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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Jun 03. 2023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와 설교

이 글은 연합감리교회 한인공보부 웹사이트에 실린 글입니다 <05.31.2023>



이런 생각해 보신 적 없으세요? ‘그때 그 결정 말고 다른 결정을 내렸으면 지금의 내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가끔 그런 몽상을 해보거든요. 인생에서 굵직한 선택을 내렸던 시절을 돌아보고 그때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됐을까? 이를테면 ’그때 내가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지 않고 그냥 일반대학에 갔었다면 내 인생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혹은 ‘그때 내가 미국에 오지 않고 그냥 한국에 남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등등 말이에요. 누가 알겠어요. 제가 미국에서 목사로 살고 있지 않고 엉뚱하게 한국에서 회계사로 살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뜬금없이 아프리카에서 농부로 살고 있을 수도 있을지도요. ‘만약(what-ifs)’만큼 불확실한 가정도 없고, 또 그만큼 수많은 가능성을 포함하는 단어도 없는 것 같습니다.


오직 양자경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뜻밖에 찾아낸 보물 같은 영화였습니다. B급 영화의 클리셰를 모두 따라가면서 A급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발한 상상력이 가득한 영화인데요. 이번에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7 부분의 상을 휩쓴, 그것도 남우주연상을 제외한 그랜드슬램 4개 부분을 모두 수상한 기록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애초에 영화에 남자주인공이 없는 것을 생각하면 영화는 받을 수 있는 모든 메이저 상을 받은 셈입니다.


중국계 이민자인 에블린(양자경 분)은 다 쓰러져가는 오래된 코인세탁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였지만 후에 연인이 된 웨이먼드(키호이콴 분)와 결혼한 후 홍콩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회상에서 보이는 그녀의 과거는 찬란합니다. 꿈의 땅 미국에서 가게를 소유하고 사업을 시작하던 젊은 그는 반짝이는 눈을 가진, 희망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이민생활은 밝고 반짝이던 그를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기쁨이었던 딸 조이와도 이제는 만나면 서로 으르렁대기만 하고 생활력 없이 착하기만 한 남편 웨이먼드는 무능력하다며 한심하게 여깁니다. 그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이들과의 관계는 삐그덕거립니다. 그렇게 반짝이던 에블린은 이제 매사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는 우주에는 여러 개의 유니버스가 있고 그 속에는 수많은, 무한대의 에블린이 있는데 그중 자신이 절대악으로부터 세계를 구해야 한다는 일견 잘 이해도 되지 않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영화에서의 멀티버스(다중우주론)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고, 그 선택들로 인해 다양한 평행우주가 나타난다고 해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실까 아니면 차를 마실까 고민을 하면 두 개의 우주가 생겨나는 것이지요. 내가 차를 마시는 우주와, 커피를 마시는 우주로요. 지금 이 순간도 우리의 선택으로 인해 끊임없이 파생우주가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에블린은 수많은 다른 버전의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는 홍콩에서 웨이먼드와 마지막에 결혼을 포기하고 미국에 오지 않고 그대로 남은 에블린도 있고, 웨이먼드와 결혼해서 미국에는 왔으나 코인세탁소 대신 피자가게 알바를 하는 에블린도 있는 등 정말 무한대의 에블린이 있습니다. 그중 에블린은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않고 헤어진 후 홍콩에 남아 유명한 배우가 되어있는 배우 에블린의 삶을 보게 됩니다. 유명 배우 에블린의 삶은 그야말로 완벽합니다. 비싼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에서 사람들의 환호성과 플래시 세례를 받는 그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그의 삶은 부족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 삶을 엿보게 된 에블린은 현재의 삶을 더욱 싫어하게 됩니다. ‘나는 웨이먼드와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 내 인생은 그로 인해 잘못되었어.’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이 영화의 매력적인 콘셉트는 “내가 한 모든 크고 작은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다”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우리의 선택이 쌓이고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 모든 선택과 함께,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요? 여러분과 나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리고 그 선택의 여정에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예수님은 19절에서 “나를 따라오너라.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Follow me, and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고 말씀하셨습니다. 


불교집안에서 자라 고등학생 시절 예수님을 믿게 된 저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의 큰 스타디움에서 열린, 당시에는 꽤나 유명했던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마치 슈퍼스타같이 무대에 나타난 한 목사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예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감동이 있는 예배였지만 동시에 아주 오랫동안 제 무의식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무언가 내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인가가 되는 것이라고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의 의미는 ‘나를 부인’하는 것인데, 그렇게 보니 저는 부인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았거든요. 무대 위에 서신 그 목사님처럼 열정적으로 모든 민족을 제자 삼기에는 낯도 가리고 부끄러움도 많았으니까요. 아마도 저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려면 제 자신이 아닌 무언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 같습니다. 


19절의 예수님의 초대는 놀랍도록 그들에게 친숙한 세계로의 초대입니다. 어부들에게 “어부가 되어라”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아마 그들의 직업이 선생이었다면 “선생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까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누구인지를 버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부에게 어부가 되라고 말씀하셨을 뿐이지요.

어부인 그들이 랍비나 선생, 선지자나 예언자가 될 필요가 없었습니다. 특별한 교육을 받거나 훈련을 받을 필요도 없었지요. 그저 그들이 이미 평생 한 물질을 통해 몸에 밴 어부로서 예수님을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로서, 그 모습 그대로 예수님을 따르라는 초대인 것입니다. 

“너는 너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씀하시는, 진실한, 참된 너 자신이 되라는 예수님의 초대.


다시 영화로 돌아가서, 에블린은 마침내 절대악으로부터 세계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큰 깨달음을 얻는데 그것은 바로 다른 잘난 버전의 에블린들, 쿵후 마스터 에블린, 영화배우 에블린이 아닌 지금 코인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 현재의 에블린이 바로 세상을 구한 에블린이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다른 누군가가 될 필요 없이 지금 현재의 내가 가장 소중한 것을 알게 되고, 지금 내 옆에 있는 이들이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임을 깨달으며, 영화는 에블린이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며 막을 내립니다. 


에블린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다른 멋진 누군가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진실하고 참된 나 자신이 되는 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부르심인 것 같습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를 참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가 이 유니버스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부르심 아닐까요?

영화 속 양자경은 제 어머니가 재래시장에서 오천 원에 사 와 입으셨어도 어색하지 않은 몸빼바지를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세계를 누빕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그 이민자 에블린이 바로 세상을 구한 주인공인 것입니다. 오늘, 지금의 나 자신이 바로 세상을 구할 예수님의 제자임을 한번 더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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