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년간 유럽에 있었다. 그 일년을 마무리하는 여행에서 베니스를 들렸다. 40도 가까이 치솟는 더위를 피하러 들어간 성당에서 나는 무교인 주제에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열심히 노력하는 만큼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이 당연한 약속만 지켜주신다면 돌아가서도 열심히 살겠노라고.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내가 무교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더위를 피한다는 불순한 목적 때문이었을까, 나는 한국에 돌아와 하는 것마다 실패했다. 남은 건 스트레스로 인한 만성적인 위통과 애초에 뭘 해도 안 될 거라는 패배감에 젖은 나 자신뿐이었다.
나는 삶보다 죽음을 더 자주 말하는 사람이 됐다. 몇 년간 말 없이 기다려주시는 부모님을 볼 때마다, 멀쩡히 잘 살아가고 있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또 그러면서도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 자신을 깨달을 때마다 그냥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근데 또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두고 나 자신이 나약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 모든 걸 견디기가 힘들었다. 죽으면 가족들도 잠시는 슬프겠지만 결국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모두에게 민폐가 아닐까. 새로 이사를 와 반짝거리는 집에서 나를 잠식한 건 그런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친구들끼리 단톡방에서였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던 친구가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친구는 취업 준비 중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하루에도 12번씩 그 생각을 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 큰 충격이었다. 아, 내가 나약해서, 내가 특이해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구나. 20대라는 나이에 죽고 싶어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도 생기다니. 그리고 그게 이상하게 슬펐다. 젊음이 자산이라고,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는 게 아깝다는 얘기도 있는데. 왜 이 찬란한 나이에 우리는 도전이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는가. ‘노오력’도 안하는 나약한 젊은이이기 때문인걸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핵심이 베니스의 성당에서 올렸던 기도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 베니스에서의 여행 이후 나와 내 친구들은 모두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그랬는데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우리에게 그 기도는 유효하지 않더라. 청소기를 돌려도 방이 깨끗해지고, 설거지를 하더라도 그릇이 빤딱빤딱해지는데, 우리 인생은 아무리 노력해도 변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 노력의 자리를 무력감이 채웠다. 어차피 해봤자 안 되는 거 아무것도 하지 말자, 뭐 그런 우울의 밑바닥으로,계속해서, 깊이. 우리는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떨어질 때는 바닥까지 떨어져야 차고 올라올 수 있다고 했던가. 아니면 함께 떨어지다보니 서로를 지탱하게 된 걸까. 함께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다. 죽을 땐 죽더라도, 아직은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그 약속을 지켜달라는 기도를 다시 올려보자. 노력한 만큼 ‘성취’한다는 그 정직한 규칙이 지켜지는 세상이 되길 바라며, 우리는 뭐라도 해보자고 생각했다. 궁극적으로 우린 죽기엔 아까운 존재라는 것을. 죽음보다는 삶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되어보자고.
‘블루밍 살롱’은 그렇게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