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nsn Jul 21. 2021

프로도는 왜 샤이어를 떠났을까

상처에 대하여

누군가 내게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다면, <반지의 제왕>은 가장 먼저 나와야 할 영화 중 하나다. 나는 매 해 겨울이면 <반지의 제왕>을 정주행 하는 마법에 걸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각 편을 10번 이상 보고도 여전히 찾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내 친구 S는 몇 년에 걸친 내 호들갑에 못 이겨 <반지의 제왕>을 보게 되었다. 러닝타임도 너무 길고 3부작씩이나 돼서 부담스럽다던 S에게 '재미있다'는 카톡이 왔을 때의 희열이란! 영화관에서 보지 못해 아쉽다는 S와 나는 한참 동안 <반지의 제왕>을 놓고 수다를 떨었다. S가 나한테 물었다.


"3편에서 맨 마지막에 반지를 다 파괴한 다음 말이야. 호빗들이 원래 살던 데로 돌아가잖아."

"응, 샤이어로!"

"근데... 프로도는 왜 샤이어를 떠난 걸까?"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반지의 제왕>을 꽤나 여러 번 보았지만, 내게 영화의 끝은 늘 프로도가 모르도르의 화염 속으로 절대반지를 던지고 사우론의 악의 제국이 붕괴되는 순간과 다름없었다. 그 뒤의 이야기는 어쩌면 뻔하디 뻔한 'happliy ever after'였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 S에게는 그 부분이 못내 가슴에 남았나 보다.


나는 원론적인 대답을 했다.

"1편에서 리븐델로 갈 때, 프로도가 마술사왕한테 칼로 찔리잖아. 결국 그 상처가 끝까지 낫지 않아서 떠난다고 3편 뒷부분에 나와있긴 해."

"흐음... 그렇구나."


다시 대화는 물 흐르듯 이어졌다. 하지만 대화가 끝난 이후에도 S의 질문은 끝까지 나를 붙잡았다. 생각할수록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러게. S의 말처럼 왜 프로도는 샤이어를 떠났을까?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서 샤이어를 떠난다는 게 인과에 맞는 걸까? 중간계를 떠나면 누가 상처를 고쳐주기라도 한다는 걸까? 나는 오래도록 답을 찾지 못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 질문은 서서히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갔다.


정확히 언제, 어떤 순간에 납득 갈만한 대답을 찾았는지는 모르겠다. 깨달음은 늘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오는 법이니까. 친하던 친구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아니면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몇 년간 준비하던 시험을 결국은 포기했을 때? '상처'라는 것을 조금은 이해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나서야 프로도의 선택을 납득하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한 번쯤 거대한 풍파를 맞게 된다. 평온한 일상을 조각내버리는 사건은 생각보다 흔하다. 가족의 죽음, 연인과의 이별, 혹은 하던 사업이 갑자기 망하거나 크게 몸이 아플 수도 있다. 풍파는 우리를 비일상으로 데려간다. 괴로움과 고통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 시간을 살아내고 나면 우리는 '극복'이라는 이름으로 평범한 일상에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아무리 일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풍파를 겪기 전과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듯 보이겠지만, 괴로움 시간은 상처를 남긴다. 그러니 거대한 일을 겪고 나면 완전히 그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리라.



여정을 마치고 샤이어로 돌아온 프로도는 이런 내레이션을 한다.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놀라운 경험을 한 뒤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조차 치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어떤 상처는 너무 깊어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How do you pick up the threads of an old life? How do you go on when in your heart you begin to understand there is no going back? There are some things that time can not mend. some hurts that go to deep that have taken hold.)'


프로도가 말하는 상처가 과연 마법사왕에게 찔렸던 물리적인 상처만을 의미한 것이었을까. 그제야 프로도의 시선에서 절대반지를 버리기 위한 여정이 어떤 무게였을지를 느껴본다. 연약하고 작은 호빗이 거대한 악과 맞선 영웅적인 여정! 이것은 철저하게 제3자의 시선에서 받은 감동 일지 모른다.


승리가 상처를 무효화할 수 없듯, 승자라고 상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래도록 그 영웅적인 이야기에 갇혀 프로도의 상처를 보지 못했다. 절대악의 유혹에 싸우고 도망치고, 사랑하는 동료를 잃고 보내고 떠나고, 두려움에 수없이 부딪혀야 했을 모든 과정들이 (프로도가 버텨낸 것과는 별개로) 어떤 생채기를 남겼을지를 눈을 감고 떠올려 본다. 이제는 그가 떠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말하는 '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