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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혼자 살게 되면서 나는 나의 이상한 구석을 발견했다. 밥을 먹으면 바로 설거지를 했다. 싱크대에 기름 가득 묻은 채 말라가는 그릇 보기가 역겹고 불쌍했다. 방치된 건 싫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나갈 데가 없어도 부지런히 씻고 로션을 발랐다. 눈을 떴으니까, 새로 날이 밝았으니까, 의식처럼, 제사처럼. 주 삼 회 요가학원 출석했다. 때마다 네일도 받고 미용실도 피부과도 다녔다. 주말엔 뭘 하세요, 퇴근하고는 뭘 하세요. 하는 질문에 성실히 답하기 위해서. 이런 것도 약속 만남 모임 같은 개인 일정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집착적으로 뉴스를 읽었다. 나만 몰래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봐 두려웠다. 머릿속에 뭐라도 집어넣고 싶어서 강의를 듣고 책을 주문했다. 그러면 조금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면 시간이 그냥 이유없이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았다. 티브이 드라마 보는 것도 괜찮겠지만, 무수히 바쁘고 무수히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 목소리 몸짓이 떠다닐수록 더욱 혼자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돌보지 않는다는 걸.
처음 혼자 살게 된 부산의 작은 오피스텔 방 안에서 패닉이 찾아왔었다. 방은 너무 작아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여기서 무슨 일이 생긴다고 해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았다. 갑자기 심장발작이 찾아와도, 갑자기 봉변을 당해도, 갑자기 세상의 종말이 찾아와도 이 방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영원히 11층 한 가운데 외딴 섬처럼 잊혀지고 죽어갈 것 같았다. 그 안이 내 무덤, 나 혼자 탄 배, 마지막 자리 같았다.
모자를 뒤집어 쓰고 뛰쳐 나와 한참 걸었다. 해변으로 반쯤 벗은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몰려들었고 소주 불꽃놀이 버스킹 연인들 외국인 헌팅포차 클럽 편의점앞싸움 모텔 담배 개미집낙곱새냄새 싸구려선글라스 한 데 뭉쳐 바빴다. 한참 걷다가 씻지 않은 내 얼굴 위로 흐르는 그 오색찬란한 밤의 빛깔, 차라리 그런 걸 부러워하는 내가 걱정됐다. 그 뒤로 나는 나를 부지런히 챙기기로 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번호를 달라며 현관 앞까지 쫓아오던 한 남자. 한 밤중 인터폰을 걸어 당신이 시끄럽게 군 거냐면서 화를 내던 한 남자. 새벽에 취해서 초인종을 누르며 다짜고짜 문을 열라고 소리치던 한 남자. 손을 벌벌 떨며 관리실에 전화하고 경찰서에 민원을 접수하면서 한 켠으로 자존심이 상했다. 불안에 가까스로 잠들고 나면 다음 날에는 분노가 찾아왔다. 도대체 뭘 얼마나 더 조심할 수 있지? 혼자 사는 건 예상할 수 없이 찾아오는 공포였고, 나를 지키기 위한 끝없는 훈련이었다.
바쁘면 바쁠수록 느꼈다. 내가 나를 위해서만 살고 있다는 걸.
내가 나의 엄마가 되고 친구가 되고 남편이 되어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다고 생각되는 모든 걸 해주고 싶어하는 그 사람들처럼 나를 대하고 있었다는 걸.
혼자 있으면 난 나와 뭘 해야할 지 잘 몰랐다. 사람들을 만나면 말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나와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일기도 한 겹을 거친 뒤 적었다. 몇 년 뒤 일기를 펼쳐 볼 나에게마저도 자존심을 부린 거였다. 내가 되고 싶은 괜찮은 사람. 깨끗한 옷을 입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돈을 벌어 월세 관리비 생활비를 내며 인생을 책임질 줄 아는, 시를 읽을 줄 아는,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먹을 줄 아는, 혼자 잠들 때 무서워하지 않을 수 있는.
하지만 불시에 찾아오는 적막을 어색함을 공허함을 견딜 수 없으면 부산에서의 패닉처럼 방을 박차고 나와 밤거리를 한참 걸었다. 가능한 한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서. 밖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숨 쉬고 걸어다니며 혹은 외로워할 수도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혼자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내게 곱씹듯 알려주기 위해서.
그런데, 나쁘지 않으면 그걸로 된 걸까? 그저 이정도로 나쁘지 않은 인생을 살기 위해 모두 노력하고 있는 걸까? 그게 내가 쥘 수 있는 전부였을까? 나쁘지 않은 인생이?
*사진: 에드워드 호퍼, <오전 1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