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nsn Apr 08. 2021

내가 말하는 '나'

<비포 선라이즈>가 좋은 이유

<비포 선라이즈>를 처음 본 건 유럽여행을 가기 몇 주 전의 일이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유럽여행을 가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리스트를 찾아냈고, 예습이나 해볼까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영화를 틀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명 관광지와 작은 골목이 담긴 이 영화는 과연 '배낭여행의 로망'을 집약시켜놓은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 우연한 만남과 충동적인 동행,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대화, 단 하루라는 시간제한, 그리고 로맨스까지. 아, 유럽여행은 저런 거구나. 영화일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은 어쩐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로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한다. '여행의 로망'만을 이야기하기엔 <비포 선라이즈>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영화다. 


"널 화나게 하는 게 뭔지 두 가지만 말해봐."

"지금 신경 쓰이는 게 뭐야?"

"너는 환생을 믿어?"

"행복하게 사는 커플을 본 적 있어?"


기차에서 내린 두 남녀는 서로를 향한 물음을 이어나간다. 단도직입적이다 못해 노골적이기까지 한 질문들.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욕구 하나로 튀어나오는, 어쩌면 가장 효율적인 질문이 흥미롭다. 대답은 효율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조차. 질문에서 벗어난 사사로운 이야기와 정립되지 않은 생각까지도 소중한 정보로 여겨지는 아름다움이 좋다.


상대에 대한 정보가 오로지 상대로부터 나오는 환경은 생각보다 마주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만남은 무(無)의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더라도 같은 학교, 같은 지역, 같은 관심사 등 공통 요소를 지닌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라면 점원과 손님, 직장 동료 등 사회생활을 하며 맺어지는 일련의 관계 안에서 존재한다. 하다 못해 소개팅을 해도 동시에 알고 있는 누군가를 거치기 마련이지 않은가. 이미 어느 정도 사전 정보를 공유하는 만남이 모두에게 익숙하다.


접점이 없다는 것은 곧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나를 해석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편견에서 자유로이 자신이 품은 것들을 떠들어 댄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집요한 질문, 꾸밈없는 대답,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여주는 상대방, 그로써 다시 한번 정립되는 '나'라는 사람. 


서로를 전혀 알지 못하던 두 사람이 상대방을 선명하게 그려가는 과정은 보고만 있어도 충만해진다. 깊숙한 곳으로 끊임없이 파고드는 저 시간이 영원히 박제되어 다행이다. 사랑에 빠지는 시점에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자신을 지워버리거나 잃어버리고 있진 않은가.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서로를 발견하는 아름다움을 영원히 느끼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