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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llflower Jun 09. 2022

존재의 무게

엄마와의 4박 5일

 혼자 사는 집이라 2인용 소파를 샀다. 소파에 많이 앉아있는 성격도 아니어서 푹 꺼진 것보다 단단한 것으로 골랐다. 사놓고 보니 예상대로였다. 잠깐 소파에 앉을 시간보단 오자마자 침대에 누워야하는 일상의 스케줄들 덕분이었다.


 그런 소파에 4박 5일간 엄마가 앉았다 갔다. 엄마는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게 텔레비전은 유튜브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는 수단에 불과했는데. 엄마가 오자 나는 엄마랑 같이 살던 시절처럼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텔레비전을 봤다. 리모콘이 돌아가는대로 보다가, 엄마가 좋아하는 '나는 솔로'를 보며 같이 꺅꺅거리기도 했다. 사윗감으론 누가 좋다, 남친감으론 누가 좋다, 그 누구도 관심없는 이야기를 우리끼리 천둥처럼 속삭이면서.


 나는 엄마와 약 10여년 전부터 따로 살았다. 엄마를 놓고 꿈을 찾아 서울로 왔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인서울'을 하러 열공하던 고3 시절, 아파트 동 입구 앞에서 엄마는 '서울로 안 가고 여기에 있으면 그 등록금으로 차를 사줄게. 여기에 있을래?'라고 물어봤다. 그 마음을 그땐 헤아리지 못하고 나는 어두운 아파트 한복판에서 엄마에게 화를 냈다. '엄마는 내가 여기에 있으려고 이렇게 고생하는 것 같아?' 그 대답에 엄마는 해본 소리라면서 말을 접었다. 지금 와서 그 장면을 떠올리면 한낮의 횡단보도에서도 눈물이 난다.


 꿈을 찾은 대가로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작게는 옷이나 화장품을 구경하러 백화점에 가는 것부터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 눈 비비며 아침밥을 먹거나 현관문 앞에서 배웅을 받는 것들. 엄마가 서울에 오거나 내가 고향에 가게 되면서 우리가 함께 하는 일들은 주말이라는 정해진 기간 안에 해내야만 하는 '특별한' 일이어야만 했다. 꿈은 찾은 대가로 나는 엄마와의 일상을 상실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랬기에 이번 엄마와의 4박 5일은 내게 10여년 전에 잃어버렸던 일상을 잠깐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엄마는 짐을 풀어놓았고, 우린 특별한 음식 대신 '3분 카레'를 세 번이나 먹었다. 아침에 출근하는 나를 엄마는 현관문 앞에서 배웅해주었고 퇴근할 때는 문을 열어주었다. 올해로 5년차인 내가 누군가의 배웅을 받고 출근하고, 열리지 않은 문에 대고 '문 열어줘!'라고 외친 것은 또 처음이었다.


 대체 꿈이 뭐라고…결국 나는 지구본을 돌려서 아무 곳이나 짚어도 어디에나 있을 법한 '직장인 1'이 되었을 뿐인데. 어느 유명한 노래의 가사마냥 '고작 내가 되려고' 이렇게 소중한 일상과 순간과 시간들을 상실했을까.


 "자주 와야겠다. 너희가 너무 외로워해서." 마지막 날 함께 누운 엄마는 문득 그런 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온다고 바닥도 쓸고 싱크대도 비우고 화장실 청소도 했는데 그 깨끗한 곳 어디에선가 엄마는 내가 미처 닦지 못한 외로움을 발견한 모양이다. 엄마니까.


 엄마를 다시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 단단하던 소파가 한쪽으로 움푹 꺼져 있다. 고작 4박5일이었는데. 그 무게가 낯설어서, 이 조용함이 무서워서. 이 모든 게 외로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눈물을 닦아내고 아무 일 없는 척 다시 일상을 살아가더라도 소파는 계속 푹 꺼져 있을 것이다. 소파가 탄성이 좋아 설사 돌아오더라도 내 마음 속엔 늘. 아마도 그건 존재의 무게이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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