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를 건네며
이것은 사적인 앨범이다.
내 모습은 하나도 담기지 않은 풍경 사진 꾸러미인데 그렇다.
2018.12.24. - 2019.3. 9. 겨울 한철을 담은 이 사진들은, 먼 훗날 이렇게 공개하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않고 찍은 것들이다.
그래서 매우 솔직하다.
여행 직후 처음 몇 년 간 이 사진들을 돌아보았을 때는 전혀 특이함을 느끼지 못했다. 아마 비슷한 감정 속에 한동안 쭉 머물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2026년 2월 현재, 이 사진들을 다시 꺼내 보니 그때의 분위기와 감정이 풍경 속에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어서 놀라울 지경이다. 카메라 렌즈가 바로 내 눈이었고, 찍힌 사진 한 장 한 장이 바로 내 마음밭이었다.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 놀라움을 나누고 싶었다.
그 당시 찍은 사진이 꽤나 많아서, 전부를 놓고 세세하게 검토해 보지는 못했다. 아마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동시에 차근차근 정돈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브런치 연재를 위해서는 대표적인 사진 한 장을 표지로 선정해야만 했다.
고민 끝에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가운데 내가 맨 처음 여행지로 계획했던 남프랑스를 최우선으로 선택하고, 그 당시 감정의 절정을 이루었던 툴롱, 그 전후 인근의 사진을 집중적으로 찾아보았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고른 사진이 바로 다음 두 컷이다.
첫째는 깐느에서 찍은 사진으로 누가 봐도 남프랑스의 휴양지 모습 그대로다.
둘째는 끝까지 고민했던 사진으로, 생트로페를 찍은 원거리 풍경이다. 가운데 나무들을 두고 왼쪽에는 성당 및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있고, 오른쪽에는 바다의 물결만 가득하다.
사진 자체의 매력이 잘 전달이 될지 모르겠다. 다만 사람들이 모인 곳과 적막한 곳 사이에서 길을 완전히 잃은 듯한 내 심경이 구도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국 나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쪽 대신 독자들이 기대하고 공감할 법한 남프랑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쪽으로 기울었다.
여기에서 나의 작가로서의 마인드와 행보가 또렷하게 보인다. 예전과 달리, 이제는 책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확실히 정해진 것이다.
벌써 7년이나 지났다.
당연히,
이제 그 풍경은 없다. 그곳에 나도 없듯이.
또,
그곳이 특별해서 더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불과 3 시간 전, 나는 서울 강남역 사거리에 있었지만 지금 그곳은 이미 다른 풍경이 되어있을 것이다. 나도 그곳에 없고.
한 철학자가 말했듯, 아무도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는 없다.
그러니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각별한가. 이제서야 깨닫는다.
나는 프랑스어를 2년 간 배웠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1년 동안 살기도 했다. 그렇지만 프랑스어를 모국어만큼 잘 들을 수는 없다.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텅 빈 거리여서, 피부색이 다른 나를 여행객이나 나그네로 여기지 않았다.
말이 들리지 않았던 만큼,
사람이 없었던 만큼,
여행이 아니라 체류라고 느껴졌다.
비로소 살 수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타인들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인들 앞에서는 괜찮은 척, 때로는 덜 괜찮은 척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있는 그대로 있어도 되었다.
황량하고 텅 빈 풍경이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았고, 괜찮았다.
나와 똑같은 모습의 풍경이 동행했기에 충분했다.
이제 그 풍경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려 한다.
지금, 어지러운 현실 속에 잠시 괴롭고 지쳐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잠깐 함께 걸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