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슬픔
밝은 슬픔이 무엇일까.
아주 오래전 하나의 종교가 되어 갈라져 나간 동방정교회(Greek Orthodox)가 교회력 중 하나인 사순절(Lent)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개신교 전통에 속한 나로서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표현인데, 그 아이러니한 표현의 모순적인 이미지가 아름다웠다.
동방정교회의 알렉산더 슈메만(Alexander Schmemann) 신부는 그의 고전적인 작품인 사순절(Great Lent)에서 “슬픈 밝음”을 “나의 망명의 슬픔, 내 인생을 낭비한 슬픔; 하나님의 임재와 용서의 광채, 하나님을 향한 회복된 소망의 기쁨, 회복된 집(home)의 평화.”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이어 앤드류 모비(Andrew Morbey) 신부는 "길고 지치게 하는 장엄한 전례 예배와 끊임없는 회개를 촉구하는 사순절 기간에 스며드는 것은 슬픔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물만이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깊은 기쁨으로 가득 찬 슬픔입니다. 영광과 평화가 오기를, 아버지께서 당신의 방탕한 자녀들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무한한 용서의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회복된 집(home)”을 갈망하는 눈물입니다."라고 말했다. (영어 원문을 아래에 옮긴다)
슈메만과 모비 신부의 글은 영어로 읽으면 조금 더 울림이 있는데 '깊은 기쁨으로 가득 찬 슬픔'과 같은 표현이나, 'recovered home'같은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회복된 집이라는 표현은, 내가 이전에 잃어버렸으나 다시 찾은 내 고향집과 같은 느낌이랄까. 아주 오랫동안 돌아가지 못한 시골집을, 오랜만에 타박타박 걸어 돌아가 문을 열어보니 지붕 위로 내 늙으신 어머니가 날 위해 밥을 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이라 할 수 있다.
한 때 잃어버렸으나 이제는 다시 찾게 되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귀함을 아는, 그런 내 그리운 고향집 정도의 애잔한 표현이다. 아마도 그렇게 다시 찾게 된 나의 고향집은 눈물만이 그 기쁨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깊은 기쁨으로 가득 찬 슬픔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러하겠지.
사순절에 경험하는 밝은 슬픔이 이런 슬픔과 같다는 의미이다.
처음이었다. 이런 표현은.
아마도 예수가 우리를 위해 죽는 이 사순절의 마지막을 기념하며 그의 고통에 동참하며 함께 슬퍼해야 하는 기간이지만, 그의 고통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입었다는 것. 그러므로 이 고통이 끝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것, 이 고통은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희망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고통이 구원을 가져온다는 그 아이러니.
시리아와 터키의 지진으로 인한 고통과 어둠 가운데에서도 새 생명은 태어나고, 우리는 슬픔 가운데에서도 생명의 경이로움을 찬탄한다. 우리는 이토록 암울한 현실에서도 '희망'을 본다. 그것이 밝은 슬픔이 의미하는 인생의 아이러니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현실이 고통스럽더라도 그래도 희망을 보라는 의미에서 '밝은 슬픔'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을 오래 살았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겠으나, 여태 살아본 축적된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 경험의 길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기적 같은 일도 없는 것 같다.
죽음으로 가득한, 지진으로 폐허가 된 곳에도 꽃은 피고, 사람들은 생명을 구조해 낸다.
사람도, 고양이도, 하다못해 들꽃마저도.
폐허에서 생명을 찾아내는 아름다운 손길들에서 우리는 희망을 본다.
그래서 우리는 이토록 막막한 슬픔 안에서도 '밝음'을 만나는 것 같다.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
'밝은 슬픔'은 우리가 지금 겪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지도 모른다고,
마치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와 같이- 지금 겪는 일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할지를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러니 한번 희망을 가져보자고.
그렇게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다.
그래, 지금 겪는 슬픔이 전부가 아니다. 어딘가에는 밝음도 있을 것임을, 믿어보자.
한번 더 희망을 이야기하자.
In his classic work, Great Lent, Fr Alexander Schmemann describes “Sad brightness” as “the sadness of my exile, of the waste I have made of my life; the brightness of God’s presence and forgiveness, the joy of the recovered desire for God, the peace of the recovered home.” It is sadness that permeates the Lenten season, with its long, fatiguing, magnificent liturgical services and its constant call to repentance. Yet it is a sadness leavened by a deep joy that only tears can adequately express. Tears of longing for the glory and peace to come, for the “recovered home” where the Father embraces each of us, His prodigal children, with a boundless depth of forgiving love.(https://www.oca.org/reflections/fr.-john-breck/bright-sad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