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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Mar 09. 2020

낭만을 아는 주인아저씨의 아기자기한 에어비앤비

방 안의 기다란 창문이 그렇게나 맘에 쏙 들었다


문제의 아메리카노



지금은 로마다! 독일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라 그런지 또 새삼 떨리는 기분이었고, 비행기를 타기 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더니 심장이 자꾸 두근거려서 애먹었다. 아무래도 앞으로 비행기 타기 전엔 카페인은 자제해야 될 것 같아.






치안이 좋지 않다던 로마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다. 잔뜩 긴장한 채로 커다란 캐리어를 달달 끌며 주변을 경계하며 걸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거리의 건물과 풍경은 이곳이 이탈리아임을 실감하게 했다. 네모나고 세모난 독일의 건물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직 6월 초인데도 후덥지근한 공기와 뜨거운 열기가 끌어 오른다.




길쭉하게 나있는 방안의 창문이 그렇게나 맘에 들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H 언니와 함께다. 우리는 고민 끝에 어느 에어비앤비를 예매했는데, 조식도 주고 시설도 깔끔한데 너무 저렴해서 결제를 마치고 나서도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우리의 숙소는 3층, 127번가에 있다. 처음엔 어떻게 들어가는 몰라서 대문 앞에 당황한 채로 서있었는데, 다행히도 주인아저씨가 우리의 전화를 받고 문을 열어주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현관 계단을 올랐다. 두 명만 간신히 들어가는 옛날식 엘리베이터를 타고 드디어 숙소 앞에 도착했다. 난생처음 타 보는 이런 엘리베이터가 신기했다. 문을 열고 닫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만큼 완전 수동식이었으니까.



그렇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방은 어찌나 근사했는지 모른다. 높은 천장 위엔 천천히 돌아가는 순환기가 있고, 벽에는 주인아저씨의 취향이 묻어나는 그림이 걸려 있다. 빈티지한 벽지의 색은 이곳과 잘 어울렸고 심지어 방 안엔 스피커도 있었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아저씨는 귀여운 강아지도 키우고 계셨다. 벽장엔 수많은 영화 DVD가 옹기종기 꽂혀 있고, 책장 선반 한 칸은 악보로 가득히 메워져 있다. 주인아저씨는 음악에 조예가 깊으신 게 분명하다. 낭만을 아는 아저씨다.




아저씨가 친절하게 지도에 적어주신 맛집과 관광지들
정말 다음날 저녁, 아저씨가 추천해주신 맛집에서 정통 까르보나라를 먹었다! 계란이 들어간 꾸덕하고 짭조름한 맛.



현관문 열쇠가 조금 뻑뻑한 것 빼고는 모든 게 맘에 들었다. 예상보다 너무 좋은 방에 한껏 들뜬상태로 아저씨의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지도 2개를 건네고 아주 친절하게 주변의 맛집과 디저트 집을 설명해 주셨다. 여기는 까르보나라가 맛있고, 저기는 딸기 타르트가 맛있고, 어떤 거리가 구경할만하고, 기념품은 어디서 사는 게 저렴하고...



이탈리아어 억양이 배인 영어는 항상 너무 귀엽게 들린다. 나와 같은 플랫에 사는 Mary도 이탈리아 친군데, 그 친구와 이야기할 때면 늘 기분이 좋아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들 밝고 활발하고 수다쟁이다. 우리 한국과 비슷한 점도 많다. 3면이 바다라 풍족한 식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우리처럼 쌀을 주식으로 먹고, 찌는듯한 여름의 더위도 비슷하다. 급하고 열정적인 성격까지도.




쌀맛 젤라또. 상상도 못 했던 신선하고 중독성 있는 맛.



그렇게 설명을 다 듣고 언니와 나는 짐을 간단히 챙기고 잠깐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차분해진 밤거리의 분위기가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이탈리아 하면 역시 젤라또를 빼먹을 수 없기에, 어둠을 뚫고 10분 정도를 걸어 <Fassi>라는 젤라또 집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가게 안은 젤라또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고, 우리는 줄을 서서 세 가지 맛을 주문했다.



쌀 맛 젤라또가 그렇게 맛있다고 해서 한번 담아봤다. 정말 맛있을까, 하고 의심을 가득 품었는데, 입에 넣는 순간 정말 묘하고 매력적인 쌀맛이 가득 퍼졌다. 쌀에서 어떻게 이런 달콤하고 깔끔한 맛이 날 수 있는지. 난생처음 먹어보는 본고장의 젤라또는 아주 쫀득하고 찰기가 넘쳤다. 이제껏 먹었던 아이스크림을 모두 잊게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남은 여행 동안 '1일 1젤라또'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숙소에 돌아와선 깨끗이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얼른 스피커에 핸드폰을 연결하고 빌 에반스와 토니 베넷의 'When In Rome'을 틀었다. 로마에서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그리고 왠지 로마와 어울리는 듯한 글렌 밀러의 재즈음악과 우디 앨런 영화 OST를 틀었다. 노래만으로 한결 더 멋진 밤이 되었다.



이곳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방안의 기다란 창문이다. 창문 옆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지금 글을 쓰고 있다. 내가 꿈꾸던 유럽이 눈앞에 있다. 지금은 11시가 좀 넘었으려나. 창문은 활짝 열어 두었고 나무 블라인드를 쳐두었다. 밖은 여름이었고 한밤중인데도 춥기는커녕 기분 좋은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밖에서 대화하는 사람들의 간간한 말소리도 들려온다. 아 로마, 이토록 아름다운 곳이었다니.





다음날 일어나 먹은 조식. 별거 아닌데도 왜 이렇게 맛있었는지



내일이면 맛있는 조식도 먹을 수 있다. 부엌에는 요거트와 빵, 잼, 초콜릿, 과자, 차와 커피까지 모두 넉넉히 구비되어 있었다. 아 - 너무 좋아서 잠들고 싶지 않다. 소매치기 없이 안전하게 여행한다면 아마 더없이 아름다운 로마가 될 거다. 행복하다.



영화의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이제껏 방문했던 유럽이라곤 지금 살고 있는 독일, 네덜란드가 전부였는데, 북쪽 유럽만 보다가 남부 유럽에 오니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너무 신기해.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다른 환경과 날씨 속에서 각자만의 고유한 생활방식을 만들고 살아가는 모습이. 아직도 들뜨고 설레서 잠이 오지 않는다. 완벽한 로마에서의 첫날이다.



6월 6일, 수요일







로마에서 글을 쓰면서 들었던 음악

♬ Bill Evans & Tony Benett - When In Rome

https://youtu.be/fj2S-Fr7P6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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