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글을 놓은 지 한참이다. 글을 쓰는 이들이 너무 신기했다.
마음의 무언가가 방전된 듯 글쓰기를 놓았다. 일기조차도 아주 짧게 끝나곤 했다.
‘쓴다’는 행위의 무엇이 나에게, 세상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을지를 고민했다.
종교처럼 네 살 무렵부터 쓴 일기조차 ‘쓴다’는 행위에 대한 의문이 든 이후로 쓸 수 없었다.
무엇에 나는 열정이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강렬한 감정이 일어날 수 있을까.
오랜만에 써놓고 마무리하지 않고 이곳 서랍에 모아둔 글들을 읽다 보니 오래전에 잊힌 강렬한 감정들을 마주한다.
강렬한 것들을 삶의 어딘가에 내려놓고 와서 지금 그 어느 것에도 강렬하지 않은 것인가, 하는 궁금증이 일어난다.
사람이 마흔네 살쯤 되면 그런 것인가, 싶은 궁금증도 든다. 마흔네 살의 삶이 매일매일 처음이라 나는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끝내 매일이 처음인 채로 사는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에 너털웃음도 난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늙은 내 얼굴이 내일보다 하루치 더 젊겠구나 싶어서 갑자기 이쁘게 보이기도 한다.
삶의 강렬한 것들을 부여잡고 사는 것.
도파민이 방출되는 일을 하는 것.
발레리나 김주원이 오은영 박사를 만나서 은퇴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을 쏟는 유튜브 클립을 보았다.
발레리나를 뺀 김주원은 “0”에 수렴한다. 김주원의 삶이 없이 발레리나 김주원만으로만 살아와서 그녀는 은퇴를 생각할 수조차 없다.
강박적으로 만들어낸 그녀의 삶.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의 강박을 이완하고 안전을 찾는다. 어떤 이는 술로, 어떤 이는 사람들을 통해, 어떤 이들은 성취를 통해-
김주원은 완벽한 발레를 통해 자신의 강박을 풀어내고 안정감을 찾아왔던 것이다.
난 무엇으로 찾아왔던 것일까?
지금부터 앞으로는 어떻게 열정을 찾아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