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 Oct 04. 2019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악보 가게

우연히 마주친 거리에서 발견한 기쁨

동물원에서 저 멀리 보이던 알프스산맥


잘츠부르크에서 머물던 마지막 날, 나는 오후 무렵 귀여운 동물들이 많다는 잘츠부르크 동물원을 다녀왔다. 2시간 안되게 구경한 뒤 내리쬐는 햇볕을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중심 거리로 돌아왔다.



언니들과 마카르트 다리 근처에서 만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았었기에, 거리를 한가로이 걷고 있던 중 한 악보 가게를 발견했다.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곳이다. 이 도시의 악보 가게라면 왠지 다른 곳보다 더 특별할 것만 같았다. 설레는 맘을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https://goo.gl/maps/4osex3PVRqgenSvXA


Mayrische Buch-, Kunst- und Musikalienhandlung GmbH            

악보 가게는 마카르트 다리 강변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오스트리아 유명 카페인 '카페 자허'에서 가깝다.



Ein Leben ohne Musik wäre... wie ein Frühstück ohne Kaffee
음악이 없는 삶은, 아마 커피가 없는 아침과 같을 것이다


악보 가게 앞에 쓰여 있던 한 문장. 너무도 맘에 드는  말이었다. 모차르트의 도시답게, 그의 악보집은 유리창을 바라본 채 차례로 놓여 있었다.



가게 밖에선 빨간색 플라스틱 상자 속에 여러 저렴한 악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저렴하게 원하는 악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 오랫동안 고개를 숙인 채 악보집을 구경했다.


사진 출처: Salzburg Altstadt 홈페이지


밖에서 악보 구경을 마친 뒤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역시나 방대한 종류의 악보가 나를 반겼다. 밖에서


보기엔 아담해 보이던 가게였는데, 내부로 들어오니 꽤나 넓었고 가게 곳곳을 악보가 메우고 있어서 풍족한 느낌이 들었다. 악보 외에도 음악 관련 도서들도 많이 놓여 있었다.


아담한 사이즈의 바흐 콘체르토 악보 집과 비틀스의 노래를 담은 두툼한 악보집


가게 왼쪽엔 악기 별로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등등) 세분화되어 악보가 분류되어 있었다. 교향곡, 협주곡 등의 악보도 다양하게 있었고.


피아노, 바이올린 등 주요 악기 위주로 악보가 구성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거의 모든 악기의 악보가 구비되어 있어 정말 놀랐다. 작은 도시에 이토록 풍성한 악보 가게라니. 역시 음악의 도시 다웠다.


어빙 베를린의 악보와, 데이브 브루벡의 가장 유명한 곡 <Take Five>


한창 재즈 음악에  빠져 있었던 나는 오른쪽 벽면의 재즈 코너로 향했다. 빌 에반스, 데이브 브루벡, 듀크 엘링턴 등 내가 좋아하는 재즈 아티스트들의 악보는 물론이고 영화에 수록된 재즈 음악들, 스탠다드 재즈 악보집 등 다양한 악보가 책장에 꽂혀 있었다.



정말 구매하고 싶었던 <리얼 북> 6번째 에디션. 리얼 북은 유명한 재즈 스탠다드 곡의 멜로디와 코드를 수록한 모음집인데, 유명 재즈 곡은 다 수록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재즈가 지닌 자유분방함과 즉흥성이라는 특성상, 같은 곡이어도 서로 다른 코드와 멜로디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리얼 북이 출판된 이후론 모든 아티스트들이 혼동 없이 통일된 악보로 효율적으로 합주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달콤한 멜로디를 지닌 <I Could Write A Book>


가장 좋아하는 재즈 피아니스트인 윤석철이 리얼 북 악보를 보며 연주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었다. 정말 구매하고 싶었지만 두툼한 두께와 비싼 가격 탓에 내려놓아야만 했다. 숙소 한구석을 지키고 있는 - 이미 여러 짐으로 빵빵해져 있는 나의 캐리어가 생각났었기에.



독일의 민속노래 가사, 멜로디 모음집도 있었다. 크기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아담한 사이즈였다. 쨍한 노란색 표지와 디자인이 너무 예뻤기에 이유 없이 그냥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악보집은 1층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재즈 악보 구경을 마치고 기타 아기자기한 소품을 구경하는 중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니! 손에 들고 있던 오선지 노트를 내려두고 얼른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구글 리뷰 사진 캡쳐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어째 더 넓어 보이는 듯한 공간과 차곡차곡 쌓여져 있는 악보가 나를 반긴다. 안 그래도 클래식  악보는 어디에 있나,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이곳에 모두 모여 있었다! 마치 물 만난 물고기가 된 기분이었다.



계단 바로 옆 선반에는 알파벳 순서대로 작곡가들의 악보가 분류되어 있었다. 나는 가장 좋아하는 쇼팽, 바흐의 악보를 먼저 구경했다. 쇼팽의 녹턴, 왈츠, 에튀드, 프렐류드, 발라드 등 종류별로 악보집이 놓아져 있었다.


 악보들이 높이 쌓아져 있었던 탓에 힘겹게 꺼내며 보고 넣고 빼기를 반복했다. 나는 정말 이곳에서 악보 한 권을 구매하리라 다짐했었기에 고심하면서 악보를 구경했다. 평소 결정을 잘 못하는 나이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Wiener Urtext Edition


가장 눈을 사로잡았던 Urtext 비엔나 에디션. 사실 나는 이때만 해도 'Urtext'가 무엇인지 몰랐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검색해보니, 독일어로 Urtext는 원본, 본문을 뜻한다고 한다.


즉 작곡가가 만든 최초의 원본에 가장 가까운 이 악보는 편집자가 임의적으로 추가하는 악보 기호 등이 최소화되어 있다.


마지막 후보였던 쇼팽의 녹턴


결국 최종 후보는 쇼팽의 녹턴. 독일에서 쇼팽의 녹턴을 유난히 자주 들었고, 한국에 돌아가면 꼭 녹턴을 연습하겠다고 마음먹었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두 악보를 두고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비엔나 에디션을 살 것인가, 기본 에디션을 살 것인가. 비엔나 에디션이 더 희소성 있을 것 같았지만 디자인은 오른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직 2주나 더 여행을 해야 했고, 가격도 조금 부담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행 내내 저 악보가 망가지지 않게 보관할 자신이 없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한국에서도 저 악보를 팔고 있었고, 가격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악보를 그릴 수 있는 손바닥 크기의 노트.


결국 욕심을 버리고,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빈손으로 나가기엔 너무 아쉬웠기에 Urtext 악보 커버와 자그마한 오선지 노트를 구매했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악보를 구경하고 마침 언니들의 연락을 받고는, 기분 좋은 마음을 가득 안고 밖으로 나섰다.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거리에서 뜻밖의 장소를 발견하는 기쁨은 참으로 크다.


해가 길었던 여름의 잘츠부르크


그렇게 잘츠부르크에서의 마지막 날이 저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있어 난 더블린에 왔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