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뮤지션 Apr 12. 2019

30대의 나와 30대의 베토벤, 친구가 되다

그의 교향곡 2번이 엮어준 나와 악성의 영적인 우정


https://youtu.be/70e28x9OaPQ

베토벤:교향곡 2번 D장조 op.36

레너드 번스타인

빈 필하모닉


예상치도 못한 빈 필과의 만남, 안구를 자극하다

 2019년 4월 6일, 빈의 게른트너 링을 아웃도어 바람막이 차림으로 거닐던 나는 빈 필하모닉의 본거지인 무지크페라인 앞에서 취소표를 파는 어떤 아저씨와 눈과 눈이 마주쳤다. 49유로짜리 티켓을 40유로 부르면서 사 가라고 한다. 시계를 보니 30분 뒤에 빈 필의 콘서트가 있다.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바로 덥썩 물었다. 안드리스 넬손스가 지휘하는 베토벤 교향곡 1,2번과 트리플 콘체르토가 프로그램이다. 사실 구미가 썩 당기는 프로그램은 아니었다. 세 곡 모두 알뜰히 챙겨듣는 곡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빈 필이다. 빈까지 와서 자기네들 홈구장에서 빈 필이 연주하는데, 이건 설령 엎드려뻗쳐서 보라고 해도 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예상치도 못하게 저 유명한 무지크페라인에 “뽄새 없게” 노스페이스 바람막이를 입고 입성한 나는 마지막에 연주된 교향곡 2번을 듣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마치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줄줄 눈물이 흘렀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베토벤 교향곡 2번은 기본적으로 상당히 밝은 곡이다. D장조라는 밝디 밝은 키를 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굉장히 박진감 넘치면서도 간결하고 명료한 짜임새가 특징이다. 이런 곡이 귀에 들어오는데, 엉뚱하게 내 눈물샘이 감당을 하지를 못한다. 대체 무엇 때문일까?


하일리겐슈타트에 하루종일 붙어있었던 이유
 이 연주회 이틀 전, 나는 하일리겐슈타트 일대에 하루종일 붙어 있었다. 빈이 얼마나 볼거리가 많은 도시인가. 특히 나같은 “음악덕후”는 음악가 흔적만 찾아다닌다고 해도 일주일이 빠듯한 도시가 빈이다. 그런 내가 하일리겐슈타트가 있는 그린칭에만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붙어 있었다. 이 한적한 빈 외곽지의 시골동네는 마치 나를 작정하고 붙잡아두려는 듯한 기분마저 느끼면서. 더군다나 브라티슬라바에서 직접 운전해서 온 나와 친한 지인은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썼다는 그 박물관에 있는 독일어 안내문들을 직접 찍어 구글번역기에 돌려 해석하는 열정을 시전한다. 영어로 된 안내문만 보고 해석하고 마는 내게 그 지인이 일갈을 날린다. “독일어 해석을 해보니 표현이 시적이더라!” 이러니 이 박물관에서 머문 시간만 무려 두 시간! 박물관을 빠져나온 후에도 발길은 여전히 그린칭 일대에만 머무르고 있다. 칼렌베르크 언덕을 거쳐, 동네 골목들을 구석구석 싸돌아다니다가 결국 베토벤의 산책로에 닿는다. 긴 말 할 것 없이, 나는 그저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 때의 베토벤에 빙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30대 시절 베토벤과 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바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던 30대의 베토벤과 말이다!

잘 나가던 베토벤에게 무슨 일이? 답은 교향곡 2번에 있다
 빈에 막 정착한 베토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한 시기였다. 하지만 운명은 베토벤을 마냥 잘 나가게 두지는 않았다. 귀가 서서히 멀어갔으며, 연인이던 줄리에타와의 사랑은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최고로 잘 나가던 시기에 불청객처럼 찾아온 이 불운들은 베토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다. 결국 베토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고 펜을 들어 유서를 써나가지만, 말이 유서이지 남은 인생의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글이 되었다. 그리고서 내놓은 곡이 교향곡 2번이고, 이 곡을 시발점으로 그 유명한 “명곡의 숲”으로 일컬어지는 베토벤의 진정한 전성기가 활짝 열렸다.

 교향곡 2번은 언뜻 들으면 그저 밝기만 한 것 같지만,다분히 파격적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밝음은 그저 페르소나일 뿐, 내면에는 엄청난 페이소스가 도사리고 있다. 전곡에 걸쳐 이어지는 파격적이고 역동적인 리듬과 전통적인 형식을 완전히 갖고 노는 듯한 위트는 그 이면에 베토벤이 겪었던 상상초월 무게감의 고충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듯해 찡한 가슴을 어찌할 수가 없다. 특히 피날레 악장에서 코다를 한 악장의 무려 3분의 1이나 할애하는 건 대체 뭘 뜻하는 건가? 코다란 기본적으로 편지의 “추신”과 같은 성질을 갖는 것이고, 보통 우리가 편지를 쓸 때 핵심 내용을 추신에 집어넣지는 않는다. 그런데 베토벤이 코다에 할애한 부분이 3분의 1이나 된다는 건 많은 걸 생각케 한다. 자신이 힘들었다는 걸 들키기 싫으면서도 누군가는 알아줬으면 하는 그 이중적인 기분 아니겠는가. 이 괴랄하게 긴 코다를 두고 당대의 호사가들은 적지 않은 비난을 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 때 당시 초연의 현장에 내가 있었더라면 베토벤을 찾아가 뜨겁게 포옹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그것이, 바로 급작스럽게 빈을 찾은 나의 마음과 절묘하게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교향곡 2번 속에서 묻어난 나의 이야기
 나는 지난 3개월 동안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겪었다. 날아갈 것 같던 기분이 어느 한 날 땅 밑으로 추락하듯 나락으로 빠졌다. 거기에는 나의 야심찬 업이 걸려 있었고, 사랑도 걸려 있었으며 소중한 우정도 걸려 있었다. 여기에 걸린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갔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힘들었고 수면제 없이는 잠도 못 잘 지경이 됐다. 결국 무작정 티켓을 끊고 빈에 발을 내디뎠다. 빈에 입성한 나의 발걸음은 마치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듯 본능적으로 베토벤의 발자국이 있던 곳으로만 향했고, 그 정점에서 나는 지금의 내 나이 또래였던 베토벤과 영적으로 만났다. 그렇게 나는 삼십대의 베토벤과 친구가 되어 빈을 떠나게 된 셈이다. 여전히 힘들긴 하지만, 한결 홀가분하다. 베토벤 선생, 꿈에서라도 만나 술 한 잔 기울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역발상의 기막힌 모범사례-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랩소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