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옆에 있어줘

월간 유랑 - 25년 3월

by 유랑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게 된 사람의 가장 가까운 존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오랜만, 정확히는 반 년만의 팀 회식 날이었다. 존경하는 리더와 함께하는 술자리에 들뜬 마음으로 회사를 나섰던 기억이 난다. 1차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막걸리와 뭉티기, 모듬전을 먹으며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일 얘기, 회사 얘기, 사람 얘기, 반복해도 재밌는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알딸딸~하게 술 기운이 오른 우리를 가로막은 건 1차 장소의 영업 종료 시간,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2차 장소를 알아보던 때였다.


"유랑아 혹시 통화 돼..??”


애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날따라 답장이 계속 늦던 그에게 약간은 삐져 있는 참이었다. 한소리 해야지 벼르던 와중에 받은 단 한 줄의 문장이었다. 회식 중이라고 분명 얘기해뒀는데, 통화가 되냐고 묻는 걸 보니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양해를 구하고 잠깐 한 쪽 구석으로 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유랑아, 통화 괜찮아?”

“응 잠깐 나왔어. 무슨 일 있어?”

“그…”


착 가라앉은 목소리. 그건 그가 애써 감정을 다잡으려고 할 때 내는 목소리였다. 쉽게 말을 잇지 못하며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정말 찰나였음에도 오만가지 생각이 오갔다. 안 좋은 일이 생긴 건가? 나한테 말 못할 큰 실수를 했나? 아님 전 애인에게 연락이라도 온 걸까? 심각한 상상부터 상대적으로 가벼운 상상까지, 머리 속에서 생각들이 혼란스럽게 튀어다니는 게 생생히 느껴졌다.


“어머니가… 어머니가 여행 중에 절벽에서 실족하셨대.”


예상치 못했고, 상상할 수 없었던 대답이었다. ‘뭐?’ 벙찐 나를 두고 그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가 노르웨이에서 트래킹 중 미끄러져 떨어지셨다는 것. 영사관에서 몇 시간 전에 연락을 받았고, 인터넷에서 찾아본 추락 장소는 말도 안 되는 높이의 절벽이었다는 설명. 떨어진 어머니를 아직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 영사님이 바로 출발해서 사건을 알아보고 다시 연락주시기로 한 것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아직 찾지 못한 어머니를 시신(屍身)이라고 표현하는 그.


전화를 붙잡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랜만의 팀 회식이고 뭐고 당장 그에게 달려가야만 했다.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소식에 모든 사고 흐름이 멈춘 것 같았다. 특히 실족이라는 부분이 나를 패닉에 빠지게 만들었다. 일찍이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같은 이유로 떠나셨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회사와 10분 거리인 그의 집을 향해 뛰듯이 걸어가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어느덧 집 앞, 조심스레 들어가니 방 안에서 애인의 동생이 오열하는 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왔다. 곧이어 마주한 애인은 동생의 슬픔을 덜어주기 위해 본인의 슬픔은 애써 속으로 삼키고 있는 모습이었다. 눈물을 한숨으로 털어내려 하고, 억지로라도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그를 보며 가슴 한켠이 시려왔다. 꿈이라고 믿고 싶고, 꿈이라면 어서 깨어나고 싶은 풍경이었다. 그 익숙했던 공간이 너무나도 낯설게 느껴졌다.


애인은 그의 어머니를 유독 애틋해하던 사람이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힘들게 이혼하고 아들 둘을 홀로 키우느라 안 해본 일이 없으셨던 어머니. 젊어서는 아들들을 키우느라, 늙어서는 어머니를 부양하느라 당신의 삶에서 많은 부분을 포기하셨던 그녀가 늘 안쓰러웠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더 반가웠다고. 처음으로 당신을 위해 한 선택이 좋았고, 돌아오셔서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하신 모든 것들을 응원하고 싶었다고 했다.


어머니가 자유를 찾겠다고 선언하고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도착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벌어진 사고에 그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니, 사실 속절없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그 와중에도 한달음에 달려와준 나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동생을 다독이고, 노르웨이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을 알아보느라 바빴으니까. 내면이 얼마나 깊이 타들어가고 있을까, 내가 너무 좋아하던 그 책임감 있는 모습이 한없이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애인이 동생을 달래는 틈을 타 화장실로 숨어 들었다. 같은 상실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얻고 싶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방금 막 들은 일을 내 입으로 세세히 전했다. 이야기하다 보니 그제야 제대로 실감이 나며 왈칵 울음이 터졌다.


“에휴…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냐… 너도 많이 놀랐겠네…”


밤 늦게 걸려온 전화 너머,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엄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날 위하는 그 목소리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그런 존재를 잃게 된 애인에 대한 안타까움을 동시에 느꼈다. 내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하나 남은 엄마마저 잃을까 하는 두려움에 꽤 오랫동안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나는, 이 일을 누구보다 내 일처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 내가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힘이 될 수 있을까”


힌트를 얻고 싶었다. 어떤 행동이 위로가 될까, 어떤 말이 도움이 될까, 엄마라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을까 생각했다.


“뭘 어째, 너도 알잖아. 그냥 옆에 있어줘. 그거밖에 없어.”


돌아온 대답은 어쩌면 무심해 보일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나는 그 말이 계속 입에 맴돌았다.


그냥 옆에 있어줘, 이 세상에 혼자 남았다고 느끼지 않게 안아줘.

그냥 옆에 있어줘, 슬퍼하고 싶은 만큼 슬퍼할 수 있게 도와줘.

그냥 옆에 있어줘, 이 아픔도 함께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게 해줘.

그냥 옆에 있어줘, 다시 일상에 돌아올 수 있게 응원해줘.


어떻게 해야 할 지 누구보다 잘 아는 건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 지금은 보편의 룰이 적용되는 상황이 아니니까. 누구에게나 있는 상실의 경험, 그러나 어떤 관계였는지, 어떻게 잃게 됐는지, 무엇이 가장 힘든지는 사람마다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각자가 이겨내는 방법도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답은 내 안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를 알기에, 그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나이기에.


몇 시간 뒤, 불행 중 다행으로 어머니의 시신을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애인은 곧바로 노르웨이로 떠났다. 슬픔에 빠져있기 보다는 어찌 됐든 일어난 일을 수습하며 몸을 움직이는 게 덜 힘들다고 애써 웃으며 떠났다. 약 1주간의 여정이었다. 현실적인 이유로 나는 그의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대신 그가 없는 기간 동안 이 글을 조금씩 채워나갔다. 돌아오면 글을 보여준 뒤 꼭 안아주고 싶었다. 몸은 멀리 있었지만 마음은 항상 옆에 있었노라 말해주고 싶었다.


노르웨이에서 돌아와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는 곁을 지켰다. 이번에는 물리적인 힘을 주고 싶었다. 절대적인 가족의 수가 적은 그가 짊어진 짐을 함께 들고 싶었다. 사실 그렇게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사내 커플인 우리의 관계를 회사에 처음 공개하는 순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걱정과 달리 결심은 바로 섰다. 무엇보다 내가 그의 곁에 있어주고 싶었기에 그러했다. 나를 걱정하는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내 선택을 존중해달라 얘기했다. 앞으로 어떤 시선과 소문에 아프더라도,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장례식에 온 지인들은 내게 대단하다고 말했다. 본인이라면 이렇게 못했을 것 같다며, 헌신적이라며 나를 치켜세웠다. 고백하건대 칭찬이 이렇게까지 와 닿지 않았던 적은 살면서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받는 말들이 당황스럽고 어색했다. 칭찬이라면 그저 좋아하던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낯설었다.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애인이 그만큼 좋은 사람이라서 할 수 있는 거라고 말하는 나 또한 낯설었다.


어머니가 떠나신 지 꼭 한 달이 된 지금, 오늘도 나는 그냥 그의 옆에 있다. 마음을 물어봐주고, 응원해주고, 믿어주고, 함께 슬퍼한다. 아마 한동안은 높은 빈도로 슬픔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결국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 믿는다. 내 존재가 큰 힘이 된다 말하는 그를 보며, 또 일상으로 점점 돌아오기 위해 노력하는 그를 보며, 그 믿음은 더욱 강해진다.


먼훗날, 비슷한 아픔을 겪게 된 사람이 우리의 극복 방법을 묻는다면, 나는 여러 말 보태지 않고 딱 이렇게 말할 것이라 다짐해 본다.


“그냥 옆에 있어줘. 너만의 방법으로 함께 아파해줘. 그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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