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국가의 몰락 이후
프롤로그
담배는 짧게 피웠다.
신호등이 바뀌기 전 두 모금, 횡단보도 끝에서 한 모금. 그리고 편의점 앞에서 껐다. 내 기준에서 그건 “피운 것”이라기보다 “버틴 것”에 가까웠다.
휴대폰이 울렸다.
진동이 아니라, 통지였다. 이 나라에서 진동은 감정이지만 통지는 절차다.
위반: 보행 중 흡연(지정 구역 외)
처리: 과태료 50,000원(즉시 납부)
증거: 영상·위치·대기센서 로그
이의: 48시간 이내 ‘검증요청’ 가능
나는 납부 버튼을 누른 기억이 없었다.
그런데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 있었다. 빠져나간 사실이 이상한 게 아니라, 빠져나간 방식이 이상했다. “납부”가 아니라 “정산”이었다. 마치 내가 국도의 통행료를 낸 것처럼, 거기에 내 선택은 포함되지 않았다.
화면 아래에는 캡처 이미지가 붙어 있었다.
내가 담배를 문 얼굴. 내 뒤로 퀵보드가 지나가고, 바닥의 점자 블록이 젖어 반짝였다. 구석에는 숫자들이 줄지어 있었다. 카메라 ID, 주변 바람 방향, 입자 농도 추정치.
나는 짧게 욕을 했다. 들리지 않게.
이 나라에서 들리지 않는 욕은 가장 안전한 사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웃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웃을 일이 아닌데 웃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끝났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끝나지 않았을 일이다. 예전에는 시작이었을 것이다.
민원실을 찾고, 담당자를 찾고, 설명하고, 서류를 내고, “그 정도는…”이라는 말을 기다리는 일. 혹은 그 반대로 “그건 규정이라서…”를 듣는 일. 어찌 되었든 오래 걸리고, 지치고, 결국은 소문처럼 사라지는 일.
그 시절을 사람들은 이제 분절된 시대라고 부른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라, 법이 서로 말을 하지 않던 시대.
데이터가 흩어져 있고, 절차가 서로 연결되지 않아, 현실이 늘 법보다 한 발 앞서 있던 시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모든 게 붙어 있다. 사람들은 그걸 동기화된 시대라고 부른다.
동기화. 같은 시간에 같은 사실을 공유한다는 뜻.
그 말은 원래 파일에 쓰던 단어인데, 어느 순간 국가에 붙었다.
나는 담배를 끄고,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커피를 하나 집었다. 계산대 앞에서 손이 멈췄다.
혹시 내 손이 떨리는 것도 “로그”로 잡힐까 싶어서.
그런 나라가 되었다.
제1장
내가 부동산 중개 일을 했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대개 이렇게 묻는다.
“다운도 많이 했겠네?”
나는 대답을 망설인다. “많이”라는 단어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운계약서는 죄이면서 관행이었다. 관행이 죄라는 사실이 이상한 게 아니라, 관행이 죄가 아닌 것처럼 살 수 있었던 구조가 이상했다.
당시의 구조는 단순했다.
기관은 각각 자기 시스템 안에서만 움직였다. 세무는 세무를 보고, 등기는 등기를 보고, 은행은 은행을 보고, 경찰은 신고를 본다. 그 사이에는 빈칸이 있었다. 빈칸은 어둠처럼 넓었다.
그 어둠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계약서에는 거래가를 낮춰 쓰고, 차액은 현금으로 주고받는다.
현금은 화면에 남지 않는다. 화면에 남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된다.
사람은 보이는 것만 믿도록 설계되어 있다. 인간 인지의 가장 오래된 한계다.
그리고 인간은 쉬어야 한다.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하고, 휴가를 가고, 아프기도 한다.
행정은 인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늘 느렸다. 느리다는 건 때로는 친절이고, 때로는 구멍이다. 구멍은 누군가에게는 숨 쉴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빠져 죽는 곳이다.
나는 그 구멍이 내 편이라고 믿었다.
그 믿음으로 월세를 냈고, 그 믿음으로 부모님 약값을 보탰다.
그러니까, 내가 처음부터 악인이었던 건 아니다.
다만 악이 따로 생기지 않아도 되는 구조에서 살았을 뿐이다.
제2장
“이 나라가 왜 이렇게 됐는지 알아?”
편의점 앞에서 대성이가 말했다.
그는 예전에 내 사무실 근처에서 배달 일을 하던 친구였다. 지금은 배달을 하지 않는다. 배달을 못 하게 된 건 아니고, 배달을 할 이유가 줄어든 건 아닌데, 그냥… 그가 말하길 “세상이 방향을 바꿨다”고 했다.
대성이는 내 과태료 알림을 보더니 혀를 찼다.
“딱 걸렸네.”
“딱 걸렸지.” 내가 말했다. “근데 이건… 너무 빠르지 않냐?”
대성이는 웃었다.
“빠르니까 무섭지.”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대신 커피를 하루에 여섯 잔 마신다. 그게 더 몸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사람은 대체로 몸보다 마음을 먼저 달랜다.
대성이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알림창을 내게 보여줬다.
위반: 생활폐기물 배출시간 위반
처리: 과태료 30,000원(즉시 정산)
이의: 48시간 이내 ‘검증요청’ 가능
“너도?” 내가 물었다.
“나도.” 그가 말했다. “새벽 두 시에 들어와서 쓰레기 내놓은 거야. 배출 시간?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지켜.”
그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상하게 덤덤했다. 분노는 오래 버티지 못하는 감정이다. 특히 이 나라에서는 더 그렇다. 분노할 시간에 이미 결과가 처리되어 있으니까.
“예전 같으면 경고로 끝났을 텐데.” 내가 말했다.
대성이는 어깨를 으쓱했다.
“예전에는 경고도… 누구는 받고 누구는 못 받았잖아.”
그 말이 내 귀에 걸렸다.
대성이는 자기 억울함을 말하면서도, 자기가 누렸던 불공정에 대해서는 더 빨리 떠올렸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 불이익에는 예민하고, 남의 불이익에는 둔감한데, 대성이가 그런 말을 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그때 나는 떠올렸다.
그 “드문 일”을 만들어낸 게 무엇이었는지.
사고였다.
새벽 도로에서 누군가가 죽었다.
음주운전이었다. 가해자는 도망갔다.
CCTV는 있었지만 번호판이 흐렸고, 담당자는 바빴고, 사건은 ‘미제’가 됐다.
그건 유명한 사건이 아니었다. 뉴스도 오래 다루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사건이 수천 개 쌓이면, 사회는 한 번씩 방향을 틀어버린다.
방향을 틀 때, 우리는 늘 뒤늦게 그걸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부른다.
제3장
엄마도 그런 “흐릿한 사건”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십 년 전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했다. 차가 엄마를 치고 도망갔다. 경찰이 왔고, 서류가 왔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가 왔다. 그리고 끝이었다.
나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세상에서 제일 무책임한 말인데, 가장 많이 쓰이는 말이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서로를 위로한다. 사실은 서로를 방치하면서.
엄마는 그 사건 이후로 길을 건널 때마다 잠깐 멈칫했다.
그 멈칫은 사람의 몸에 새겨진 법이었다.
문장으로 쓰인 법보다 훨씬 강한 법.
그런데, 그때 나는 깨닫지 못했다.
엄마의 멈칫이 ‘운전자의 악의’ 때문만이 아니라, ‘시스템의 분절’ 때문이었다는 걸.
정확히 말하면, 악의는 개인의 것이었지만, 처벌이 실패한 건 구조의 것이었다.
“놓쳤다”는 말이 늘 따라붙었다.
누가 놓쳤는지, 무엇이 놓쳤는지, 왜 놓쳤는지.
놓쳤다는 말은 책임을 흐린다. 흐려진 책임은 다시 구멍이 된다.
그리고 그 구멍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부동산 다운계약, 탈세, 보험 사기, 대포차, 음주운전.
사람들은 법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법이 연동되지 않아서 그러는 거였다.
어떤 사람은 현금을 뽑아서 거래를 끝냈다.
어떤 사람은 명의를 돌려서 흔적을 흐렸다.
어떤 사람은 기관들이 서로 연락하지 못하는 시간차를 이용했다.
구멍은 많았고, 인간은 늘 그 구멍을 ‘합리’라고 불렀다.
“걸리지만 않으면 돼.”
그 말이, 그 시대의 도덕이었다.
제4장
동기화된 시대가 시작된 날, 뉴스 앵커는 물컵을 두 번이나 집었다 내려놓았다.
그가 떨려서인지, 그가 연기하는 건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화면 아래 자막이 너무 길었다.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그 개헌안에는 이상한 문장이 하나 들어 있었다. 사람들이 나중에 “그 한 줄”이라고 부르는 문장이다.
[개정헌법 제25조의2]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적 판단과 집행의 일부를 검증된 디지털 공직체에 위임할 수 있다.
‘디지털 공직체.’
이 말은 새로 만들어진 말이었다. 새로 만들어진 말은 대개 불안하다.
그 불안이 사회를 통과하는 순간, 현실이 된다.
사람들은 처음에 거부했다.
“이게 말이 되나?”
“판결을 기계가 한다고?”
“감시 사회 아니야?”
그런 말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또 다른 말이 나왔다.
“그럼 사람은 놓치지 않나?”
“사람은 쉬잖아.”
“사람은 서로 시스템이 달라서 못 보잖아.”
누가 옳았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그때 사람들은 한 가지에 지쳐 있었다.
“놓쳤다”는 말에.
그 후로 국가는 하나씩 연결했다.
은행, 등기, 세무, 차량, 보험, CCTV, 도로 센서.
전부 하나의 시간대로 묶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공지능이 앉았다. 이름은 율이었다.
율. 법률의 율, 규율의 율.
이름이 너무 단정해서 더 무서웠다.
율이 무엇을 했는지 사람들은 길게 설명하려 들지만, 사실 핵심은 하나였다.
율은 잠들지 않았다.
사람이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그건 불가능한 꿈이었다.
반면 인공지능은 24시간 작동할 수 있다.
연결된 데이터는 피곤하지 않다.
그래서 ‘공백’이 줄었다.
공백이 줄어들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그리고 조용해지는 순간, 사람들은 처음으로 자기 권리가 어디까지인지 체감한다.
권리라는 건 원래 체감이다.
글자만으로는 안 온다.
제5장
율이 가장 먼저 잡아낸 건, 거창한 범죄가 아니었다.
작은 위반이었다.
길거리 담배.
무단투기.
신호 위반.
불법 주정차.
사람들은 비웃었다.
“겨우 저런 걸로 나라를 바꾸냐?”
하지만 작은 위반을 잡으면, 사회가 바뀐다.
큰 위반은 원래 일부만 저지른다.
작은 위반은 대부분이 저지른다.
대부분이 바뀌면, 세상이 바뀐다.
그 다음이 부동산이었다.
그건 내 업계였다.
처음에는 다들 버텼다.
“현금이면 안 걸려.”
“기록이 없잖아.”
나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그 믿음이 내 과거를 지켜주니까.
그런데 율은 현금을 직접 보려 하지 않았다.
율은 현금이 지나간 뒤에 남는 정합성의 균열을 봤다.
매수자는 어디선가 돈이 빠져나간다.
매도자는 어디선가 자산이 늘어난다.
현금으로 받았어도, 그 현금은 결국 다른 형태로 변한다. 차가 되고, 금이 되고, 해외 결제가 되고, 대출 없는 소비가 된다.
사람은 그 흐름을 한눈에 못 본다.
율은 본다.
그게 동기화의 무서움이었다.
그때부터 ‘다운계약서’라는 말이 뉴스에 다시 나오기 시작했다.
예전에도 나왔지만, 그때는 “누군가 걸렸다”는 뉴스였다.
이제는 “구조가 바뀌었다”는 뉴스였다.
사람들은 갑자기 법을 읽기 시작했다.
법은 원래 관심을 받지 못하는 텍스트인데, 관심을 받는 순간 사람을 바꾼다.
“이건 위반이야?”
“이 정도는 괜찮아?”
“검증요청하면 뒤집히나?”
그 질문들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언어가 됐다.
제6장
그러던 어느 날, 내게 통지가 왔다.
거래 정합성 검증 통지
대상 기간: 20XX–20XX
관련 거래: 12건
출석(비대면) 절차 안내
나는 잠깐 숨을 못 쉬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상하게도,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변호사 사무실로.
변호사는 내 서류를 보더니, 딱 한 마디 했다.
“이제는… 계산이 되세요.”
“무슨 계산이요.”
“당신이 어디서 빠져나갈지 말고요. 시스템이 어디까지 연결됐는지.”
나는 그 말을 듣고 화가 났다.
사람들은 자기가 빠져나갈 길을 잃으면, 그걸 “정의”라고 부르지 못하고 “폭력”이라고 부른다.
나는 내가 정의를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변호사는 내게 태블릿 화면을 보여줬다.
율의 분석 요약이었다. 문장들이 과하게 정중했다.
“신고가와 금융행태의 불일치.”
“자산증가와 소득의 불일치.”
“동기간 유사 거래 대비 이상치.”
나는 그 문장들이 싫었다.
너무 깔끔해서.
깔끔한 문장은 변명할 자리를 주지 않는다.
“그때는…” 내가 말했다. “그때는 다들 그랬어요.”
변호사는 고개를 저었다.
“헌재가 오래전부터 말했죠. 법치주의는 형식만 갖추는 게 아니라, 기본권을 보장하는 실질적 절차여야 한다고. 지금 시스템은 그걸 ‘절차’로 구현해요. 역설적이지만.”
그 말이 더 싫었다.
내가 절차라는 말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지는 게 싫었다.
제7장
비대면 재판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방 하나, 의자 하나, 벽면 스크린 하나.
인간의 법정이 가진 장식이 없었다. 국기, 법복, 목재의 냄새 같은 것들.
대신 화면에 작은 글씨가 떠 있었다.
헌법 제12조 1항: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 받지 아니한다.”
나는 그 문장을 아는 사람이었다.
교과서에서 봤고, 뉴스에서 봤고, 술자리에서도 들었다.
그런데 그날 그 문장은 이상하게도 내 목을 조르는 게 아니라, 내 등을 떠미는 느낌이었다.
이건 도망치지 말라는 말 같았다. 도망칠 틈이 없다는 말 같기도 했다.
스크린의 파형이 흔들렸다.
율의 음성은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감정이 없는 목소리는 오히려 내 감정을 끌어올렸다.
“피고인은 부동산 거래에서 신고가를 축소 기재하여 조세를 탈루했습니다.”
나는 입을 열었다.
“현금이었어요. 기록이 없잖아요.”
율은 잠깐 멈췄다가 말했다.
멈췄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그건 0.몇 초였다.
하지만 인간의 시간으로는 그게 ‘침묵’처럼 느껴진다.
“현금의 부재는 기록의 부재가 아닙니다.
현금은 금융행태와 자산변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록됩니다.”
그 문장은, 내가 평생 믿어온 미신 하나를 깼다.
“현금은 안전하다.”
그 믿음이 깨지는 소리가, 내 안에서 들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가장 인간적인 말을 꺼냈다.
“먹고 살려고… 했습니다.”
율은 말했다.
“생계는 고려 요소입니다.
그러나 생계는 탈루를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감정이 치솟았다.
억울함인지 수치심인지 분노인지, 나는 분류하지 못했다. 분류하지 못하는 감정은 더 거칠다.
“그럼 항소는요?” 내가 물었다.
율은 대답했다.
“본 절차는 단심입니다.
다만 결정의 오류 가능성에 대해 자동 재검증이 수행됩니다.
피고인은 검증요청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삼심제가 사라졌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런데 내 입으로 “항소”를 꺼내고 나서야 실감했다.
인간은 늘 뒤늦게 현실을 배운다.
판결은 빠르게 내려졌다.
추징금과 벌금, 그리고 사회봉사.
그게 내 결말이었다.
나는 서류를 받아들고 방을 나왔다.
복도 끝에 창문이 있었고, 창밖에는 도로가 보였다.
차들은 신호를 지키고 있었다. 너무 잘 지키고 있어서, 오히려 이상했다.
완벽한 준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은 늘 조금씩 삐뚤다.
그 삐뚤이 사라진 사회가, 과연 인간적인가.
나는 그 질문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제8장
사회봉사는 새벽에 시작됐다.
도로 옆 녹지대의 쓰레기를 주웠다. 솔직히 말하면, 쓰레기는 예전보다 줄어 있었다. 줄어 있는 쓰레기를 주운다는 게 이상했다. 마치 “성공한 정책”의 잔여물을 치우는 느낌이었다.
옆에서 같은 조끼를 입은 사람이 낮게 말했다.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안 했잖아.”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 말 뒤에는 늘 같은 질문이 붙는다.
‘이게 맞아?’
맞다는 말은 너무 쉽다.
틀렸다는 말도 너무 쉽다.
어려운 건 그 중간의 감정이다.
며칠 뒤,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처음에는 문자였다. 다음에는 전화였다. 엄마는 숨이 가쁜 목소리로 말했다.
“잡혔대.”
“뭐가?”
“그때 그 차. 나 치고 간 차. 잡혔대.”
나는 말을 잃었다.
엄마는 울었는데, 분노로 우는 게 아니었다. 안도로 우는 울음이었다.
그 울음이 내 가슴을 찔렀다.
내가 벌금 고지서를 받을 때 느꼈던 불쾌함이, 잠깐 방향을 바꿨다.
불쾌함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다만 그 불쾌함이 ‘누구의 권리’를 위한 불쾌함인지 생각하게 됐다.
동기화된 시대의 특징은, 나쁜 일도 빨리 끝나지만 좋은 일도 빨리 끝난다는 거다.
엄마의 사건이 십 년 동안 끝나지 않았던 건, 악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공백이 넓어서였다.
공백이 줄어들자, 십 년이 하루로 접혔다.
그게 좋은 일인지, 나는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엄마의 울음은 확신처럼 들렸다.
제9장
그리고 다시, 나는 지정 흡연구역에 섰다.
표지판 아래에는 작은 문구가 있었다.
“여기서는 가능합니다.”
가능.
그 단어가 이상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가능과 불가능 사이에 늘 사람의 피곤함이 끼어 있었다.
그 피곤함은 어떤 날엔 관용이었고, 어떤 날엔 방치였고, 어떤 날엔 불공정이었다.
이제는 표지판이 경계를 정한다.
율이 감시해서가 아니라, 내가 지켜서 휴대폰은 울리지 않는다.
그 차이는 분명히 있다.
나는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위로 올라갔다. 하늘은 맑았다.
도로는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한 번쯤은 스쳐갔을 소리였다.
그 사실이 좋다고 말하면, 나는 너무 순진한 사람 같아 보일 것 같다.
그렇다고 나쁘다고 말하면, 나는 엄마의 울음을 부정하는 사람이 될 것 같다.
나는 담배를 껐다. 꽁초를 재떨이에 넣었다.
그리고 잠깐, 아주 잠깐 생각했다.
이 나라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든 걸까.
아니면 그냥 나를 더 조용한 사람으로 만든 걸까.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이 위로인지 경고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동기화된 보도 위를, 내 속도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