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기억
누군가는 그러겠지. 바퀴 벌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러나? 안다. 내가 아는 사람 모두 바퀴 벌레를 싫어한다. 그런데 나는 그냥 '싫어한다'가 아니라 정말 병적으로 싫어한다. 바퀴벌레를 봤을 때도 그렇지만 바퀴벌레라는 단어만 생각해도 팔다리의 털이 서고, 등에서 목으로 올라가는 부분에 가닐 가닐 한 느낌이 나 진저리 칠 수밖에 없다. 구토가 나올 것 같기도 하다. 바퀴벌레는 내게 일종의 트라우마다. 가난의 트라우마.
초등학교 5학년 때였나... 이사를 해야 했다. 공중목욕탕 건물이었다. 1층엔 미용실과 정육점, 2층과 3층은 각각 여탕, 남탕이었다. 건물 옆 쪽문을 통과해서 빙 둘러 걸어가 미용실 뒤편이 우리 집이었다. 원래 미용실의 일부인데, 샵으로로 쓰는 부분과 방 사이를 나무판으로 막아 분리한 것이었다. 그래서 손님이 있을 땐 위이잉 드라이기 소리를 참 자주 들었다. 미용실에서 틀어놓고 지내던 티비 소리도, 파마약 냄새와 함께 흘러왔었다.
방이 두 개 있는 구조였다. 방 하나는 정말 제대로 된 방. 그리고 작은 방은 원래의 용도가 방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손을 뻗으면 천장에 닿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천장엔 뜬금없지만 하수관도 툭 튀어나와 있었다. 그 작은 방 위가 바로 목욕탕 건물의 공용화장실. 누군가 화장실을 쓰고 물을 내리면 쏴아 하고 물소리가 들렸고 우리 가족도 용변을 보려면 집에서 나가 건물 옆 쪽문으로 다시 나가 목욕탕 건물 1층과 2층 사이에 있는 그 화장실을 썼다. 왜냐하면 우리 집은 '집'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서 화장실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방에서 나와 문을 열면 나무 합판과 슬레이트로 친 벽 가운데에 문이 있었다. 그 안쪽이 우리 집 부엌. 수도가 있었고, 한쪽엔 싱크대, 선반과 그위엔 가스레인지. 다른 쪽엔 냉장고가 있었다. 나름 널찍했으나 슬레이트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바람이 매서워 겨울엔 머리 감고 샤워할 때 오들오들 떨었다.
작은 방은 나와 동생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한쪽에 커튼을 달아 잡다한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로 쓰긴 했지만 엄마가 워낙 깔끔한 성격이어서 집안 곳곳이 항상 반질반질 깨끗했다. 그러나 청소를 깔끔하게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주변 환경. 옆집이 정육점이라서 항상 기름진 고기 찌꺼기가 있다는 것과 위층이 목욕탕이어서 건물이 굉장히 습했다는 것. 게다가 작은 방엔 창문이 하나도 없어 빛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습할 수밖에 없었다는 건 바퀴벌레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목이 말라서 밤에 자다가 깼다. 물을 가지러 가려고 일어서 앉았는데 목 뒤가 너무 간질간질했다. 시원하게 긁으려고 손을 대는 순간 느껴진 것은 내 피부가 아니라 이질적인 무언가, 아주 빠르게 간지럼을 태우며 지나가던 무언가였다. 옆엔 동생이 자고 있었기에 얼른 방 밖으로 뛰어나가 손으로 온몸을 찰싹찰싹 쳐대며 그것을 떼어냈다. 검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가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죽지도 않고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머리카락 사이사이까지 다 쓸어보며 내 몸에 바퀴벌레가 붙어 있지 않음을 재차 확인했다. 물을 마실 정신 따윈 없었다. 그냥 서러웠다. 모두가 잠든 새벽, 그렇게 나는 부엌 바닥에 앉아 소리를 삼키며 눈물을 쏟아댔다.
가난이 사무쳤다. 사업에 실패한 아빠도, 쌀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엄마도 보기 싫었다(이 또한 나의 트라우마다. 쌀 봉지의 반 정도를 먹은 후부터는 새로 한 봉지를 살 때까지 마음이 불편하다.). 눅눅해서 벽지가 쭈글쭈글해지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방에선 빛을 찾을 수 없었다. 밤에 잠든 사이 바퀴벌레가 내 얼굴과 내 몸을 기어 다니진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웠다. 한동안 밤에 눕기 전 베개 근처를 샅샅이 뒤졌고, 누워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바퀴벌레가 내 입으로 들어가는 악몽을 꾸고 놀라서 깨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방 두 개짜리 아파트로 이사 갈 때까지, 나는 꽤나 많은 밤, 아파트에 사는, 아니면 그냥 '집'같은 집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다 잠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바퀴벌레는 내게 가난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존재이다. 그때에 비하면 훨씬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이젠 가난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홍콩에 산다는 것은 종종 문제가 되기도 한다. 여긴 길에 바퀴벌레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며칠 남지 않는 자유의 시간을 즐기며 저녁 산책을 하다가 하나 목격하고 말았다. 발걸음이 멈추더니 숨이 턱 막혔다. 홍콩에 사는 동안 가난의 기억 따위 이겨버리라는 하늘의 뜻일까. 마주치기 싫은 기억을 어찌하여 자꾸 꺼내게 만드는지.