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최고의 작화 조차도 이 영화가 주는 것의 일부일 뿐
비가 내렸다가 어느새 그쳐 있다. 빗방울도 보이지 않고 빗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고 정원의 희미한 젖은 자국과 나뭇잎에 맺혀 있는 물방울만이 비가 왔었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준다.
당신의 목소리도 입 밖을 나왔다가 어느새 멈춰 있다. 당신의 입도 멈춰 있고 귓속에 들리는 건 바람에 사르륵 거리는 나뭇잎이 남은 여운을 떨쳐내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뿐이다.
오늘은 비가 올 것이고, 오고, 왔었다.
당신이 말을 할 것이고, 하고, 했었다.
비가 전철 창문을, 버스 창문을, 집의 창문을 미끄러져 내리고 우산을 미끄러져 정원의 연못에 내린다.
당신의 목소리가 당신의 입술을, 나와 당신 사이의 공기를, 나의 귓가를 미끄러져 나의 마음에 내린다.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당신의 말을 기다리는 마음은
비에 젖는지도 모르던 그 시간은
당신의 언어에 젖어가는지도 모르던 그 시간은
비가 그치고 나서야
당신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비가 올 때만 그 정원에 간다는 핑계는 사실
당신을 보고 싶어서 그곳에 간다는 속마음은
비가 왔다가 그쳤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당신을 몰랐다는 걸 알았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장맛비가 지속되는 날이 되고 나서야 정원에 비의 흔적이 남아있고
당신을 만나는 날이 지속되고 나서야 내 마음속 정원에도 당신의 흔적이 남아있고
오랜 맑은 날이 지속되다 오는 비가 반가워지고
오래 보지 못하다가 다시 만난 당신이 반가워지고
우산과 창문으로 미끄러져 내리던 빗방울이, 강풍에 흩날려 옷에 젖고 나서야
나의 닫아건 빗장에 미끄러져 버리던 속마음이, 격한 감정에 흩날리는 언어가 쏟아져 나오고서야
비 오는 정원이 아닌
당신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언어가 오가던 정원에 비가 쌓였다.
내 마음속에 당신이, 당신 마음속에 내가 쌓이는 데는 평년보다 10일 정도 더 지속된 장마만큼의 기간이 필요했다.
빗물은 같은 높이를 갖는 연못에 쌓인다.
언어는 같은 감정을 갖는 마음에 쌓인다.
비는 그쳤고, 장마는 지나갔지만
눈은 오고, 감정은 오간다.
가장 아름다운 비 오는 장면을 그린 영화. 4.5+0.5/5
영상만으로 모든 걸 압도할 수 있단 걸 보여줬다.
PS. 하루 지나고도 계속 생각나서 별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