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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flower Nov 16. 2018

두 번째 정기살롱, 관계에 대하여

사람이 싫을 때 



 지난 2016년 12월, 자존감 회복 프로젝트 '블루밍살롱'을 시작했다. 당시 문을 열 때만 해도, 달과 우주, 그리고 나의 인간 관계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다. 넓지 않았다는 말은, 곧 바꿔 말하자면 원하는 품목만 취사선택한 장바구니같다는 말과도 비슷했다. 우리는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이해해주고, 지켜봐주고, 믿어주는 사람들과만 함께 지냈다. 블루밍살롱을 만든 이유도 그랬다. 그리고 실제로 블루밍살롱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랬다.


  그 당시 우리의 '자존감'은 사람 때문이라기보다 스스로의 노력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의해 상처받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긴긴 기다림 끝에, 2017년의 중반부터 2018년 봄까지, 우리는 차례대로 각자 원하던 것과 비슷한 열매를 하나씩 수확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모든 게 괜찮아지는 듯 했다.


 그러나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고, 새로운 문제는 새로운 곳에서 탄생하고야 말았다. 회사라는 곳은 그간 우리 곁에 없었던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다시 자존감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거나, 하고 있거나, 할 예정에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느 새 두 번째가 되어 버린 정기살롱의 주제가 '관계'가 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화두이자 과제. 그래서 우리는 참가해준 멤버들과 관계가 무너뜨리는 '자존감'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도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9월 초의 가을날이었다. 쑥스럽게 쭈뼛쭈뼛 들어오는 참가자들과 동그랗게 둘러 앉았다. 어색하게 마주보며 웃는 사람들과 초장부터 대뜸 "관계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라고 묻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난 '씨네마 블루밍'에서 최초로 등장했던 '곤도르 게임'을 시작했다.


 곤도르 게임은 타인이 보는 나의 이미지와 내가 보는 나의 이미지가 얼마나 맞는지 확인해보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이 게임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곤도르'였기에 이름은 곤도르 게임이 됐다.


 각자 자기 자신을 상징하는 수식어를 적고 그 사람이 누굴까 맞춰보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꼼꼼하다'가 나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지목했다. 나는 아니었지만 나인 것처럼 수줍게 웃었다. (후후) 마피아 게임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을 속이는 데 성공했다. '꼼꼼하다'의 주인공은 우주였다. 나는 '공평하다'라고 썼다.


나는 _________한 사람이다. 가끔 채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몇 번의 웃음이 오간 끝에 본격적인 얘기가 시작됐다. 우주가 질문을 던졌다.



"관계 속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나요?"

 

 닐이 말했다.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나는 그게 왜 중요한지 모르겠다.'
 곤도르는 말하길 '나에게 유독 막 하는 사람에게 당할 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포도는 '지낸 시간과 무관하게 결국 안 맞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 서운하다'고 말했다. 

 나도 말했다. '내가 생각할 때 당연하지 않는 방향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걸 지켜보는 게 힘들다'라고.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였다.

 진짜로, 어디에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른바 '도라이'는 존재하고 있었다.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야속함 

  회사라는 곳은 그렇지 않지 않나. 물론 중요하지만, 꼭 반드시 그게 학교 시험처럼 모든 것을 보장해주지 않는 곳. 때로는 일을 하지 않더라도 작은 기술 하나가 더 많은 걸 보장해줄 수도 있는 곳. 내 상식 선에서는 그런 사람은 반드시 반칙패를 당해야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반칙패도 가능한 링 위에서 치이고 있었다. 아직 규칙이 수긍이 가지도 않았는데 게임이 시작되어버린 느낌이랄까.


  사람들과 얘기하다보니 이건 꼭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회사든, 또 회사가 아니더라도 사람이 모인 곳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이런 일은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단 하나였다.



  "왜 (        어떠어떠한              ) 나를 알아주지 못할까? 


 여기까지 닿자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회사라는 곳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과정'을  봐주지 않는 곳이라고 치자. 1초를 쪼개서 살았건 발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녔건 그 고생은 헤아려주지 않고 오직 '결과'로 평가하는 곳.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하고 내가 한 일에 대해서 인정을 주장하기도 어렵다.


 그럼 이런 상태에서 매일 매일 출근한다는 것은 곧 매일 매일 나를 지워버리는 데 익숙해진다는 게 아닐까. 이러다간 결국 남들이 알아주지 못해 속상한 '어떠어떠한 나'도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일주일동안 날 것의 '나'를 지켜보기로 했다. 우리는 일주일동안 '고독한 블루밍방'을 열기로 했다. 회사에서 '나'를 가장 크게 공격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스트레스가 발생할 때마다 대나무숲처럼 쏟아내기 위한 용도로 말이다.



정말 고독했던 고독한 블루밍방




 또다른 하나는 각자에게 서로가 스트레스를 견디는 방법을 추천해주기로 했다. 작년 정기 오픈 살롱에서는 '삽질 프로젝트'를 랜덤으로 골랐듯, 이번에는 스트레스 해소방법을 랜덤으로 골랐다.

 

나는 관계를 끊는다는 극단적 방식이 걸려버렸다.

 



 주어진 날짜는 다음 모임까지 일주일.

 우리는 일주일 뒤에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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