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그 자리를 지켜주길 간절히 바라며
영화를 좋아하냐는 물음은 참 쉽다. '응, 좋아해.', '아니, 별로' 이도 저도 아니면 '뭐, 그냥저냥.'하고 대답해버리면 그만이니까. 물론 세 가지 대답 중 내가 할 대답도 정해져 있다. '응, 좋아해.'
하지만 영화를 왜 좋아하냐고 묻기 시작하면 이젠 어려워진다. 내가 왜 영화를 좋아하지? '재미있어서'라고 간편하게 대답하고 싶지 않다.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이 질문은 면접에서 받는다고 생각하면 더욱 곤란한 질문이 되는데, 어딘가 납득 갈만한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독특한 개성을 보여줄 대답을 하고 싶지만 여기서 참신해지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개인적인 일화를 풀어가며 이야기하는 것이 '나다운' 대답이 될 테지만 면접이라는 자리에서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분명 앞에 앉은 면접관의 구겨진 얼굴에는 '구구절절 사절!'이라는 보이지 않는 글씨가 적혀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늘 안전하고 재미없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이유에는 단연코 영화관이 있다. 어릴 때, 우리 가족은 꽤 자주 영화관에 갔다. 나는 영화관에 가면 무조건 A열에 앉았다. 엄마가 뒷자리를 예매해줘도 나는 영화가 시작하기 바로 전에 후다닥 A열의 빈자리로 뛰어가곤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자리여서 늘 남는 자리가 있었다. 그때는 쏟아질듯한 화면을 그대로 맞는 A열이 좋았다. 커다란 스크린을 두 눈 가득 담기 위해서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야 했다. 나를 가득 채우는 화면과 소리에 강하게 홀렸던 것 같다. 옆자리엔 늘 오빠가 함께 있었다. A열이라는 암묵적인 룰은 어쩌면 오빠에게서 비롯된 걸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가 뒷자리에 있긴 했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만큼은 오빠와 모험을 떠나온 것 같은 기분으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런 원초적인 영화적 체험의 순간들이 쌓여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지 않았나, 라는 추측을 해본다.
어릴 때 자주 가던 영화관은 세 곳이다. 명동 중앙시네마, 대학로 판타지움, 그리고 대한극장. 명동 중앙시네마는 2010년 영업을 종료했고 2020년에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학로 판타지움은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2007년에 대학로 CGV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런 시기였다. 영화관이 하나 둘 씩, CGV로 롯데시네마로 메가박스로 바뀌어가던 시기. 격주로 갔던 판타지움이 CGV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뀐 것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곧 익숙해졌다.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아 CGV가 생겨났고, 성신여대 CGV도 개관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판타지움이라는 이름이 기억에서 잊혀갔다. 2021년 현재, 내가 자주 갔던 세 개의 영화관 중 여전히 그 이름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영화관은 대한극장이 유일하다.
대한극장은 한국영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충무로역 1번 출구에 자리하고 있다. 건물 하나가 통째로 영화관인, 정말 흔하지 않은 공간이다. 하지만 명성에 비해서는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도 많지 않고 한산하고 조용한 편이다.
요새의 영화관이 얼마나 엔터테인먼트가 넘쳐있고 활기찬 공간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물론 코로나로 인해 침체되긴 했지만 극장가는 주말이면 특히 인산인해를 이룬다. 인테리어도 위트 있고 심지어는 대기하는 동안 읽을 책을 구비해 놓은 곳도 있다. 씨네샵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기념품과 굿즈를 판매하기도 한다. 상영관 역시 거대한 스크린과 빠방 한 스피커에, 화룡점정으로 좌석까지 널찍하고 깔끔한 가죽시트로 바뀌는 추세다. 아마 이제는 가죽시트가 아닌 상영관을 찾는 것이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대한극장은 여전히 투박하다. 한때는 최첨단을 자랑했던 상영관은 이제는 낡아버렸다. 앉을 때마다 끼긱 거리는 의자도 많다. 좌석 간 너비도 못 앉을 정도는 아니지만 새로 개관한 영화관에 비해서는 턱없이 좁다. 무엇보다 화면과 스피커도 함께 늙었다. 20년 전 꼬마였던 내가, 이제는 삼십 줄이 가까운 어른이 되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이 곳이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관객으로 가득 찼던 극장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
대한극장에서 <반지의 제왕 : 왕의 귀환>을 봤던 것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X열(A열부터 시작해서 무려 X열!)까지 되는 빽빽한 의자를 가득 채웠던 관객들. 기다려왔던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할 때면 늘 그랬다. 영화관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상영이 끝난 후에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면 한참 줄을 서야 했다. 한 명 한 명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고 내려오면서 다들 흥분해서 영화에 대해 떠들곤 했다. 영화가 재미있을수록 웅성거림은 몇 배나 컸다. 그러나 요새 이 낡은 영화관은 웬만해서는 에스컬레이터를 작동시키지 않는다. 대개 1층~2층의 에스컬레이터만이 운행 중에 있을 뿐이다. 늦은 시간에 영화를 보고 나오면 건물에 불이 꺼져있어서 무섭기까지 하다. 흥분과 설렘이 가득했던 영화관이 쓸쓸하고 허전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대한극장을 찾는다. 대한극장은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념으로 8개 이상의 영화를 상영한다. 거대 자본 영화가 개봉을 하면 홍역을 치르듯 뒤따라오는 상영관 독점 논란을 보고 있자면, 관객의 입장에서 반갑고 소중한 이념이다. 작은 목소리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이 늙어가는 영화관은 여전히 커다란 대들보로 다양한 영화를 받쳐주고 있다.
어느 날 대한극장 1층에 앉아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본 적이 있다. 궁금했다. 충무로의 활기가 옅어진 지금은 누가 대한극장을 찾을까. 빛나던 티켓 창구는 이제 편의점에 자리를 내어주고 매점이 매표소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이 곳, 모바일 어플 조차 없어서 나를 10년 전 감성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이 곳에 말이다.
나를 놀라게 했던 것 중 하나는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관객이라는 점이었다. 왜 신촌에서는 또 코엑스에서는 보지 못했던 걸까. 영화가 시간 때우기 좋은 방식이기 때문일까. 다들 이곳의 빛나던 모습을 기억할까, 어쩌면 그리워하고 있을까. 어떤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까.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들이 생겨났다. 답은 찾을 수 없었지만, 나는 이 쓰잘 떼기 없는 생각들을 이어나갔다.
한 친구가 우스갯소리로 말한 적 있다. 탑골공원이 노년층에게 핫한 건, 그분들이 젊었을 때는 종로가 가장 번화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핫플레이스는 계속 바뀌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트렌드의 주인은 더 젊은 층에게 내어주게 되어있다고. 그러면서 아마 우리는 신촌 언저리를, 이태원의 한 구석을, 성수동의 이곳저곳을 떠돌게 될 거라고. 그래서 저분들이야말로 가장 빛나던 시기의 충무로를 누렸던 분들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으로 내 허무맹랑한 생각은 막을 내렸다.
범람하고 발전하는 극장들 사이에서 대한극장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코로나로 인해 침체된 극장가를 보면 걱정스러운 마음이 커진다. 대한극장은 매 달 큐레이션을 통해 명작을 상영하거나, 포스터와 포토카드와 같은 굿즈를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관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덕분에 내 방 한 켠에는 A3 사이즈의 영화 포스터가 쌓여간다. 나는 대한극장의 큐레이션은 일부러라도 한 편 이상씩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실컷 말해놓고 부끄럽지만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단 한편도 본 적이 없었는데, 작년에 대한극장의 큐레이션을 계기로 보게 되었다. <오아시스>에 이어 <밀양>, <버닝> 등을 보면서 이제야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본 것을 통탄했다. 좋은 테마로 명작들을 상영해주는 대한극장에게 고마울 뿐이다.
나는 진심으로 대한극장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그리고 먼 훗날까지 아주 오래도록 그 자리에 머물러주길 바란다. 관객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다양한 영화를 틀어주는 대한극장을, 소장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굿즈를 나눠주는 대한극장을, 1회 차(보통 11시 전)까지 조조영화로 인정해주는 넉넉한 인심의 대한극장을,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진정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노라고 한 번쯤은 말해보고 싶었다. 여전히 자신만의 규칙으로 관객들을 품어주는 대한극장이 있어 든든하고 감사하다고. 내가 많이 아껴줄 테니 우리 오래오래 함께하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