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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flower Dec 24. 2017

한없이 가벼운 추모

추운 날. 안녕을 빌며


 나는 줄곧 우울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몇 차례의 다툼을 겪었고, 그 결과 나는 나를 싫어하게 되었다. 그 중에는 정말 내 과오로 인한 일들도 있었지만 아닌 일들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그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런 일을 벌인 나를 너무나 미워했다. 그래서 나는 밑빠진 독 같은 것이 됐다.


 그 어떤 사랑으로도 나를 채울 수가 없었다. 가족, 친구, 직장, 일, 여행. 모든 것은 그 때뿐이었다. 때론 오히려 소위 그런 것들이 나를 더 옥죄기도 했다.




 종현이의 죽음은 내가 다시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트리거가 됐다. 나는 열성팬은 아니었으나 고3 때부터 늘 좋아했다. 내가 아끼던 동생에게 그 당시 종현이의 사진과 영상을 담은 CD를 선물한 적도 있었다. 그런 그의 죽음을 처음에 나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를 보고 나는 너무나 많이 울었다.


 나도 내가 미웠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마다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게 만드는 거라고 했지만, 전혀 유효하지가 않았다. 나는 정말 피해자인데 피해자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걸까. 내게 나쁜 짓을 저지르고 간 사람들은 멀쩡히 잘 사는 것이야말로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주위 사람들은 모두 내게 '잘못 걸렸다'며 빨리 잊으라고 했다. 애초에 그게 가능할 리가 없다. 나는 그런 위로에 밝게 웃으며 '그래야지'라고 답했지만 순식간에 마음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나는 혼자다.


 이런 얘길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하면 또 내가 예민하다고 했다. 누구나 사람을 자기처럼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면 또 다시 내 탓이 됐다. 이게 다 사람에게 기대한 내 잘못이구나. 사람을 쉽게 믿은 내 잘못이구나. 순진하고 착해 빠진 내 탓이구나. 그러면 애초에 할 수도 없는 모진 맘을 억지로 먹어가며 살아야 했다. 몇 년을 모질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한순간에 내가 다시 착해질 때마다 나는 내가 너무 미웠다. 나는 바보같아.


 내 인생을 살아내는 건 온전히 '나'의 몫이다. 미워하는 사람이 잘 살길 바라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마찬가지다. 미워하는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나'의 삶이 괜찮아지게 만드는 일은 엄청난 인지부조화를 가져온다. 어쩌다 잘 하면 그건 당연한 것이 되고 못하면 역시 너가 그럼 그렇지. 평생 이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건 나를 소진시킨다. 아주 필수적인 몇 가지 일 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만큼 힘겨웠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종현이의 얘기를 듣고, 친구와 울며 그렇게 말했다. 어디 저기 먼 남태평양 같은 곳이라도 가서 따뜻한 햇살을 쬐고 예쁜 바다를 보며 오래 쉬었다면 떠나지 않았을지도 몰라.


 나는 '나'에게도 그런 말을 들려주고 싶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금 이 곳에서 물 속처럼 숨쉬기 힘든 내가 따뜻한 볕을 쬐고 예쁜 바다를 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런 나는 앞으로도 내 삶을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때때로 다시 힘겨울 수도 있겠지만 그 때마다 볕을 쬐러 가고 예쁜 바다를 보면서 살아갈 거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공허한 위로를 던지지 않는 사람으로 살겠다. 누군가가 밝아보일지언정 힘들다고 말하는 것들을 그냥 넘기거나 만남을 내일로 미루어 버리며 살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게 누군가에게는 '왜 저렇게까지' 라고 보일 망정 내겐 한없이 힘들었던 이 일주일이 남겨준 것들이다.


  누군가는 왜 이런 공간에 굳이 일기장에나 쓸 법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가벼운 공간일지 모르고, 한없이 가벼운 이야기들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단지 내가 애정을 들여 일구는 공간에 무언가라도 남기고 싶었다. 그게 한없이 가벼워보이는 추모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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