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뮤지션 Dec 09. 2018

역발상의 기막힌 모범사례-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랩소디

16분음표 네 개의 나비효과

https://youtu.be/NMFtzhRNGWo

라흐마니노프: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op.43

미하일 플레트뇨프, 피아노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18변주는 15분 25초 부터)




역발상, 연애와 축구?
 남자들끼리 모여 밤새워 군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상, 아무래도 (미혼인)사람들이 모였을 때 제일 만만하게 할 수 있는 만담의 주제는 연애다. 이렇게 연애 이야기를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고민을 말하고 들어주고 나름의 솔루션을 제시해주기도 한다(그렇다고 당장 연애 고민을 갖고 있는 이의 문제가 뚝딱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남녀의 마음의 크기가 차이나는 경우, 즉 짝사랑이거나 모호하게 밀당을 하는 경우는 당사자는 물론이고 듣는 이도 썩 마음이 편치 않다. 어느 날 나와 상당히 친한 지인이 역시 이러한 문제로 고민을 털어놨다. 나는 이렇게 솔루션을 제시했다. “차라리 서로 깨는 모습 보여줘가면서 허물없이 지내봐라. 그래도 설렘이 있고 여전히 좋다면 인연이요, 그렇지 않더라도 절친으로는 남을 테니”. 온갖 관계의 테크닉 따위의 스트레지 쥐어짜는 대신 먼저 친해져보라는 역발상이었던 것이다. 그 지인은 결과적으로 그렇게 했고, 시간이 꽤 지난 후 마음이 딱 편해졌다는 피드백을 보내왔다.

 연애를 논하지 않더라도, 뭔가가 꼬여가는 상황에서 역발상을 할 수 있다면 그만큼 확실한 위기 타개책도 없다. 당장 얼마 전에 끝난 월드컵의 독일전을 떠올려보자. 결과는 모두가 기억하다시피 대한민국의 2:0 승리다. 그런데 경기 내용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밀렸고 종료직전까지 거의 버티기만 하고 있었다. 당시 세계최강이던 독일은 무슨 짓을 해도 한국의 골문이 열리지 않자, 골키퍼까지 자기들 골문을 비우고 공격에 가담했다. 이 틈을 타서 텅빈 골문으로 질풍같이 내달리던 손흥민이 독일을 확인사살시키는 골을 넣어버렸다. 역습, 즉 역발상의 전형적인 예라 할 만하다.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광시곡이 보여주는 역발상
 음악에서도 역발상은 때로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선사한다. 그 중에서도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랩소디의 저 유명한 18변주는 역발상이 가져온 효과의 모범답안이라 할 만하리라. 너무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워서 따로 떼어서 연주하기도 하는 파가니니 랩소디의 18변주는 언뜻 들어 보면 주제선율과 조금도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나는 한 때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니깐 랩소디지”라고.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리듬을 갖고 있는 주제와 전혀 매치가 맞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파고 들어가보면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주제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의 엔진 역할을 하는 16분음표 네 개의 진행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18변주는 똑같은 리듬이 내려왔다가 올라간다. 리듬은 그대로 두고 진행만 거꾸로 뒤집은 것이다. 이 역발상의 효과는 무시무시하리만큼 극적이다. 날카롭고 공격적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꿀 떨어지듯 달달해졌다. 여기에 라흐마니노프 특유의 숨막히게 아름다운 화성진행과 극적인 다이내믹의 대비가 얹혀지면서 말도 안되는 음향의 마법이 탄생한다. 이 극적인 이펙트는 바로 간단한 리듬을 살짝 뒤집는 정도로 시작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 무시무시한 나비효과 말이다!


 역발상이라는 것이 대개 밝고 통통 튀는 사람과 자동으로 우리네 머릿속에서 연관되곤 하므로, 이 스토리만 보면 자연스럽게 라흐마니노프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인물이라고 인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라흐마니노프는 상당히 우울한 기질의 소유자였고, 그 컨셉으로 자신의 예술을 만들어갔던 인물이다. 바꿔 말하면 우울하거나 답답하거나 해도 간단한 역발상 한 번이면 언제든 극적인 반전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결과론적인 얘기긴 하지만, 연애 고민을 털어놓는 지인에게 일단 먼저 깨는 모습부터 보여주라는 코멘트가 나온 것도 어쩌면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광시곡 18변주를 영감 삼아 나온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그런데 친구 조언이나 해주고 있을 때는 아니다! 이 아이디어를 현재 나는 왜 적용시키지 못하는가?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연말연시도 다가오는데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쇼팽을 통해 고찰하는 예민한 나, 예민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