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과 함께> 리뷰를 해보자.
이것은 신파다. '신파'하면 떠오르는 신파의 교과서 영화 <국제시장>과도 범접할 만한 신파다. 그렇게까지 보는 이유는 이 영화의 갈등과 해결이 모두 어머니에서 시작해 어머니로 끝나기 때문.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굵직한 줄기는 그렇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무조건적인 희생의 아이콘으로 '모성'이 사용되는 것에 상당히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편이다. 물론 극장에서 많이 울긴 했지만, 어쨌거나 어머니로 시작해 어머니로 끝나는 상당히 고루한 메시지는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지옥의 풍경마저 갑자기 친숙하게(지겹게) 만든다는 점은 우리 모두 유의하도록 하자.
그러나 그럼에도 '괜찮다'라고 생각했던 포인트가 있다. 바로 그토록 구하러 다니던 '절대적 진리'가 있어서랄까. 지옥의 셈법은 무척이나 간단하다. 권선징악. 착하면 복을 받고, 나쁘면 벌을 받는다. 그러나 그 진리가 잘 지켜지기는커녕 때로는 정말 있기나 한 것인지 궁금한 이승 사람들에게, 그 진리가 절대적으로 여겨지는 저승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더 살만한 곳'처럼 보인다. 사(死)를 보며 생(生)을 위로받는 영화, <신과 함께>다.
<신과 함께>는 죽은 후 이승의 소위 '49제'가 지내지는 49일 동안 저승에서 열리는 재판을 그린 영화다. 7개의 지옥을 지키는 대왕들은 이승에서 지은 각각의 죄목을 심판하고, 유죄면 지옥으로 무죄라면 다음 지옥으로 보낸다. 모든 재판을 통과하면 '환생'이라는 상을 받는다. (상이냐고.. 상이 확실하냐고)
영화 속 주인공이 원작에서는 노총각 샐러리맨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정의로운 소방관으로 바뀌면서 조금 더 극적인 장면이 드러난다. 처음부터 '귀인'으로 대접받으며 지옥에서 다른 지옥으로 이동할 때 빠른 배로 갈 수 있다던가, 하는 것들. 어쨌거나 대왕들의 판관이 죄인을 기소하면, 죽은 자를 데려간 저승 차사들이 변호를 맡는 식이다. 정의롭고 가족을 사랑했던 소방관 자홍은 대체로 평탄하게 재판을 지내는 편이긴 하다.
참고로 자홍이 두 번째로 가는 지옥은 '나태지옥'인데, 쓸데 없는 짓으로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했다고 판명되면 가는 곳이다. 평생동안 움직이는 물레를 피해 뛰어다녀야 하는 형벌을 받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끔찍하다고 생각된 지옥이었지만, 다른 지옥의 심판은 어떻게든 피하더라도 나태지옥은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든 것은 아니었는지 같이 본 친구도 나태지옥에서 너무 양심이 찔렸다고 하더라.
지옥은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으로 총 7개인데, 이 중 살인과 거짓, 불의, 폭력, 그리고 천륜처럼 누가 봐도 잘못한 이를 구분해낼 수 있는 지옥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나태지옥은 조금의 선량한(...) 사람들도 엄격하게 벌을 집행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사리사욕이니 패스하자. 남은 하나가 바로 배신지옥인데, 우선 이 지옥은 원작에 없던 지옥이다. 뭐 원작에서도 대강 '사람의 마음을 얼린 자'에게 형벌을 내리는 곳이 있긴 하지만 정확히는 배신이 아니다. 그래서 이 '배신'이라는 것을 지옥의 하나로 끄집어 낸 의도가 궁금해 감독 인터뷰를 뒤졌으나 답을 찾지는 못했다. (혹시나 알고 계신 독자분이 계신다면 댓글로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궁금해 흑흑)
어쨌든 나는 개인적으로, 물리적 신체를 훼손하는 일이 살인이라면, 정신을 살인하는 일이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편인지라 배신지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갑자기 위안이 됐다고 하면 이상한 감상일까? 당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번 아주 깊게 신뢰한 사람이 뒤통수를 때리고 지나가면 한동안은 누굴 믿기가 어렵다. 누굴 만나도 의심을 먼저 하게 되고, 시간이 오래 되어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등등, 배신이 할퀴고 가는 상처는 사실 몸에 난 상처보다 훨씬 더 오래 간다.
그치만 이승에서 이런 사람들이 심판 받는 일은 생각보다 없지 않은가. 이승에서는 사실 '당한 사람이 바보'라고 취급되기도 하고(아흑) 사실상 법에 저촉되는 일이 아니기에 속은 사람 마음만 상할 뿐, 속인 사람은 나쁘면 나쁠 수록 죄책감 없이 두발 뻗고 사는 것이 이승이다. 그것이 못내 원통한 적이 많았는데, 저승에서 그토록 가려웠던 곳을 긁어주신다 하니 유난히 맘에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배신지옥에서 형벌을 받게 되면, 그들은 자신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에 갇혀 차갑게 얼려진 후, 산산조각난다. 그렇다! 믿은 놈이 바보가 아니다! 흑흑
또 다른 위로는 영화의 가장 끄트머리에서 받았는데, 바로 강림(하정우)이 해원맥(주지훈)인 줄 알았으나 알고보니 염라대왕(이정재)였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 장면이었다. 강림이 지옥의 룰을 깨고 이승의 일에 개입하려 하자 해원맥이 그러지 말고 지옥으로 돌아오라며 둘이 몇번 불과 칼로 싸우는 것인데, 결국은 강림이 이기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이승의 일에 개입한다. 그런데 후에 그것이 해원맥으로 둔갑한 염라대왕임을 깨닫게 된다. 대체 이 장면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장면이란 말인가?
이는 해석이 분분하긴 한데, 내 경우에는 룰을 누구보다 중요시 여기고 절대로 개입하려 하지 않는 '신'들이 가끔은 인간 세상에 너무 억울한 일이 생기면 그 규율을 배반하더라도 도와준다는 것처럼 보였다. 일종의 '구원'이랄까. 개입을 전혀 안하는 척 하지만 가끔씩은 돌보러 가보는 츤데레랄까. 억울한 사정을 그래도 다 헤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물론 영화는 영화일뿐이지만) 마음이 편해지긴 하더라. 정말 위급할 땐 동앗줄 하나 정도는 내려주시겠지.
그러니 이쯤 되면 차라리 저승이 '살 만한 곳'처럼 생각되긴 한다. 그러나 결국 돌고 돌아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왜냐면 '면죄부'가 있기 때문이다! 돈으로 사고 파는 그런 면죄부는 아니다. 마지막 지옥에서 염라대왕이 말하길,
이승에서 용서받은 죄는 저승에서 심판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
이 말인즉슨, 내가 설령 누군가를 배신해서 그 사람의 마음에 크나큰 상처를 주었다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으면, 그 죄는 무죄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자면 너무나 간단한 방법이지만, 우리 모두 그저 넘겨버리기만 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이제 안 볼 사람인데 뭐.", "연락 안 한지 오래됐는데 뭐.", "그 일이 언제적 일인데." 등등 인간의 핑계는 다양하고 너무 많다. 그렇게 핑계를 미루는 동안 죽은 후의 지옥이 나를 향해 한발짝씩 다가온다고 생각해보라.
그러니, 더욱 부지런하게 살아야할 것 같다. 부모님이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그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하는 데에 부지런히 노력하고(=입조심하고), 부지런히 신의를 지키고 참된 말만 내뱉도록 노력해야 한다. 살아서 못한 것을 죽어서 하려 하냐는 염라대왕의 비웃음을 받지 않으려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써놓고 보니 맹자나 공자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 같기도 하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나는 진짜 부지런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나태지옥행 티켓을 예약한 것 같아 스산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