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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Jun 10. 2019

월광소나타는 러브송이 아니다!

월광소나타,베토벤의 실망과 분노의 아이콘

https://youtu.be/MIx4AGaqrMg

베토벤:피아노 소나타 14번 c#단조 op.27-2 “월광”

임동혁, 피아노

https://youtu.be/zOloXCwDBg8

김동률, 이소은 “욕심쟁이”



앵? 월광소나타가 러브송이 아니라고?
32곡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 중 인기투표를 한다면, 늘 선두를 달릴 것이 확실시되는 14번째 소나타 “월광”. 그 인기 비결은 누가 뭐래도 이 곡에 얽힌 낭만적이고 러블리한 스토리 덕분일 것이다. 베토벤의 여인들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줄리에타 귀차르디라는 여인에게 바쳐졌다는 스토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설렘과 낭만이 있고, 주어진 이 월광소나타라는 음악에 찬란한 후광을 덧입혀준다.  

 그런데 나는 지금 이 순간, 월광 소나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 노래가 맞는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재기해보기로 한다. 일단 이 곡의 배경지식이 아예 없다 가정하고 들어 보자. 악보가 있으면 더 좋겠다. 작곡 배경, 피헌정자 따위의 배경지식을 걷어내고 들어 보면, 이 곡은 낭만적이고 환상적일지언정 달달하거나 러블리한 구석을 의외로 찾기 힘들다. 달빛이 비치는 호수를 묘사했다는 저 유명한 1악장은 신비함은 있으되 결코 러블리하지는 않다. 대신 슬픔이란 감정이 강한 양념처럼 더해진다. 나만 이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모르지만, 셋잇단음표의 리듬이 느리지만 꾸준히 로테이션을 도는 위에 베토벤이 쓴 주선율에서는 도저히 달달한 감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 의심은 2악장에 가면 더 짙어진다. 불과 한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알레그레토라는 어중간한 템포를 취하는 2악장은 밝고 아름답지만 문자 그대로 점만 찍고 휙 넘어가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프레스토의 무식하게 빠른 템포에 아지타토까지 지시하며 수십 km 지하의 멘틀이 끓어오르는 듯한 악상을 품은 3악장에 오면 나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 도저히 러블리한 감정을 가지고 해석할 수 없는 악상이다. 거기다가 앞 두 악장에서 형식적으로 잠시 외도를 했던 베토벤은 3악장에 와서 엄격한 소나타 알레그로 형식을 전광석화처럼 소환한다. 좀더 큰 그림으로 보자. 월광 소나타 앞의 피아노 소나타 두 곡은 모두 소나타 형식으로 된 악장이 하나도 없다! 러블리함으로 따지자면 앞 두 곡이 훨씬 더 러블리한 악상이 들어가있기도 하고 말이다.

알고보면 베토벤의 좌절과 분노의 아이콘
 이 정도 되면 재구성이 필요하다. 월광 소나타의 1악장은 가라앉은 슬픔, 2악장은 찰나의 평온함, 3악장은 끓어오르는 분노 정도로 해석하는 게 훨씬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근거도 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베토벤과 줄리에타의 사랑은 성공하지 못했고,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쓰고 한때나마 자살을 시도한 배경에 줄리에타와의 사랑 실패도 어느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리고 기록된 줄리에타의 행실을 보면 납득이 간다. 줄리에타는 결코 순정녀가 아니었다. 밀당의 고수였고 베토벤을 들었다 놨다 한 여우같은 여자다. 음악밖에 몰랐던 순진한 남자 베토벤이 농락당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찌됐건 이 곡은 줄리에타의 품에 안겼다. 러블리함이 아닌 슬픔과 분노가 가득한 곡이 그녀의 품에 안긴 셈이다. 어쩌면 베토벤은 이 곡을 통해 최종적으로 줄리에타에게 “소심한 복수”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슬픔으로 시작한 음악이 표독스런 분노로 마무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3악장은 매우 어려운 테크닉을 요구한다. 줄리에타는 베토벤에게 “취미로” 피아노 레슨을 받은 사람임을 생각해 본다면, 3악장의 난이도가 그녀가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베토벤이 줄리에타와의 사랑 실패로 느낀 절망스러운 감정을 날것 그대로 토설했던 것이라는 가설에 확신이 생긴다.

납득이 안 간다면 케이팝을 소환해보세요!
 그래서 난 피아노 레슨을 할 때 월광 소나타를 분노에 휩싸여 있거나 사랑에 실패한 사람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러브러브 상태에서는 절대로 이 곡의 참맛을 내지 못한다. 단순 무식하게(?)비교해 보자. 내가 아는 가장 달달한 케이팝은 김동률과 이소은이 듀오로 부른 “욕심쟁이”이다. 이 노래의 가사를 한 번 보자.

매일 아침에 젤 먼저 날 깨워주기
내가 해준 음식은 맛있게 다 먹어주기
한달에 하루쯤은 모른 척 넘어가주기
친구들과 있을 땐 나 말고 딴 데 보지 않기

잠들기 전에 꼭 내게 전화해 주기
한번 들은 얘기도 재밌게 다 웃어주기
혹시 몸이 아플 땐 나에게 숨기지 않기
하고 싶은 얘기는 돌려서 말하지 않기

사랑한다는 말은 나에게만 하기
좋아한다는 말도 너무 아껴하지 말기
혼자서만 괜히 삭히지 말고
무슨 일이든 다 말해주기
우리끼린 절대 거짓이 없기

엉엉 울 때엔 날 그냥 내버려두기
내가 투정 부릴 땐 말없이 껴안아 주기
술이 취해 전화를 걸어도 화내지 말기
남자들의 세계는 절대로 넘보지 않기

사랑한다는 말은 나에게만 하기
좋아한다는 말도 너무 아껴하지 말기
서로에게 상처 받았던 일들
그 자리에서 다 털어놓기
우리끼린 절대 비밀이 없기
괜히 다툼 끝에 서로 토라질 때
먼저 말 걸어주고 미안하다 말하기

사랑한다고 날 좋아한다고
너무 보고 싶다고 수도 없이 말해주기
서로에게 감동 받았던 일들
마음속 깊이 감사해 하기
내가 잘해주는 만큼 나에게 더 잘해주기

헤어지자는 말은 평생 꺼내지도 말기
지금까지 굳게 맺었던 약속
단 한 가지도 빼놓지 않기
내가 사랑하는 만큼 더욱더 날 사랑하기

 이 가사를 보고 월광 소나타를 다시 들어보자. 단언컨데 세 악장 중 단 한 악장도 매치가 되지 않는다. 베토벤의 사랑노래라면 피아노 소나타 24번 F#장조 “테레제”가 딱 거기에 해당한다. 베토벤에서 달달함을 찾고 싶다면, 월광 소나타는 일단 구석으로 치워버리고 24번을 찾자. 어찌됐건 월광 소나타는 러브송과는 거리가 안드로메다급으로 멀다는 게 나의 확고한 생각이다! 월광 소나타와 매치되는 케이팝을 찾자면,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정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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