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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지.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서.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우주 너머에는 무지개 너머에는 이상 너머에는 뭐가 있을 지. 운전면허와 민증과 투표권 같은 건. 커피가 고소하고 술이 단맛인 건. 누릴 수 있는 자유라는 건. 입을 맞대고 몸을 맞대는 건. 서른 살이 된다는 건. 성공이 뭔지도 모르지만 성공한다는 건. 기다림 설렘 낯뜨거움 끝에 그래도 대체적으론 즐거움이 있었지.
어떤 건 생각 안 했지. 실패할 수 있다는 건. 아이를 낳는다는 건.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져야 할 수도 있다는 건. 별 것 아닌 일로 인생이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는 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앞날이 더 이상 알고 싶지 않다는 건.
걱정보다는 신기했지. 무섭기 보다 재미있었지. 현실을 꿈꾸고 꿈을 현실화하느라 배가 부풀었지. 하루를 아껴 쓸 필요도 없었지. 얼른 오늘을 써버리고 내일을 만나고 싶어서. 하루가 한 달이 한 해가 길었고 무한했고 영원했고. 죽고 싶은 기분보다는 살아있다는 기분. 살아도 된다는 천명이 주어진 것처럼, 살 힘이 있었지.
기대 같은 걸 했지. 적어도 우리는 앞으로 가고 있다고. 세상이 살만해지고 있다고. 사람들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미처 몰랐던 것도 있었지. 앞이란 그저 방향일 뿐이고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지는 것과 무관한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미 일어난 일이란 것과. 불가능성과 가능성이 동의어라는 것과. 매 순간이 매 순간과 이별하고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은 일을 하려다 결국 아무 것도 못 하게 된 사람처럼 허탈하게 깨달았지. 불확신만을 확신하면서.
걱정했지. 나보다 큰 네가 밥 굶을까봐. 힘이 센 네가 감기 걸릴까봐. 어디 가서 지지 않는 네가 해코지당할까 봐. 네 사랑이 네 마음 아프게 할까봐. 가끔은 너무 외롭고 슬플까봐. 그래서 사랑이라 생각했지. 아니 사랑이었지. 많은 사람들 틈에 너를 단번에 찾을 수도. 의미없이 하는 말에 경전처럼 귀 기울이기도. 세상이 무너지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널 떠올리기도 했으니까.
우리가 특별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어떤 사랑은 진짜 같았으니까. 어떤 사랑은 시간을 뚫고 눈물을 닦고 상처를 덮고. 영화 속 책 속 전설 속 사랑의 역사에 너와 나를 함부로 대입하면서, 나한테도 그런 역사란 게 있었음 했지. 하지만 왜 내 역사는 매번 잘못 쓰여질까. 사랑의 이상한 의식과 신비를 쓰게 곱씹으며 눈치챘지. 이번 생에 너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고. 어쩌면 네가 나타날 때까지 평생 외로울 거라고. 알지도 못하는 걸 영원토록 그리워하며 실체도 목적도 없는 시간을 쌓아갈 뿐이라고.
산다는 게 장난 같았지. 인생에 더는 기대하는 바가 없고, 남겨진 일은 늙어가다 죽는 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신도 사랑도 행복도 그저 관념에 지나지 않았고. 뭔가를 해결해보려고 발버둥 쳐봐도 내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제할 수 없듯이 사람들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고. 결국엔 모든 게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고는 괜찮아질 수 없는 일 같았지. 호기심을 모험심을 동정심을 후회하면서.
마침내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았을 때, 조용히 눈치챘지. 이미 글렀다는 것. 그리고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을 만큼 순진했다는 것. 그 많던 사람들과 마음들과 시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사진: 에드워드 호퍼, <뉴욕 영화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