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관광객을 사로잡는 인구 300여 명의 작은 마을
레이네브링겐을 안 올라가는 대신 걸어서 레이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로포텐의 남단 모스케네쇠야에 메인 도로를 따라 자리한 레이네는 인구 약 300명에 불과한 작은 마을이다. 마을 안에 들어가 보면 굉장히 작다는 게 몸소 느껴질 정도이다.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맵다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곳이 레이네이다. 레이네는 상업이 발달해 18세기 중반부터 로포텐의 중심지로 쭉 명맥을 이어 왔다. 지금은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끄는데, 연간 방문하는 사람의 수가 수천 명에 달해 마을 전체 인구의 몇 배는 훌쩍 넘길 정도다.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로포텐의 매력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비경이다. 1970년대 후반 노르웨이의 저명한 잡지에서 레이네를 ‘노르웨이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하기도 했다. 4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현재도 유럽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풍경이다.
레이네는 로포텐을 관통하는 E10도로와 맞닿아 있는데, 이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으며 주편 풍경을 감상했다. 레이네의 도로변 곳곳에는 간이 전망대가 있어 마을 전체를 조망하기에 좋았다. 숙소에서 나와 메인 도로로 합류하기 직전에 있는 작은 주차장을 겸한 전망대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다. 여행자를 위한 시설은 없어도, 풍경이 모든 걸 말해주는 절묘한 조망 포인트였다. 자연이 마음 가는 대로 휘휘 빚은 것처럼, 정제되지 않은 들쭉날쭉한 곡선이 날렵해 날것 그대로인 모습 같은 산은 거침이 없었고 각각의 개성이 살아 느껴졌다. 그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잔잔하고 청초한 바다와 그 위에 떠있는 어부들이 잠시 머무르는 집인 빨간 로르부, 그리고 해안선을 따라 오밀조밀하게 자리를 잡은 집들이 폭 안겨 있었다. 서로 상반된 분위기의 두 풍경이 만나니 서로 천생연분인 것처럼 최고의 조화를 이루었다. 여행자들은 저마다 멋진 풍경을 담으려 스마트폰에 짐벌을 달아 찍기도 하고, 셀카봉을 길게 뻗어 풍경을 담기도 했다. 젊은이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모두 삼매경에 빠지게 만드는 이 풍경은 불호가 전혀 없을 것 같은 뷰 맛집 중에 맛집이었다. 메인 도로를 따라 조금 떨어진 곳에도 똑같은 공터가 있었다. 어디서 단체로 여행을 왔는지, 대형 버스 두 대가 주차되어 있고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을의 절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로포텐에 입도한 후 사람 구경하기가 힘들어 홀로 고독한 행군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 모습을 보니 그제야 여행지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나며 레이네의 명성이 실로 대단하다는 게 느껴졌다.
이왕 나온 김에 백패킹에 필요한 라면과 먹거리를 살 겸 식료품 매장인 쿱(Coop)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앞서 봤던 뷰 포인트같이 레이네의 독특한 지형이 확 담기는 곳은 없었지만, 각도가 달라지며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풍경 또한 매력적이었다.
마냥 낯선 동화 마을에 들어온 느낌이라기엔 레이네엔 왠지 정겨운 모습도 가득했다. 덕장에서 해풍을 맞으며 말려지고 있는 대구 무리는 레이네뿐만 아니라 로포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부네스 해변에 가기 전에 서클케이에서 사 먹었던 피스케버거 패티의 재료도 이 대구였다. 로포텐과 대구의 인연은 무려 1천 년이 넘을 정도로 깊다. 스칸디나비아 북부와 러시아 극서 북부, 스발바르 제도를 끼고 있는 바렌츠 해는 새끼 대구가 밀집해 있는 중요한 서식처이다. 한겨울 다 큰 새끼 대구들이 무리를 지어 남서부 노르웨이 해로 대이동을 한다. 산란은 4월까지 계속되는데, 이 시기에 로포텐은 대구잡이로 한창 바쁘다. 대구는 로포텐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자원이자 특산물인 것이다. 그리고 잡은 대구는 나무 선반에 널어놓고 해풍으로 잘 말린다. 덕장 근처는 생산 말리는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코로 스며들어왔다. 내가 사는 포항 시내에서 외곽으로 조금 나가면 어촌 구룡포가 나오는데, 겨울철 특산물인 과메기를 만들기 위해 청어와 꽁치를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포항에서 이역만리 떨어진 로포텐이지만, 어촌이 가진 특유의 냄새와 느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아무 생각없이 그곳의 풍경을 즐기고 싶은 곳이 있다. 레이네는 딱 그런 곳이었다. 높이는 낮지만 야생미가 넘치는 거친 산과 맑고 잔잔한 바다, 그 해안가를 따라 자리잡은 로르부는 레이네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하고 멋진 풍경이었다. 한쪽으로는 산, 한쪽으로는 바다가 있는 도로를 달리는 차와 캠핑카를 보고 있노라면 나 또한 이곳을 질주하는 상상에 빠질 정도로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