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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삿포로 여행 (1화)

눈의 왕국 삿포로, 두 번째 여행의 시작

by 하루


우리가 삿포로로 다시 떠난 이유


아련 본격적으로 2월 삿포로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여행을 가기 전 삿포로에 대해 갖고 있던 이미지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2018년 2월 삿포로를 방문하기 전에 우리 세 명이 모두 이전에 삿포로를 여행한 경험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삿포로에 대한 사전 이미지가 다 다를 것 같은데, 형주는 어땠어요?


형주 설국. 엄청나게 눈이 많이 내리는 곳. 하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은 곳이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눈의 왕국이 떠오르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따뜻한 느낌?


아련 형주는 한 해 전에 삿포로에 갔을 때 조금 힘들었던 경험이 있잖아요. 워낙 눈이 많이 쌓여있는 도시이다보니 도로나 길에서 걸어다니는 게 불편했고 신경을 쓰면 쓸수록 다리도 아팠고. 그 때 그렇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는데도 또 가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어요?


형주 일본에서 여러 도시를 가봤지만, 그 중에서도 삿포로가 제일 좋았어요. 먹는 거나 거리 풍경, 느낌들이 좋았어요. 늦게까지 다들 술을 먹는 것도 좋았어요. 일본의 다른 지역 어느 곳과 비교해도 현지인들이 그렇게 늦은 시각까지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삿포로 시내는 그런 점에서 좋았어요.


아련 오사카나 후쿠오카에서도 늦게까지 여는 술집들이 있지 않았어요?


형주 늦게까지 여는 술집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관광객을 위한 곳들이었어요.


아련 (미소) 그렇다면 삿포로는 술꾼들에게 좋은 도시네요.


형주 아름답죠. (흐뭇)


아련 2월 유랑은 성훈이까지 세 명이 함께 떠난 여행이었죠. 성훈이는 2월 삿포로 여행을 가기 전까지 일본에서 유일하게 삿포로만 가봤었죠?


성훈 고등학교 때 후쿠오카를 갔는데 그건 이미 11년 전이라서 너무 오래 됐어요. 삿포로는 2017년에 워킹홀리데이를 마무리하는 여행으로 도쿄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가 넘어가서 둘러본 경험이 있었어요. 일본인 친구가 살고 있기도 했고, 마침 그 때 영화 ‘러브레터’에 푹 빠져있을 때라 꼭 들르려고 했어요.


아련 삿포로를 한 번 여행한 상태였는데도 다시 삿포로 여행을 가자는 말에 흔쾌히 동의했잖아요. 어떤 이미지들이 기억에 남아있었어요?


성훈 저는 ‘삿포로’하면 뭔가 그리운 이미지가 있어요. 작년에 이어서 이곳을 또 다시 왔다는 생각에 그런건지 그리운 감정이 떠올라요. 도쿄나 서울만큼 바쁘지 않고, 현지인들에게는 예쁘기만 한 게 아니지만 눈이 그만큼씩 쌓여있는 풍경도 좋고. 그런 이미지들이 총체적으로 그리웠어요.


아련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아요. (다들 미소) 결국에 우리는 다 삿포로를 한 번씩 가본 상태에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가는 데도 쉽게 의견이 뭉쳐진 거네요.


형주 생각해보면 우리가 처음 삿포로를 방문했던 건 같이 여행을 간 게 아니었는데도 2017년 1-2월 즈음으로 거의 비슷한 시기였어요. 성훈이가 우리보다 며칠 먼저 가서 삿포로 여행에 대한 팁을 우리에게 조금 전해줬고, 그 때 오타루를 다녀오는 일정도 조언을 해줬고요. 그런데 1년 뒤에 비슷한 시즌이 왔을 때 여행을 가고 싶은 곳으로 다시 삿포로를 떠올려서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으니 어떻게 보면 이것도 참 신기해요.


아련 이전에 여행을 갔던 시기나 이번에 시간이 맞았던 것들이 사실은 다 우연인데, 어떻게 딱딱 맞아떨어졌어요. 삿포로 여행을 딱 한 번만 간다면 삿포로 시내를 본 뒤에 오타루를 다녀오는 것이 정말 전형적인 코스라고 생각해요. 요즘에야 비에이나 후라노가 매체에 많이 노출되면서 함께 코스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2018년 초기만 해도 삿포로와 오타루까지가 가장 대표적인 코스였어요. 그런데 우리 셋은 첫 번째 삿포로 여행에서 그 코스를 모두 다녀왔고, 그러다보니 조금 덜 전형적인 여유로운 코스로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삿포로를 다시 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뭐였는지-


형주 좋아서. 첫 번째 여행이 좋았기 때문에 뭐, 다른 말이 필요한가요.


아련 (웃음) 내가 삿포로를 또 가고 싶었던 이유는 일단 양고기. 맛있는 먹거리가 많다는 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어요. 아 맞다, 그리고 이건 정말 현실적인 이유인데- 2월 삿포로 여행을 가려고 한 시기가 설 연휴 직전이었어요. 겨울이 물론 삿포로 여행 성수기이긴 한데 저가 항공으로 잘 구하면 서울-부산 열차표 가격보다 삿포로-부산 편도 비행기 티켓을 더 저렴하게 구할 수 있거든요.


성훈 그건 서울-부산의 경우이고, 삿포로-대구 편도 티켓은 서울-대구 열차표 가격보다 더 비쌌어요. (다들 웃음) 그 때 에어부산을 처음 타봤는데 기내식도 주더라고요.


형주 아, 하나 더 덧붙이자면 삿포로를 떠올렸을 때 조금 물가가 비싼 곳이라는 이미지도 갖고 있었어요. 항공권도 일본 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조금 비싸기도 하고요.



눈의 도시 삿포로 여행, 그 첫 인상은


아련 사실 나는 ‘삿포로’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강렬한 첫 인상이 있어요. 처음 삿포로에 갔을 때 비행기에서 내려서 공항 입국장으로 걸어들어갈 때 창 밖을 봤는데 온세상이 눈에 덮혀 있었어요.


형주 아, 비행기에서 내려서 통로로 걸어들어갈 때-


아련 네! 사방에 하얀 눈이 덮혀 있었는데 그게 새하얀 것이 아니고 내 느낌에는 그게 파랗게 보였어요.


형주 치토세 공항에 주차장이나 이런 곳이 파-랬죠.


삿포로의 이미지.PNG 삿포로에 처음 도착했을 때 공항 바깥의 풍경에 매혹되어서 찍었던 사진. 나에게 겨울 삿포로는 딱 이런 이미지다.


아련 마치 푸른 얼음의 느낌? 얼음 왕국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형주 2017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삿포로 도착 비행편이 해가 막 지고 난 뒤에 내리는 일정이라서 더 그랬을 거예요. 공항에서 나와서 삿포로 시내로 들어간 뒤에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두워졌을 때였고요.


아련 이번에는 삿포로역에서 숙소쪽으로 이어지는 실내 통로를 따라서 이동했잖아요. 통로 끝에서 나온 순간부터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눈이 정말 엄청나게 쌓여있었는데 정말 비현실적으로 쌓여 있던 풍경이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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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삿포로 시내. 눈 안에 사람 키만한 사물이 묻혀있어도 알 수가 없다.


형주 큰 길은 재설 작업이 확실하게 다 되어 있지만 이면도로는 거의 재설을 안 하고 눈이 내린 만큼 그대로 두니까요. 신기한 광경이죠.


아련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우리가 생활하는 반경에서 눈이 그만큼 쌓여있으면 예쁘다는 느낌보다는 현실적인 걱정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거든요. 남의 나라라서 그런지-


형주 지난 수 년간 서울에 그만큼 압도적으로 눈이 내린 적이 없긴 해요. 불편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넘어서서 사람의 키만큼 쌓일 정도로 눈이 오는 경험을 서울에서 찾기는 힘들죠. 두 사람은 어릴 적에 우리나라에서도 남쪽에서 살았으니 더더욱이 삿포로의 그런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보였을 거예요.


아련 (어릴 적을 회상하며) 눈이 많이 오는 날은 정말 혼돈의 카오스 그 자체였어요. 그런데 삿포로는 눈이 엄청나게 내려서 다 쌓여있는데 동시에 모든 게 정돈되어 있는 거예요.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그 광경을 차분하게 완성하고요.


형주 처음 갔을 때도 느꼈고, 이번에도 그랬는데 삿포로 시내에서 현지인들을 보면서 옷차림이 눈에 띄었어요. 우리는 마치 오로라 여행 가듯이 완전 무장 수준으로 추위에 대비하고 여행을 왔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현지인들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랑 크게 다르지 않은 옷차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직장인들은 다 정장 입고, 코트로 마무리하고, 다들 구두 신고.


성훈 다누키코지나 지하상가가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실외를 오래 돌아다닐 일이 그만큼 없는 환경이었어요.


형주 두터운 패딩으로 꽁꽁 싸멘 사람들은 거의 다 여행객들. 그리고 실내에 들어가면 다들 따뜻하게 되어 있어서 어디든 실내에 들어가면 껴입고 온 우리들은 항상 더웠어요. 날씨와 옷차림면에서 신기한 순간이 많았죠.


아련 쇼핑몰에 가서 구경을 할 때도 보면 겨울이라고 다 두꺼운 옷들만 디피되어 있는 게 아니었어요. 다 우리 나라로 치면 가을옷 정도되는 얇은 옷들이 대부분이었요.


형주, 성훈 맞아, 맞아요.


아련 춥다고 겨울겨울한 옷을 껴입고 무조건 따뜻한 것만 찾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예쁜 패션 아이템들을 꼭 챙겨서 다니는 모습들이 많이 보였어요.


형주 아마 삿포로 시내보다 교외로 나가면 우리가 생각하는 방한복, 방한용품들로 무장하고 지내야 하는 곳들이 더 많겠지만 삿포로 시내에서는 그런 복장을 보기 힘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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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옷을 두텁게 차려입고 다니지는 않는다. 두 사진 모두 유키 마츠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성훈 삿포로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살고 있는 일본인 친구 유우카를 만났을 때도 그 친구가 캐나다 구스를 입고 있었잖아요. 현지인들이 그런 패딩을 입은 걸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다고 말했더니 ‘삿포로 사람도 추워요’ 이러는데-


형주, 아련 하하하하하하


성훈 ‘역시 이런 게 없으면 겨울나기 힘든 거지?’ 했더니 자기가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서 그렇다고.


형주 어쨌든 외투 안에는 대부분 다 적당히 얇은 편한 옷을 입고 있었으니, 생각보다 무조건 껴입는 사람들은 못 봤어요. 우리가 묵었던 첫 번째 숙소인 텐투텐 게스트하우스에 갔을 때도 스탭들이 모두 데님 셔츠에 짙은 회색 후리스만 하나씩 걸치고 있었어요.



삿포로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텐투텐(Dot to Dot) 게스트하우스


형주 이번 여행에서 삿포로의 첫 인상이라고 하면 첫 번째 숙소였던 텐투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가기 전에는 게스트하우스인데 꽤 비싼 가격으로 잡아야 해서 어떤 곳일지 궁금했어요. 그런데 숙소 앞에 도착해서 건물 외관을 보는 순간부터 ‘여기는 확실히 예쁘고 좋은 곳이다’라는 느낌이 왔죠. 체크인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접객도 친절하고 좋았고, 짐을 풀고 나서 지하 레스토랑에 내려가서 웰컴 드링크를 먹을 때 우연히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한국인 직원분과 이야기를 하게 된 것도 좋았어요. 덕분에 숙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맛집들도 추천 받았고요.


성훈 방금 언급되었던 스탭들의 복장도 사실 산 속 어드메 별장에 있는 그런 분위기의 복장이었어요. 지하 식당이나 방에 들어갔을 때도 계단부터 모든 시설이 나무로 지어져 있어서 진짜 설국의 중심부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은 그곳이 삿포로 도심이었는데도요.


아련 우리가 애초에 첫 번째 숙소로 텐투텐을 선택해서 하루만 따로 묵게 된 이유가 그 날짜에 삿포로 시내 어디에도 다른 숙소를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잖아요.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텐투텐에서 조금 더 머물렀어도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형주 우리가 숙소를 구할 수 없었던 2월 11일이 삿포로의 가장 큰 축제 중에 하나인 유키 마츠리 마지막 날이었고, 그래서 4인실 도미토리를 예약했음에도 조금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했죠. 마츠리가 끝나고 나서는 텐투텐도 다른 숙소들처럼 더 저렴한 가격으로 묵을 수 있었을테니, 더 머물렀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성훈 게스트하우스를 10군데 넘게 가 본 것 같은데 그 중에서 가장 좋았어요.


아련 게스트하우스 치고는 굉장히 자본이 많이 들어간 티가 나는 곳이었죠. 지하 1층에 단독으로도 운영할 수 있는 사이즈와 퀄리티의 레스토랑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형주 간단한 음료 정도만 만들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었죠. 풀서비스가 다 되는. 음료도 커피부터 와인, 맥주까지 다 가능했고 음식도 정말 그 자리에서 요리를 해서 식사가 나왔고요.


성훈 개인별 실내화부터 게스트하우스 내에서 사용하는 모든 제품들이 텐투텐 전용으로 커스터마이징 되어 있었어요.


아련 그래서 이 정도 규모의 게스트하우스는 그냥 하나의 기업이구나, 싶었어요.


형주 건물 밖 공터에서는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숙박도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매뉴얼이 다 갖추어져 있고 그것을 일일이 안내해주는 게 대단했죠.


tentoten1.PNG 우리는 반겨주던 한겨울 Ten to Ten Guest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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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1층에는 왼쪽 사진처럼 꽤 멋진 레스토랑이 항상 운영된다. 같은 공간에서 조식을 먹을 수 있는데 오른쪽 사진이 내가 아침에 받았던 조식의 모습. 음식이 맛있다.


성훈 ‘텐투텐(Dot to Dot)’이라는 게스트하우스 이름도 점과 점을 잇겠다는 다짐이 담겨 있잖아요. 그런데 지하 1층 레스토랑처럼 언제든지 숙소 이용객들끼리 교류가 가능한 공간이 준비되어 있고, 실제로 매일 밤 정기적인 파티 타임도 있었고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모습에 자신들의 운영 방침이 잘 녹아났어요. 위치는 사실 삿포로역에서 나와서 눈에 잘 띄는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길 안쪽에 조금 생뚱맞은 곳에 있었는데, 그럼에도 참 좋았어요.



겨울 삿포로 여행을 계획하는 모든 이의 고민 : 유키 마츠리를 꼭 봐야할까요?


아련 삿포로에 도착한 첫 날이 올해 유키 마츠리*의 마지막 날이었어요. 그래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조금 피로했지만 그래도 마츠리를 보러 나갔죠. 굉장히 짧았지만, 보기는 했어요.


형주 유키 마츠리를 가서 몇 구역을 둘러보기는 했죠.


아련 짧았지만 삿포로의 유키 마츠리는 어땠어요?


형주 (일단 웃고) 우선 사람들이 그렇게 한 방향으로 걸으면서 마츠리를 구경할 줄은 몰랐어요. 마츠리가 열리는 오도리 공원에 도착했을 때 안내판으로 마츠리를 구경하는 방법이 전시되어 있었어요. 오도리 공원의 인도를 따라서 한 쪽 방향으로 구경하라는 안내였는데,


아련 사람들이 너무나 잘 따르고 있었죠. (하하하하) 그런 방식은 왜 생겼을까요?


형주 아무래도 질서와 안전을 위해서겠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관람 경로를 정해놓는 것처럼 유키 마츠리에 수많은 얼음 조형물들이 있는데 그걸 관람하는 인파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그런 규칙을 정한 것 같아요. 정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지키면서 오도리 공원의 가장자리를 일렬로 줄 서서 이동하고 있는 모습이 웃겼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조형물을 보는 것에 정말 관심이 없어서-


아련 아이들한테는 굉장히 흥미로운 볼거리일 것 같아요. 우와-하면서 감탄이 터져 나올 수 있는. 나는 실제로 얼음 조형물들을 봤을 때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요. 그런데 질서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한 쪽 방향으로 걸어가면서 조형물을 관람하는 것이 유키 마츠리인가? 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그러니까, 유키 마츠리가 관람을 하는 축제인가? ‘관람’이라는 건 사실 정적인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생각한 ‘마츠리’는 훨씬 더 역동적인 것이고요. 내가 기대했던 것과 너무 달라서 사실 조금 당황스러웠어요.


형주 그럴 수 있었겠네요. 어쨌거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 규칙을 잘 지키면서 이동하는 모습은 놀라웠어요. 무릎 높이의 가이드라인이 설치되어 있을 뿐인데도 다들 철저히 라인을 지키면서..


아련 모두가 본능적으로 그 라인을 따라가야 한다는 걸 확실하게 느꼈나봐요.


형주 우리는 그 인파를 따라서 조금 이동하다가 바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코너에 들렀잖아요. 그 때 인상 깊었던 것이 ‘육개장’이 있었던 것. (다들 터짐) 클램차우더와 육개장을 같이 팔고 있었는데 일본분들이 육개장을 여럿 시켜 먹고 있었어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성훈 우리는 그 때 조금 추워서 다들 따뜻한 걸 마셨죠. 사케 따뜻한 거랑 와인을 데운 뱅쇼랑.


형주 나중에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를 볼 때였나, 거기서도 육개장을 시켜 먹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 때도 삿포로 유키 마츠리에서 봤던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일본 사람들이 육개장을 은근히 잘 먹는 건가’ 싶었어요.


아련 요즘 일본에서 매운 음식에 대한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일본에 다양한 라면이 있지만 종이컵에 라면 국물만 떠서 계속 마시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반면에 육개장은 종이컵에 덜어서 건더기와 국물을 먹으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먹거리가 되는 것 같아요.


성훈 그것도 그렇네요. 다들 엄청나게 추워하면서도 굳이 나와서 덜덜 떨면서 먹고 있었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형주 추웠죠, 정말. 삿포로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그렇게까지 추웠다고 기억하는 순간이 거의 없는데, 첫 날 도착해서 유키 마츠리에 갔을 때는 정말, 정말 추웠어요.


아련 그러고 보면 그런 날씨일 때 얼음 조형물을 전시하고 유키 마츠리를 하는 이유가 있겠네요. 삿포로의 2월은 그만큼 춥다! 만약에 또 삿포로를 갈 기회가 생긴다면, 유키 마츠리를 보러 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성훈 지난 여행에서 너무 짧게 봤어요. 10미터 정도 걷다가 잠깐 들어가서 따뜻한 사케 한 잔 마시고 지나간 게 전부라서- 다시 갈 수 있다면 마츠리를 제대로 한 번 보고 싶어요. 삿포로는 아무래도 눈의 도시니까요. 다만 이번에는 너무 추웠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서 다시 갈 기회가 생기면 조금 따뜻하게 준비를 잘 해서 마츠리를 오래 보고 싶어요. 여름에 있는 맥주 축제만큼은 아니지만요.


형주 유키 마츠리는 아이젠도 착용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오도리 공원에서 걸어야 하는 곳들이 대부분 얼어있거나 눈밭이라.


아련 형주는 유키 마츠리를 제대로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형주 마츠리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걷고 둘러보는 건 괜찮은 것 같아요. 하지만 유키 마츠리를 보기 위해서 삿포로를 가지는 않겠어요.


아련 두 사람 다 굉장히 애매하게 대답을 하네요. (웃음) 그러면 유키 마츠리를 다시 즐기고 싶은 마음을 100프로라고 하면 자신의 마음은 어느 정도 되나요?


형주 10프로?


아련 엥? (너무 낮은 수치에 놀람 ㅋㅋ)


성훈 저는 35프로 정도...


아련 다들 그렇게 말해놓고 수치가 너무 낮은 거 아니에요?


형주 삿포로 여행 계획을 세운다면 유키 마츠리는 전혀 고려를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에 여행 가는 기간에 마츠리가 겹친다면 한 번쯤은 들러볼 것이다, 이런 느낌인 거죠.


아련 그렇다면 나는 1프로.


형주 그냥 0프로라고 하시지, 왜...


아련 사실상 0프로죠. 삿포로는 겨울에 가면 되지 굳이 유키 마츠리 기간을 맞춰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전반적인 물가랑 숙소비가 너무 올라요. 미리 구하지 않는 이상 1-2개월 전에도 그 기간에 남아있는 숙소를 구하기가 정말 어렵고, 남아 있는 곳을 찾아도 시설이 굉장히 열악하거나 가격이 사악했어요. 그리고 아주 잠시 들러서 마츠리를 맛봤을 때도, 이게 마츠리라고? 이런 느낌이었어요. 일본은 워낙 축제가 발달해 있잖아요. 그래서 꼭 유키 마츠리 기간을 고집하지 않더라도 삿포로에 이것저것 작은 축제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이벤트를 잘 찾아보고 즐기는 게 오히려 더 알뜰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이라면 오히려 유키 마츠리를 보면서 만족도가 더 높아졌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숙소 구하면서 깜짝 놀랄 수 있으니 미리 잘 준비를 해야겠죠.


형주 꼭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지역 축제나 대표적인 축제를 즐기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유키 마츠리를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다음 화에서는 삿포로의 먹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덧붙이기


* 유키 마츠리는 삿포로에서 열리는 일본의 대표적인 눈축제이다. 보통 2월 중순에 약 일주일간 열린다. 여름에 열리는 맥주축제와 함께 삿포로, 혹은 북해도를 대표하는 2대 축제로 손꼽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세계적인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삿포로의 오도리 공원을 중심으로 도시 전체가 눈과 얼음 조각으로 장식되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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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 마츠리의 밤과 낮. 거대한 눈과 얼음 조각 작품들이 오도리 공원을 채우고 오른쪽 사진처럼 먹거리 부스들도 많이 준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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