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박약’의 습관 만들기 일지
습관을 들이는 것을 어려워한다.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쉽게 시작한 일은 쉽게 질렸다. 순간적인 집중력은 좋은 편이었지만, 몰입을 끝까지 이끌고 갈 힘이 부족했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활동을 하며 나름 성실하게는 살아왔던 것 같은데, 한 가지를 습관 들여 꾸준하게 이어온 경험은 손에 꼽는다. 그렇게 언제부턴가 나는 나 자신을 의지박악형 인간으로 정의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꾸준함을 믿고 삶을 견인해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15년간 매월 노래를 발표하고 있는 가수 윤종신 님에게, 매일 한 편의 글을 써서 연재하고 있는 작가 정지우 님에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활동량을 십수년간 보여주고 있는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에게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들의 일과에 각운처럼 새겨져 있는 루틴에 나는 동경을 느꼈다. 꾸준함이라는 단어가 나를 정의할 수 있는 수식어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몇 번이고 했었다.
이들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핵심이 있었다. 좋은 삶은 일상의 습관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꾸준함이나 성실함이라는 말은 왠지 거창하고 추상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걸 습관이라는 말로 바꾸면 그 의미가 한결 손에 잡히기 시작한다. 턱걸이를 1개 하고 싶다면, 매일 조금씩 매달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매일 어떤 글이라도 무작정 써 보아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소진할 정도로, 전심전력으로 할 필요는 없다. 조금 힘을 빼더라도 매일 하는 것이 차라리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해야 리듬을 만들 수 있다. 습관이란 쉽게 말해 ‘매일 조금씩‘이다.
그런데 말이 쉽지, 한 가지라도 ‘매일 조금씩’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무언가 습관을 들여본 경험이 적은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수많은 변수와 유혹과 핑계가 나의 주변을 맴돌 것이다. 어떤 날은 유독 하기 싫을 것이고, 어떤 날은 예상치 못한 방해요소가 나타날 것이다. 심지어 어떤 날에는 하기 싫은 마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던 변수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습관을 만드는 데 또 다시 실패하고, 나는 스스로를 의지박약이라며 비난할 것이다. 자기합리화는 습관의 가장 큰 적이 된다.
그래서 나는 습관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을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켜지지도 못할 자신과의 약속을 운운하려는 것이 아니다. 명확한 실체를 가진, 타인과의 약속을 말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습관을 들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그 활동을 같이 할 사람을 찾아 ‘모임’을 만들면 된다. 러닝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러닝 크루에 들어가면 된다. 독서하는 습관을 만들고 싶다면 북클럽에 가입하면 된다. 직접 대면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사진을 통해 간단히 인증할 수 있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모임은 강제성을 만들어준다.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약속을 위해서라도 모임에 나가야 한다. 일단 나가면 어떻게든 하려던 일을 하게 된다. 여기에 자기합리화가 끼어들 틈은 없다. 약간의 강제성을 만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습관을 들이는 일은 훨씬 쉬워진다. 그 강제성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모임이다.
돌아보면, 내가 로스쿨을 다니는 동안에는 이러한 모임들이 모든 습관을 만들어준 것 같다. 로스쿨 생활은 동기들과 거의 모든 일상을 함께 보내게 되기에, 필요에 의해 다양한 모임(로스쿨에서는 ‘스터디’라는 단어를 붙였다)들이 꾸려졌다. 혼자 인터넷 강의만 듣다보면 시간 재고 문제를 풀어볼 일이 없으니, ‘사례 스터디’를 통해 꾸준히 사례 문제를 풀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꾸준히 아침 일찍 열람실에 갈 수 있도록 출석을 인증하는 ‘생활 스터디’를 하기도 했고, 체력 관리를 위해 운동을 인증하는 ‘운동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시험 직전에는 매일 자기 전 기숙사 룸메이트와 서로 중요 암기사항을 퀴즈처럼 묻고 대답해보는 암기 스터디를 하기도 했다. 모임은 습관을 ‘약속’으로 전환시킨다. 약속은 약간의 강제성과 책임감을 만들어낸다. 나에게 이러한 모임들이 없었다면, 단언컨대 변호사시험 합격은 진작에 물 건너갔을 것이다.
모임의 힘을 체감한 후, 나는 습관을 들이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함께할 사람을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을 들이고 싶어, 직장 동료와 하루 업무가 끝난 직후 같이 운동을 하러 간다. 업무 특성상 끊임없이 새롭게 나오는 판례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좋은 제안을 받아 금요일마다 판례 공부하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글 쓰는 습관을 들이고 싶은 요즘에는, 자주 가던 독립서점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 프로그램에 새롭게 가입했다. 하나하나로만 보면 결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매일이나 매주, 아주 약간의 시간을 모임이라는 체계 안에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그 작은 시간들이 쌓여 습관을 만든다고 믿는다. 여전히 의지는 부족한 편이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크게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 혼자만의 의지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과 함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어가다 보면, ‘꾸준한 사람’에 아주 조금씩은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