
“어릴 때는.”
“기억나요?”
“조금은.”
수아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표정이 꼭 멀리 여행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두 번 갈아탔다. 한 번은 위로, 한 번은 아래로. 해오름 루체캐슬 19차는 지상과 지하를 구분하는 대신 층위라고 불렀다. 주거, 상가, 교육, 물류, 의료, 주차, 환기, 재난대피, 그리고 다시 주거. 하나의 도시가 아파트 안으로 접혀 들어와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지하 2층 물류통로와 실내놀이터 사이의 비상복도였다.
“여기서요?”
내가 묻자, 정복례 씨가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와요.”
빛을 기다린다는 말이 낯설었다. 서울에선 대개 택배나 배달음식을 기다렸지, 빛을 기다리진 않았다.
복도엔 아무것도 없었다. 회색 바닥, 회색 벽, 응급용 초록 불빛, 천장의 배관. 어딘가에서 공조기 소리가 났고, 누군가 끄는 캐리어 바퀴 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수아는 벽에 붙어 서서 손끝으로 노란 안전선의 페인트를 뜯고 있었다.
“몇 시에 와요?”
내가 물었다.
“2시 17분 조금 넘어서.”
정복례 씨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길게는 안 와요. 한 일이분.”
“어디서 들어오죠?”
“나도 처음엔 몰랐어요. 그냥 어느 날 애 손 잡고 가다가, 발등이 따뜻해서.”
그녀는 발등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아주 천천히 발음을 굴렸다. 마치 그 따뜻함이 아직도 거기 남아 있는 것처럼.
2시 17분이 지나고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솔직히 조금 민망해졌다. 역시 사진 장난이었나 싶었고, 이걸 확인하러 온 내 자신이 우스웠다. 최 팀장 얼굴이 떠올랐다. ‘감정 이입은 하지 말고.’
그때였다.
벽 하단의 검은 몰딩 위로, 아주 얇고 날카로운 금색 선 하나가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처음엔 먼지에만 닿았다. 복도 안을 떠다니던 먼지들이 갑자기 자기 존재를 알게 된 것처럼 반짝였다. 그 다음엔 선이 조금 넓어지더니 바닥 위에 작은 사각형을 만들었다. 손바닥 두 개를 붙인 정도의 크기였다.
정복례 씨는 말없이 수아를 그 안으로 데려갔다.
수아는 처음에 웃지 않았다. 아이들은 낯선 것을 보면 대개 웃지 않는다. 아이는 그 자리에 서서 자기 발을 내려다봤고, 그 다음 바닥을 봤다. 아이 발 옆으로 짙고 선명한 그림자가 생겨 있었다. 아이는 자기 발을 좌우로 흔들었다. 그림자도 따라서 움직였다. 그제야 아이가 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할머니.”
“응.”
“이게 내 그림자야?”
정복례 씨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아이 머리를 한 번 쓸어내렸다.
나는 그 사각형 안으로 손을 넣어봤다. 따뜻했다. LED 조명이나 적외선 히터의 열과는 달랐다. 그것은 눈으로 먼저 오는 게 아니라 피부에 먼저 닿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그 순간 풀 냄새를 떠올렸다. 실제로 복도에서 풀이 날 리는 없는데도 그랬다. 어린 시절, 방학 오후, 마당, 방충망, 먼지와 함께 기울어지던 빛. 그런 것들이 너무 오랫동안 기억 저편에 있다가, 누군가 스위치를 올린 것처럼 돌아왔다.
빛은 2분 43초 동안 머물렀다.
나는 그 시간을 나중에 영상으로 여러 번 확인했다. 직업병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의 2분 43초는 그보다 훨씬 길었다. 우리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복도 소음이 멀어졌고, 공조기 진동만 남았다. 빛이 떠난 뒤에야 수아가 물었다.
“선생님, 볕은 맨날 이렇게 와요?”
정복례 씨가 먼저 답했다.
“맨날은 아니고. 요즘만.”
그리고 내 쪽을 돌아보며 덧붙였다.
“저 위에 오래된 주차타워 있잖아요. 거 유리 깨진 데 반사돼서 들어오는 거래요. 경비 아저씨가 그러더라고.”
나는 곧장 태블릿을 켜고 건물 배치도를 열었다. 여러 층의 구조물이 중첩된 복잡한 도면 위에서 광로를 따라가자, 정말로 가능했다. 90년대에 지은 낡은 주차타워 외벽의 스테인리스 패널이 햇빛을 받아, 그게 두 동 사이 틈으로 들어와 환기샤프트를 스치고, 다시 비상복도 하단으로 떨어지는 구조였다. 어쩌면 서울에서 가장 비싼 우연이었다.
“이걸 왜 보존해 달라고 하신 거죠?”
내가 묻자, 정복례 씨는 아주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봤다.
“애가 볕이 뭐냐고 묻더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교과서에 ‘볕바른 곳에 화분을 두세요’ 이런 문장이 있대요. 내가 볕을 설명해 보는데, 자꾸 거짓말 같더라고. 말은 남아 있는데 그걸 가리킬 물건이 없어지니까, 사람이 점점 바보가 돼요.”
그 문장은 나를 세게 쳤다. 말은 남아 있는데, 가리킬 물건이 없어진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그런 식으로 많은 것을 잃고 있었다. 마당, 골목, 평상, 저녁놀. 단어는 있었지만, 실재는 사라졌다. 그러면 사람은 처음엔 추억을 말하고, 그 다음엔 정의를 말하고, 마지막엔 침묵하게 된다.
“공사 곧 시작돼요.”
정복례 씨가 말했다.
“맞은편에 또 아파트 짓는대요. 그러면 이 볕길 막힌다 해서.”
수아가 내 팔을 잡았다.
“선생님이 안 막히게 해주세요.”
아이들은 국가의 기능을 지나치게 신뢰한다. 나는 그게 늘 미안했다.
“해볼게.”
내가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는 이미 이 일에 감정 이입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제3장
공문으로는 불가능했다.
임시 공공채광자원 지정 신청서를 올렸고, 관련 조항을 뒤지고, 안전성 검토와 문화적 가치 평가 의견을 붙였지만, 돌아온 답은 단호했다. 면적 기준 미달, 지속성 부족, 사유지 포함, 우연적 반사광에 대한 보호 선례 없음. 결정적으로, 맞은편 예정 사업은 3,240세대 공급을 담보하고 있었다.
최 팀장은 서류를 탁자 위로 밀며 말했다.
“볕 하나 때문에 3천 세대를 멈출 수는 없잖아요.”
“볕 하나가 아니에요. 공공적으로—”
“공공은 세대수로 계산해요.”
그는 피곤한 얼굴로 안경을 벗었다.
“지윤 씨, 서울에서 해 본 적이 없잖아. 사람은 일단 살아야 돼. 집이 있어야지.”
“집은 있는데 낮이 없잖아요.”
나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내가 생각보다 화가 많이 났다는 걸 알았다.
최 팀장은 잠깐 나를 봤다. 그 눈빛엔 연민과 짜증이 반쯤 섞여 있었다.
“낮 없는 집에 이미 다들 살고 있어.”
그 말이 더 나빴다. 모두가 이미 그렇다는 말은, 그래서 더는 문제 삼을 필요도 없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날 밤 나는 집에 돌아와 정복례 씨가 찍어준 영상을 다시 봤다. 수아의 그림자가 벽에 붙었다 떨어지는 17초짜리 영상이었다. 아이가 자기 발을 움직일 때 그림자도 따라 움직였다. 아이는 그걸 보고 웃지 않았다. 놀랐다. 경탄은 웃음보다 늦게 오는 법이다.
나는 익명 계정으로 그 영상을 올렸다.
설명은 길지 않았다.
서울에서 햇빛을 보존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아이가 처음 자기 그림자를 본 곳이라고 합니다. 곧 공사로 사라질 예정입니다.
처음 몇 시간은 반응이 없었다. 그 다음엔 ‘CG 아니냐’, ‘주작이다’, ‘광고 각이네’ 같은 댓글이 달렸다. 그다음 날 아침에는 위치를 추정하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점심때쯤엔 해오름 루체캐슬 19차의 비상복도 바닥 타일 무늬를 분석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저녁에는 영상이 뉴스 계정들에 퍼졌고, 다음 날엔 해시태그가 생겼다.
#서울마지막햇빛
마지막이라는 말은 대체로 사실이 아니지만, 사실이 아닐수록 더 멀리 퍼진다.
그 후의 일은 이상할 정도로 빨랐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 그다음엔 영상을 찍는 인플루언서들, 그리고 건강앱 회사 직원들, 명상 강사들, 도시생태 연구자들, 정치인들, 유튜브 시사평론가들, 햇빛을 쐬면 우울감이 줄어든다며 성분표처럼 설명하는 의사들, 볕 아래서 백일사진을 찍고 싶다는 부모들, 마지막 빛과 함께 떠나고 싶다며 유골함을 안고 온 사람들까지. 사람은 드문 것 앞에서는 언제나 자기 욕망의 본색을 드러낸다.
단지 주민들은 외부인 출입을 막아 달라며 항의했고, 외부인들은 햇빛이 공공재라며 맞섰다. 구청은 안전 펜스를 세웠고, 시는 번호표를 나눠줬다. 번호표는 당일 새벽부터 암표로 돌기 시작했다. 어떤 중개업소는 ‘서울 마지막 햇빛 도보 3분’이라는 문구를 써서 근처 매물을 광고했다. 한 선크림 브랜드는 복도 앞에 팝업 부스를 열었다가 주민들에게 쫓겨났다. 야당 대변인은 ‘빛조차 계급화된 사회’라고 논평했고, 여당 의원은 ‘국민채광기본권 검토’를 말했지만, 구체적인 법안은 없었다.
뉴스 카메라는 정복례 씨를 인터뷰하려고 했고, 정복례 씨는 세 번 도망쳤다. 수아는 학교에서 갑자기 유명인이 됐다. 아이들은 수아에게 볕이 정말 따뜻하냐고 물었고, 수아는 “응, 근데 되게 조용해”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울고 싶었다. 따뜻한데 조용한 것. 요즘 서울에 그 두 가지를 함께 가진 건 거의 없었으니까.
정복례 씨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큰일 났어요.”
“무슨 일이요?”
“나는 그냥 애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건데, 이게 왜 이렇게 됐나 몰라.”
그녀의 목소리는 미안해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피해를 입은 쪽인데도 사과하는 사람들. 대개 오래 참아온 사람들에게서 나는 목소리였다.
“제가 올렸어요.”
나는 말했다.
“영상.”
정복례 씨는 잠깐 말이 없었다.
“왜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의감 때문이라고 하면 너무 깨끗했고, 화가 나서라고 하면 너무 단순했다. 어쩌면 내가 그 빛을 혼자 알고 있기 싫었는지도 몰랐다. 그런 것을 본 사람이 다시 창 없는 방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살기란 쉽지 않다.
“미안해요.”
내가 겨우 말했다.
정복례 씨는 한숨 비슷한 것을 내쉬었다.
“뭐… 이제 와 어쩌겠어요. 근데 수아는 꼭 한 번 더 보여줘야 해요. 공사 시작하면 끝이라서.”
공사 시작일은 열흘 뒤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빛을 만들어내던 낡은 주차타워 외벽 패널 철거일이 열흘 뒤였다. 루체건설은 안전 문제를 이유로 예정된 날짜를 앞당겼다. 그들이 짓는 새 아파트 이름은 더 기가 막혔다. 솔라시티 에비뉴 3차.
태양이라는 말은 이제 거의 빈 상표였다. 사람들은 없는 것일수록 더 비싼 이름을 붙였다.
제4장
철거 당일, 서울엔 아침부터 사람이 몰렸다.
날씨 앱은 종일 맑음을 예보했다. 그 예보 하나가 도시를 흥분시켰다. 해오름 루체캐슬 19차 주변엔 새벽부터 돗자리와 접이식 의자, 카메라 삼각대가 깔렸다. 한 무리의 대학생들은 ‘낮을 돌려달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왔고, 어떤 노인은 해를 맞이할 때 입는다는 오래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이들은 교과서에서 본 해 그림처럼 노란 원을 들고 서 있었고, 사람들은 그 노란 종이 뒤에서 셀카를 찍었다. 서울은 언제나 진심과 장난을 동시에 하는 도시였다.
나는 공무원증을 걸고 현장에 나갔다. 공식 업무는 아니었지만, 그 현장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이 더 적었다. 영상이 퍼진 뒤 누군가 내가 올린 계정을 특정했고, 나는 내부 경고를 받은 상태였다. 징계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아무도 나를 사무실에 붙잡아두지 못했다. 어차피 서울시도 대책반을 꾸렸고, 모두가 복도와 광장과 계단참에 퍼져 있었다.
정복례 씨와 수아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었다. 수아는 내 손을 보자마자 달려와 잡았다.
“선생님, 오늘도 와?”
“와야지.”
“어제는 줄이 너무 길어서 못 봤어.”
그 말이 내 심장에 박혔다. 서울에서 마지막 햇빛을 보겠다는 사람들 사이에, 정작 그 햇빛을 처음 발견한 아이가 번호표에서 밀려난 것이다. 나는 수아를 앞으로 데려가려 했지만, 이미 복도 입구엔 통제선이 설치돼 있었다. 소방 점검을 이유로 출입 인원을 제한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오후 1시 40분,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맞은편 낡은 주차타워 외벽에 거대한 천막이 펼쳐지고 있었다. 새 아파트 광고였다. 푸른 하늘과 초록 공원, 그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고층 아파트 이미지. 그 아래에 쓰인 문구는 이랬다.
당신의 내일에, 더 많은 빛을.
사람들이 야유를 보냈다. 누군가는 욕을 했고, 누군가는 천막을 내리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작업자들은 헬멧을 쓴 채 묵묵히 줄을 내렸다. 거대한 광고막이 외벽 패널을 덮자, 주차타워가 반사하던 미약한 빛도 사라졌다.
“끝났네.”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이 군중 사이로 물처럼 퍼졌다. 끝났네. 끝났네. 끝났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혔다. 복도 안으로 들어오는 각도를 계산해 본 적이 있어서 알았다. 광고막이 저 자리를 가리면 오늘의 광로는 막힌다. 공식적인 방법으로는 끝이었다.
수아가 내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오늘도 못 봐?”
정복례 씨가 아이 어깨를 감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얼굴을 보고 있으니, 이상하게도 부끄러워졌다. 서울은 늘 이런 식이었다. 뭔가를 빼앗고 나서 더 좋은 버전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믿으라고 광고했다.
그때 정복례 씨가 아주 작게 말했다.
“저 위에는 아직 있네.”
그녀가 가리킨 건 211동 83층 서쪽 창문이었다. 광고막 위로 비껴간 햇빛 한 조각이 유리창을 번쩍이고 있었다. 아주 높이, 사람이 손댈 수 없을 것처럼 멀리.
정복례 씨는 내 얼굴을 봤다.
“거울 있으면 되지 않나요?”
나는 그녀 말을 이해하는 데 2초쯤 걸렸다.
그 2초 뒤에, 나는 거의 자동적으로 태블릿을 켜고 건물 배치도를 열었다. 각도. 반사면. 높이. 거리. 내 머릿속에서 매일 남의 햇빛을 빼앗고 보상하던 숫자들이 갑자기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울 있습니까!”
나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소리쳤다.
주변 사람들이 나를 돌아봤다.
“거울! 반사되는 거 뭐든요! 화장거울, 차량 햇빛가리개, 스테인리스 쟁반, 비상 은박포!”
사람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해했다. 그다음엔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도시 사람들은 평소엔 남의 일에 무심하지만, 규칙이 갑자기 없는 상황이 되면 놀랄 만큼 영리해진다. 누군가는 가방에서 작은 손거울을 꺼냈고, 누군가는 방송용 반사판을 들고 왔다. 아이 엄마가 유모차 밑에서 은색 돗자리를 꺼냈고, 배달기사는 오토바이 짐칸에서 보온커버를 벗겨냈다. 단지 주민 몇몇이 베란다에서 세탁건조대 알루미늄 판을 떼어 들었다. 위층 누군가는 창문 밖으로 압력밥솥 뚜껑을 내밀었다.
나는 관리사무소 비상 방송 마이크를 잡았다. 누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211동 서향 세대, 햇빛 보이는 분들, 거울 들고 창가로 나와 주세요. 83층부터 70층까지, 왼쪽으로 두 도만 더— 네, 그대로. 189동 중앙 공중보행로 계신 분, 조금만 위로. 위로요. 아니, 너무 위 말고요. 142동 옥상 관리실, 반사면 있으면 열어주세요!”
처음엔 엉망이었다. 빛은 사람의 의지보다 훨씬 고집이 셌다. 여기저기서 잘못 튕겨나간 빛이 유리창을 번쩍였고, 누군가는 자기 이마에 햇빛을 받고 비명을 질렀다. 아이들이 웃었고, 어른들이 욕을 했다. 한 중년 남자가 선글라스를 쓰고 “이게 되겠냐고!”라고 소리쳤지만, 그런 말은 대개 일이 되기 직전에 나온다.
그리고 정말로, 어느 순간 길이 생겼다.
83층 창에서 튕긴 빛이 공중보행로의 은박포에 닿고, 거기서 다시 57층 베란다의 화장거울로, 거기서 34층의 스테인리스 밥그릇으로, 다시 12층 복도 유리문으로, 다시 광장 쪽 대형 안내판의 금속 테두리로 옮겨갔다. 빛은 마치 자신이 원래 오려던 길을 뒤늦게 찾은 것처럼 빠르게 내려왔다.
사람들이 웅성거림을 멈췄다.
회색 바닥 한가운데, 처음엔 손바닥만 한 노란 얼룩이 생겼다. 그게 점점 넓어졌다. 누군가 거울 각도를 맞추자 사각형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빛은 여러 번 꺾였는데도 이상하게 지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못 본 탓에, 아주 적은 양도 과장되어 느껴졌는지 모른다.
“비켜 주세요.”
정복례 씨가 말했다.
그 말엔 이상하게도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진짜로 길을 비켜줬다.
수아가 광장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아이가 빛 속으로 들어서자, 그 아래 선명한 그림자가 생겼다. 이번엔 더 길었다. 복도보다 사방이 넓어서 그림자도 자기 모양을 다 가질 수 있었다. 수아는 잠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다음 두 팔을 천천히 벌렸다. 그림자도 똑같이 두 팔을 벌렸다.
“할머니.”
아이 목소리가 아주 작게 울렸다.
“응.”
“볕은 사람을 진짜로 나오게 하네.”
그 말 뒤에는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 순간 광장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차례로 자기 손을 빛 속에 넣었다. 어떤 여자는 아기 발바닥을 비췄고, 어떤 노인은 지팡이 끝으로 그림자를 찍어봤다. 개 한 마리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었고, 한 청년은 빛이 너무 밝다며 눈을 찡그리다가 결국 휴대폰을 내렸다. 화면으로는 이걸 다 담을 수 없다는 걸, 모두가 거의 동시에 알아차린 것 같았다.
서울은 늘 시끄러운 도시였지만, 그날 그 1분 58초 동안만큼은 아주 조용했다.
나는 정복례 씨 옆에 서 있었다. 그녀의 눈가가 젖어 있는 걸 보았지만, 모른 척했다. 내 눈도 비슷했으니까.
광고막 위로 바람이 한 번 크게 불었다. 천막이 부풀면서 새 아파트 조감도 속 가짜 햇빛이 흔들렸다. 그 아래 진짜 빛이 바닥 위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 우스우면서도 슬펐다. 우리는 결국 수천 세대의 서울 시민이 손거울과 밥그릇과 압력솥 뚜껑을 들고 서서, 도시 한가운데 낮을 밀반입하고 있었으니까.
그게 실패한 혁명 같기도 했고, 너무 늦게 시작된 예절 같기도 했다.
제5장
그날 이후 나는 징계를 받았다.
비인가 자료 유출, 현장 통제 불응, 관리사무소 방송 무단 사용. 내용은 그런 종류였다. 나는 주택광량조정본부에서 빠졌고, 시청 기록보존실로 발령이 났다. 거긴 햇빛이 더 안 드는 곳이었다. 어쩌면 시가 내게 어울리는 자리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기록보존실에는 창 대신 습도계가 있었고, 나는 오래된 문서들 사이에서 사라진 것들의 목록을 다루게 됐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생각보다 오래 남았다.
사람들은 한 번 진짜 햇빛을 본 뒤로는, 가짜 채광 광고에 예전처럼 쉽게 속지 않았다. 최소채광보장 조례 청원이 올라왔고, 예상보다 많은 서명이 모였다. 건축물 사이에 ‘광로’를 의무적으로 남겨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됐다. 물론 서울은 서울답게 그것마저 프리미엄으로 만들려고 했다. 일부 고급 단지는 ‘하루 7분 자연채광 보장’을 내세워 분양가를 올렸다. 인간은 참 빨리 배운 것을 팔아먹는다.
그래도 이전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예전엔 사람들이 높이를 물었다. 몇 층인지, 뷰가 트였는지, 어디까지 올라갔는지. 그날 이후로는 각도를 묻는 사람이 생겼다. 빛이 들어올 길이 있는지, 그 길을 누가 막는지. 그건 생각보다 큰 변화였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집이 크냐 작으냐보다, 낮을 가질 수 있느냐 없느냐를 말하기 시작했다.
정복례 씨는 가끔 내게 전화를 했다. 수아 얘기를 하려고.
“애가 해 그릴 때 노란색만 안 써요.”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주황색도 쓰고, 하얀색도 쓰고 그러네.”
또 어떤 날은 이렇게 말했다.
“수아가 그날 이후로 그림자 놀이를 자꾸 해요. 조명 켜놓고는 자기 그림자가 왜 그날 거랑 다르냐고.”
나는 웃었다.
“뭐라고 하셨어요?”
“진짜는 길을 많이 돌아와서 그런가 보다 했지.”
그건 즉흥적으로 한 말일 텐데,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진짜는 길을 많이 돌아와서 그런가 보다.
겨울이 오기 전, 정복례 씨에게서 봉투가 하나 왔다. 안에는 수아가 그린 그림이 들어 있었다. 회색 건물들이 빽빽하게 서 있고, 그 사이 바닥에 노란 사각형 하나가 있었다. 그 안에 아이 하나가 서 있었고, 옆에는 그림자가 아주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림 아래 삐뚤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볕은 따뜻하고 냄새가 났어요.
나는 그 종이를 기록보존실 책상 앞 벽에 붙여두었다. 거기엔 창이 없으므로, 그 그림은 그 방에서 유일하게 바깥에서 온 것처럼 보였다.
서울은 여전히 아파트를 짓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서울로 왔다. 다른 도시들은 더 조용해졌고, 서울의 밤은 더 밝아졌지만, 낮은 여전히 귀했다. 달라진 게 아주 많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한 번이라도 진짜 빛을 본 사람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어둠을 정상이라고 믿고 살았는지 잊지 못한다.
가끔 퇴근길에 나는 해오름 루체캐슬 19차 근처를 지난다. 그 비상복도는 이제 없다. 솔라시티 에비뉴 3차 공사가 한창이고, 광고판엔 여전히 ‘더 많은 빛’이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웃기는 일이다. 서울은 없는 것의 이름을 가장 잘 판다.
그래도 광장 한쪽 바닥엔 그날 누군가 분필로 적어 둔 문장이 아직 희미하게 남아 있다. 비에 씻기고 사람들 발에 밟혀 거의 지워졌지만, 가까이 보면 읽을 수 있다.
볕이 짧아도 볕은 볕이다.
나는 그 문장을 지나갈 때마다 잠깐 서게 된다. 그리고 아주 이상한 버릇이 생겼는데, 손을 조금 내밀어 보는 것이다. 물론 거기엔 대개 아무것도 없다. 회색 공기와 자동차 먼지, 누군가의 배달 냄새와 에스프레소 향이 섞인 서울의 오후뿐이다.
그런데도 가끔은, 정말 가끔은, 어딘가 높고 먼 데서 길을 잘못 든 빛 한 조각이 손등에 닿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서울이 그날 찾아낸 건 태양이 아니라, 태양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각도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