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별

2028 글로벌 지능 위기

by 왈로비
프롤로그

2028년 6월 30일 밤


서울 마곡의 20층 베란다에서 유서진은 동쪽 하늘을 천천히 건너는 빛 하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반듯했고,

비행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누군가 어둠 위에 가느다란 선을 하나 긋고, 아직 지우지 않은 것 같았다.


거실 TV는 음소거된 채 켜져 있었다.

화면 아래 자막만 느리게 흘렀다.


HELIOS BELT-1 VISIBLE OVER EAST ASIA

헬리오스 벨트-1, 동아시아 상공 첫 관측


서진은 그 이름을 속으로 한 번만 읽어보았다.


헬리오스.


서울은 평소처럼 빛나고 있었다.

강은 느리게 흐르고, 아파트 창마다 저녁이 다르게 켜져 있었다.

누군가는 설거지를 하고, 누군가는 아이의 이불을 고쳐 덮어주고, 누군가는 오늘 올라온 속보를 끝까지 읽지 못한 채 화면을 덮고 있을 시간이었다.


그 모든 집들 위로,

사람이 만든 빛이 별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서진은 눈을 떼지 못했다.


저 빛은 너무 멀어서 자기와는 상관없는 것이어야 했고,

너무 선명해서 끝내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아직 저 빛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다.

다만 저것이 오늘 밤 처음 서울 하늘에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만은 분명했다.


이미 더 낮은 자리,

각자의 생활 속으로 먼저 내려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빛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1장 가장 안전한 사람들

2026년 가을


서울은 이상할 만큼 낙관적이었다.


광화문 전광판에서는 인공지능이 웃고 있었고, 판교의 유리 건물 로비에서는 사람보다 챗봇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뉴스는 반도체, 데이터센터, 국가 AI 전략, 차세대 모빌리티, 휴머노이드 로봇 같은 말들을 쉬지 않고 흘려보냈다. 세상은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의 표정으로 미래를 맞고 있었다.


유서진은 여의도 한성미래은행 주택심사부에서 일했다.

사람의 미래를 숫자로 읽는 부서였다.


연봉.

근속.

업종.

신용점수.

담보가치.

부채비율.


숫자는 편리했다.

사정을 지우고, 안심만 남겼다.


남편 이현민은 판교의 플랫폼 회사 루프에서 일했다. 루프는 여행, 보험, 구독, 멤버십, 생활요금을 한 번에 비교하고 정리해주는 서비스였다. 현민은 늘 자신이 “귀찮음을 기술로 바꾸는 업종”에 있다고 농담하곤 했다.


“귀찮음이 얼마나 큰 시장인지 알아?”

그는 식탁에 앉아 웃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물건보다 귀찮음을 더 비싸게 사.”


그해 10월, 두 사람은 마곡의 새 아파트를 샀다.


대출 창구 맞은편에는 서진의 후배가 앉아 있었다.

후배는 서류를 몇 장 넘겨보다가 웃었다.


“선배는 뭐, 심사할 것도 없네요.”


현민이 장난처럼 물었다.


“저희 같은 사람은 은행이 좋아하는 타입이죠?”


후배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제일 좋아하죠. 가장 안전한 사람들이니까요.”


그 말에 셋 다 웃었다.


그때 지우는 아직 열 살이 되기 전이었다. 아이는 먼저 새 방으로 달려가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부산을 떨었다. 방마다 불을 켜보고, 벽지를 쓰다듬고, 제 방 창가에 서서 “여기서 비행기 보여?” 하고 외쳤다. 서진은 거실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약정서 마지막 장에 사인했다.


그날 저녁, 이삿짐 상자 사이에 둘러앉아 늦은 저녁을 먹고 있을 때 TV 화면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이든 크로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 하나였고, 동시에 가장 바쁜 토목 기사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가 세운 테라모션은 무인택시와 배터리를 만들고 있었고, 오비탈 파운드리는 발사체와 위성망, 우주 전력 설비를 밀어 올리고 있었으며, 매크로하드는 기업을 통째로 자동화하겠다는 인공지능 운영 체계를 내세우고 있었다.


앵커가 말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에이든 크로스의 새 비전을 ‘ABUNDANCE STACK(풍요 스택)’이라고 부릅니다. 이동, 노동, 컴퓨팅, 전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는 방식이라는 해석입니다.”


현민이 리모컨을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저 사람은 꼭 세상을 회사 조직도처럼 설명하더라.”


서진이 물었다.


“틀린 말이야?”


현민은 잠시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닌데… 너무 거대해.

너무 거대한 말은 처음엔 허풍처럼 들리잖아.”


“근데?”


“가끔은 허풍이 제일 먼저 도면이 되지.”


서진은 문득 오래된 이름 하나를 떠올렸다.


송태훈.


대학 시절 그는 늘 너무 먼 미래를 바로 곁의 일처럼 말하곤 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웃어넘겼지만, 서진은 이상하게도 끝까지 듣게 되는 편이었다. 그의 말이 늘 맞아서가 아니라, 그 말 안에는 세상이 바뀌기 직전의 공기가 먼저 스며 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와는 늘 한 문장쯤 늦게 헤어졌다. 돌아선 뒤에도 말의 온기가 한참 남았고, 오래 보지 않아도 다시 마주하면 지난 대화의 다음 줄로 곧장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름은 잠깐 떠올랐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서진은 더 말을 잇지 않았다.


은행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말보다 표를 더 믿게 된다. 표는 언제나 구체적이고, 구체적인 것은 안전해 보였다.


먼 데를 먼저 보는 사람들의 말은 오래 남았지만, 막상 손이 가는 쪽은 늘 눈앞의 숫자였다.


그 무렵의 서진은 아직 몰랐다.


미래는 늘

먼저 도면으로 오고,

그다음에는 기사로 오고,

마지막에는 대출 상환표를 바꿔놓는 방식으로 온다는 것을.




2장 귀찮음의 종말

2026년 겨울


새 아파트에 들어온 뒤, 편리함이 뉴스보다 빨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우의 태블릿은 숙제를 정리해주기 시작했고, 서진의 휴대폰은 보험 갱신 시기를 먼저 알려줬다. 현민의 생활은 더 빠르게 변했다. 루프 같은 앱을 따로 열 필요가 점점 없어졌다. 개인 비서는 백그라운드에서 알아서 가격을 비교했고, 자동해지와 자동협상, 자동주문을 밤새 처리했다.


아침이면 요약만 남았다.


이번 달 절감액 148,300원

자동 취소 3건

보험 재견적 완료

최저 수수료 경로 결제 전환


지우는 그걸 보고 감탄했다.


“돈 아껴주는 건 좋은 거잖아.”


현민은 한참 대답하지 못하다가 말했다.


“좋지. 문제는 누구 돈이 줄어드는 방식으로 아껴졌는지가 잘 안 보인다는 거지.”


이듬해 3월, 현민은 샌프란시스코로 출장을 갔다. 루프의 마지막 희망 같은 일정이었다.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을 만나 회사를 살릴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 비행기 안에서 그는 발표자료를 다섯 번 고쳤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내렸을 때만 해도 아직 자신이 늦지 않았다고 믿고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그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차에 핸들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핸들이 없는데도 차가 너무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타이밍, 신호 앞에서 멈추는 방식, 차선에 스며드는 각도까지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인간 운전자가 가진 미세한 망설임이나 짜증이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 업무지구에 들어가자 다른 풍경이 보였다. 유리 건물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피켓에는 영어와 한글이 함께 적혀 있었다.


WE ARE NOT LATENCY (우리는 시스템의 지연 시간이 아니다)

A JOB IS NOT FRICTION (일자리는 제거해야 할 마찰이 아니다)

YOU CAN’T OPTIMIZE A CITY LIKE A CHECKOUT PAGE (도시는 결제창처럼 최적화할 수 없다)


셔틀버스는 그들 곁을 지나갔다.

멈추지 않았다.


회의실 안에서는 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투자자는 루프의 발표를 중간에 끊고 다른 화면을 띄웠다.


MACROHARD (매크로하드)


마이크로소프트를 비틀어 만든 농담 같은 이름.

사람 없이도 회사를 끝까지 굴려보겠다는 발상에서 태어난 이름이었다.


데모 화면 속에는 가상의 사무실이 있었다. 그 안에서는 인공지능들이 이미 사람 흉내를 꽤 그럴듯하게 내고 있었다. 어떤 것은 기획자처럼 요구사항을 정리했고, 어떤 것은 디자이너처럼 화면을 뽑았고, 어떤 것은 개발자처럼 코드를 짰다. 다른 것은 품질 점검 담당자처럼 오류를 잡았고, 또 다른 것은 영업사원처럼 가격표를 만들었다. 가상회의가 열렸고, 가상결재가 올라갔고, 새벽 사이 제품 하나의 초안이 완성됐다.


투자자가 말했다.


“앞으로는 누가 더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느냐보다, 누가 인공지능을 더 값싸고 안정적으로 돌리느냐가 중요해질 겁니다.”


현민이 물었다.


“그럼 사람은요?”


투자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초기에는 필요하겠죠. 인공지능이 아직 놓치는 경우들이 있으니까요.”


그날 저녁, 샌프란시스코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현민은 호텔 창문에 기대어 오래 서 있었다.

멀리서 경찰차 불빛이 번졌고, 시위대의 구호는 바람에 찢겨 들려왔다.


서울로 돌아온 뒤, 그는 식탁에서 말했다.


“우리 회사는 끝났어.”


서진은 물컵을 내려놓았다.


“아직 구조조정 발표도 안 났잖아.”


“발표만 안 난 거지.”


“왜 그렇게 확신해?”


현민은 웃지 못한 채 대답했다.


“우리가 팔던 건 서비스가 아니었어. 귀찮음이었어.”


지우가 고개를 들었다.


“귀찮음이 왜 돈이 돼?”


“사람은 비교를 오래 하면 지치거든.”


“그럼 기계가 대신 해주면 좋은 거네.”


현민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래서 무서운 거야.”


서진은 그 말이 이해되면서도, 끝까지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은행에서 먼저 이상한 일이 생겼다.


연체는 아직 크게 늘지 않았는데,

상담이 늘었다.


그것도 마곡, 판교, 분당, 송파 같은 동네에서.


“이상하지 않아요?” 서진이 상무에게 말했다.

“보통은 다른 구간에서 먼저 반응이 오는데요.”


상무는 모니터도 보지 않은 채 대답했다.


“고소득자들은 불안에 민감하니까 그래.”


그 말은 반쯤 맞고 반쯤 틀렸다.


불안에 민감한 게 아니라,

미래가 먼저 흔들리고 있다는 걸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쪽이었는지도 몰랐다.


그 무렵 처음 나온 내부 파일 제목을 서진은 오래 기억했다.


Income Persistence Model (소득지속성 모형)


현재 소득이 아니라,

앞으로 그 소득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가.


서진은 그 제목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문제가 사람에게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판단 체계의 상상력에 먼저 생겼다는 것을.




3장 밤을 먹는 도시

송태훈은 테네시의 거대한 연산 기지를 처음 봤을 때, 오래전 한 목소리를 먼저 떠올렸다.


그래서 결국 이건 어디까지 내려오는데.


유서진은 늘 마지막에 그런 식으로 물었다. 그 질문을 떠올리고 나서야, 그는 눈앞의 것이 건물 몇 동이 아니라 밤의 결 자체를 바꿔놓는 설비라는 걸 실감했다.


밤에도 바람이 있었다.

팬 때문이었다.


멀리서 보면 안개처럼 보이는 건 수증기였고, 가까이 가면 도시 하나가 내뿜는 숨 같았다.


서버홀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공기조차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바람은 냉각을 위해 움직였고, 빛은 센서를 위해 켜졌고, 전력은 매초 작은 도시 하나가 쓰는 양만큼 흘렀다. 바깥에는 배터리 팩들이 군대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아시아에서 실려온 메모리 모듈이 팔레트째 쌓였고, 드나드는 트럭의 헤드라이트 때문에 새벽과 밤의 구분이 지워졌다.


태훈은 한동안 그 규모에 취해 있었다.


기술자는 규모 앞에서 쉽게 감동한다.

크다는 것은 곧 가능성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텍사스 남부 발사기지로 옮겨졌다. 이름은 인사발령이었지만, 사실은 더 큰 계획의 안쪽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설명회는 바닷바람이 센 임시 격납고에서 열렸다.

거대한 화면 앞에 선 에이든 크로스는 특유의 담담한 얼굴로, 인간이 앞으로 삼십 년 동안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게 될지를 너무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가 보여준 슬라이드는 세계를 층처럼 나누고 있었다.


땅 위에는 테라모션의 무인택시와 휴머노이드 로봇.

이동과 물리노동의 비용을 거의 0으로 만드는 층.


기업 안에는 매크로하드.

사람 대신 여러 인공지능 에이전트가 기획하고 만들고 운영하는 지식노동의 층.


그 밑에는 배터리 공장,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지상에서 컴퓨팅과 에너지를 받쳐주는 층.


하늘에는 위성망과 궤도형 태양광 컴퓨팅 고리.

지상의 전력 한계를 넘기 위한 층.


마지막 슬라이드는 달과 화성이었다.

자급형 기지.

스스로 커지는 도시.

지구 밖에서도 복제 가능한 산업 단지.


태훈은 그 순간, 저 그림의 아름다움을 이해했다.

이 그림은 지나치게 커서 오히려 단순했다.

풍부한 전력, 풍부한 지능, 풍부한 이동성.

인간의 문명이 결국 부족의 문제였다면, 이건 부족을 없애겠다는 설계도였다.


그 세계의 속도는 이미 설명보다 빨랐다.


오스틴 외곽도로를 달리면 그 속도가 눈에 보였다.


한쪽 차선에는 무인택시가 매끈하게 흘렀다.

다른 쪽 서비스도로에는 캠핑카와 주거용 트레일러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해고된 개발자들과 자영업자, 밀려난 계약직들이 한동안 머무는 자리였다.


자율주행 차가 사고를 줄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위험한 작업을 대신한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위성망이 외딴 지역을 연결하고, 궤도형 컴퓨팅이 지상의 전력 부담을 줄인다는 설명도 기술적으로는 맞았다.


문제는 그 모든 사실이,

사람이 다음 달 월세를 낼 수 있다는 사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점이었다.


태훈은 그때까지도 이 모든 변화가 “미국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서울이 연결되는 방식은 반도체와 배터리, 정밀 부품을 파는 쪽일 거라고, 그래서 적어도 겉으로는 이기는 나라의 얼굴을 갖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조금 흔들린 것은, 그해 여름 그가 서울에 잠깐 들어왔을 때였다.


오비탈 파운드리 공급망 점검 회의가 평택과 마곡에서 연달아 잡혔다. 태훈은 몇 년 만에 서울의 지하철을 탔다. 마곡의 새 아파트 단지들은 반짝였고, 용인의 서버팜 근처 도로에는 대형 전력장비를 실은 트럭이 밤늦게까지 오갔다. 평택의 부품 공장 식당에는 “헬리오스 프로젝트 납기 준수”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사내 게시판에는 초과근무 자원자 모집 공지가 붙어 있었다.


한국은 분명 이기는 나라처럼 보였다.


그러나 저녁에 서진과 현민을 만나 마곡의 식당에 앉자, 다른 표정이 보였다.


현민은 그때 이미 얼굴이 좀 수척해져 있었다. 루프의 구조조정이 한 번 지나간 뒤였다. 회사는 아직 버티고 있었지만, 살아남은 사람의 표정은 대개 이긴 사람의 표정이 아니었다.


“헬리오스 얘기 뉴스에서 봤어.” 현민이 말했다.

“그거 진짜 되는 거야?”


“되는 쪽으로 가고 있어.” 태훈이 대답했다.

“원래 안 되는 건 돈이 부족해서 안 되는 거지, 물리 법칙 때문은 아니잖아.”


현민은 웃었지만, 웃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요즘은 그 말이 제일 무섭더라.”


“뭐가?”


“돈이 있으면 안 되는 게 별로 없다는 말.”


식당 밖에는 여름비가 내리고 있었다.

지우는 옆자리에서 새우튀김을 먹느라 바빴고, 서진은 메뉴판 뒷면에 아이가 낙서한 별 모양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태훈은 그때는 몰랐다.

그날 밤 이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세 사람의 삶이, 1년 뒤 같은 거래 안에 묶일 것이라는 걸.




4장 유령 GDP

2027년 겨울


뉴스는 두 개의 세계를 동시에 중계했다.


한쪽 화면에서는 반도체가 사상 최고 수출을 기록했다. 한국 기업들은 대형 인공지능 서버, 전력 설비, 배터리 저장장치, 로봇 구동 부품 수주로 들떠 있었다.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그걸 “대한민국의 두 번째 반도체 모먼트”라고 불렀다.


다른 한쪽 화면에서는 사무직 해고가 일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서류로 먹고살던 사람들이 몸으로 버티는 쪽으로 밀려났다.


루프는 결국 무너졌다.


회사는 이름을 바꾸고, 서비스를 접고, 기업용 인공지능 도구 회사로 방향을 틀겠다고 발표했다. 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인공지능을 설계하는 사람, 그리고 인공지능이 놓친 구멍을 손으로 막아주는 사람 정도. 현민은 그 둘 중 어디에도 끝내 들어가지 못했다.


퇴직 메일은 짧았다.

퇴직금 표는 정확했다.

미래는 그 어느 때보다 부정확해졌다.


처음 몇 달은 재취업 준비였다.

이력서를 고치고, 면접을 보고, 예전 동료들과 술을 마셨다.

사람들은 비슷한 문장을 반복했다.


“이 경력이면 금방 새 자리를 찾을 줄 알았는데요.”


“연봉은 절반까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관리보다 실행 위주라도 괜찮습니다.”


“인공지능 도구는 물론 씁니다. 안 쓰면 일도 안 되는 거 압니다.”


그 문장들을 오래 듣고 있으면, 인간이 자기 값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 알 수 있었다.


결국 현민은 이상한 일을 시작했다.


미국 회사의 하청이었다.

이름은 매크로하드 코리아 운영검수팀.


업무는 더 이상했다.

가상 사무실 열두 곳을 돌며 인공지능들이 사람 흉내를 얼마나 그럴듯하게 내는지 검사하는 일. 회의가 자연스러운지, 보고서 말투가 상무답고 팀장답고 막내답게 갈리는지, 일정 미루는 핑계가 인간적으로 비겁한지, 기획안이 정말 사람이 밤새 만들다 지쳐서 낸 초안처럼 보이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현민은 첫날 새벽 근무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을 한 문장으로 설명해줄까?”


서진은 잠든 눈으로 그를 보았다.


“사람이 없는데 사람이 있는 척하는 회사를 점검하는 일이야.”


서진은 웃지 못했다.


“돈은 돼?”


“전보다 훨씬 적어.”


“그럼 왜 해?”


현민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안 하면 더 빨리 사라질 것 같아서.”


그 말은 서진에게 오래 남았다.


그 무렵 서진도 주택심사부에서 빠져나왔다. 자동 심사 체계가 더 촘촘해졌다는 명목 아래, 대출 1차 판독은 거의 전부 인공지능이 맡게 되었다. 사람은 인공지능이 확신하지 못하는 경우만 처리했다. 그녀는 상환지원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름은 부드러웠지만, 하는 일은 부드럽지 않았다. 아직 연체는 아니지만 곧 연체가 될 사람들, 아직 무너지진 않았지만 곧 무너질 삶을 먼저 만나보는 자리였다.


상담실에는 이상할 만큼 점잖은 사람들이 많았다.


전직 플랫폼 기획자.

전직 변리사.

전직 전략 컨설턴트.

전직 브랜드 매니저.

전직 투자심사역.


한 남자는 한때 연봉이 1억 8천이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밤에 대리 운전을 했다.

한 여자는 회사가 사라진 뒤 노인 돌봄 연결 서비스에서 일한다고 했다. 예전보다 절반도 못 벌지만, 그래도 아직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하는 일이라 조금은 덜 무섭다고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억울하다기보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

세상이 자기를 속였다는 표정보다,

자기가 세상을 잘못 이해했다는 표정.


뉴스는 반도체의 호황을 떠들었고,

상담실에서는 사람들의 월급이 얼마나 빠르게 얇아지고 있는지 하루 종일 확인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지우가 물었다.


“엄마, 뉴스는 맨날 잘된다고 하는데 왜 아빠는 집에만 있어?”


서진은 잠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대답 대신 현민이 먼저 웃었다.


“한국은 잘되고, 아빠만 안 되는 걸 수도 있지.”


“그게 말이 돼?”


지우가 진지하게 묻자, 현민은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응. 나라 전체가 돈을 많이 벌어도, 그게 우리 집까지 오는 건 또 다른 일이거든.”


지우는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서진도 사실은 그랬다.


그 무렵 사람들은 새로운 말을 만들기 시작했다.


Ghost GDP (유령 GDP)


숫자에는 잡히지만,

생활에는 잘 도착하지 않는 성장.


서진은 그 말을 뉴스에서 듣고 오래 멍해졌다.

정확한 말은 대개 길지 않다.

정확한 말은 대개, 바로 아프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동네의 표정도 바뀌었다.


아파트 상가 2층의 필라테스가 문을 닫았다.

키즈카페가 반으로 줄었다.

분식집은 점심엔 붐볐지만 저녁엔 텅 비었다.

주말마다 예약이 빽빽하던 와인바는 할인 문구를 창문에 붙였다.


반면 뉴스에는 다른 종류의 불빛이 쏟아졌다.


용인 초대형 데이터센터 착공.

평택 배터리 클러스터 증설.

울산 로봇 부품 공장 증설.

한국, 차세대 컴퓨팅 인프라 핵심 공급국 부상.


나라 전체가 거대한 엔진룸으로 옮겨간 듯했지만,

사람들은 자기 집 거실에서 더 오래 침묵하고 있었다.




5장 풍요의 가격표

2028년 봄


세상은 두 가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한 속도는 인간의 것이었다.

재취업을 알아보고, 만기 연장을 부탁하고, 아이 학원 시간을 맞추고, 부모의 병원 진료에 동행하고, 이사 날짜를 계산하고, 저녁밥을 차리며 다음 달을 버텨내는 속도.


다른 속도는 기계의 것이었다.

가격을 비교하고, 문서를 요약하고, 코드를 짜고, 계약서를 검토하고, 재무표를 돌리고, 광고를 집행하고, 고객 응대를 대신하고, 보험과 세금을 자동 처리하는 속도.


인간의 속도는 여전히 하루 스물네 시간이었고,

기계의 속도는 이미 시간을 벗어나 있었다.


헬리오스 벨트-1 발사는 그 두 속도 차이를 한 번 더 벌리는 사건이었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그것은 단지 위성 몇 기를 띄우는 일이 아니었다. 궤도 위에서 태양광 전력을 받아 장시간 연산을 돌리고, 그 연산을 지상 데이터센터와 다시 묶어 기업 고객에게 넘기는 구조. 사람들은 그것을 “하늘에 뜬 서버실”이라고도 불렀고, “밤이 없는 사무실”이라고도 불렀다.


정식 서비스 명칭은 더 건조했다.


Always-On Intelligence (상시 지능)


계약을 맺은 기업은 사람처럼 쉬지 않는 에이전트 팀을 사들일 수 있었다. 한 팀은 기획자 열 명처럼 일하고, 또 다른 팀은 회계 부서처럼 일하고, 또 다른 팀은 법무팀처럼 일한다는 광고 문구가 매일같이 쏟아졌다.


대기업들은 그 가격표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


현민은 그걸 누구보다 먼저 알았다.


그가 검수하던 한국 기업용 화면에는 본격 서비스 전환 일정이 이미 빼곡하게 떠 있었다.


Wave 1 - 제조·물류

Wave 2 - 플랫폼·광고·상거래

Wave 3 - 금융·보험·법률·컨설팅


그리고 화면 하단, 아주 작게 이런 문구가 있었다.


WORKFORCE REPLACEMENT READINESS / KOREAN FINANCIAL SECTOR

인력 대체 준비도 / 한국 금융권


현민은 그 문장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이건 단순한 소프트웨어 출시가 아니었다.

기업들이 사람을 줄여도 괜찮다고 믿게 만드는 가격이었다.

인간의 월급과 비교될 수 있는 가격, 그래서 결국 사람의 노동 가치를 다시 계산하게 만드는 가격.


그는 서진에게 말을 꺼내려다 몇 번이나 접었다.

괜히 불안만 옮길까 봐.


하지만 은행도 이미 알고 있었다.


서진이 옮겨온 상환지원실에는 새로운 기준이 들어왔다.


소득지속성 모형에 업종 전망이 들어갔다.

업종 전망에 AI 전환 민감도가 들어갔다.

AI 전환 민감도에 기업별 도입 일정이 들어갔다.


서진은 처음 그 표를 보고 한참 동안 말을 잃었다.


그 표는 현재를 보는 표가 아니었다.

앞으로 누가 먼저 덜 벌게 될지를 고르는 표였다.


그날 밤, 송태훈에게서 전화가 왔다.


배경에는 금속음과 바람소리가 엉켜 있었다.


“서진, 헬리오스 공개 계약서 봤어?”


서진은 이어폰을 꽂은 채 창가에 섰다.


“못 봤어.”


“보면 알 거야. 발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발사랑 동시에 열리는 가격표가 문제야.”


“무슨 뜻인데?”


태훈은 잠시 숨을 골랐다.


“기업들이 망설이던 마지막 이유가 가격이었거든.

사람을 줄이고 AI를 넣는 게 기술적으로는 되는데, 아직 완전히 싸지 않았던 거지.

헬리오스 이후에는 그 선이 넘어가.”


“그래서?”


“그래서 원래는 내년, 내후년으로 밀릴 구조조정이 올해 안에 당겨질 거야.

서울도 예외 아니고.”


“그걸 왜 나한테 말해?”


태훈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왜냐하면 네 은행이 그 일정표를 이미 보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서진은 창밖을 보았다.

마곡의 아파트 불빛이 가지런했다.

가지런한 것은 늘 안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방향으로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6장 같은 거래 안에 묶인 것들

결정적인 파일은 우연처럼 왔다.


태훈은 헬리오스-1 최종 재무 시뮬레이션을 검토하다가, 부록 맨 아래에 붙은 문서를 보게 됐다.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HELIOS SUPPLIER FINANCE (헬리오스 공급망 금융)

PRIME RESIDENTIAL SUPPORT BASKET (고신용 주택담보대출 보강 바스켓)

COLLATERAL STEP-UP AT LAUNCH (발사 시점 추가담보 발동)


태훈은 한동안 마우스를 움직이지 못했다.


문서는 차갑고 간단했다.


헬리오스-1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필요한 메모리 모듈, 배터리 저장장치, 전력변환 장치, 로봇 관절용 정밀 감속기, 고밀도 냉각부품의 상당량이 한국 기업에서 들어온다.

오비탈 파운드리는 그 공급망에 달러를 앞당겨 넣기 위해 대규모 공급망 금융을 일으켰고, 뉴욕의 투자은행들은 그 채권을 더 싸게 팔기 위해 “추가 보강 담보”를 얹었다.


그 담보가 서울의 고신용층 주택담보대출 묶음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지난 십오 년 동안 한국의 고신용 사무직 주담대는 거의 무너지지 않았고,

소득 데이터가 정교했으며,

통계가 아름다울 만큼 안정적이었다.


말하자면 ‘예쁘게 포장하기 좋은 안전 자산’이었다.


문제는 2028년이 과거와 다르다는 데 있었다.


AI가 먼저 흔든 것은 저신용층이 아니라,

바로 그 고신용 사무직의 소득이었으니까.


태훈은 곧장 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진.”


“말해.”


“너희는 사람 월급을 믿고 돈을 빌려주잖아.”


“응.”


“근데 여긴 사람을 덜 쓰게 하는 인프라를 만들고 있어.”


서진이 조용해졌다.


태훈이 말을 이었다.


“헬리오스를 올리려면 한국 공급망에 달러가 먼저 들어가야 해.

뉴욕의 투자은행들은 그 자금을 더 싸게 조달하려고 구조를 짰고, 서울의 은행과 증권사들은 그 구조를 받아들였어.

문제는 그때 제일 안전한 담보로 얹어둔 게 서울의 고신용 주택담보대출이었다는 거야.”


“왜 하필 그거였는데?”


“역사적으로 안 무너졌으니까.

연체율 낮고, 소득 안정적이고, 통계로 봐도 안전하고.

근데 지금은 그 전제가 깨졌지.”


“그래서?”


“헬리오스 발사와 동시에 기업들이 전환 일정을 앞당기면,

같은 시간에 은행도 담보 가치를 다시 계산해야 해.

쉽게 말하면, 하늘에 올리는 공장의 가격이 바뀌는 순간

서울 사람들 집값을 바라보는 기준도 함께 바뀐다는 뜻이야.”


“그걸 왜 나한테 말해?”


태훈은 잠시 말이 없었다.

전화기 너머로 바람이 한 번 스쳤다.


“네가 이런 말을 그냥 흘리지 않을 테니까.”


잠깐의 정적이 지나갔다.


“그리고 아직, 네 손이 닿는 데가 있잖아.”


서진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훈이 낮게 말했다.


“이번엔 비유가 아니야.

진짜 같은 거래 안에 묶여 있어.”


전화를 끊고 나서도 서진은 한참 창가에 서 있었다.


멀리서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불빛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하늘은 늘 멀어 보이는데, 가끔은 너무 가까워서 무서울 때가 있다.

사람은 집 안에 앉아 있는데도, 누군가가 올려보낸 구조물 때문에 담보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면, 그건 이미 하늘이 아니라 생활이었으니까.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서진은 내부 시스템을 뒤졌다.

헬리오스 관련 구조화 상품은 접근 권한이 막혀 있었다. 대신 다른 쪽에서 흔적이 잡혔다.


국외 공급망 금융 관련 자본관리 시나리오

소득지속성 모형과의 연동 가능성 검토

08:30 일괄 재산정 업데이트 테스트


서진은 화면을 바라본 채 한참 움직이지 못했다.


은행은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도 이 업데이트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 이유도 그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서울의 고신용 주택담보대출이 예전처럼 안전하지 않다고 드러나면,

은행은 자본을 다시 쌓아야 한다.

자본을 다시 쌓으려면 먼저 대출을 죄고, 만기연장을 깎고, 신용한도를 낮추고, 위험을 고객 쪽으로 미뤄야 한다.


즉, 위험을 알아차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위험을 남에게 먼저 옮기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서진은 현민에게 처음으로 모든 걸 털어놓았다.


현민은 소파 끝에 앉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지우는 방문을 닫고 방 안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현민이 천천히 말했다.

“미국에서 하늘에 띄우는 AI 공장을 위해

한국 공장들에 돈을 먼저 넣었고,

그 돈을 싸게 돌리려고

우리 같은 사람들의 집을 안전판으로 깔아놨다는 거네.”


“응.”


“근데 헬리오스가 떠버리면

기업들이 사람을 줄이는 비용표가 바뀌고,

그럼 우리 같은 사람들 월급이 먼저 흔들리니까

깔아둔 안전판 자체가 동시에 약해지는 거고.”


“응.”


현민은 짧게 웃었다.

웃음이라기보다 어이가 없을 때 나오는 숨에 가까웠다.


“대단하다.”


“뭐가?”


“세상이.”


그는 잠시 천장을 보았다.


“옛날엔 미래를 담보로 돈을 빌렸잖아.”


“지금도 그렇지.”


“아니. 이제는 어떤 미래는 누군가의 담보고,

다른 누군가에겐 원재료네.”


서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현민이 다시 말했다.


“근데 더 무서운 건, 이 구조가 이상할 만큼 논리적이라는 거야.

악당이 만든 것처럼 보이지도 않아.

그냥 다들 자기 자리에서 제일 효율적인 선택을 한 결과 같아.”


서진은 그 말이 싫었다.

싫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가장 무서운 재난은

누군가의 악의보다

모두의 합리성에서 나올 때가 많았다.




7장 120초


2028년 6월 30일 아침, 서울.


텍사스는 아직 6월 29일 저녁이었다.


두 도시는 서로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었지만,

그 거리는 더 이상 시차로 설명되지 않았다.


29일 18:14, 텍사스 남부 발사기지


카운트다운 시계가 거꾸로 줄고 있었다.


바람은 세고, 조명은 낮보다 밝았다.

송태훈은 외곽 펜스 너머에 서 있었다.

출입 배지는 이미 정지된 상태였다.


며칠 전 그는 내부 자료를 복사하다 걸렸다. 해고 통보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현장 접근권은 잘린 뒤였다. 사람을 해고하는 속도도 이제는 인간적이지 않았다. 메일보다 먼저 문이 닫혔다.


멀리 발사체 옆에서는 기술자들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고, 더 멀리 관람 구역에서는 투자자와 기자들이 두꺼운 유리 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태훈은 문득 생각했다.


세상은 늘 같은 방식으로 갈라진다.

유리 안쪽과 바깥쪽,

버튼을 누르는 사람과 결과를 견디는 사람으로.


30일 07:58, 마곡


이현민은 밤샘 검수를 막 끝낸 상태였다.


모니터 속 가상 회의실에서 인공지능들은 밤새 서로 보고서를 쓰고, 승인하고, 출시 일정을 조정했다. 그의 마지막 업무는 그 모든 인간 흉내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점수로 매기는 일이었다.


새벽 세 시쯤부터, 한국 기업 고객들의 도입 일정이 갑자기 앞당겨지기 시작했다.

제조 계열사 둘, 카드사 하나, 보험사 하나, 중견 로펌 셋, 회계법인 둘, 유통사 넷.


현민은 처음엔 단순한 테스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다섯 시를 넘기자 그것이 실제 전환 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화면 한쪽에 뜬 보고서 제목이 눈에 박혔다.


Headcount Optimization Trigger (인력 최적화 발동 조건)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Upon HELIOS BELT activation, enterprise customers may bring forward labor transition plans by 6–18 months.

(헬리오스 벨트 가동 시 기업 고객은 인력 전환 계획을 6개월에서 18개월 앞당길 수 있음.)


현민은 그 문장을 본 순간 손끝이 식었다.

이건 2029년의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오늘의 문제였다.


그는 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진.”


“응.”


“오늘 그 버튼 누르면 안 돼.”


“무슨 버튼?”


“은행에서 돌리는 업데이트. 나 지금 확실한 자료 봤어.

기업들 전환 일정이 다 오늘 기준으로 바뀌고 있어.”


“현민, 잠깐만. 내가 지금 출근 중이야.”


“서진, 잘 들어.

지금 은행이 보고 있는 건 지난 분기 소득이 아니야.

오늘부터 다음 분기, 그다음 분기까지 누가 먼저 잘릴지를 보고 있을 거야.”


서진은 택시 안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현민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이듯 낮았지만, 그 안에 드물게 공포가 있었다.


“이게 단순 구조조정이면 버틸 수 있어.

근데 지금은 가격이 바뀌는 거야.

사람을 남겨두는 비용과, 사람을 걷어내는 비용표가 오늘 아침 바뀌고 있다고.”


30일 08:12, 여의도


서진은 본점 31층 회의실로 올라갔다.


유리벽 너머 한강은 지나치게 평온해 보였다.

회의실 안 공기는 그렇지 않았다.


스크린에는 오늘 실행 예정인 업데이트명이 떠 있었다.


PRIME RETAIL RISK RESET (고신용 개인여신 위험 재설정)

INCOME PERSISTENCE MODEL (소득지속성 모형)

FINAL AUTHORIZATION (최종 승인)


대상은 18만 4천 건.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의, 원래는 가장 안전하다고 분류되던 대출과 신용한도, 만기연장 심사였다.


임원 한 명이 낮고 빠르게 말했다.


“오늘 안에 정리해야 합니다. 시장이 먼저 알기 전에.”


다른 임원이 덧붙였다.


“아침 공시 전에 방향 맞춰놔야 해요.”


서진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방향입니까.”


“선제 조정.”


“무슨 기준으로요.”


부행장이 말했다.


“유 팀장, 지금은 숫자만 보시죠.”


“숫자가 뭘 보고 만든 숫자인지 묻는 겁니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회의실 앞 스크린에 산업별 그래프가 떴다.

금융. 보험. 광고. 유통. 법률. 컨설팅. IT 서비스.

그래프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꺾이고 있었다.


서진은 그 꺾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AI 전환 민감도.

사람의 미래를 업종별로 먼저 할인하는 방식.


“지금 이 모형,” 서진이 말했다.

“기업들의 내부 전환 일정까지 반영했습니까?”


부행장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필요한 범위 안에서.”


“그 자료 어디서 받았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합니다.”


서진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차분했다.


“은행이 아직 발표되지도 않은 인력 전환 일정을 보고 차주를 먼저 재평가한다면, 이건 리스크 관리가 아니라 미래를 앞당겨 부실로 만드는 일입니다.”


누군가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짜증을 냈다.


부행장이 말했다.


“유 팀장, 지금은 주택대출 문제만 보시죠.”


“이미 그 수준의 문제가 아닙니다.”


회의실 공기가 바뀌었다.


그 순간 서진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송태훈이었다.


짧은 파일 하나와 문장 한 줄.


서진. 이것까지 보면 알 거야.


첨부 제목은 더 노골적이었다.


HUMAN INCOME CORRELATION (인간 소득 상관도)

KOREA WHITE-COLLAR EXPOSURE (한국 화이트칼라 노출도)

INTERNAL (내부자료)


첫 페이지 상단에는 두 줄이 박혀 있었다.


When compute becomes abundant, human salary stops being the anchor.

컴퓨팅이 풍부해지는 순간, 인간의 월급은 더 이상 기준점이 아니다.


Transition happens first in budgets, then in jobs, then in households.

전환은 먼저 예산표에서 일어나고, 그다음 일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가계에서 일어난다.


서진은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지나치게 단순해졌다고 느꼈다.


그동안 은행은 사람의 현재를 보고 있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이미 은행은 기업의 미래 예산표를 보고, 사람의 미래를 할인하고 있었다.


즉, 아직 해고 메일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미 은행은 덜 빌려주고, 더 빨리 갚게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공포를 예측하는 방식이었고,

동시에 공포를 더 빨리 현실로 만드는 방식이었다.


29일 18:24, 텍사스 남부 발사기지


카운트다운이 10분 아래로 내려갔다.


태훈은 펜스에 손을 얹은 채 헬리오스 벨트-1의 몸체를 올려다보았다.

새벽 불빛 아래 로켓 표면은 차갑고도 아름다웠다.


그는 자신이 이 광경을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이 하늘로 무엇인가를 올릴 때는 늘 조금 숭고해 보인다.

문제는 숭고함이 항상 무고한 것은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서진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서진.

이건 누군가의 악의가 아니야.

그냥 너무 빨라.

그래서 더 위험해.”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그는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30일 08:28, 여의도


부행장이 말했다.


“유 팀장, 승인하세요.”


서진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오른쪽 아래에는 버튼이 두 개 떠 있었다.


APPROVE (승인)

DEFER 48H / MANUAL REVIEW (48시간 보류 / 수동 재검토)


자동화된 세상에서 인간에게 남은 권한이 고작 이 정도라니 싶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대는 생각보다 작은 버튼 위에서 갈린다.


“유 팀장.”


이번에는 목소리가 더 날카로웠다.


“지금 뭘 망설이십니까?”


서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지금 부실 차주를 막으려는 게 아니라,

부실한 상상력을 승인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비웃었다.


“철학 할 시간 없습니다.”


서진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숫자로 말하죠.”


그녀는 태훈이 보낸 파일과 은행 내부 자료를 한 화면에 띄웠다.


“우리는 사람의 현재 소득으로 돈을 빌려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모형은 사람들이 아직 받지도 않은 해고 메일을 미리 반영해서, 만기연장과 신용한도를 줄이려 합니다.

이건 위험관리도 선제대응도 아닙니다.

이건 공포를 예측해서, 공포를 먼저 집행하는 겁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기업이 예산표를 바꾸면,

은행은 차주를 다시 분류하고,

차주가 신용한도를 잃으면 소비를 줄이고,

소비가 줄면 기업은 더 빨리 사람을 줄입니다.


이건 자연재해가 아닙니다.

우리가 만든 순서입니다.”


부행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자료 지금 당장 내리세요.”


서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시스템 상단에 붉은 문구가 떴다.


AUTO-EXECUTION IN 120 SECONDS (자동 실행까지 120초)


회의실 안 누군가의 휴대폰이 잇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대기업 구조조정 속보.

컨설팅사 인력 전환 발표.

보험사 본사 조직 개편 공시.

무인 고객상담 전환.

법무 자동화 도입.

증권사 리서치 통합.


오늘로 예정된 것들.

아침 공시 전에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인 것들.


창밖 한강은 여전히 평온했고,

휴대폰 화면 속 세상은 이미 절벽을 내려가고 있었다.


서진은 손바닥이 젖는 것을 느끼며, 현민에게서 온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했다.


서진. 멈출 수 있으면 지금뿐이야.


29일 18:29, 텍사스 남부 발사기지 / 30일 08:29, 여의도


카운트다운이 10 아래로 내려갔다.


발사대 아래에서 흰 불꽃이 번지기 시작했다.


서진은 스크린을 바라봤다.


8시 29분 11초.


그리고

DEFER 48H / MANUAL REVIEW

(48시간 보류 / 수동 재검토)

를 눌렀다.


기계의 판단을 잠시 멈추고, 다시 사람에게 넘기는 버튼이었다.


짧은 전자음이 났다.

화면이 멈췄다.


회의실 안의 얼굴들이 동시에 굳었다.


서진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작성해 둔 메일을 발송했다. 금융감독원, 금융위원회, 몇몇 기자, 은행 감사실, 리스크관리위원회. 제목은 짧았다.


[긴급] AI 전환 일정 반영 개인여신 선제조정 관련 내부 검토자료 공유


보내기 버튼을 누르는 순간, TV 화면 속 로켓이 불을 뿜었다.


창밖의 아침이 흔들렸다.


누군가 욕을 했다.

누군가는 “미쳤습니까?”라고 소리쳤다.

부행장은 서진의 노트북을 닫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파일은 바깥으로 나갔다.


헬리오스 벨트-1은 올라가고 있었다.

서울의 고신용 개인여신 일괄 재산정은 멈췄다.


둘 다 영원히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로 48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뒤 태훈에게서 마지막 음성 메시지가 도착했다.


잡음이 심했다.

멀리서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진.”


잠시 숨을 고르는 소리.


“오늘 밤이면 서울 하늘에서도 보일 거야.”


그 말로 메시지는 끝났다.


8장 사람이 만든 별

서진은 그날 오후 바로 직무에서 배제됐다.


언론은 예상보다 빨리 움직였다.

‘헬리오스’와 ‘고신용 개인여신’, ‘소득지속성 모형’, ‘AI 전환 일정’, ‘은행의 선제조정’ 같은 단어가 실시간 검색어를 채웠다. 방송사들은 전문가를 불러 토론했고, 정치인들은 반응이 늦었다. 은행주는 흔들렸고, 테크주는 더 크게 흔들리다가 다시 버텼다.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그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주 금요일, 상환지원실에 나오던 전직 브랜드 매니저에게서 문자가 왔다.


팀장님, 기사 봤어요. 저 같은 사람들 얘기인 것 같아서요.

아직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왜 이렇게 갑자기 위험한 사람이 됐는지 누가 설명해준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서진은 그 메시지를 오래 들여다보았다.


세상은 종종 두 번 무너진다.

한 번은 실제로,

한 번은 설명되지 못한 채.


두 번째 무너짐은 더 오래간다.


현민은 그 뒤로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검수 일은 여전히 있었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인공지능이 검사할 수 있는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 없는 회사가 사람 있는 척하는지를 점검하는 일은, 머지않아 사람이 없어도 될 일이었다.


그는 어느 날 새벽, 주방에서 믹스커피를 타며 말했다.


“내가 지금 무슨 시대를 살고 있는지 알 것 같아.”


서진이 물었다.


“어떤 시대?”


“비싸던 게 싸지는 시대가 아니라,

가치를 매기던 기준이 바뀌는 시대.”


“그게 무슨 말이야.”


현민은 잠시 머그잔을 내려다봤다.


“예전엔 똑똑한 사람이 비쌌잖아.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자격증, 좋은 말솜씨, 좋은 판단.

근데 이제는 그 똑똑함이 너무 싸졌어.

그러니까 갑자기 비싸지던 것들이 다 애매해지는 거지.”


그는 창밖을 한 번 보고 나서 덧붙였다.


“문제는, 집값도 대출도 세금도 연금도 다 예전 기준으로 설계됐다는 거고.”


서진은 그 말에 대꾸하지 못했다.

은행은 늘 미래를 빌려주는 곳이었다.

그런데 미래를 계산하는 공식이 바뀌면,

은행은 결국 과거를 잘못 팔아온 셈이 된다.


며칠 뒤, 태훈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쫓겨났다.


메일 제목은 짧았다.

Security Violation (보안 위반)


그는 텍사스의 허름한 모텔방에서 그 메일을 읽고 웃었다.

우습다는 감정이 아니라, 사람이 너무 큰 구조를 상대로 뭔가를 했을 때 결국 받게 되는 편지 같아서였다.


밖으로 나오자 저녁 하늘에 헬리오스가 아주 작게 지나가고 있었다.

텍사스에서는 그 빛이 서울보다 더 또렷했다.

사람이 만든 별은 자연의 별보다 규칙적이었다.

규칙적이라는 것은 때때로 아름답고, 때때로 섬뜩했다.


태훈은 그 빛을 보며 생각했다.


자기가 그리는 미래를 믿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빨리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그 미래를 감당할 장부를 만드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갑자기 무너진다.

문제를 만든 것은 비전만도, 금융만도 아니었다.

둘의 속도가 달랐다는 사실 그 자체가 문제였다.


서울에서는 장맛비가 시작됐다.


아파트 단지 화단의 흙이 검게 젖었고, 아이들은 우산을 접은 채 뛰어다녔다. 지우는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과학 숙제를 꺼냈다. 주제는 ‘미래의 에너지’였다. 아이는 태양광, 핵융합, 전기차 충전, 우주 태양광 같은 말을 엉성한 글씨로 적어 내려갔다.


“엄마.”


“응.”


“사람이 만든 별도 에너지야?”


서진은 아이를 보았다.


“왜?”


“선생님이 미래에는 하늘도 발전소가 될 수 있대.”


서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좋은 거네?”


아이의 질문은 언제나 정직해서 곤란했다.

좋다고 말하면 많은 것이 빠져나가고,

나쁘다고 말하면 이미 도착한 세계를 부정하는 것 같았다.


서진은 연필을 쥔 아이 손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좋은데, 그걸 누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겠지.”


지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전기는 그냥 전기 아니야?”


“응. 근데 전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더 편해지고, 어떤 사람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잖아.”


“그럼 어른들이 잘하면 되겠네.”


서진은 그 말에 웃음이 날 뻔했다.

아이들은 늘 문제를 단순하게 만든다.

그래서 더 정확했다.


며칠 뒤, 서진은 은행에서 비공식 면담을 받았다.

권고사직에 가까운 제안이었다.


“유 팀장님은 조직에 너무 큰 부담을 줬습니다.”


그 말에 서진은 피곤할 만큼 웃었다.


“부담은 제가 준 게 아니라, 이미 안에 있던 거였죠.”


상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곡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 장마 사이 잠깐 열린 맑은 날이었다. 단지 앞 편의점에서는 빵이 진열되고 있었고, 경비실 앞에서는 택배차가 물건을 내리고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일상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진은 알았다.

일상이란 대개, 큰 변화가 가장 늦게 드러나는 표면이라는 것을.


그날 밤, 지우가 서진의 손을 잡고 베란다로 나왔다.


서울 하늘은 원래 별이 적었지만, 그날은 유난히 하나가 또렷했다. 별 같았지만, 별은 아니었다. 너무 일정한 빛이었고, 너무 계산된 각도였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사업계획서 안에서 먼저 태어난 것이었다.


지우가 물었다.


“엄마, 저건 별이야?”


서진은 한참 대답하지 못했다.


거실 안에서는 현민이 조용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싱크대 가장자리에 고인 물 위로 새로 뜬 빛이 잘게 부서졌다.

식탁에는 아직도 이번 달 대출 안내서가 놓여 있었다.

세상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었다.


서진은 마침내 말했다.


“아니.”


지우가 다시 물었다.


“그럼 뭐야?”


서진은 하늘을 올려다본 채 천천히 대답했다.


“사람이 만든 별.”


지우는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빛을 바라보았다.


아파트 단지의 스마트 커튼들이 일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빛이 너무 강해 자동 차광 모드가 켜진 것이다.

한 집, 또 한 집, 유리창들이 스스로 어두워졌다.


그러나 서진은 끝내 창을 닫지 않았다.


그녀는 알 것 같았다.


앞으로의 세상은

부족이 끝나는 방식으로만 오지 않을 것이다.


풍요는 먼저 도착할 것이다.

전기와 컴퓨팅과 이동과 자동화는 점점 싸질 것이다.

누군가는 그 풍요를 문명의 승리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그 말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그 풍요가 누구의 삶을 통과해 오는지

한참 뒤에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더 이상 회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을 꿈꿀 것이고,

어떤 사람은 회사가 자기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을 먼저 살게 될 것이다.


어떤 나라들은 공장을 돌리며 번영할 것이고,

어떤 가정들은 식탁 위에서 설명되지 않는 가난을 견디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던 미래가

가장 먼저 흔들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별이 하나 더 생긴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하늘 위 그 빛은 멀었고,

동시에 너무 가까웠다.


지우가 작게 말했다.


“예쁘다.”


서진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것과 무서운 것이

같은 얼굴을 하고 올 때가 있다.


그녀는 오래도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이 만든 별은 규칙적으로 움직였고,

서울의 밤은 그 빛 아래서 조금씩 다른 시대의 표정을 배우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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