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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flower Nov 13. 2017

황량한 마음에 물이 필요하다면,

영화, <월플라워>

나는 내가 야자수라고 생각했다. 이 추운 나라엔 제대로 심어질 수 없는 나무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추위를 잘 타나 싶었다. 나는 늘 따뜻함을 그리워했다. 적정 온도인 25도가 아니라 후끈한 히터 바람이

살결의 수분조차 말려버리는 30도를 사랑했다. 그러나 30도를 함께 견뎌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따뜻함이 그리워 25도의 사람들이라도 만나면, 나는 사랑하지 않을 여지까지 말려 없애버릴 만큼

열렬하게 사랑했다. 그래서 25도짜리 사람들이 떠나고 나면 내 가슴은 황폐한 사막이 되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다.


나의 이 황폐한 사막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모인 영화가 있다.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월플라워(Wallflower, 2013)> 다. ‘월플라워’는 파티에서 춤 신청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 영화가 관객에게 처음부터 보여주는 ‘월플라워’는 졸업 파티 내내 벽에 붙어 시간을 축이던 찰리다. 그러나 이렇게 벽에 걸려 말려지는 월플라워 신세였던 찰리는 샘을 만나 진짜 플라워가 된다. 샘은 교실에 비치된 사물함이나, 청소도구처럼 학교를 다니던 찰리에게 친구가 되어준다. 샘은 밝고, 환하고, 좋은 곳에 서서 찰리를 끌어 당긴다. “불량품들의 섬에 온 것을 환영해.” 이 말을 내뱉는 샘은 정작 영화가 중반부까지 흐르는 동안 ‘불량품’ 같지 않은 캐릭터로 존재한다. 


<월플라워> 공식 포스터 


 그러나 나는 샘에게 불량품 판정을 내리기로 했다. 샘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오작동을 계속한다. 기름칠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고철 로봇 같달까. 샘이 사랑하는 크레이그는 샘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샘이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사람이다. 길지 않은 샘의 서사에서 나는 결코 그녀가 행복하지 않으리란 걸 알았다. 그녀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했다. 그녀의 가슴도 황폐한 사막이어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으리라. 오히려 그녀가 그 누구로부터도 밝고, 환하고, 좋은 곳에 초대되지 못하는 월플라워였다. 그녀는 영화가 후반부로 치달을 때까지도 찰리가 내려가 허전해진 벽을 채우기를 자처한다. 


그 때, 그 황폐한 사막에 꽃 한 송이를 심는 것은 또 다른 월플라워, 찰리다. 찰리는 무릎까지 빠지는 모래사막을, 조금은 어설프고 멋지지 않은 모양새여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찰리는 처음부터 샘을 사랑한다. 샘이 크레이그와 사귀는 것을 보면서, 왜 좋은 사람들이 자신을 함부로 하는 사람을 택하냐며 문학 선생님에게 묻기도 한다. 선생님은 우리가 각자의 크기에 맞는 사랑을 선택한다고 답한다. 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너는 더 커다란 사람이라고 알려줄 수는 없나요?” 찰리는 말한다. 너처럼 커다란 사람을 내가 사랑하고 있음을. 찰리는 그 드넓은 사막을 건너, 아름다운 불빛들 아래에서 샘에게 더 커다란 사랑을 받을 자격을 부여한다. 샘은 그녀가 전작에서 수없이 걸었던 마법 주문에 걸린 것처럼, 그녀가 플라워라고 줄곧 생각해온 찰리 덕분에 그제서야 비로소 활짝 피어난다.그들은 마침내 불량품 아일랜드에서 탈출한다.


 <월플라워>는 10대들의 성장 영화다. 그것을 사랑에 국한해 개인적으로 해석한 평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때때로 영화는 내가 듣고 싶은 위로를 들려주기도 한다. 차가운 한반도에 잘못 심어진 야자수에는 찰리가 위로해준 따뜻함이 생겼다. 그 따뜻한 마음은 눈이 흩뿌려지고, 바람이 부는 것과 상관없이 뿌리부터 야자수 열매까지 데운다. OST의 고전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쥬얼리 샵의 주인이 아오이에게 그러지 않는가. 우리 모두가 있을 곳은 누군가의 마음 속 뿐이라고. 내가 아무리 북반구에 잘못 착륙한 야자수여도 좋다. 그래서 침엽수들 사이에서 벽을 보며 춤을 추는 월플라워가 되어도 좋다. 찰리가 내게 속삭여 준, 언젠가 찾을 ‘누군가의 마음 속’은 내가 안심하고 뿌리 내릴 수 있는 따뜻한 곳이 되리라. 그곳에서 꽃을 피워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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