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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오늘내일 Apr 27. 2018

과거 연구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 알고싶어 한다 

우리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 거주사회 및 지구촌에서 보고 듣고 겪는 수많은 현상들에 대해서 알고 싶어한다. 고대 우리의 먼 친척들은 해와 달이 뜨고지고, 천재지변이 일고, 다양한 동식물들이 상호작용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태어나고 죽는 등의 일들에 대해 궁금해 해왔다. 학문과 과학의 발달로 고대인들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에게도 오늘날 세상은 모르는 것 투성이다.  


이렇게 눈앞에 펼쳐지는 현상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갈증은 자연스레 과거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져왔다. 예전 사람들도 그래왔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과거를 궁금해 한다. 애인의 과거사, 부모님의 어린시절, 올림픽의 역사, 항해술의 발전, 초콜릿의 시초, 서동설화, 이집트문명, 석기시대, 인류, 공룡, 지구, 우주의 기원 및 전개 등등.. 이는 과거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과거를 동경하는 습성에서 기인하기도 한다.

 

과거에 대한 동경 

우리는 과거에 대해, 때론 막연한 형태로, 동경심을 가지고 있다. 개인은 자신의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며 그때가 더 나았다고 생각한다. 감정이 식은 연인은 생각하는 것 만으로 심쿵했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한 사회 혹은 국가의 구성원들은 그 집단의 전성기 혹은 전신(前身)을 돌아보며 그때처럼 되어보자 다짐하곤 한다. 과거의 특정 인물은 입증자료가 많지 않아도 많은 이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고 고대 유물 및 기념물은 당시 가치에 상관없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오늘날 역사학 및 고고학적 연구에서 호고주의(好古主義, antiquarianism)와 같이 과거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태도는 지양되지만, 이러한 막연한 호기심 및 동경이 오늘날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과거 연구의 출발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그 먼 옛날을 연구해서 대체 무슨 소용이 있지?..  
왜 과거를 연구해야 하는가? 

나는 고고∙인류학적 연구를 하는 대학원생이다. 고고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나도 고고학에 관심 많아", "멋지다" 하기도 하지만, "그 먼 옛날을 연구해서 대체 무슨 소용이 있지?"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 우린 왜 과거를 연구해야만 하는가? 

생명체들의 과거-현재-미래 연결 시도 

인간은, 다른 생명체들도 그렇듯이, 과거∙어제∙방금전의 기억과 경험을 토대로 지금∙오늘∙내일∙미래를 꾸려나간다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 때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해나간다.  

하지만 2가지 현상이 이를 방해한다 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의 의식∙무의식적인 기억 및 경험이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거나 왜곡되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둘째는 타인∙집단∙사회∙미디어 등의 작용으로 파편적이거나 왜곡되었거나 전혀다른 기억 및 경험이 각인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 및 경험의 틀어짐을 미리 막거나 고쳐가는 방법에도 2가지가 있다 할 수 있겠다.  

첫째는 많은 생명체들이 하는 방법으로써, 그 부모 혹은 가까운 친족동료가 경험전수  교육을 해주는 것이다. 인간의 부모는 위험한 음식 및 사물을 알려주고 생존을 위한 언어 습득을 도와주고 생활의 지혜가 담긴 책을 읽어주며 경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러한 교육에는 부모 본인의 과거에 대한 기억 및 경험이 큰 토대가 된다. 

사바나 초원의 가젤 부모는 사자의 위험성을 교육해주고, 사자의 부모는 사냥법을 알려주고, 하이에나 부모는 남은 음식을 쟁취하는 법을 교육해준다.  


두번째 방법은 어떠한 형태의 기록으로 남기거나 지속가능한 형태로 전수시켜가면서 보다 많은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간직할  있게 하는 것이다. 생명체들은 각자의 방법과 노하우로 이러한 기록 남기기 및 정보 전수를 한다. 꿀벌은 새로운 꽃 군락의 방향과 거리에 따라서, 말벌의 침입 위험이 있을때, 여왕벌이 태어났을때 등 상황에 따라 약속된 형태들로 다양한 춤을 춘다(Frisch 1967; Raffiudin and Crozier 2007). 이러한 행위는 여러 세대에 걸쳐서 지속되는 일종의 생존  번영을 위한 과거-현재-미래 연결 시도라   있다. 이런 춤이 꿀벌이 지구상에 출현했을 때부터 존재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그때는 먹이 부족과 천적의 침입에 더 취약했을 수 있다. 

인류의 경우에는 조형물, 뼈에 새긴 표시, 동굴벽화, 무덤 껴묻거리, 구술 전수, 의례행위 전수, 춤, 도식, 문자, 책, 시, 설화, 역사서, 신문, 일기, 음악, 사진, 페이스북, 그리고 다음 브런치 등이 이에 해당하겠다.  

고뇌하는 인간, 기원전 1만 4천년전 동굴벽화, 스페인 

학문 분야들의 과거-현재-미래 연결 시도 

생각해보면 고고, 역사, 인류, 고기후, 지질학 같은 학문들만 과거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학문 분야들이 과거를 연구하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분석하여 오늘날 및 미래에 연결짓고 도움이 되고자 한다. 교육학에서는 수년, 수십년 혹은 수백년전 시도되었던 다양한 교육방식들을 분석하고 종합하여 더 나은 학습문화 및 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려 노력한다(Herreid et al. 2011). 심리학에서도 인간의 의식∙건강∙행위와 영향을 주고받는 다양한 요소들 및 메카니즘에 대해 연구하는데 있어 수백년전 사례들까지 적용하기도 한다(Rolls 2005).  

고고∙인류학적 연구
오늘날 및 미래에 이바지하기 

고고∙인류학적 연구들이 어떠한 방법으로 과거-현재-미래 연결을 시도하고 어떻게 오늘날 및 미래에 이바지하고 있는지에 대해 몇가지 소개해 보려한다.  

인간은 장기간에 걸쳐 환경에 적응해가고 또 동시에 환경을 변화시켜 나간다. 자연환경 및 생태계와 인간의 장기간에 걸친 상호작용을 통시적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이 역사생태학(historical ecology)적 접근방법이다. 어떠한 지역의 기후가 따뜻해져 식물들의 분포가 변화하면 동물들의 생활범위가 변화하고 이에 따라 거주민들도 생업전략과 거주공간을 바꿔나간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거주공간을 조성하고 식물 및 동물자원을 이용하고 농경∙가축활동 등을 시작하게 되면 그 공간의 토양구성∙수로∙동식물 종 구성 등에 변화를 주게 된다. 


이렇게 인간에 의해 변화된 생태환경은 또다시 사람들 및 동식물에 영향을 준다. 끊임없는 상호 피드백이 계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먼 초기인류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규모로 환경에 적응하고 또 환경을 변화시켜 왔다. 고고학자 등은 이러한 역사생태학적 관점을 활용하여 수백에서 수만년 전부터 오늘날 그리고 미래에 이르는 인간사회 및 주변생태계의 변화를 통시적, 거시적으로 추적 및 예측한다.  


미국 북서부-캐나다 서부 지역 거주민들에게 오랜 주요 식량자원인 청어의 개체수 보존은 큰 관심사이다. 하지만 청어 보존을 위한 현 환경법이 대규모 어업이 시작된 20세기 중반 이후의 상황만 고려하여서 장기간에 걸친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만여년 이전부터 유럽인의 침략 및 이주,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 지역 생태계와 적극 상호작용하며 생활해온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청어의 적정 개체수를 유지하며 지속가능한 어업을 하는 노하우를 장기간 유지해 왔. 생태인류학적 연구팀과 민족지∙동물고고학적 연구팀은 이러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근현대 생활풍습, 그리고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유적들에서의 생선뼈 및 어로도구 등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청어의 개체수는 인간의 영향 뿐만 아니라 거주 및 산란장소 변동에 따른 자연스러운 증감에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제안하였다. 

미국 콜롬비아강 유역, 아메리카 원주민 위시램(Wishram) 구성원의 낚시 모습

따라서, 청어 개체수 변동의 원인파악 및 예측모델을 마련하는 데 있어 수백, 수천년에 걸치는 자연적인 생태계 변화 및 인간-환경 간 상호작용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또한 오늘날 및 미래 세대들이 청어를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전통적 생태 지식에 따른 청어 이용 노하우를 환경법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되었다(McKechnie et al. 2014).  


이처럼 몇세대에 걸쳐 주변환경 및 동식물과 부딪혀오며 축적되어온 특정 집단의 전통적 생태 지식(traditional ecological knowledge)은 생태계와 인간 간 복잡미묘한 상호작용을 파악하고 예측하는데 도움이 된다. 의도적인 불을 질러 농경활동을 하는 화전농법은 인류의 오래된 생업전략인데, 이 방법이 해당지역 생태계 및 사람에게 주는 장기적 영향을 몸소 잘 알고있는 이들은 바로 그곳에서 몇세대에 걸쳐 살아온 거주민들이다. 해당 구성원 및 사회를 인터뷰∙현지관찰∙유적 발굴을 통해 연구하면 그들의 화전농법과 생태계 간 장기간 상호 영향력을 추적할 수 있다. 그러면 오늘날 생태계 불균형, 식물식량자원 감소, 화재 증가 등에 대한 원인파악 및 대책 마련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의료인류학(medical anthropology)적 연구는 해당지역 집단의 생활문화 양상, 사회시스템, 구성원들의 생물인류학적 특성을 종합하여 질병∙보건 및 관련 사안들에 대해 분석하고 대책 마련을 한다(McElroy and Townsend 1989). 여기에는 통시적 관점의 민족지적 조사가 주요 역할을 하는데, 특정 지역의 몇세대에 걸친 자연환경, 사회복합화, 질병의 역사, 정부의 지원환경 등의 복잡한 상호 영향력이 그 집단 구성원들의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끼쳐왔는지 추적을 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그 지역의 보건문제 및 미래 질병대책 마련에 이바지 할 수 있다.     


이외에도 훨씬 다양한 예시들이 존재한다. 잘 나가던 집단 및 문명의 몰락 원인을 연구하면 오늘날 집단 및 국가에 존재하는 위험 요소를 제기할 수 있다. 옥수수 등과 같은 식량 자원들과 인간의 상호작용 역사를 연구하면 현재∙미래 식량위기 문제에 대처하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또한 전기 홀로세 및 중세시대 소빙하기(Little Ice Age) 기후변화에 따라 동식물과 고대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연구하면 오늘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그리고 미래에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고고학적 연구를 하면서 한번씩 자문해본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 먼 옛날을 연구해서 대체 무슨 소용이 있지?"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난 이렇게 답하고 싶다. 고고학적 연구를 비롯한 과거에 대한 연구는 현재 및 미래에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그러한 이바지 하려는 노력이 당장에는 성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계속 시도하고 연구성과를 축적하고 학문경계를 뛰어넘는 협력을 하면, 분명히 나타난다고.  


E.H. Carr이 말했듯이 역사라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며(1961), 과거에 대한 연구는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그리고 미래에 지속적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야 하겠다. 이는 비단 학술연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의 현재 순간순간 하루하루는 살아있는 역사이다(Corfield 2008). 우리에게는 이 순간과 현재를 온힘을 다해 즐기면서 살고, 동시에 의미있는 기록들을 계속해서 남겨나갈 필요가 있다 말하고 싶다. 시인 휘트먼이 그랬듯이 ‘위대한 인생사의 장막은 계속되고, 여러분도 구절 하나 더할 자유가 있습니다!’ 


    

참고문헌 
Carr, Edward H., 1961. What Is History (역사란 무엇인가)?. George Macaulay Trevelyan 

    Lectures; New York: Vintage.  

Corfield, Penelope J., 2008. Why history matters (역사가 왜 중요한가). Retrieved from 

     http://www.history.ac.uk/makinghistory/resources/articles/why_history_matters.html 

Frisch, Karl von., 1967. The Dance Language and Orientation of Bees (벌의 춤 언어와 지

     향성). Cambridge, Mass.: The Belknap Press of Harvard University Press. 

Herreid, Clyde F., Buskist, William, and Groccia, James E., 2011. Case Study Teaching (교육 사

     례연구). New Directions for Teaching and Learning 128: 31-40. 

McElroy, Ann, and Townsend, Patricia K., 1989. Medical Anthropology in Ecological 

     Perspective (생태적 관점의 의료인류학) (2nd ed.), Boulder, Colorado: Westview Press. 

McKechnie, I., Lepofsky, D., Moss, M. L., Butler, V. L., Orchard, T. J., Coupland, G., 

     …Lertzman, K., 2014. Archaeological data provide alternative hypotheses on Pacific 

     herring (Clupea pallasii) distribution, abundance, and variability (고고학적 데이터가 제시하는 

     청어 분포, 개체수, 다양성에 대한 대안가설들).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1(9), E807–E816.  

Raffiudin, Rika, and Crozier, Ross H., 2007. Phylogenetic analysis of honey bee behavioral 

    evolution (꿀벌 행동 진화에 대한 계통발생학적 분석). Molecular Phylogenetics and Evolution 

    43(2): 543–552.  

Rolls, Geoffrey, 2005. Classic Case Studies in Psychology (심리학 분야에서의 과거 사례 연구).

    Hodder Education, Abingdon, England.  

Society for American Archaeology, 2018. Archaeology for educators (Ch.2. Understanding 

     the past) (교육자를 위한 고고학, 제2장 과거 이해하기). Retrieved from 

     http://www.saa.org/publicftp/PUBLIC/educators/02_pas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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