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차단한 너에게

월간 유랑 - 25년 2월

by 유랑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는 걸 눈치채는 순간, 나는 어김없이 너를 떠올리고 말아. 순식간에 10년도 더 전의 그때로 돌아가 버리고 마는 거야. 가장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던 그때. 나랑 함께하던 내내 네가 내 욕을 하고 다녔다는 걸 알게 됐던 그때. 영문도 모른 채 혼자가 됐던 그때.


중학교 3학년 개학날이었지. 겨울방학부터 네가 내 연락에 잘 답하지 않기 시작했고, 이상하다 생각하던 나는 등교하자마자 이제 다른 반이 된 너에게 찾아갔었어. 안녕- 인사를 건넸는데 너는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스쳐 지나갔지. 못 봤나 싶어 쫓아가서 말을 걸어봤지만 내 말이 그냥 공중으로 흩어져 버리게 두었고.


뭐지? 단짝처럼 붙어 다니던 우리가 고작 다른 반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렇게까지 멀어져 버리는 거야?


아니, 이유는 우리가 다른 반이 되어서가 아니었어. 고작 그런 게 아니었지. 그 이유를 너는 내게 알려줄 생각이 없었고, 네가 안 알려주니까 주변에서 말해주더라. “걔 우리한테 네 욕 엄청 했어. 2학기 돼서는 거의 매 쉬는 시간마다 찾아왔던 거 같은데?” 그것도 몰랐냐는 듯 얘기하던 그 애들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 약간 신난 듯, 꼴좋다 생각하는 듯 보였거든. 그 태도에 상처받으면서도, 더 듣고 싶어 매달렸던 내 모습도 생생하고.


너는 내 외모부터 말투, 카톡 습관, 행동들까지 소름 끼치게 싫다고 했어.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예쁘지도 않은데 예쁜 척하는 게 싫다고 했고, 잘난 척 허세 떠는 게 싫다고 했고, 네 말이 들리면서 들리지 않는 척 무시하는 게 싫다고 했고, ‘뭐랰ㅋㅋ’ 하며 ㅋ을 받침으로 써서 보내는 카톡들이 싫다고 했지. 눈치도 없어서 네가 나를 싫어하는 걸 모르는 건 웃기다 했던가.


진짜 그게 이유라고…? 가만 들어보니 이건 뭐, 그냥 나라는 사람이 싫은 거더라고. 내 존재 자체가. 처음엔 황당했어. 내가 그렇게 싫었으면 왜 나랑 1년 동안 붙어 지냈을까. 우리 집은 왜 그렇게 많이 왔고, 또 너희 집엔 왜 그렇게 많이 데려갔을까. 새벽에 울며 전화해서 가정사 얘기는 왜 했을까. 우정 반지는 왜 맞췄을까. 무수히 많은 왜를 곱씹다 보니 자연스레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됐어. 우리가 같은 반이었던 그땐 내가 필요했고, 지금은 아니구나. 내가 너한테는 그런 존재였던 거구나.


상처, 당연히 받았지. 네가 원했던 게 그거 아니야? 그래서 그렇게 한 번에 끊어버린 거잖아. 나한테 어떤 얘기도 해주지 않고 내가 좋아했던 너를 내 인생에서 빼버렸지. 아니, 그게 다는 아니었다. 그 이후론 대놓고 네 친구들과 내 욕을 지겹게 많이 하고 다녔으니까. SNS에도 내 얘기를 보란 듯 올려댔고, 나중에는 결국 나를 차단했지. 나는 그걸 견디며 살아야 했어. 내 존재를 못 견디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 유치한데, 그땐 그냥 눈물 나게 속상했던 것 같아.


너를 참 많이 미워했어. 나한테 상처 준 만큼 너도 상처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땐 내 나름의 복수를 했지. 되는 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너의 치부를 알리고, 나는 피해자라며 호소하고, 보란 듯 네 친구들과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너의 불행을 기원하고. 한 몇 달은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 네가 먼저 했으니 정당하다 여기며.


근데, 웃기게도 전혀 개운하지 않고 점점 더 불행해지기만 하더라. 내 마음의 중심에 내가 아닌 네가 앉으니 그렇게 되더라고. 내 행복보다 네 불행을 바라는 삶. 그게 뭐야. 그게 어떻게 내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어. 보란 듯 되갚아주고 상처 입히고 싶었지만 그만 놔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 한순간에 찾아오진 않았지만 내 안에서 너를 물고 뜯고 꼬집고 깨물다 보니 어쨌든 그런 날도 오더라고. 그날 이후로는 너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내 삶을 살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근데 있잖아. 네가 사람을 제대로 보긴 했나 봐.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은 살면서 계속 나타났어.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 생애주기 별로 계속. 이유는 대부분 비슷하더라. 내가 성격이 너무 세고, 여우 같고, 오만하고, 돌려 말할 줄 모른대. 어때? 네가 이 얘기를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려나? 글쎄, 그 많은 사람들을 겪으며 나는 생각했어. 음… 내가 확실히 호불호가 많이 갈리긴 하나 보다. 음… 확실히 순한 성격이 아니긴 하지. 그건 인정할게.


그치만 어떡하지. 나는 내가 좋은데.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히며 얻게 된 나만의 가치관이 소중한데. 앞으로도 남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서 끊임없이 반성과 성찰하며 살아가고 싶은데.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자.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쿨하게 보내주자.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거나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나를 흔들지 말자. 그리고 힘들었던 만큼 나는 누군가를 미워하지 말자.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고, 누구나 조금씩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하자. 함부로 상처 입히지 말자.


그렇게 점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고 믿으며 살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또 SNS 차단당한 걸 발견해 버렸지 뭐야? 퇴사한 동료였고, 근황이 궁금해서 찾아보다가 알게 됐어. 나를 미워하는 건 알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욕하고 다니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차단까지 할 줄은 몰랐는데! 왜냐면 우리는 서로 팔로우하고 있는 사이가 아니었거든. 내가 혹여나 오며 가며 보는 게 너무 싫어서 굳이 찾아서 차단까지 한 그 사람 생각을 하니 서글퍼지더라.


순식간에 네가 다시 내 마음에서 소환됐고. 나쁜 마음이 막 올라왔어. 근데 뭐 어쩌겠어. 다짐한 게 있으니까 그냥 몇 시간 정도 괴로워하고 말았지. 그리곤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 처음엔 서글픈 마음에 빠져서 네가 나한테 얼마나 상처 입혔는지, 인간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원망을 가득 담아 자기 연민에 빠진 글을 쓰고 싶었다? 근데 오랜만에 너와 내 사이를 곱씹다 보니 새삼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


지금은 내가 너를 진심으로 고마운 존재로 생각하고 있단 걸 알게 됐어. 왜냐면 네가 나한테 준 상처가 워낙 컸기 때문에 그다음에 나를 싫어했던 사람들은 비교적 견딜만했거든. 비꼬는 게 아니고 진심이야. 너는 나를 싫어했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가까웠던 사람이었고, 그만큼 좋아했던 사람이었어. 그래서 그때 내가 그렇게 복수심에 불탔는지도 모르겠어. 이후에 나를 미워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내 쪽에선 별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아서 깊은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거든.


반대로 말하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소중하게 대하기 위해 더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 거기도 해. 그것 또한 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이전에는 나는 무결하고 네가 다 나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걸 깨달았거든. 나한테 참 못난 면이 많더라. 너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반복되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 어떤 면이 누군가에게는 상처 혹은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고, 동의하는 부분은 고쳐 나가고 있어. 여전히 많이 부족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노력을 알아줄 거라 믿으며.


한 때 불행하길 바랐던 너에게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만큼 나는 단단해진 것 같아. 너는 어떨지 궁금하다. 내가 너를 이렇게까지 곱씹는 걸 알면 너는 어떤 반응일까? 역시 소름 끼쳐하려나?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너는 나를 네 인생에서 지웠으니 이 글이 전해질 일도 없을 테지. 나도 굳이 너를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고.


그래도 역시 나는 네가 행복했음 좋겠어. 욕심이겠지만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이 가끔은 즐거웠다고 추억했으면 좋겠고. 환한 웃음이 넘치던 무수한 시간이 사실은 거짓으로 가득 찼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괴로워져서 참을 수가 없거든. 뭐, 안 그래도 상관없어. 나는 그냥 내 멋대로 생각하며 살 거야. 그게 차단당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전해지지 않을 글에 진심을 가득 담으며, 결국 이 편지는 내가 나에게 전하는 다짐이자 응원이라는 걸 깨닫게 되네. 너를 핑계로 나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 이제 너를 다시 끄집어내지 않아도 혼자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 미움은 다 잊고 찬란했던 그때만 추억하며, 이만 보내줄게. 안녕, 꼭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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