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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inq Mar 24. 2019

My lofoten 1: 인생길을 걷다

moskenes에서 reine 까지의 산책

비행기와 페리를 타고 20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한 로포텐 제도에서의 첫 백야.


여행이란 사실 특별할 게 없는 행위를 새로운 곳에서 하는 것일 뿐이라고도 한다.

북극권의 여름에서 맞이하는 첫 백야임에도 불구하고, 암막커튼과 지구 반바뀌를 돌아온 나의 피곤함때문인지 특별함을 느끼지 못하고 푹 잤다. 물론 잠자리에 들었을 때와 일어났을때 햇살의 강도와 각도가 비슷했던 것 정도는 약간 신기했었지만. 


여행이란, 사실 특별할게 없는 행위를 새로운 곳에서 할 뿐이라고도 하지만

장소가 바뀌었다는 것만으로 나의 마음가짐이 바뀐다.


출근길의 아스팔트길 대신, 북극권 섬의 해변가를 거닌다는 것으로 장소가 바뀌었을 뿐이지만

나의 마음은 북극권의 하늘처럼 맑았고, 산책길 옆에 핀 꽃처럼 화사했고, 북극권의 바닷바람처럼 시원했으며, 산책길 옆의 산에 있는 만년설과 푸른 바다를 두둥실 떠가는 구름들처럼 나의 마음도 로포텐 제도의 공기속에 두둥실 흘러가고 있었다. 


서울에선 항상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면 

로포텐 제도에서는 이어폰을 벗고 길가의 꽃과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거닐고 있었다.


모스케네스에서 레이네로




북극권이라기엔 생각보다 녹음이 있었고, 높은 돌 산과 바다 사이에 좁게 난 왕복 2차로 포장길의 바로 옆에 있는 좁은 자갈길, 조금만 실수하면 옆의 경사로 굴러떨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들며, 앞에서 달려오는 사람을 보면 어디로 피해야 하지 고민하게 만들며사길을 걸어가야 하지만 그런 낭떠러지가 옆에 있다는 걸 잊을 정도로 로포텐 제도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처음에 목적지를 정해놓고 길 을 접어들었다고 해서 똑같은 길 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처음에 걷던 길은 찻길 옆의 샛길이었지만, 저 앞 사진의 터널 옆까지만 가면 보면 새로운 산책로가 나온다. 


2006년의 나의 목적지는 (적당히 잘 먹고 살 수 있는 회사) 입사였고, 2017년 로포텐 제도를 걷던 그 당시에 입사가 확정되어 있었지만


2006년에 처음걸었던 길은 학사 졸업 후 취직이었는데, 2011년엔 석사란 옆 길로 접어들고, 2012년엔 다시 박사의 길을 걸어 결국 입사란 목적지에 도착했다.


레이네 가는 길


레이네 가는 길
레이네 가는 길


아무리 여행에 질리고 많은 것에 무덤덤해져 감동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목적지가 중요하지 가는 길이 중요하다고 해도,

목적지로 가는 길에 펼쳐진 이런 절경을 보고서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은 여행자가 아닐 것이다.



2006년엔 대학교를 가는 것만으로 목적지가 얼추 정해졌다고 생각했고, 입사후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사이에 만나고 경험한 나의 대학 생활, 취미생활, 멋진 친구들을 겪고서도 대학생활은 사회생활을 위한 징검다리로 단순히 치부하고 무심하게 지나칠 정도로 난 무심한 삶의 여행자가 아니었던 것 같다. 


가다보면, 가끔은 중간에 꼭 가려던 곳을 못 가기도 하고, 그 길이 너무 위험하거나 힘들어 보여서 포기해야만 할 때도 있다.


원래 로포텐 제도에서 나는 레이네브링겐을 올라가려고 했었다. 아까 보여준 터널쪽에서 약 2-3시간 올라가면 위와 같은 절경이 펼쳐진다.

가고 싶었던 레이네 브링겐에서의 경치


하지만, 레이네 브링겐 앞에는 이런 경고문이...

레이네 브링겐은 아직 등반로가 정비되지 않은 곳으로, 그냥 자연의 산을 올라가야 한다. 그 말은 미끄러지면 바로 추락사고라는 것.


인터넷에서도 비가 오면 진흙탕이어서 정말 미끄럽고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하는 영어 글을 많이 봤고, 나의 신발은 운동화였으며 전날 비가 왔었고, 혼자 사고라도 당하면 정말 변사체로 발견될 거 같은데...하지만 의외로 혼자서도 잘 올라갔다는 글도 많았고.. 내가 이곳을 다시 올 일이 있을까 하며 3분간 올라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올라가지않았다.



만약 이 길을 혼자가 아니라 둘이 왔다면 걸어 올라갈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가끔 인생의 길은 혼자 걷기엔 꽤 위험하기도 하다. 의지할 사람이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려운 길에 도전해 나갈 의지가 생기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도, 목적지인 레이네 가는 깅릐 하늘이 아름답네 하며 위안을 삼았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레이네. 어제는 흐려서 레이네 근처의 장중한 산이 도드라졌는데, 

오늘은 맑아서 레이네의 아름다운 풍광이 더 잘 드러났다.


장중한 만년설 덮인 산과 돌이에서 흐드러지게 자라는 낮은 초목과 꽃들처럼

북극의 바람과 빙하가 깎아낸 돌 사이의 호수가에 레이네란 아름다운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이런 풍경속에서 산다는 것은 무슨 느낌일까. 

이런 풍경속에 살아도 일상에 치여서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을까. 올해는 대구 어획량이 좋지 않아. 관광객이 조금 오네. 이런 먹고 살 궁리를 하고 있을까.


그런 골치아픈 걱정을 잠시라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이 여행객의 특권. 지금 이 순간과 이 장소, 이 분위기를 오롯히 즐길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일상을 살아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휴가의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레이네에 왔으면 레이네 브링겐을 올라가 보지 않으면 안된다고 할 수 도 있고,

누군가는 그냥 시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노르웨이 시골 풍경을 걸으려고 비행시간만 20시간에 페리 4시간을 타고 다시 2시간을 걸어 레이네에 왔냐고 할 수도 있지만.


레이네브링겐엔 올라가보지 못했지만, 오늘 오전 트래킹의 목적지인 레이네에 도착했다는 것 만으로도.

가끔은 중간 과정만큼이나 원했던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것이다.

그 목적지가 일상의 평범한 목적지와 남에게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더라도, 

이 여행은 나의 것이고, 이 삶은 나의 삶이기에 내가 가지는 의미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모스케네스에서 레이네까지 걸어오는 동안

캠핑카를 몰고 가는 여행객들도 보았고

레이네의 로부어에서 백야를 보내고 렌트카를 몰고 로포텐 제도를 드라이브 하는 사람들도 보았고

길가의 언덕에서 캠핑을 하며 밤을 지새운 후 텐트를 걷고 자전거에 짐을 놓고 자전거를 타고 떠나는 사람들도 

그들 각각의 로포텐 제도를 즐기고 있었다.


2017년 모스케네스-레이네는 그 자체로 오롯히 멋진 경험이었으며, 

모스케네스에서 카벨보그까지 버스로 130 km 를 가는데 약 3시간, 220 nok (노르웨이 크로네, 1 nok 당 약 130원)이란 거금을 지불하긴 했지만


아까운 것은 220 nok 가 아니라, 내가 이 곳을 1일만에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나간 경험만큼이나 남은 노르웨이의 북극권이 멋질 것을 나는 믿었다. 


과거의 추억을 놓지 못하는 것보다야, 앞으로 올 새로운 경험에 기대하는 것이 훨씬 멋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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