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미쉬를 보러 떠난 아일랜드, 그리고 믿을 수 없는 그와의 우연한 만남
이것도 벌써 1년 전의 일이다. 작년 4월, 독일로 교환학생을 온 지 한 달 정도 넘어가던 무렵이었다. 학교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낯선 독일 생활에도 꽤 적응했다. 쌀쌀한 회색빛의 궂은 날씨도 이제는 조금 포근해져 있었다. 봄이 오니 몸도 근질근질하고, 공연도 보러 가고 싶어 졌다. 노트북을 펼치곤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공연 예매 사이트에 하나씩 쳐보기 시작했다. 혹시 유럽투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독일에도 오긴 하는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보는 건 나의 교환학생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해외 가수의 공연을 한국에서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으니까.
그러다 자주 즐겨 듣던 톰 미쉬의 이름을 검색했다. 그는 유럽 여러 페스티벌에 공연 계획이 있었는데, 그의 단독 콘서트가 5월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마침 같은 학교로 파견되어 만나 친해지게 된 언니도 톰 미쉬를 좋아하고 있었다! 이럴 수가. 망설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공연 티켓도 겨우 3만 원가량. 주말과 공강을 껴서 일정을 잡아, 나와 언니는 결국 더블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끊었다. 도무지 설레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더블린으로 떠났다.
그렇게 더블린에 도착했다. 아일랜드는 내게 늘 동경 그 자체였다. 음악 영화 <원스>와 <싱 스트리트>의 촬영지이자 음악과 낭만이 숨 쉬는 곳. 거리에는 기타와 함께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더블린 사람들>의 배경지이자 영국과 닮은듯하지만 다른 멋과 매력을 지닌 곳. 직접 발을 디딘 그곳은 내 상상보다 더 멋진 곳이었다. 더블린은 자유로우면서도 어딘가 푸근한 매력이 있는 도시였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정감 있고 친절했다. 도시는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기엔 아쉬워, 아일랜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펍'(Pub)에 들리기로 했다. 가장 유명한 펍 중 하나인 템플 바에 들러 아일랜드산 맥주 기네스를 한 잔씩 마시고 바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관람했다. 아, 그제야 정말 더블린에 왔구나 실감했다. 이 낭만적인 도시에서 곧 그의 공연을 보겠지. 그렇게 첫날 저녁이 저물었다.
톰의 공연은 돌아가기 전날 마지막 저녁에 예정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하루는 아일랜드 서쪽의 해안가 지역 '골웨이'를 다녀와 하루 동안 머물렀고, 나머지 3일 동안에는 더블린 구석구석을 돌며 여행을 했다. 흐리고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더블린의 날씨는 고맙게도 머무는 내내 맑은 하늘을 보여줬다. 물론 그의 앨범을 찾기 위해 레코드점을 방문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4월에 발매된 톰의 신보는 무척이나 좋았기에 CD로 소장하고 싶기도 했고, 혹시나 공연이 끝나고 사인을 받을 기회가 생길 수도 있으니 미리 사두려는 생각도 있었다.
역시 음악의 도시답게, 더블린에는 크고 작은 여러 레코드점이 있었다. 톰의 앨범을 찾다가도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보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톰의 앨범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너무 최신 앨범이었던 걸까? 그래도 이번에 공연까지 하러 오는데. 'Do you know Tom misch? Is his album here?'라는 질문을 입에 달고 이리저리 물어 다녔지만 다들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친절하게도 사람들은 '여기 레코드점에는 있을 수도 있을 거야' 하며 다른 레코드점을 내게 알려주었다.
결국 나는 공연 당일, 어느 레코드 가게 주인분이 알려주신 대형 레코드점 <Tower Record>에서 톰의 앨범을 겨우 발견할 수 있었다. 딱 한 장 남아있던 그의 앨범. 3층으로 된 워낙 큰 건물이었기에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뱅뱅 돌다가 직원분의 도움으로 찾을 수 있었다. 드디어 나의 품에 오게 되었구나! 앨범 표지만 봐도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드디어 공연 당일. 나와 언니는 더블린의 명문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도서관 'Long Room'을 구경한 뒤,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여행지 추천 어플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더블린의 1위 맛집 'Cafe Beanhive'를 발견했다. 아일랜드식 브런치가 유명한 곳이었고, 거리도 가까웠기에 그곳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역시 유명한 음식점답게 사람으로 바글바글했기에 조금 기다렸다가 아담한 가게 내부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커피와 함께 브런치를 주문했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한 남자가 어딘가 익숙하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근데 맞는 것 같아. 말도 안 돼. 당황스러운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지금 뒤에 카운터에서 주문하고 있는 남자... 톰 미쉬 같은데..." 언니는 뒤를 돌아봤고, 우리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진짜 그가 맞다. 정말 톰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절부절했다. 어떡하지 언니, 가서 말 걸어볼까? 어떻게 이렇게 만날 수가 있지? 뭐라고 말해야 할까, 하면서 말이다.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어느새 그는 주문을 마치고, 공연 일행들과 함께 가게 앞으로 나가 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 망설였다간 그가 떠나버릴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언니와 함께 가게 밖으로 나갔다.
가게 앞에 서있는 그에게 주뼛주뼛 다가가 말을 걸었다. "Excuse me, are you really Tom misch?" 물어보니 자기가 맞단다. 말도 안 돼. 실제로 만난 그는 더 멋졌다. 언니와 나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독일로 교환학생 온 한국 학생인데, 너 공연 보려고 더블린까지 날아왔다고. 너의 노래 정말 좋아하고, 오늘 공연 너무 기대하고 있다고. 그는 너무 고맙다고 말했고, 함께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는 부탁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혹시 사인을 받을 수 있을지 묻자 그는 "물론이지! 공연 끝나고 무대 뒤 쪽으로 오면 내가 해줄 수 있을 거야."라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의 노래 가사 'You should come south of the river'처럼, You should come to South of Korea!라고 말했다. (그리고 톰은 정말 그 해 여름, 한국에 처음 방문하여 내한 공연을 했다.)
그렇게 톰을 만나고 난 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저녁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표를 끊고 공연장으로 입장했다. 좌석은 2층 뒷자리였지만, 그의 공연을 즐기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공연장은 한국보다는 좀 더 자유분방한 분위기였다. 공연은 스페셜 게스트인 톰의 여동생 Laura Misch의 연주로 시작됐다. 그녀 또한 색소폰을 연주하고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인데, 매혹적인 연주로 공연장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었다.
그리곤 그의 무대가 펼쳐졌다. 보는 내내 입을 다물질 못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했고, 그저 너무 행복했다. 음원보다 라이브로 듣는 게 좋은 건 당연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나 좋아도 되는 걸까.
무엇보다 그의 공연을 보며 강렬하게 느꼈던 건 그는 아직 너무 젊고 재능이 넘치는 청년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겨우 20대 초반인 데다가, 예술적 영감이 가득 흘러넘치고 음악엔 자신만의 색깔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가사엔 그 나이 때에만 나올 수 있는 생각과 삶에 대한 고민들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진심 어린 가사와 진정성 있는 음악. 자신의 방에서 음악을 만들고 기타를 연주하며 녹음을 했을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음악을 온전히 즐기고 연주하는 그가 그저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무언가에 저렇게 푹 빠져 있을 수 있다는 게.
공연이 끝나고, 오랜 기다림 끝에 톰에게 사인을 받을 수 있었다. 그가 오라고 말했던 장소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매며 오랜 시간 동안 공연장 밖에서 그를 기다렸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다리가 아파오고 차가운 밤공기 덕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오는 무렵, 우리를 본 공연 관계자분은 우리가 톰을 보러 더블린까지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감사하게도 그에게 사인을 받아다 주셨다.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가 남긴 'Nice to meet you at Beanhive cafe Dublin!'와 함께 그려져 있는 귀여운 하트. 오늘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하루구나, 하고 생각했다. 정말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며.
여운은 너무도 강렬했다. 나는 그날 숙소에 도착해서도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지난 시간들이 모두 꿈결처럼 느껴졌다. 더블린을 떠나 공항으로 가는 길에서도, 독일 땅을 밟고 내 방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에도 그랬다. 그의 노래를 들으면 어김없이 더블린의 풍경이 떠올랐고 모든 게 생생하기만 했다. 일주일간은 그 여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요즘 들어 톰의 노래를 자주 꺼내 듣는다. 작년 무렵 내가 있던 더블린을 떠올리면서. 평소와 달리 이상스레 맑고 푸르던 하늘과,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 거리 곳곳엔 음악이 숨 쉬던 곳. 그리고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톰과의 만남과 행복했던 공연까지. 모든 게 믿을 수없이 설레고 아름답던 더블린의 시간이었다. 삶은 참 기이하고도 신비롭다. 가끔은 이렇게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생겨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