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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06. 2018

베르디 리골레토의 약간 베베꼬인 재구성

한 졸부의 얄팍함에 안타깝게 놀아난 비운의 여인

https://youtu.be/zPpda21XprA

베르디:리골레토 중 “그리운 이름이여”

조수미,소프라노



부자는 문제가 없다. 다만 졸부가 문제일 뿐
 요즘 이 나라 사회는 부자들이 대차게 욕을 먹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반론도 만만치 않다. 부자들을 악당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에 그 당사자들은 당연히 나름의 불만을 토로한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부자라고 무조건 비판을 가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다만 교양있는 부자인가 졸부인가를 가려내는 기준은 있다. 일단 교양있는 부자는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제된 언어를 쓰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안다. 그런데 졸부는 딱 정확하게 반대다. 특히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을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재력을 무기 삼아 상대방의 자존감을 들었다 놨다 하는 부류의 졸부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것만으로도 분노가 치밀어오른다.

베르디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가 말하는 것
베르디 리골레토는 상당히 독기어린 사회비판의식이 담겨있는 오페라다. 비극적으로 끝난다고 단순히 눈물 질질 짜고 공연장 밖으로 나오기에는 이 오페라가 함축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많고 또 묵직하다. 이탈리아-오스트리아 당국의 검열이란 단어로 포장한 딴지 때문에 등장인물의 이름을 죄다 바꾸고 배경도 바꾸고 심지어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 “저주”의 뉘앙스조차 손실을 입을 만큼의 수정 해프닝을 통과해 세상의 빛을 본 이 대작. 그러나 1852년 페니체 극장에 모인 초연의 청중들은 수정이 불가피했던 이 오페라의 행간을 읽어냈고, 결국 이 오페라는 베르디의 출세작 중 하나가 됐다.

나는 지금(조금 지엽적이지만) 초점을 여주인공 질다에게 확대해서 맞춰 보고자 한다. 질다는 리골레토의 딸로,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순진한 여자다. 그녀는 작정하고 자신의 본모습을 속이고 오직 재력만으로 마음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만토바 공작에게 사랑에 빠진다. 질다를 손에 넣은 공작, 아예 자신의 성으로 그녀를 납치해버린다. 이에 분노한 아버지 리골레토는 살인청부업자까지 고용하며 만토바 공작을 암살하려고 하지만, 이미 몸이고 마음이고 다 공작에게 줘버린 질다는 오히려 공작을 싸고 돈다. 심지어 공작을 위해 죽겠다고 결심한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가. “여자는 나쁜 남자에게 끌린다”는 지극히 진부한 통념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그런 본능을 나쁘다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건 또 이렇게 지엽적으로 볼 수 없는 문제다. “나쁜 남자”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남자 정도의 의미라면 그건 상당히 매력적인 것이다. 그러나 만토바 공작이라는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작정하고 상대방을 속된 말로 갖고노는 전형적인 천박한 졸부의 모습이다. 그걸 인식해서 하루라도 빨리 빠져나오면 다행이다. 그런데 끝까지 그런 사람에게 매달려 목숨을 버리는 비극이 일어난다. 물론 리브레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의 불행을 양식 삼아 살아온 주인공 리골레토의 저주가 딸에게 향했다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이런 캐릭터의 여인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99퍼센트 이상의 확률로 상처 좀 받고 끝난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기는 하지만.

나쁜 남자, 재력 좋은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불행은 보이면 피하는 것이지, 굳이 안고갈 필요는 없다.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런 사람과 졸부근성으로 똘똘 뭉친 인성에 결함이 있는 사람은 최소한 구분하는 게 옳지 않으랴. 그런 사람과 엮이면 한 사람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건 한순간이요, 적게 잡아도 “마음고생 다이어트”수준의 데미지는 피할 수가 없다. 남녀관계로 한정할 필요도 없다. 자고 일어나면 재벌 3세들이 재력 믿고 막말대잔치를 시전하는 꼴을 얼마나 많이 보는가.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의 노래는 어떤 시선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알려주는 일종의 안전경고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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