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

레오야 우리집에 온걸 환영해!

by 월리

최근 1년동안 우리 부부의 삶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남들이 가고싶다는 대기업을 뛰쳐나온 뒤 고난의 시간을 헤쳐가고 있는 남편과, 확정된 미국에서의 취업과 별개로 언제 들어갈지 모르는 막막한 기대감을 갖는 아내로 이루어진 우리 부부의 2025년은, 행복과 즐거움 속에서도 마음 한켠에 걱정을 키워놓고 살았던 한해였다.


특히 시간이 거듭할수록, 무언가를 책임져야한다는 것을 점점 피하기 시작했다. 원래 우리는 몇년동안 아이를 갖기위해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나는 '아이보다 아내가 우선이었고, 아내의 몸을 망가뜨리면서까지 아이를 갖고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둘이서 즐기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가족들과 주변 친구들이 아이와 씨름하는걸 보면서 대리 힘듦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인생에서 무언가 책임질 것을 만들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부터 예민했던 성격도 있었고, 요 몇년간 불안정적인 사회를 보면서 나쁜말로 '발목 잡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게 부담스러웠나보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여유롭지 못한 내 마음을 숨기고싶은 핑계는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집은 여의도와 굉장히 가깝다. 덥고 추운걸 싫어하는 우리 부부에게 여의도 실내 데이트는 꽤나 매력적인데, 여의도의 대표적인 두 실내장소인 IFC, 더현대에는 반려동물 출입이 가능하다. 특히 IFC는 식당가를 제외하곤 강아지가 실제로 걸어다니면서 산책까지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그냥 강아지 키우는 분들이네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점점 나의 어렷을적부터 있어왔던 로망을 자극했다. 살면서 2번정도 강아지를 키울뻔한 기회가 있었다. 아쉽게도 두 기회 모두 잡지 못했는데, 강아지를 키워보고싶다는 생각만 갖고 현재까지 오게 되었다. 참고로 아내는 어렸을때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장모님께서는 아내를 강아지 키우는걸 '봤던' 사람이라고 표현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키우고싶다'가 아니라 '키울수 있을까'로 생각이 바뀌어갔다. 아내랑 둘이서 여의도를 다녀온 날이면 한번도 빠짐없이 "강아지 키우면 좋겠다 그치?" 라고 시작했다가 "근데 좀 걱정이된다 그치?"로 끝나는 대화가 오갔다. 나도, 아내도 둘다 신중한 타입이다보니 자연스럽게 걱정도 많은 성격이라 그랬다. 그런데 이것도 1년정도 대화하다보니 점점 우리가 해왔던 수많은 고민들이 별거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가장 큰 우리의 걱정은 시간이었다. 특히 한번도 강아지를 키워본적이 없던 나에게 '강아지를 혼자있게 하는 시간'이 가능한지는 끝없는 궁금증이었다. 현재 1년가까이 재택을 하고있는 나지만, 언제 회사로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걱정은 항상 존재했다. 그리고 두번째는 돈이었다. 우리 부부가 살아가기에 돈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지만, 이 또한 반려견이 아플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키우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장황하게 설명한 유튜브를 보면서 생겨난 또 다른 걱정거리였다. 이 외에도 여러가지 고민들이 있었지만 다 말하기엔 이 글이 끝이나지 않을것 같다.


그정도로 고민을 끊임없이 하던 어느날, 똑같이 여의도 한바퀴를 돌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내가 근처에 있는 애견샵을 가보자고 했다. 평소같았으면 아내가 "근데 이건 좀 아니겠지?" 하고 말하고, 나는 "응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라고 했을텐데, 그날은 그냥 애견샵 가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평소에 말티푸를 굉장히 분양받고 싶어했는데, 마침 유명한 애견삽이 있어서 다녀오게 되었다.


막상 다녀오고나니, 눈에 엄청나게 아른거렸다. 다만 애견샵의 좋지 않은 구조와 내용들을 익히 들어서 그런가, 직접 가정견사를 하는 곳을 한번 다녀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1년 가까이 고민한것 치고는 '굉장히 저돌적인' 행보였는데, 가정견사를 다음주에 다녀오기로 예약해버리고 아내에게 이 사실을 공유했다. 아내는 꽤나 놀랐는데, 심지어 집에서 약 2시간을 차를 타고 다녀와야하는 거리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걱정이 많고 섬세한 우리 부부는, 가기로 한 당일 아침까지도 고민을했다. 지금이라도 정말 죄송하다고 해야하나 고민했는데, 오히려 내가 '예약한 곳에 그렇게 말하기가 싫고 부끄러워서' 그냥 발걸음을 옮기자고 했다. 그렇게 2시간가까이 차를 타고 기흥까지 이동했고, 우리는 처음으로 가정견사라는 곳에 방문했다.


익숙하지 않은 강아지들의 냄새, 온도, 그리고 분위기까지 이거 잘못왔나 싶은 생각이 수없이 스쳐갔다. 브리더 분의 설명과 강아지 에 대해 평소에 궁금했던 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분양 가격을 보고나서 '그래 어떤 애들이 있는지 한번 얼굴만 보고 집에 가자'라고 생각하고 강아지들의 얼굴을 본 순간, 입가에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세상에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우리 부부의 마음에 쏙 들어온 녀석은 3남매중 첫째였다. 가장 밝았고, 우리 앞에서 발라당 배를 뒤집었다. 심지어 색깔마저 아내가 가장 원했던 크림색이었다. 그 안에서 한참 교감을 하고나니 이제 정말 선택할 시간이었다. 입양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그때 나는 또 망설이기 시작했다. 아내는 다음에 다시 오면 된다며 우선 집에가자고 했다. 잘 키울수 있을까. 데려오면 정말 괜찮을까. 근데 마치 머리가 하얗게 변하면서 "데리고가자"라는 말이 나왔다. 그냥 자리에 앉았고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계약서를 쓰고 계약금을 냈다.


"아 몰라, 얼마나 고민을 더해야하는거야."


IMG_1146.jpg 차마 미친(?)듯이 웃고있는 얼굴까지 보여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2차 예방접종까지 마친 약 2주뒤에 우리는 집에 그 친구를 데려오게 되었다. 이름을 짓는것도 엄청난 고민이었는데, 수십가지의 후보군 중에서 '레오'로 정했다. 우리를 처음만났을때 이친구가 '말티푸 주제에' 사자같이 늠름해보였기 때문이다. 아내에게 무파사나 심바는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우리 시대에는 레오가 맞다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무리봐도 레오라는 이름은 정말 잘 어울린다.


IMG_1086.jpg 첫날 우리와 만난 레오. 쪼그만한게 저렇게 늠름(?)하게 서있었다.


이글을 쓰는 오늘이 딱 4일째다. 처음에는 최대한 교감하지말고 멀리서 지켜봐야한다는 조언에 마음을 부여잡으며 곁눈질로 이 친구를 쳐다보았다. 처음 키워보는탓에 뭐가 뭔지 몰라서 유튜브의 애견 관련 영상을 수없이 돌려보고있다. 생전 한번도 안해본 유튜브 채널가입(유료)도 해서 회원전용으로 된 영상도 계속 찾아보고있다. 요즘 철학책에 한참 빠져있었는데, 최근에는 강아지 관련 책만 4권 가까이 읽었다. 얼마전에는 모 유튜버가 진행하는 라이브방송에 들어가서 궁금한것들을 한창 질문해보기도했다.


IMG_8168.HEIC 우리집 얼굴 수건이 약간 애착인형(?)처럼 되어버렸다


첫날밤에는 밤에 엄청 낑낑댔다. 무서울까봐 미등을 켜줘서일까, 혹은 우리가 아직 배식량에 서툴러서 배고파서일까, 아니면 무서워서일까 등 여러 고민이 들었다. 분명 데려올때에는 "우리 집에서 강아지는 강아지다. 개답게(?) 키울거다."라고 했는데, 아내는 나를 보고 "오빠는 만약 우리가 애를 낳았으면 극성 아빠가 되었을거다."라고 했다. 그냥 궁금하고 잘 키우고싶고, 무엇보다 우리집을 제일 편하게 느꼈으면 좋겠어서 그랬다.


감사하게도 낮에는 혼자서 놀다가 자다가를 반복하고, 내가 지나가거나 전화를 하거나 유튜브를 봐도 자기 혼자서 그러든지 말든지 한다. 가끔 낑낑대고 짖기도 하는데 금세 가라앉는다. 어제 밤에는 한번도 안깨고 잘자줘서 나도 몇일만에 숙면할수 있었다.


새끼강아지라 그런가 엄청 잘잔다. 하루에 15시간은 잔다고했다.


모 유튜버 훈련사분이 그랬다. 강아지는 입양해서 키우는게 아니라, 같이 사는거라고.

레오야 우리집에 온걸 환영해. 앞으로 같이 잘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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