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llflower Dec 08. 2021

열심히 실패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완벽주의와의 결별 선언 

제가 왜 티파니 씨의 팬이 됐냐면요...


재작년 봄이었나. 취미생활을 잘 하지 않는 나를 친구들이 뮤지컬을 보러 가자며 꼬셨다. 그 때 처음 봤던 뮤지컬은 '아이다'였다. 뒤늦게 예매해 우리는 2층에서도 별로 좋지 않은 자리에서 관람해야 했지만, 자리와 무관하게 공연이 시작되고 나는 단숨에 매료됐다. 오히려 멀리서 보니 배우분들이 작게 보여서 작은 인형의 집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기도 했고... 생생한 노래며 무대가 울릴 정도의 안무며,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들이 보이고..그냥 넘버 하나 하나가 끝날 때마다 박수봇처럼 박수만 쳤다. 참고로 그 때 '암네리스'는 아이비씨였다. 나는 그걸 커튼콜 다 돼서야 알았고...


여튼, 그 이후 친구들은 흥미를 잃었는데 나 혼자 꽂혀서 한동안 뮤지컬을 미친듯이 보러다녔다. 특히 그 와중에 나는 옥주현 씨가 '댄버스 부인'으로 나오는 레베카를 본 이후 레베카만 세 번 봤다. 또 볼 거야... 그 이후로 옥주현 씨가 출연하는 뮤지컬은 진짜 다 따라다녔던 것 같다. 작년 여름인가 '마리 퀴리'도 보러 갔었다. 여튼 이런 TMI를 남발하는 이유가 있는데, 짧은 덕후 생활이었지만 그만큼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내게는 엄청나게 대단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는 뜻이다. 이게 중요하다.


왜냐면 그 이후에 뮤지컬 또 뭐 보러 가지 뒤적거리던 내게 혜성같이 떴던 소식이 있는데, 그게 바로 '시카고'였다.(결국 보러가진 못했지만...) 나는 시카고 보자마자 그...젤 유명한 복화술 장면을 연기하는 외국 배우의 연습 장면을 보고 꽂혀버렸다. 아이비 씨가 라디오스타 나와서 부르신 거, 옥주현 씨가 부르신 거, 거기 달린 댓글들, 이런 거까지 다 봤다 다 봤어.(제 포스팅을 쭉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는 서치를 모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러던 와중에 나는 이번 캐스팅 배우들의 연습 장면을 보게 됐다. 참고로 이번 시카고에서 주인공 '록시' 역할을 맡은 배우는 소녀시대 출신 '티파니 영'과 민경아 씨, 아이비 씨였다. 각기 다 다른 장면을 연기하고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었던 건 '티파니' 씨였다. 좋은 의미로 눈에 띈 것은 아니고... 짧은 덕력인 내가 봐도 뭔가 어색한 것 같은 연기를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댓글창이 살벌했다. 뭐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발성이며, 연기력이며 지적받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뭐... 뮤지컬 판에 들어왔다가 비판받는 아이돌 가수들은 그간 뉴스에서도 많이 봐 왔으니까 나는 이번에도 그런가보다,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완벽하게 하지 못하면서, 뭐하러 나서서 욕까지 먹을까...

그 연습 영상이 올라왔던 게 3월 19일. 그리고 약 한 3주가 흘렀다. 나는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떠다니다가 티파니 씨가 시카고 프레스콜을 한 영상을 보게 되는데...(두둥)


정말 놀라웠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연습영상과 다른 사람인 것 같은 느낌...? 나만 그렇게 느끼는가 싶어서 후다닥 댓글창을 들어갔는데 진짜 댓글이 180도 달라져 있었다. 특히 실제로 보고 오신 분들도 티파니 씨만의 독특한 록시가 생긴 것 같다며 찬사를 남겼다. 다들 연습영상을 보고 걱정했는데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좋았다고 하더라. 머리가 좀 띵한 느낌이었다. 왜 띵했냐면...


완벽하지 않아도 그냥 해내면 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뭔가 나는 그때는 물론 지금도 내 선에서 완벽하지 않은 것을 절대로 바깥에 꺼낼 수가 없다. 아니 꺼내기가 두렵다. 창피당할까봐 무서운 것도 있고, 누군가 잘못했다고 할까봐(그게 왜 중요한지 알 수 없지만), 내가 틀렸을까봐. 그래서 정말 정말 다이아몬드를 가공하는 것처럼 내 안에서 220%의 역량을 끌어내 최소한 모든 면에서 어느 정도 합격점을 받았을 때에만 보여주는 편이다. 가끔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데(특히 마감시간이 있는 회사가 그렇슴다..) 그럴 때 정말 정말 괴롭다. 내가 어설프게 마무리한 업무를 누군가가 내내 비웃고 있을 것 같은 괴로움....


그래서 나는 티파니 씨의 연습영상을 보고 '왜 잘 하지도 않는데 한다고 했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였으면 내가 못하거나 조금이라도 어설펐으면 아예 안했을 테니까. 그게 편하잖아. 아예 창피당할 기회를 없애버리는 거니까...근데 그 댓글과 그 비난과 그 여론을 이겨내고 아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인정받는 과정이 너무, 정말 너~~~~~~~~~~무 멋있었다. 그날로 난 그녀의 팬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의 인터뷰도 미친 듯이 찾아보게 되었는데... 진짜 그녀에게서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정말 정말 많이 배웠다. 물론 배움과 실천이 조금 별개라 문제지만... 그 중 내가 울림을 받은 몇 가지를 소개 하자면...



'티파니 돈 벌러 나왔어?' 라고 하지만 저는 가만히 있는 게 더 세이브가 돼요.
그 정도로 저는 성장하는 걸 좋아해요. I like to grow.
(질문) 나조차도 이건 좀 힘들거야, 안될거야 했던 것 중 이뤄낸 것이 있나요? 
(답변) "다요."


이런 (성공한) 사람도 힘들거야, 안될거야,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묘하게 위안이 됐다. 그걸 노력으로 이겨내서 '다' 이뤄냈다는 것은 더 큰 위로!


너무 멋있어...


완벽하지 않을수록 자유롭다는 아이러니


그러니까 내가 그녀에게 배운 것은 인생을 대하는 태도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굴하지 않고 '나'를 더 많이 알아가려고 하는 시도, 그러니까 '도전'을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이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실패로 끝날지라도...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서 그녀와 내가 각자의 인생을 반추해본다고 치자. 나 자신을 얼마나 많이 알고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많이 모험했느냐는 기준에서는 단연코 그녀가 앞설 것이다.(물론 다른 기준이라고...제가 앞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


이미 나는 매일매일, 지난 젊은 날에 나를 열심히 알고자 하지 않았던 대가를 치르고 있다. 끝없는 나에 대한 의심으로 버려두고, 접어두었던 꿈들이 그렇다. 물론 어릴 때는 금방이라도 꺼져버릴 만큼 아주 약한 촛불이지만...그걸 견디고 믿고 현실이 될 때까지 노력하는 힘이 있었다면...그 때 그 꿈들을 쉽게 버렸을까? 아마 지금보다는 조금 더 살고 싶었던 모습과 가깝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작... 다른 사람의 비난이 뭐라고, 다른 사람의 평가가 뭐라고, 내가 하고싶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내려놨을까. 설사 실패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비난과 평가를 듣는 걸 무서워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쳤을까. 그런 생각들. 적어도 해보기라도 했다면 난 이걸 못하는구나 이걸 잘하는구나, 하면서 인생을 적어도 지금보다는 풍부하게 살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난 여태까지 굉장히 잘못 살아온 것이다. 오로지 모든 점이 '완벽'하게 찍혀야만 되는 것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완벽함을 내려놓고 실패를 받아들일수록 나는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거니까.


이번 달 내내 읽은 '지금의 조건에서 시작하는 힘'이라는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을 한다.

-비완벽주의자는 온 힘을 다해 넘치도록 삶을 누린다. 비완벽주의자를 보며 사람들은 '저 사람은 이러저러한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감이 넘치네. 똑같은 문제를 가진 나는 이 모양인데 말이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의 잠재력을 자신과 세상에 감추는 것에 불과하다.

-안전하게 몸을 사리고만 있기에 인생은 너무 짧다. 어느 정도는 무모하게 세상에 우리를 내던질 필요가 있다.

-한 번도 실수를 하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지 않은 사람이다.


특히 마지막 말은 정말 충격이었다. 실수를 안 하고 살아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나는 가만히 머물러 있던 것뿐이었다.


실패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래서 내년을 준비하는 내가 마음 먹은 것이 있다면 내년에는 '많이 많이 실패해보는 것'이다. 태어나 머리털 나고 '실패'하기를 기도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내년에는 실패라도 좋으니 더 나이들기 전에 이것저것 많이 도전해보고 시간을 풍부하게 쓰는 내가 되기를 바라본다.


사실 브런치도 회사도 회사였지만 내심 글을 정말 완벽하게 써야만, 완벽한 영감이 떠올라야만, 완벽한 사례가 있어야만 포스팅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포스팅을 올리지 못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좀 생각이 바뀌었다. 글을 잘 못 쓰더라도, 재미가 없더라도(..이건 안되는데), 당장 유용하지 않다면... 다음부터는 조금 더 잘, 재미있게, 유용하게 쓰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그냥 꾸준히 쓰는 거에 의의를 두려고 마음 먹었다.


여하튼 내년에는 조금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 누군가 내게 말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은 나쁘거나, 좋거나 두 가지 방향으로 흐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모두 다 '죽음'이란 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 그래서 결코 마이너스(-)는 없으며 모든 것은 다 (+)라고 하던 말. 약간 다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 마음껏 부딪치고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라는 것...


끝으로, 나의 이런 마인드에 큰 위안을 준 김창완 씨의 라디오 답변 하나도 소개한다. 그래~ 내가 동그라미로 태어난 이상 조금 덜 완벽하다고 해서 세모겠어 네모겠어, 자유롭게 찌그러진 동그라미로 살리라... (끝)





남의 평가와 비난은 무쓸모. 본인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또 다른 사례를 발견해 추가로 첨부한다. 가수 '솔비'씨가 '저스트 어 케이크' 시리즈의 피스 오브 호프라는 작품으로 바르셀로나 국제예술상 대상을 받았다. '솔비' 씨가 몇 년 전 무한도전에 나와 자기 그림을 처음 보여줬을 때가 생생히 기억난다. 그 그림을 보던 무도 멤버들도, 방송이 나간 후 댓글들도, 내 주변 사람들도 모두 '가수가 무슨 그림이냐', '별 걸 다 한다' 또는 정말 괴짜인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 사람 속에 있는 미술에 대한 진정성은 자기 자신만이 알았겠지. 그런데 몇 년이 지나 이렇게 자기자신을 증명하는 데에 성공했다. 자신을 믿는 힘, 불안감을 견디는 힘, 마침내 현실로 이끌어내기까지 버틴 힘을 배우고 싶다. 너어무 멋있다. 너무너무. (진짜 끝)


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3&oid=020&aid=0003398137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