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키나와를 몰랐다
아련 다시 또 이렇게 멤버가 모이게 되었네요. (크크) 2월 말에서 3월 첫째주 주말에 걸친 오키나와 여행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충동적으로 진행이 됐어요.
형주 지금 이 자리에는 함께 하지 못했지만 여행 메이트 K님과 성훈이랑 제가 이틀 먼저 오키나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K님의 휴가기간에 맞춰서요. 그래서 먼저 도착해 있던 이틀을 포함하니 우리는 5박 6일이라는 넉넉한 시간 동안 오키나와를 여행하게 되었죠.
아련 나는 개인일정을 다 마치고 오키나와에 도착한 게 3월 1일이었어요. 그러니까 2박 3일 일정이지만 마지막 날은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2박 2일의 아주 짧은 일정으로 오키나와를 여행하게 되었죠. 그래서 지금도 조금 고민은 돼요, 이렇게 압축적인 경험을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지... 분명한 건 평소 내가 추구하는 여행 스타일과는 많이 달랐다는 거예요.
성훈 그랬을 거 같아요. 아무래도 우리가 바로 몇 주 전에 삿포로 여행을 같이 다녀온 상태였는데, 삿포로에서는 그렇게 많은 거리를 이동하지도 않고 다 도보로 이동하면서 고만고만하게 다녔거든요.
아련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삿포로와 오키나와가 얼마나 다른 곳인지도 저절로 비교가 될 것 같아요. 음... 우선 여행을 가기 전에 그곳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먼저 접학 되는 사전 정보들이 있잖아요. 오키나와는 어땠어요?
성훈 제주도. 우리 나라의 제주도 같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그렇다는 비유를 주변에서 들었어요. 여행 후기들을 찾아봤을 때도 그런 표현이 보였고요.
형주 나도 여행을 가기 전에 먼저 갖고 있던 이미지는.... 아마 다들 들어봤겠지만 ‘아시아의 하와이’. (다들 공감) '일본에는 오키나와가 있고 중국에는 하이난이 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여행을 가기 전 정보를 찾아보려고 인터넷에서 검색했을 때, 지도에서 오키나와의 위치를 보고 일본 본토와 그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인 줄 처음 알고 놀랐어요.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인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아련이는 어땠어요?
아련 사실 나는 여행 가기 전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미리 찾아보는 걸 좀 피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정말 필요한 부분들- 예를 들어 비자 유무라든가, 환전, 교통 이용 방법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나라에서 보고 즐기는 것에 대해 너무 많은 정보를 미리 찾아보면 막상 현지에 도착해서 찾아본 정보가 사실이었는지 확인만 하게 되는 게 싫었거든요. 그래서 정말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 찾아보는 편이었는데, 오키나와 여행부터는 좀 달라진 점이 있어요.
형주 그 때 책을 읽고 가지 않았나요?
아련 맞아요! 베트남 여행을 다녀와서 호기심에 베트남 작가의 소설*을 찾아 읽었거든요. 그런데 소설을 읽을 때 감정이 굉장히 풍부해지는 거예요. 여행 다니면서 봤던 풍경들과 정서가 소설에 이입이 되면서 굉장히 기억에 남는 경험이 됐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여행지를 가기 전에 그곳이 배경으로 등장하거나 그곳을 직접 다룬 문학 작품을 미리 읽어보고 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오키나와 여행을 앞두고 그걸 처음으로 실천했어요. 미리 오키나와 출신 작가의 문학작품을 읽고 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덕분에 여행 전에 여러 가지 감정과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죠.
형주 그래서 우리 여행에 합류했을 때 아련이가 읽었던 책 이야기를 조금 해줬었죠.
아련 책을 통해서 미리 알게 된 것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역사적인 부분에 대한 것이 많았어요. 실제로 오키나와 라는 여행지 자체에 대해서 갖고 있던 특별한 이미지는 없었어요. 두 사람이랑 비슷하게 ‘제주도’, ‘아시아의 하와이’라는 비유는 나도 들어봤죠.
형주 유일하게 먼저 들어서 알고 있던 것은 ‘국제거리’에 대해서였어요. 오키나와를 다녀온 지인들이 모두 ‘국제거리’를 반드시 가라고, 모든 것들이 ‘국제거리’에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해주더라고요. 마치 오사카의 ‘도톤보리’ 같은 역할을 한다고 들었었어요. 실제로 여행을 가서는 그런 기대가 많이 깨졌죠.
아련 이야기를 하다보니 내가 오키나와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선입견도 생각이 나요. 완벽한 휴양, 특히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의 휴양을 위한 최적의 여행지다, 라는 느낌이 컸어요. 그러고 보니 대부분이 다 간접적인 경험들이네요. 오키나와와 관련된 직접적인 경험은 그러면 아무도 없는 건가요?
성훈, 형주 그렇죠.
아련 나는 그런 선입견들을 갖지도 있다가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충격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당연한 거였어요. ‘아시아의 하와이?’라고 표현을 해도-
성훈 사실 하와이도 안 가봤는데...
아련, 형주 (하하하하하) 우리 다 안 가봤죠. (하하하하하)
아련 우리 셋 다 가보지도 않은 도시로 비유하는 오키나와를 떠올렸으니 그게 얼마나 허황된 이미지였는지 이제 실감이 나네요. 심지어 나는 오키나와 여행을 가기 전까지 휴양지로 유명하다는 여행지를 가본 적이 없었어요. 진짜 완벽한 휴양을 위한 곳으로 유명한 곳들을 가 본 상태에서 오키나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뭐라고 상상이라도 할 텐데 3월 오키나와 여행을 가기 전까지는 정말... 엄청나게 추상적이고 제한된 정보만 알았어요.
아련 정리하자면 우리 세 명이 모두 오키나와에 대해서는 굉장히 추상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사실상 아는 것이 전무한 상태에서 여행을 갔던 거네요. 방금 전에도 몇 번 이런 표현이 나왔어요, “기대가 많이 깨졌다”,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실제로 오키나와를 가보니까 놀란 점들이 많았잖아요.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아요?
성훈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가 있다는 건 알았고, 미군의 입장에서는 아시아 전체를 방위하는 중요한 지점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 기지**야 워낙 유명하니까요. 그래도 미군 기지가 그렇게까지 클 줄은 몰랐어요.
아련 미군 기지? 나는 미군 기지가 그렇게 크게 있는 줄도 몰랐어요.
형주 우리나라 군기지는 누가 봐도 티가 나잖아요. 가까이 가기도 어렵고 철두철미하게 근처를 가려놓고. 그런데 오키나와에서는 철조망이 있긴 있었지만 사실상 다 보여서 군기지가 뚫려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아련 아 그러면 우리가 군기지 근처를 지나가고 그러기도 했던 거예요?
형주 엄청나게 여러 번 그랬죠.
성훈 군기지들이 우리나라 마을의 ‘구’ 단위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냥 지나가는데 다 군기지.
형주 그런데 기지 안으로 버스가 지나다닐 정도로 일반인들의 생활이랑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어요. 한국에도 군부대가 많지만 공통적으로 무채색, 국방색으로 담장이 만들어져 있잖아요. 그래서 근처에 가면 누구나 군대임을 인식할 수 있고 조금 먼 거리에서도 막혀있어서 이질적이죠. 그런데 오키나와에서는 철조망 속으로 기지들이 다 보이고 지나다니는 택시에도 ‘미군부대 출입가능’ 표시들이 웬만하면 붙어 있었어요. 하도 생활 속에 녹아 있으니 오히려 신경 쓰지 않으면 군기지가 바로 옆에 있는지 아닌지 실감하지 못했을 거예요. 내가 운전을 하고 있을 때 성훈이가 저기를 보라고 짚어줘서 인상깊게 봤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미군 부대 내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위한 스쿨버스들이 있었어요.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노란색 버스인데-
아련 영화 <스피드>에 나오는 거요?
성훈, 형주 맞아요! (공감대 형성)
형주 그 스쿨버스가 줄지어서 몇 백대가 이어져 있었어요. 스쿨버스 규모를 보니 도대체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살길래 이렇게 많은 스쿨버스가 필요한지 깜짝 놀랐죠. 정말 장관이었어요.
성훈 진짜 장관이었어요. 정말 신기해서 ‘우와-’ 소리를 질렀는데 스쿨버스 줄이 끝나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소리를 지었죠.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련, 형주 큭큭큭
형주 그리고 비행기나 탱크 같은 것들이 다 보여요. 우리나라나 일본이 다 사고 싶어하는, 그러나 너무 비싼 전투기 F22 랩터가 보여요. 머리 위로도 하루 종일 계속해서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요.
아련 나는 그런 점들은 전혀 눈여겨보지 않았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처음 알았네요. 신기하다. 그러면 밀덕인 사람들이 가면 오키나와에서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도 있겠어요.
성훈 굉장히 좋은 곳이죠. (흐뭇) 저는 오키나와 가기 전에 그건 기대를 많이 했었어요.
아련 이미 알고 있었어요?
성훈 오키나와 자체에 대한 사전 정보들은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에 기대한 것도 없었어요. 그런데 오키나와에 막 도착했을 때 동행했던 K님이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부대에 지인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타이밍이 잘 맞으면 미군 부대 안에 들어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 때부터 기대가 막 됐죠.
아련 미군 부대에 들어가보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겠네요.
성훈 결국 타이밍이 안 맞아서 들어가보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아쉬움을 안고 가는데, 형주형이 운전하고 조수석에 제가 앉아 있을 때 갑자기 험비 수천대가 나타난 거예요. 그래서 또 ‘으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련 하하하하하. 나는 왜 전혀 기억이 안 나지?
성훈 그 때 누나는 졸고 있었어요..
아련 어쩜 이렇게 기억이 다를까요.
형주 잠깐 지나가다가 본 것도 아니었고 양 옆으로 몇 천 미터 동안 계속해서 기지가 이어졌어요. 어마어마한 규모죠. 그것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공항은 활주로를 내려올 때 ‘해상자위대’라고 적힌 격납고들과 전투기들이 보였어요. 전세계 모든 공항이 군사기지로서의 역할도 겸하고 있을텐데, 오키나와는 그 모습이 완벽하게 전면에 내세워져 있어요. 그래서 내릴 때부터 군용 수송기와 헬기들을 보면서 시선을 빼앗겼죠.
성훈 저는 대구에 살면서 2군 사령부 있는 곳을 지나갈 때마다 ‘여기도 참 크다’ 생각했었는데 거기랑 비교가 안 될 정도였어요. 그리고 아메리칸 빌리지에 갔잖아요. 미군 부대에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서 아쉬웠던 게 아메리칸 빌리지를 가서 조금 상쇄가 되었죠.
형주 K님이랑 성훈이가 아메리칸 빌리지에서 특히 좋아했는데 밀리터리 샵들이 잘 되어 있었어요.
성훈 미군들이 실제로 입고 사용했던 중고 물품들도 많이 있어요. 1,2차 세계대전에서도 사용되었던 아이템들도 있고. 군복에서 와펜 달려 있는 부위만 잘라서 엄청나게 쌓아놓은 코너도 있었고요.
형주 그리고 아메리칸 빌리지에는 오키나와에서 근무하고 있는 미군들이 놀러 온 것도 많이 보였어요. 밥 먹는 곳에서도 꽤 보였고. 그래서 아메리칸 빌리지에서는 여기가 일본이 아니라 미국 같은 느낌이 들었죠.
아련 사실 아메리칸 빌리지가 나한테는 테마 파크 같은 느낌을 주었어요. 우리는 분명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데 모든 것이 미국스러워서 그것들이 다 가짜로 만들어 놓은 것 같았거든요.
형주 아메리칸 빌리지 자체가 실제 미군 기지의 일부였는데 반환하면서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테마 파크 같은 공간이 되었죠.
아련 사람들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테마를 확실하게 잡아서 꾸며놓은 공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실제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부대와 연결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네요.
형주 굉장히 리얼한 테마 파크라고 봐야겠죠? 다들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아메리칸 빌리지에 있는 스타벅스에 우리가 들렀잖아요. 그 때 할리 데이비슨을 탄 미군들이 우르르 나타나서 스타벅스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커피를 마시고 그랬어요.
아련 사실 나는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던 게 음식 때문이었어요.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어요.
형주 나도 엄청나게 충격 받았어요. 정말!
성훈 모든 음식을 먹을 때마다요.
아련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일본 음식’에 대한 기대가 산산히 깨지는 경험을 했잖아요. 대표적인 게 어떤 것들이 있었죠?
성훈 저는.... 회요.
형주, 아련 맞다, 하하하하하
성훈 일본에 와서 먹은 회 중에서 그렇게 맛이 없는 것도 처음 봤어요. 그리고 회를 안 파는 곳도 많고.
아련 나는 회를 잘 못 먹는 편이지만, 오키나와 와서는 많이 놀랐어요. 이렇게까지 횟집이 없고, 일본의 다른 도시에서는 이자까야 같은 곳을 가면 메뉴판 앞쪽에 기본적으로 회 메뉴가 한 면은 있었는데 오키나와의 이자까야 메뉴판에는 회 메뉴가 하나도 없는 곳도 있었어요. 그 중 한 군데에서 굳이 또 회를 주문을 했잖아요,
형주 맞아요.
아련 그런데 그게 또 맛도 없었어요. (하하하하) 그래서 그 때부터였나, 다들 ‘아, 여기는 일본이 아니구나. 일본이 아니고 오키나와구나.’라는 말을 계속 입에 달고 다녔던 것 같아요.
성훈 ‘아, 여기는 일본이 아니다’
아련, 형주 하하하하
형주 그리고 구글맵에서 리뷰가 엄청나게 많은, 다른 지역에서 이 정도라면 실패할 가능성이 없는 유명한 이자까야에 갔는데 그동안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우리가 많이 먹어봤던 일본 음식들은 전혀 팔지 않는 거예요. 메뉴판 처음부터 끝까지 오키나와 전통 음식만 있었어요. 사진을 봐도 어떤 음식인지 잘 짐작도 되지 않고, 이름도 낯설고.
성훈 주류도 그랬어요.
형주 맞아요. 술 메뉴도 사케나 소츄(소주)보다는 아와모리****라고 하는 굉장히 독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더라고요. 나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어딜 여행가나 그 곳에서 통용되는 술을 마셔보는 걸 즐기는데 오키나와에서는 놀랐어요. 이렇게나 센 술을 여기 사람들은 마시는구나...
성훈 생각해보니 그것도 지리, 기후의 영향도 있을 것 같아요. 원래 동남아 국가들의 술이 좀 많이 세잖아요. 아와모리는 쌀로 만든다는데 그 쌀이 안남미래요.
아련, 형주 아아아~
성훈 사실 오키나와가 일본이라고 하기엔 지리적으로 너무 많이 떨어져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동남아 국가들과 더 가깝잖아요. 날씨나 기온 같은 것들을 고려하면 그래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걸 생각하면서 아와모리를 좀 먹어보려고 했지만 마지막까지 쉽지 않았어요.
형주 아련이가 여행에 합류하기 전에 K님, 성훈이와 함께 셋이서 돌아다녔잖아요. 딱 1박 2일 정도 걸렸어요. 우리가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깨닫기까지.
아련 하하하하
형주 오키나와에 도착해서 1박 2일 정도를 계속 일본 본토에서 여행하면서 즐겼던 것들을 거의 그대로 기대했던 거예요. 그러면서 매순간 놀라고, 실망도 했어요. 왜 이런 메뉴 밖에 없나, 이런 음식이 나오나. 그러다보니까 계속해서 당황하고.
성훈 몇 번이고 계속 이런 말을 했어요. ‘왜 이렇지?’, ‘뭐지?’
형주 그렇게 여러 번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 둘째날이 되니까 좀 알겠더라고요. 일본 본토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여기서 그대로 기대하면 안 되겠다, 그게 실수였다는 걸 깨달았죠.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질이 떨어져서 실망하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걸 기대했던 거예요. 그만큼 문화적으로 다른 곳이었는데 우리는 항상 일본 본토 여행하면서 즐겼던 것을 똑같이 기대하니까, 결국엔 오키나와 여행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가 조금 부족했다 싶었죠. 오키나와 자체를 일본 여행에 대해 미리 가지고 있던 경험들과 연결 짓지 않고 아예 모르는 곳이라고 생각을 했다면 처음부터 덜 당황했을 거예요. 여행을 적지 않게 다닌 편인데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었어요.
아련 형주랑 나는 일본 여행을 많이 다닌 편인데, 그래서 ‘일본’에 대한 고정관념이 많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일본에 가서 이런 걸 하면 좋다, 일본에서는 이런 게 괜찮다, 이런 식으로 이전에 일본 여행을 다니면서 쌓였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형성된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오키나와 여행에서는 큰 시행착오를 겪게 만들었어요.
성훈 같은 언어권이지만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형주 나는 일본어를 잘 모르지만, 성훈이는 일본어를 잘 하니까 언어에서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우리나라에서도 제주도에서 쓰는 고유의 사투리는 외지 사람들이 의미를 짐작하기도 힘들잖아요. 일본 본토와 오키나와의 거리는 우리나라에서 제주도의 거리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머니까 더 심할 것 같은데-
성훈 사투리가 있다고 들었거든요. 그런데 오사카에서 사투리를 듣고 느꼈던 것보다는 그냥 그랬어요.
아련 내가 읽었던 책에서는 오키나와 사투리가 본토와 완전히 다르다고 설명하고 있었어요.****** 성훈이가 거의 느끼지 못한 건 아무래도 우리가 다녔던 곳들이 오키나와 내에서도 확실한 도심-
형주 중심가였죠.
아련 우리가 갔던 이자까야나 가게들이 나하시 안에서도 번화한 동네에 있는 곳들이었잖아요. 만약 나하시 말고 오키나와의 여러 지방으로, 더 시골로 들어가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었다면 오키나와 특유의 말투, 사투리를 조금 더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성훈 그럴 수 있겠네요. 거의 가게 점원들과 이야기를 했고... 그나마 가장 긴 대화를 나눈 것이 경찰이었어요.
형주, 아련 하하하하하
성훈 경찰과 대화할 때는 사투리를 전혀 느낄 수 없었어요.
아련 사실 오키나와는 류큐 왕국이라고 아예 독립된 왕국으로서의 역사를 오랜 기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언어도 일본 본토의 것과 아예 달랐을 것 같아요. 얼마만큼 달랐을지 궁금해지긴 하네요. 그러면 오키나와는 오히려 동남아 문화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형주 그렇게 생각해요. 비슷한 경우로 괌이 떠오르는데요,
아련 많이 언급이 되더라고요. 괌이랑 비교하는 경우도.
형주 괌, 오키나와, 필리핀*******, 이런 곳에 미군이 적극적으로 주둔을 하면서 아시아를 막는, 방위선으로 삼고 있는 거잖아요. 오키나와 입장에서 보면 지리적으로는 본토에서 멀리 떨어져있고 스스로를 방어할 힘도 약했을 거예요. 지리적으로도 동남아에 더 가깝고, 그게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날씨, 기후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아련 그게 결국 의식주 문화를 만들고요.
형주 안남미로 아와모리를 만든다고 했는데 안남미는 동남아에서 너무나 많이 먹는 대표적인 쌀이잖아요. 이야기를 하면서 기억난 에피소드가 있는데, 셋이서 교자를 먹으러 갔을 때 거기 직원들이 먹고 있는 식사가 너무 맛있어 보여서 우리도 주문하려고 메뉴 이름을 물어봤어요. 그런데 그건 직원용 식사라고 하면서 판매하는 메뉴가 아니래요.
성훈 그게 버미셀리로 만든 거였어요.
형주 버미셀리, 쌀국수면으로 식사를 만들어 먹더라고요. 다른 음식들 중에도 쌀국수면을 사용하는 것들이 꽤 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음식을 딱 보면 동남아 음식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 많았죠.
성훈 그 때 그 직원들에게 ‘그 음식은 처음 본다.’고 이야기했더니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다 이거 먹을 텐데?’ 이러더라고요. 버미셀리에 고수도 팍팍 넣어서 먹고 있었어요.
아련 오키나와 음식은 일본의 다른 대표적인 도시들을 다니면서 맛있게 먹었던 것들을 기대하지 않고, 정말 오키나와에서 먹을 수 있는 맛있는 것들을 찾아서 먹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때로는 동남아 스타일이 강하고 때로는 아메리칸 스타일이기도 하고. 우리가 처음에는 충격을 많이 받았지만 그래도 오키나와에서 먹었던 것들이 다 맛이 없었던 건 아니거든요. 그렇게 점점 오키나와를 알아가는 거겠죠?
(다음 화에서는 오키나와에서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과 맥주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1월 호치민 여행을 다녀와서 찾아 읽은 작품은 응웬 옥 뜨 작가의 미에우 나루터. 네이버 책 소개란(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2671402)에 기록된 내용을 참고하면 작가 응웬 옥 뜨는 1976년 베트남 최남단 까마우 성에서 태어났고 2000년 단편소설 꺼지지 않는 등불로 '제2회 스무살 문학 창작대회'라는 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고 한다. 대표작이 2005년에 발표한 끝없는 벌판인데 이 책이 베트남에서 이틀 만에 초판 5천권이 매진되면서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고. 내가 찾아 읽었던 미에우 나루터는 끝없는 벌판 전후로 썼던 단편들을 모아서 묶은 단편소설집으로 2017년 우리나라에 출판되었다. 당시 호치민 여행을 다녀온 직후라 호치민에서의 삶을 상상하며 베트남 작가의 작품을 찾았지만 실제로 이 책은 베트남의 시골 마을, 메콩강 근처의 마을에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기 전, 먹고 사는 것이 간절했던 시기의 우리나라 과거 모습들도 연상되면서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베트남 여행을 다녀올 예정이거나 세계 문학을 읽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 오키나와의 카데나 공군 기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여러 곳을 검색하다가 The Asia-Pacific Journal 이라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오키나와 내에 미군 부대들이 오키나와의 환경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 상당한 우려를 표하는 저널을 찾을 수 있었다. 저널(https://apjjf.org/2016/09/Mitchell.html)에 따르면 카데나 공군 기지는 오키나와 섬의 중심에 위치한 카데나 공군 기지는 아시아에서 가장 큰 미 공군 기지로, 3.7 킬로미터의 활주로 2 개와 수천 개의 격납고, 집 및 작업장이 갖추어져 있으며 치바나의 기지와 그 인접한 병기고는 오키나와의 주요 섬 46 평방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다. 약 2 만 명의 미국인 서비스 멤버, 계약자 및 그 가족이 3000 명의 일본인 직원과 함께 이곳에서 살거나 일합니다. 16,000 명 이상의 오키나와 사람들이 시설이있는 땅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블로그 여행 후기들을 찾아봐도 카데나 공군 기지를 일부러 방문하여 시설들을 구경하고 전투기들이 뜨고 내리는 걸 보려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만큼 밀덕에게 오키나와는 또다른 의미로 엄청난 곳일 수도 있다!
[TMI 주의]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다른 사이트에서는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에 대해 일본 사람들이 댓글창에서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는데, 그 논쟁에서 특히 1) 일본 내 주둔하는 미군의 74% 정도가 오키나와에 있다는 점, 2)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 기지에서만 24시간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다는 점(다른 지역은 오후 7시 이전에만 가능), 3)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현재 오키나와의 이런 현실을 '오키나와가 희생하여 미군 지배에 놓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미군이 오키나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불공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 4) 오키나와 여성이 미군과 어울린다는 멘트를 남긴 사람도 있다는 점 등이 눈에 띄었다. 이런 논쟁들은 낯설지 않다.
*** 사진 출처는 http://www.verygoodtour.com/Common/Board/FreeBoardCommonView?MenuCode=10213&MasterSeq=18&SubMenu=3&BoardSeq=97 참고.
**** 아와모리는 태국 쌀(안남미)을 원료로 검은 누룩 곰팡이를 사용한 류큐 지방(현재 오키나와)의 증류주를 가리킨다. 역사적인 유래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15세기 초 현재의 태국 지역에서 증류주 제조 기술이 전해져 그 이후 류큐 지방에서 고유의 제조법으로 발전되었다고 한다. 현재 오키나와에는 40개 이상의 아와모리 증류소가 있고 제조 공정을 견학할 수 있는 시설도 있다. 무색 투명하며 알코올 도수는 마시기 쉬운 10도부터 43도까지 존재하고 오키나와에서 인기 있는 아와모리 브랜드는 "잔파", "토도로키", "키쿠노츠유", "쿠라", "즈이센" 등이다. 일본 여행할 때 해당 지역주를 맛보는 것을 좋아하고 어느 지역이건 술을 제조하는 곳을 견학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오키나와에서도 아와모리 제조소를 찾아보면 좋겠다.
***** 재미삼아 오키나와 대표 먹거리들을 찾아보았다. 오키나와 먹거리와 관련된 정보제공성 사이트 다섯 군데를 검색해서 각 사이트별로 추천하는 먹거리 리스트를 정리한 뒤, 얼마나 겹치는지만 확인했다. 1위는 다섯 군데 사이트에서 모두 언급해 5표를 받은 음식이고, 2위부터는 한 표씩 떨어진다. 참고한 사이트는 아래 다섯 군데.
- DiGJAPAN – 오키나와에서 먹어봐야 할 현지 음식 10 (https://digjapan.travel/ko/blog/id=10496)
- TRIPLE – 오키나와에서 꼭 먹어야하는 대표 음식 (https://triple.guide/regions/2708bb5e-4e15-4358-8ba3-4d3003a60285/articles/fbb67006-e25b-41c4-ab6e-e99aa6461384)
- Expedia TRAVELBLOG – 오키나와 음식, 독특한 먹거리의 향연 (https://travelblog.expedia.co.kr/8839)
- Be.Okinawa - VISIT OKINAWA JAPAN (https://www.visitokinawa.jp/about-okinawa/food-culture?lang=ko)
- att.JAPAN – 오키나와 요리/음식 (http://www.att-restaurant.net/kr/culture/guide/EC000300)
****** 조금만 찾아봐도 오키나와 사투리는 일본 표준어와 완벽히 다른 것으로 나온다. 아주 대표적인 예만 몇 가지를 들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이따다끼마쓰(잘 먹겠습니다)'는 '쾃치사비라', '아리가또고자이마스(감사합니다)'는 '니헤데비루', '간바떼(힘내라)'는 '치바리요', '난데스까(무엇입니까)'는 '누야이바가'라고 한다. 오키나와 사투리를 마구 섞어서 이야기를 했을 때 사람들이 하나도 못 알아듣는 것에서 터지는 유머를 노린 일본 개그 방송 영상도 돌아다닌 듯.
******* 'US Military Presence in Far East'라는 제목으로 검색된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